CULTURE

2015년의 순간들 – 4

2015.11.05GQ

이상했다. 기괴했다. 우습고 슬펐다. 윤곽이 보였다. 숫제 뿌리가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꽁꽁 숨었다. 기쁘기도, 웃기도, 잊히기도 했다. 새로운가? 넘쳐났나? 2015년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시간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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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령 <나일론> 피처 디렉터

서울에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상영되었다. 나는 회사에 거짓말을 대고 나왔다. 2시간 정도 되었을 때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신경질적으로 투덜거렸고, 남자는 모를 소리를 해댔다. 10분의 휴식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싸우기 시작했다. 외국인 남자가 여자에게 일부러 물을 뿌렸다고 했다. 외국인 남자는 “그녀는 미쳤다”며 혀를 찼다. 여자는 나가버렸다. 다시 영화가 시작되었다. 경찰이 들어왔다. 경찰은 작은 펜라이트로 관객의 얼굴을 비추었다. 사람들은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자가 들어와 외국인 남자를 지목했고, 외국인 남자는 알 수 없는 나라의 말로 소리쳤다. 영화는 계속되었다. 4시간 30분. 감독 확장판, 4K 리마스터링, 30년 만에 개봉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마지막 상영이 끝났다.

나나오 타비토라는 일본 음악가를 좋아한다.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15년 넘게 만나기를 고대했지만, 일본에 갈 때마다 공연은 없었다. 얼마 전, 그가 광주에 왔다. 그리고 스스로, 서울의 어디서든 공연을 하고 싶다는 트윗을 남겼다. 이걸 어쩌나 발을 동동 굴렀는데, 헬리콥터 레코즈의 박다함이 재빠르게 공연을 만들었다. 그가 하루 만에 서울에 왔다. 단편선과 쾅프로그램의 최태현이 앞서 노래를 불렀다. 나나오 타비토는 김밥이 맛있다고 했다. 광주에서 배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고, ‘아리랑’을 내리 불렀다.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TV에서 우스개로 삼는 그런 한국어로 ‘아리랑’을 불러도 전혀 재미없지 않았다. 공연을 마치고 최태현을 다시 무대에 불러 세웠다. 두 사람은 쉬지 않고 소음과 잡음, 목소리와 기계음으로 다퉈댔다. 끝을 모르고 싸워댔다. 얼이 빠져 SNS에 호들갑 떨 엄두도 나지 않았다.

2015년을 선결로 열었다. 10월이 된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믿는다. 일기장에 선결은 이렇게 세 번 언급된다. “선결이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해”. “선결의 마음을 둘 곳이 몹시 귀엽다. 음표들이 어떤 가락을 목적지에 도달시키려고 헹가래를 치면서 행진하는 것 같다.” “선결 첫 데모 들었을 때 이름이 순결인 줄 알고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박다함 헬리콥터 레코즈 대표

<Show Me The Money 4>와 <언프리티 랩스타 2>와 <헤드라이너>를 연이어 보던 매 순간. 원래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편은 아니었다. <슈퍼스타 K>를 비롯한 여타 방송은 과도하게 감성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고, 그 밖의 여러 요소들도 크게 흥미롭지 않았다. 그런데 <Show Me The Money>와 <언프리티 랩스타>와 <헤드라이너>엔 좀 다른 쾌감이 있었다. “아 이것이 대중(이 좋아하는 것)이구나!”를 느끼게 된달까? 여러 공연을 기획하고 파티를 여는 입장에서, <슈퍼스타 K>보다 확실히 가까이 와 닿았다. “월드컵 이후로 우리가 이렇게 열광하면서 TV를 본 적이 있나?” 친구들과 작업실에 모여 <Show Me The Money>를 큰 화면으로 보며 나눈 얘기다. 물론 그 열기는 블랙넛이 떨어지기 전까지만 유효했지만. <헤드라이너>에서 디제이 샤넬이 애디슨 그루브의 노래를 플레이했을 때는 “우리도 저런 거 트는 데 바로 탈락하겠네?”라며 자조적인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우리가 진행하는 행사와 음악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됐달까?

