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의 인기가 식은 건 정치적 격변기가 끝나서일까?
<썰전>은 김구라의 예능이었다. 2013년 2월 21일 첫 방송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랬다. JTBC가 무려 두 시간 이상을 뚝 떼어주었다. 전반부에서는 정치에 대해 ‘썰’을 풀고, 후반부에는 연예계에 대해 ‘썰’을 푸는, 일종의 ‘김구라 토크쇼 종합 선물 세트’에 가까운 기획이었다.
회차가 쌓이고 시청률의 냉혹한 평가가 반복되면서 <썰전>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진화한다. 정치인 출신, 혹은 정치에 대해 잘 아는 남자들이 목청을 높이는 전반부에서는 김구라의 발언과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프로그램의 무게추가 김구라에서 강용석과 이철희라는 두 명의 게스트로 넘어갔다. 반대로 후반부는 김구라가 분위기를 완전히 장악해버렸고, 그 결과 재미없는 프로그램으로 전락해 점점 분량이 줄어들더니 ‘썰전錢’으로 돈 이야기를 하면서 회생의 분위기를 꾀하다가 결국 사라졌다.
그렇게 오늘날 사람들이 아는 <썰전>이 만들어졌다. 천하의 김구라가 마치 유재석처럼 얌전하고 조신하게 남의 말을 듣고 입장 차이를 정리하는 프로그램. 두 명의 출연자가 서로의 지식을 뽐내고 입장의 차이를 확인하며 티격태격할 때 김구라가 사람 좋은 심판 노릇을 하는 예능. 그가 출연하는 다른 프로그램 어디에서도 김구라가 이렇게까지 순한 양처럼, 입 속의 혀처럼 구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오직 <썰전>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거나 두 번째로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에서만 가능하다.
프로그램의 MC와 출연자의 성격이 이렇게 굳은 가운데, 작년 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대한민국에 정치 폭풍이 몰아쳤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대통령 탄핵, 때 아닌 조기 대선까지 이어진 격동의 시간 속에서 <썰전>은 온전히 그 수혜자가 되었다. 시청률은 10퍼센트대에 도달했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의 자리를 두고 무려 <무한도전>과 자웅을 겨루는 위치까지 올라섰다. 김구라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1부는 정치, 2부는 연예계 소식을 탈탈 털어보는 프로그램이 나왔을 때 이 결과를 예상한 사람은 당연히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썰전>이 요즘은 다소 주춤한 모양새다. 한때 10퍼센트대 시청률을 자랑했지만 2017년 11월 현재는 3~4퍼센트대를 맴돌고 있다. MBC 파업이 끝났으니 <무한도전>이 돌아온다면, 이미 탄력을 받은 <황금빛 내 인생>과의 경쟁 속에서 방송 프로그램 선호도 역시 3위로 밀려날지 모른다. 아직 <썰전>은 추락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정치 예능으로서 전례 없는 흥행을 거듭하던 기세가 꺾인 것은 분명하다. 지난 9월 7일 방영분에서 유시민이 그 이유를 분석했다. “지난겨울 내내 촛불집회 하고 대선 치르느라 시민들이 정치에 지친 면이 있다.” 그때는 TV만 틀면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뉴스가 쏟아졌고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던 터라 <썰전>에서 쉽고 재미있게 사안을 정리해주는 것이 큰 호응을 얻었지만, 이제는 새 정부가 출범했고 정국도 안정되고 있으니 사람들이 ‘진짜 오락’을 즐기고 있다는 뜻이다. 이른바 ‘정치 비수기론’이다.
<썰전>에 대해 최근 불만을 표하는 대부분의 시청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썰전 시청률’만 검색해봐도 안다. 열이면 아홉이 “왜 시청률이 떨어졌는지 나는, 혹은 시청자들은 다 아는데 제작진만 모른 척한다”고 불평이다. 그 내용을 곱씹어보면 결론은 전원책 이후 투입된 보수 논객 박형준을 교체하라는 것이다. 그들은 박형준이 “느물느물”한 표정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을 넘기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난다고 입을 모은다. 차분한 말투와 신사적인 태도 역시 못마땅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결론은 늘 한결같다. “이제 <썰전> 더 안 봅니다.” ‘박형준 책임론’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다.
정치 비수기론과 박형준 책임론은 서로 대립하는 입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잘 뜯어보면 두 주장이 공통된 전제를 깔고 있다. 예능이 아니라 시사 프로그램의 관점에서 <썰전>을 바라보고 시청률의 변화를 분석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썰전>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착각의 구름이다. 프로그램 출범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예능이 아닌 적이 없는 <썰전>을 교양 혹은 시사 프로그램으로 보는 시각 말이다.
