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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미추리, 디핑소스를 만드는데 필요한 허브의 모든 것

2019.03.15GQ

허브가 장식이라고만 생각했다면, 올봄엔 뒤집어볼 필요가 있다. 자라는 새싹을 보듯, 허브 가판대를 봐야 할 이유가 이만큼이다.

허브의 얼굴 | 한 번쯤 이름은 들어봤는데, 영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이탤리언 파슬리

고수

컬리 파슬리

루콜라

애플민트

차이브

페퍼민트

처빌

레드 소렐

와일드 루콜라

초코민트

시소

영양부추

타임

바질

로즈메리

세이지

프리셰

라벤더

이탤리언 파슬리와 컬리 파슬리
같은 이름이 붙었지만, 쓰임은 천차만별인 대표적 허브다. 이탤리언 파슬리는 곱슬곱슬하게 부풀어오른 컬리 파슬리와 차별화를 위해 ‘플랫’ 파슬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둘을 왜 구분하는지 알고 싶다면 두 손으로 파슬리를 비빈 뒤 향을 맡아본다. 이탤리언 파슬리는 상쾌하면서 쌉쌀한 향으로 파스타와 같은 서양 요리에서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는 아주 중요한 허브다. 반면 컬리 파슬리는 고무처럼 향이 없고 약간 쓴맛이 나며, 식감도 뻣뻣한 모양내기용 허브에 가깝다. 행여 <마지막으로 파슬리를 다져서 뿌린다>라는 요리책의 설명에 컬리 파슬리를 꺼내 드는, 다 된 죽에 코 빠뜨리는 실수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이탤리언 파슬리와 고수
고수는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다양하게 불린다. 코리앤더, 실란트로, 팍치, 상차이, 응오… 그리고 또 하나, ‘차이니스 파슬리’라고 부를 때도 있다. 이탈리안 파슬리와 생김새도 요리에 쓰는 방식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고수가 들어가는 요리에 이탤리언 파슬리를 대신 넣을 수도 있고, 오레가노와 바질까지 섞으면 이탤리언 파슬리의 쓴맛을 조절해 고수에 가까운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이탤리언 파슬리보다 고수의 향이 훨씬 더 강렬해 고수를 꺼려하는 사람이 더 많지만, 이 두 허브의 매력을 비교하다 보면 고수에 왜 얼굴을 찌푸리게 됐는지 의아해질 수도 있다. ‘재퍼니즈 파슬리’라는 별칭이 붙은 허브도 있는데 파슬리, 셀러리, 고수를 섞은 듯한 향의 ‘마츠바’다.

초코민트, 애플민트, 페퍼민트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싸하고 화한’ 민트의 종류는 생각보다 많다. 허브 매대에 나와 있는 민트들이 다양한 이유는 민트를 사용하는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모히토 같은 칵테일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고, 아이스크림이나 디저트를 만들 때도 확실한 향을 더한다. 애플민트는 페퍼민트보다 부드럽고 순한 맛의 민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름처럼 사과와 같은 과일 향이 스치며 음료와 요리용으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페퍼민트는 멘톨 향이 훨씬 강한 민트로 베이킹이나 민트의 한 방이 필요한 요리에 주로 쓴다. 박하 향이 강한 스피아민트와 페퍼민트가 섞인 향이 나는 초코민트도 있다. 잎사귀의 색깔이 살짝 검붉어 붙은 이름이고 초콜릿 맛과 큰 상관은 없다.

차이브와 부추
부추의 영어 표기명이 ‘차이니스 차이브’ 혹은 ‘갈릭 차이브’다. 차이브는 송송 썰어 요리에 장식하면 곱슬한 모양의 허브와는 또 다른 매력을 주는 가니시가 된다. 생김새가 영양부추와 거의 흡사하며 맛도 파의 매콤함과 양파의 단맛을 모두 가지고 있어 파와 양파가 빠지지 않는 오믈렛이나 수프와 같은 요리에 올리면 실패가 없다. 부추는 대개 차이브보다 마늘 맛이 강하지만 차이브가 필요한 요리에 대체해서 사용할 수 있다. 차이브를 가니시용으로만 쓴다면, 부추로 대체해도 문제없다.

루콜라와 와일드
루콜라 루콜라는 아르굴라, 로케트라고도 불리는 샐러드 채소다. 허브처럼 다져서 쓰거나 소량으로 강한 향을 내진 않지만, 특유의 쌉쌀한 맛으로 마트의 허브 매대에 늘 함께 올라 있다. 소금과 올리브 오일만 휘휘 둘러서 초간단 샐러드로 먹어도 맛있는 와일드 루콜라는 일반 루콜라에 비해 톡 쏘는 듯한 후추 향과 매운맛이 좀 더 강한 편이다. 일반 루콜라보다 훨씬 더 천천히 자라고 크기가 더 작다. 잎사귀의 생김새가 루콜라 특유의 모양으로 구분 짓기에 더 명확하고 요리에 사용할 때도 같은 이유로 와일드 루콜라에 더 손이 간다.