신도시와 우정국이 문을 열었다. 을지로의 신도시는 기본적으로 바 형태지만 공연을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를 열 수 있다. 역시나 을지로에 자리 잡은 우주만물과 (지금은 없어진) 한남동 꽃땅의 멤버들이 뭉쳐서 새로 문을 연 가게다. 우정국은 마포구 창전동에 있다. 원래 우체국이었던 공간을 재단장한 곳이다. 둘 다 맘먹고 가지 않으면 찾기가 꽤 어렵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다. 사실 최근 몇 년간은 서울에서 특별히 흥미로운 움직임이 없었던 터. 올해 이 두 공간이 만들어나가는(혹은 그곳에서 열리는) 새로운 행사와 기획에 자꾸 눈이 간다. 한동안 잠잠했던 에너지가 응집되어 펑펑 터지는 느낌이랄까? 그런 에너지가 다시 흩어져 사라지지 않도록 응원을 보낸다.

키스 에이프의 ‘It G Ma’는 올해 1월 1일, 새해의 문을 박차고 공개됐다. 그때부터 연말이 다가오는 지금까지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들은 노래이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놀라는 한편, 이 곡이야말로 ‘올해의 노래’라는 생각을 세삼 되새기게 된다. <Complex>와의 인터뷰가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그런 자신감이야말로 멋지지 않은가? “한국에는 코호트를 제외하고 내가 들어가고 싶은 크루가 없었다. 한국 랩은 별로다. 구리다.”

 

배지헌 baseball-lab.com 운영진

한화 김성근 감독은 올해 마운드에서 권혁의 볼을 세 번 만졌다. 처음 두 번은 성공적이었다. 위기에 몰렸던 권혁은 감독이 볼을 만지고 내려간 뒤 거짓말처럼 위기에서 벗어났고, 언론은 “권혁을 살린 야신의 볼터치”라는 헤드라인으로 감독의 능력을 종교적인 차원으로 승화했다. 하지만 세 번째는 조금 달랐다. 9월 19일 두산전, 한화가 7-5 두 점차로 앞선 2아웃 주자 없는 상황이었다. 마운드에 올라온 김성근은 권혁의 볼을 툭 건드리고 내려갔다. 위기상황도, 투수가 지친 것도 아닌데 왜 마운드에 올라와 ‘볼터치’를 하고 내려갔을까. 한 야구인은 “대외 선전용 쇼”라고 평가 절하했다. 김성근은 사면초가에 몰려 있었다. 투수 혹사를 두고 언론의 뒤늦은 질타가 이어졌고 여론도 악화됐다. 선수단 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 베테랑은 사석에서 “감독이 계속 남는다면 내년에 팀을 떠나겠다”는 말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김성근은 마운드 방문과 ‘볼터치’를 통해 자신의 팀 내 권력이 건재하다는, 여전히 선수들의 신뢰를 받고 있으며 팀 분위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외부에 보여주려 했다. 처음 두 번의 볼터치가 팀과 투수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한 제스처였다면, 세 번째 볼터치는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김성근이 내려간 뒤, 권혁은 곧바로 김현수에게 홈런포를 얻어맞았다. 신의 손길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한화는 그날 경기에서는 승리했지만, 5강 진출 경쟁에서는 탈락했다. 김성근의 세 번째 볼터치는 역설적이게도 김성근이 선수단에 대한 장악력을 상실했으며, 김성근식 야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 장면이었다.

“나는 잘못한 게 없고.” 김일곤이 카메라 앞에서 말했다. “나도 앞으로 살아야 한다고.”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뒤 시신을 불태운 범행의 주인공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강력범의 태도는 대개 두 종류다. 잘못했다며 고개를 숙이거나, 고개를 치켜들고 당당하거나. 김일곤은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는 시종일관 자신은 억울하다고, 피해를 입었다고,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외쳤다. 따지고 보면 김일곤만 그런 게 아니다. 안산 인질극 범인 김상훈은 “나도 피해자”라고 외쳤고, 양양 방화범은 “피해자가 내 아들에게 욕을 했다”고 주장했다. 부평 커플 폭행 사건 가해자들도 자신들이 인터넷 상에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억울해 했다. 2015년 한국에서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수백 명의 아이를 바닷속에서 잃은 뒤에도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나라다. 누구도 잘못했다고 인정하거나 책임을 지는 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어떤 잘못에 죄책감을 가져야 할까. 죄의식의 영도가 사라진 세상, 2015년 한국의 모습이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정재영이 김민희의 그림을 혹평한 순간. 홍상수의 새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에서 정재영은 전형적인 홍상수의 남자를 연기한다. 의뭉스럽고 지질하고 비겁하다. 자기 자신에게 할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고 있다. 이런 전형적 인물이 주도하는 1부는 헐겁고 평이하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2부가 시작되고, 정재영이 김민희의 그림에 솔직한 평가를 하는 순간 완전히 역전된다. 2부의 정재영은 1부와 같은 인물을 연기하지만, 직전의 1부는 물론이고 그간 홍상수 영화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인물이 된다. 홍상수는 몇 가지 사소한 차이를 통해 1부의 평이한 장면을 경이로 바꾸고, 앞에 본 장면과 대사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더 나아가 우리가 그의 영화를 소비하는 익숙한 방식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까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올해 한국영화의 가장 마법 같은 순간이자, 홍상수 영화가 <극장전>에 이어 또 한 번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음을 알린 순간이다.