2016년 11월 웹진 < IZE >에 강명석이 쓴 <썰전>에 대한 기사 중 한 대목이다. “김구라가 진행하지만 사실상 시사 프로그램인 <썰전>이 여느 예능 프로그램의 풍자보다 더 직접적으로 대통령과 검찰을 비판하고 복잡한 맥락을 재미있게 풀어냈다.” “사실상 시사 프로그램”이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시사 프로그램이 해야 할 역할을 <썰전>이 했고 그것이 높은 시청률을 이끌어낸 원동력이라는 함의다.
과연 그럴까? 물론 손석희 사장이 진행하는 JTBC 뉴스는 줄곧 특종을 터뜨리며 공중파의 시청률을 잠식했고, 같은 방송사의 탐사 보도 프로그램 <스포트라이트>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치를 소재로 한 수많은 예능 중 그 엄청난 폭풍 속에서도 확실하게 뜬 것은 <썰전>뿐이었다. 그 외의 영광은 앞서 말했듯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의 몫으로 돌아갔다. 워낙 정치 성수기였기 때문에 <썰전>이 떴고 정치 비수기가 왔으니 시청률이 줄어들었다는 유시민의 주장에 설득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썰전>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 ‘특별한 것’의 정체란, 전원책과 유시민의 궁합이다. 이것은 정치와 아무 상관없는 순수한 예능의 논리다. 전원책은 나름의 팩트와 근거로 무장한 듯 보였지만 카메라 앞에서 ‘시끄럽지만 우스꽝스러운 늙은 보수’의 모습을 철저히 연기했다. 그에 맞춰 유시민은 ‘막무가내 노인을 살짝 놀리면서도 은근히 보듬어 주는 상대적으로 젊은 진보’의 포지션을 가져갔다. 전원책은 기꺼이 투우의 역할을 맡았고 유시민은 투우사의 역할을 매끈하게 수행해냈다. 정치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썰전>은 기본적으로 매주 한 차례씩 방송되는 두 중년 남자의 톰과 제리 놀이였다.
예능이 아니라 시사 프로그램의 관점에서 <썰전>을 바라보고 시청률의 변화를 분석한다는 것. <썰전>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착각의 구름이다.
일본은 개항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만담과 희극의 전통을 가진 나라다. 그 속에서 다듬어진 역할이 있다. 두 사람이 만담을 할 때, 한 사람이 소위 막 나가는 발언을 하고 그를 ‘보케’라고 부른다. 다른 출연자는 그것을 지적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른바 ‘츳코미’다. 보케가 살짝 수위를 넘는 농담을 하면, 츳코미는 커다란 부채 따위로 뒤통수를 때리며 균형을 잡고 관객에게 웃어야 할 타이밍을 가르쳐주는 식이다.
전원책이라는 보케와 유시민이라는 츳코미는 그야말로 환상의 커플이었다. 그 아름다운 파트너십은 전원책이 TV조선의 뉴스 앵커로 발탁되면서, 갑작스럽게 <썰전>에서 하차하기로 결정된 이후의 마지막 방송인 지난 6월 29일 방송분만 봐도 눈부시게 빛난다. 방송 시작과 동시에 전원책은 협치라는 단어가 마음에 안 든다며 날치, 꽁치 등을 거론하는 말장난을 하고,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자유한국당 5행시 짓기’를 해보자고 제안하다가 유시민과 김구라에게 동시에 가볍게 면박 당한다.
진지한 토론이 오가는 와중에도 보케와 츳코미의 역할 분담은 계속 유지된다. 하지만 그러한 예능적 장치로 인해 오히려 정치적 토론은 설 자리를 잃기도 했다. 같은 방영분에서 전원책은 송영훈 당시 국방부장관 후보자의 ‘셀프 서훈’ 논란에 대해 장군 자격도 없다고 고함을 쳤다. 그러자 유시민은, 그 또한 좋은 인사가 아니라는 점을 알지만, ‘차차차차선’ 정도로 받아들이자고 전원책을 회유한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논리다. 어떻게 국방부장관을 뽑는 과정에서 최선이 아니고 차선도 아닌 차차차차선 정도에 만족하자는 주장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들은 보케와 츳코미로 구성된 만담 커플이기 때문에, 유시민은 이렇게 말을 돌린다. “전원책 변호사님이 갑자기 그만두셔서 우리가 후임 찾기가 얼마나 힘들어요. 그거랑 비슷한 거 아니겠어요?”