 

문신애 <Onstyle> PD

2015년 1월, 새로운 TV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김나영의 손에 작은 카메라 한 대를 쥐어주었다. 이른바 ‘오디션 캠’이라 불리는 소형 캠코더. 김나영은 다른 촬영 스태프의 동행 없이 이 카메라 한 대를 들고 한남동 신혼집은 물론 런던, 밀라노, 파리, 카프리 등 전 세계 곳곳을 담아왔다. 그렇게 찍은 영상은 ‘나영 LIVE’라는 타이틀을 달고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 이후 더 많은 연예인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자기만의 콘텐츠를 대중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TV를 넘어 포털 사이트에서도 자주 보이는 XX 채널, XX 라이브라는 이름의 수많은 동영상 클립이 그 증거다. 2015년, 시청자들은 스타들의 민낯 공개 이상의 더 개인적이고 고유한 것들에 익숙해졌다. ‘셀캠’을 위한 앵글과 화법 연구야말로 변화된 방송 트렌드를 대비하는 연예인들의 새로운 과제일지도.

샤넬의 크루즈 컬렉션이 드디어 서울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두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샤넬은 서울을 어떻게 풀어낼까, 그리고 서울은 샤넬과 어떻게 어우러질까. 첫 번째 답은 오방색으로 꾸민 알록달록한 도트 물결의 쇼장, 한국의 전통 복식을 폭넓게 재해석한 컬렉션 의상을 보며 얻을 수 있었다. 몇 시간 후, 비공식 애프터 파티 사진이 하나둘 (비밀인 듯 아닌 듯) 뒤따라 올라왔다. 샤넬 크루가 DDP를 떠나 도착한 곳은 바로 이태원의 어느 트랜스젠더 클럽. 각종 바와 클럽과 식당과 노래방에 이모들의 전집까지 한데 모여 이태원에서도 가장 떠들썩함을 자랑하는 그 골목이라니. 틸다 스윈튼과 지드래곤도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었던 장면은 샤넬의 카멜리아를 머리에 장식하고 여느 때처럼 유쾌하고 힘 있게 공연하는 그녀들의 모습이었다. 2015년의 서울이 샤넬과 어우러지는 흥미로운 방식을 엿본 순간.

연남동에 경의선 숲길이 들어섰다. 그리고 올여름 그곳은 한강 고수부지만큼 분주했다. 어차피 젊은 소비자들은 떠오르는 동네로 몰려들기 마련. 고유한 분위기가 사라졌느니, 상업적으로 변모했느니 하는 얘기야말로 식상하게 들린다. 말이야 맞지만 이미 합정동, 경리단, 서촌에서 겪은 경험을 통해 충분히 익숙해진 탓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젠트리피케이션’이야말로 ‘진짜’를 가려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곧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오겠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옷가게들이 줄을 잇겠지”라며 냉소할 때, 그러거나 말거나 멋과 자존심을 지키는 진짜 ‘핫’한 곳들은 더욱 명백해진다. 경의선 숲길 옆 골목의 어느 바를 알게 된 이후, 매일 그곳을 찾는다.

 

박민준(디제이 소울스케이프) DJ, 프로듀서

내년이면 40주년을 맞이하는 부산 남포동의 호텔 피닉스가 지난 6월부로 영업을 종료했다. 조용필의 초창기 활동 무대이자 수많은 부산 출신 뮤지션의 산파 역할을 했으며, 초기 부산국제영화제의 주요 거점이기도 했던 곳. 무엇보다 지을 당시 일본에서 직수입한 건축재와 인테리어, 여러 소품 전부가 재건축으로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은 무척 아쉽다.

제이 딜라의 피규어가 서울에서 세계로 뻗어나간 올봄. 한국의 피규어 아티스트 송필영은 수년 전부터 직접 사비를 털어 힙합 프로듀서 제이 딜라 피규어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마침내 어렵게 연락이 닿은 제이 딜라 파운데이션에서는 그의 작업에 큰 감동을 받았고, 결국 오랜 시간에 걸쳐 준비한 ‘오피셜 피규어’가 발매됐다. 관련 제품 중에서도 독보적인 완성도로, 나오자마자 전 세계 모든 가게에서 품절. 스트리트 컬처, 서브 컬처의 영역에서 이렇게 원천 기술을 갖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낸 전례는 찾기 어렵다.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개장. 직접 참여하기도 했지만, 유형의 음악(바이닐 레코드)을 집단 지성의 형태로 모으고 공유하는 굉장히 의미 있는 공간이라 말하고 싶다. 5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대중음악을 대상으로, 장르 및 시대적 대표성과 특수성을 모두 고려하며 최대한 오리지널 프레싱을 구하고자 한 과정은 어찌 보면 무모할 정도의 ‘스케일’이었다.

 

박모과 레스토랑 Parc 대표

5월 30일, 보건복지부는 (메르스 관련) “의도적으로 퍼뜨리는 유언비어에 대해 수사를 통해 바로 처벌하는 등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를 포함, 식당을 운영하는 모든 사람에게 악몽 같은 시간 아니었을까? 메르스 사태 발생 초기에 정확한 정보와 대책을 내놓지 않자 온갖 괴담이 돌기 시작했고, 오뉴월 소비 심리는 그야말로 꽁꽁 얼어붙었다. 6월엔 식당 매출이 무려 40퍼센트(30퍼센트 후반대) 가까이 줄었다. 이후의 ‘복구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자영업자들이 볼멘소리를 내자 여러 지원 대책이 나왔지만, 그중 피부에 와 닿는 내용은 없었다.

6월 28일 서울광장. 퀴어 문화축제 퍼레이드 차량에 오른 한 퍼포머가 대한문 쪽 반대 시위자들을 향해 가운뎃 손가락을 날렸다. 올해 미국 연방 대법원은 동성결혼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SNS에는 무지개가 넘실댔고,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의 결정에 동성애 관련 수많은 담론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 참가자들과 반대 시위자들과 구경꾼들이 어우러진 굉장한 광경이 펼쳐졌다.

정확, 공정, 균형.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중고등학교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고 발표하며 사용한 단어들이다. “이념 편향성을 불식시키고 균형 잡힌 교과서를 만들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발표야말로 우리 사회와 그 저변을 지탱하는 균형을 뒤흔드는 것처럼 들렸다. 딱 한 가지 생각과 관점을 자신들이 정해줄 테니, 그저 그것을 배우라는 선언. 저항이나 제대로 해볼 수 있을지 한숨부터 나온다.

 

황효진 웹매거진 <ize> 기자

#GoWildSpeakLoudThinkHard. 통쾌하고 명쾌한 구호였다. 칼럼니스트 김태훈은 무뇌아적인 페미니즘이 IS보다 위험하다는 글을 썼다. 분개한 트위터 유저들은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라는 해시태그를 달기 시작했지만 선언을 주저하는 분위기는 어쩐지 가시지 않았다. 상황이 바뀐 건 장동민이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여자들이 제일 싫다고 말한 뒤였다. 누군가 이 말을 따 #GoWildSpeakLoudThinkHard라는 해시태그를 만들었다. 여성 혐오와 차별에 대항해 그건 틀렸다고 말하고 생각하고 설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 이제 여자들은 끝까지 따지고 비웃고 화낸다. 사과와 시정의 움직임은 아직 미미하지만, 이제 여자들도 입과 머리가 있고 떠들 줄 안다는 것을 꽤 많은 사람이 안다.

커먼센터의 <혼자 사는 법> 전시엔 진짜 혼자 사는 법이 있었다. 외로우니 모여서 같이 밥을 먹어라, 공간을 공유해라…. 이미 개인의 삶으로 들어선 사람들에게 왜 너는 가족을 대체할 유사 공동체를 만들지 않느냐고 묻는 말들은 어떤 면에서 공허하기까지 했다. <혼자 사는 법> 전시는 어설프게 다독이거나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돈을 모아 번듯한 집에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설사 아주 약간 남아 있다 해도 그건 당신의 몫이 아닙니다. 자,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좁은 공간에 걸맞도록 여러 쓰임새를 두루 갖춘 소목장세미의 가구, 가구 대신 잡동사니들로 가득 채운 우주만물의 방, 부엌 사용법을 알려주는 워크숍 같은 걸 볼 때는 두려움과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동시에 솟았다.