<썰전>이 “사실상 시사 프로그램”이라면 출연자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며 시청자도 받아 들일 수 없는 이상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후임 찾기가 어렵다고 그 중요한 자리에 논란에 휩싸인 후보자를 갖다 앉힌다고? 상대편 진영까지 최대한 인력 풀을 넓혀서라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사람을 구하지 않고? 하지만 전원책과 유시민 커플은,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일본식 만담 듀오였고, 그 맥락 속에서 국방부 장관 논란은 마치 하나의 농담거리인 양 넘어갔다.
전원책 대신 박형준이 투입될 때까지의 <썰전>은 이런 프로그램이었다. 아주 좋은 정치 시사 프로그램으로 오해할 수 있을 만큼 잘 짜여진 만담 예능이었고, 그러한 조합이 지난해 말 불어온 폭풍을 타고 하늘을 날았던 것이다. 다른 어떤 정치 시사 예능도 <썰전>만큼 완벽한 역할 배분을 이룩하지 못했다. 특히 전원책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TV조선에서 그를 앵커로 쓸 수 있다고 착각할 만큼 잘 해냈다.
그 자리에 정반대의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박형준이 들어왔으니 역할 배분이 새롭게 짜이는 것은 당연했다. 전원책 같으면 사실무근이라고 잡아떼어야 할 타이밍에 그런 사실이 있다면 지난 정권 관계자들 역시 사과해야 한다는 식의 상식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현 정부의 국정원 개혁을 옹호하기 위해 유시민이 이명박과 박근혜를 거론하면, 그러한 행태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있었다는 식으로 침착하게 반박한다.
물론 전원책도 최선을 다해 보수 정권을 옹호해왔다. 하지만 전원책은 언제나 투우처럼 달려들었고 그러면 유시민은 멋들어지게 회피했다. JTBC를 주로 보는 젊은, 친 여당 성향의 시청자들은 “올레!”를 외쳤다. 하지만 박형준은 투우사 유시민과 똑같은 칼을 들고 반 발자국씩 다가가 옆구리만 살짝 찌르고 도망간다. 오히려 유시민이 먼저 약이 올라 달려드는 경우가 요즘은 더 많이 보인다.
<썰전>이 겪고 있는 진정한 난관은 바로 이것이다. 박형준에 대해 일부 시청자들이 분개하는 이유도 다른 것이 아니다. 보수 세력을 옹호하기로만 따지면 전원책이 박형준에 비해 훨씬 심했다. 하지만 전원책은 어디까지나 예능의 범주 안에서, 예능이 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수 정권을 옹호했다. 반면 박형준은 진지하게 토론을 한다. 가끔 농담을 섞지만 이미 <썰전>의 시청자에게 익숙한 보케와 츳코미 구도를 따라가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되려 “어용 지식인”인 유시민의 목청이 커지고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가 왕왕 나온다. 그런데 유시민은 전원책과 달리 의식적으로 보케 연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자신의 분노와 짜증을 귀여운 퍼포먼스로 무마하려 들지 않는다. 그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이되고 있는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으로서 <썰전>이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려면 기존의 예능 구도를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 <썰전>은 시사 프로그램의 외피를 두른 예능으로 성공했으니 말이다. 정청래 같은 완벽한 보케가 투입된다면 박형준도 츳코미로서 빛을 발할 것이다. 보수 쪽 패널이 보케를 맡아야 한다면, 글쎄, 누가 좋을까? 누가 해도 전원책만큼 해낼 것 같지 않지만, 그를 또 불러오면 시청자들은 식상해할지 모른다.
하지만 꼭 예능이어야만 할까? 보케와 츳코미의 역할이 나뉜, 정치판을 배경으로 한 만담극을 계속 보아야만 하는 것일까? 차라리 확 진지하게 나가보는 건 어떨까? 유시민은 공식 직함이 작가인 평범한 국민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지만 청와대와 여당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박형준 역시 이명박 정권 시절 청와대의 핵심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수많은 것을 목격한 장본인이다. 어울리지 않는 예능 구도에 묻히기에는 이들의 지식과 경험이 아깝다. 유시민과 박형준을 통해 현 정권과 지난 정권의 논리가 진지하게 비판받으며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한 사람의 시청자인 나는 보고 싶다. 물론 시청률은 보장하기 어렵겠지만.
“본방 사수”라는 말도 사어가 됐다. TV는 동시대에 뒤처졌다. 한국 사회에서 TV는 여전히 가장 영향력이 큰 매체지만 동시대 감각에 무딜 뿐만 아니라 이제는 책임감마저 없어 보인다. “욕하면서도 본다”라는 전혀 달콤하지 않은 말에 취해 있어도 좋은 걸까? 끌 때 끄더라도 욕 한마디는 시원하게 해야겠다.
- 에디터
- 글 / 노정태(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