걸그룹 여자친구가 SBS 라디오 공개방송 <박영진 박지선의 명랑특급>에 출연해 비에 젖은 무대에서 수차례 넘어지고 일어서던 날. 그리고 그 영상이 널리 퍼지던 순간. 빅뱅 다음에는 EXO가 있었다지만 소녀시대 다음은 빈칸이라 느꼈다. 팔랑거리는 스커트를 입고, 부서질 듯 가느다란 몸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대부분의 신인 걸그룹은 제각각 소녀일 뿐 결정적 한 방을 보여주지 못했으니까. 그중에서도 여자친구는 노골적일 정도로 소녀시대의 유산을 그대로 껴안은 채 데뷔한 팀이다. ‘유리구슬’의 힘찬 발차기와 다부진 가사가 반갑고 신선하다가도, 이것을 새로운 소녀의 시대라 말하기엔 멋쩍었다. 그건 ‘오늘부터 우리는’의 뜀틀 퍼포먼스를 본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그 미끄러운 무대에서 몇 번이나 ‘꽈당’ 넘어지고 일어서며 안무를 끝까지 해낸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SNS를 통해 노랫말과 안무처럼 씩씩하기 그지없는 소녀들의 이름을 언급하고 기억했다. 그룹의 캐릭터를 공고히 만든 방법부터 대중성을 확보한 경로까지, 여자친구는 그야말로 새 시대의 아이돌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우연이었다 해도, 예전이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우연이다.

 

김윤하 음악평론가

블랙넛이 <Show Me The Money 4>에서 “엄마 아빠, 이번엔 방송 보고 울지 마”라는 말로 무대를 마무리하던 순간.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라는 ‘펀치라인’으로 프로그램을 장악해버린, 카메라 앞에서 속옷을 노출하고 가사에 살인과 시체 유기까지 등장시키며 위악을 부리던 한국 힙합계의 이단아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지금을 사는 청춘들의 분노를 먹고 자란 괴물 같은 그의 마이크에서 부모님을 향한 애증이 툭 떨어지는 순간, 시공간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구제불능이라 여겼던 문제아의 뜻밖의 진심. “안 힘든 사람은 없지/ 꼬이고 나면 더 멋지게”란 가사에서 위로받은 건 청춘들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혁오가 <무한도전>에서 ‘부채꽃 필 무렵’이란 가면을 쓰고 ‘아름다운 이별’의 첫 소절을 부른 그 장면은 어떤 전환점이었을까? 누구보다 큰 변화를 맞이한 것은 물론 혁오 밴드 자신들이었을 터. 이제 데뷔 1년이 채 되지 않은 햇병아리 밴드에서 전국구 스타가 된 그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수많은 화제와 후일담을 낳았다. 인디 신에서는 지금까지 인기를 모았던 밴드들과는 사뭇 다른 스타일에 “혁오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이 뭐냐”는 명제를 놓고 다양한 분석이 쏟아졌고, 결국 “이것은 새로운 세대의 음악”이라는 뭉뚝한 결론이 설득력을 얻었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건 혁오가 누구의 입김이나 권력도 아닌, 자신들의 청춘 그대로를 담은 음악으로 사랑과 존중을 동시에 받았다는 점이다. 그러니 흐뭇하게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아이돌 그룹 세븐틴이 “만세!”를 외치며 카메라 앞으로 거침없이 돌진했다. 길고 화려했던 케이팝의 광풍이 지나간 자리에 뛰어든 열세 명의 소년. 고작 데뷔 반년이 지난 세븐틴의 두 번째 싱글 ‘만세’의 박력 넘치는 후렴구 안무는, 어딘지 모르게 소녀시대가 8년 전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를 통해 선보인 발차기 안무를 떠올리는 구석이 있다. “잠깐 소녀야”라며 불러 세우고는 좋아하는 마음을 “만세”라 표현하는 사랑스러운 청춘. 대책 없는 낭만일지라도, 그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1 2015년의 순간들

#2 2015년의 순간들

#3 2015년의 순간들

    에디터
    장우철, 정우성, 손기은, 유지성, 양승철
    일러스트
    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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