처빌과 레드 소렐
허브의 여러 기능 중 놓칠 수 없는 중요한 한 가지가 ‘장식’이다. 그 기능에 충실한 허브를 꼽자면 처빌과 레드 소렐이다. 처빌은 특유의 향미가 강하지 않아 육류와 해산물, 수프부터 샐러드까지 다채로운 접시에 사용하는 만능 허브다. 잎사귀 모양이 선명하고 크기도 작아서 한 잎씩 떼서 섬세하게 장식할 수도 있고 꽃가루처럼 흩뿌릴 수도 있다. 레드 소렐 역시 장식용 허브로 자주 사용된다. 파인 다이닝에서 작정하고 내놓는 요리 위에 레드 소렐 한두 장이 꽃잎처럼 올라간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장식용이라도 신선한 레드 소렐은 씹을수록 부드러운 산미가 올라온다.

 

허브를 살리는 소스 | 허브가 없으면 안 되는, 허브니까 가능한 소스.

허브 버터
집에 있는 신선한 허브를 모두 모아 신명 나게 다진다. 이탤리언 파슬리를 가장 크게 잡아야 맛이 튀지 않는다. 이 다진 허브와 함께 다진 마늘, 반쯤 녹은 버터를 뒤섞는다. 숟가락이나 포크로 꾹꾹 눌러가며 허브 버터를 만든다. 화이트 와인 조개찜의 마무리로 조금씩 뿌려도 좋다. 버터가 녹아 재료를 적시면 카메라를 부르는 인스타그램용 요리로 변신한다.

허브 디핑소스
바질, 민트, 이탤리언 파슬리, 딜 등을 다져서 시판 디핑 소스에 더하면 뭘 찍어 먹어도 향긋한 또 다른 소스가 탄생한다. 진득한 그릭 요구르트와 섞어서 육류 위에 발라 먹어도 잘 어울리고, 매시트 포테이토에 올리브 오일과 함께 넣어 색다른 사이드 디시를 만들 수도 있다. 병아리콩을 갈아 만든 후무스에도 섞어 빵을 찍어 먹을 수도 있다.

치미추리
나라마다 살사 베르데라고도 부르고 치미추리라고도 부르지만, 결국 신선한 허브를 다진 오일 소스를 뜻한다. 샬럿, 홍고추, 고수, 오레가노, 이탤리언 파슬리를 한데 섞어서 잘게 다져 볼에 넣는다. 여기에 품질 좋은 올리브 오일을 조금씩 부어가며 저어준다. 소금간을 더해서 소스로 만들어두면 스테이크를 구웠을 때 근사한 소스로 쓸 수 있다.

허브 다발로 만든 한 그릇 | 허브가 주인공이 되는 허브 중심의 요리.

허브 파스타
파스타면과 올리브 오일, 그리고 체리 토마토로 약간의 감칠맛만 더한 기본 중의 기본 파스타를 만들 때 대여섯 가지 허브를 마구 섞어 뿌려본다. 바질, 민트, 이탤리언 파슬리, 딜, 등을 넣고 칼로 한번 듬성하게 썬 뒤 파스타 위에 흩뿌린다. 봄처럼 상큼한 허브들이 비빔밥보다 다채로운 맛과 향을 더한다.

허브 치킨
껍질이 붙은 닭다리 살을 소금, 후추를 공격적으로 뿌려 밑간을 하고 아주 센 불에 앞뒤로 지져낸다. 이 간단한 구이 요리에 밀리지 않는 맛을 더하려면 허브를 와장창 모아 다진 뒤 흩뿌려본다. 파슬리, 민트, 딜과 같은 허브에 새콤한 맛을 더하는 레몬과 라임만 있으면 맛의 균형은 가뿐하게 잡힌다.

Tips 허브로 요리를 제대로 살려보고 싶다면.

1 보관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허브는 길게 보관하기가 까다롭다. 특히 바질 같은 경우는 숨이 죽는 게 눈앞에서 보일 정도이고 타라곤과 딜처럼 연약한 질감의 허브들은 금세 생기를 잃는다. 허브를 잘 쓰려면 자주 장을 보거나 텃밭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밀폐용기에 물에 젖은 키친타월을 깔고 허브를 올려 냉장고에 두면 며칠은 버틴다.

2 사용할 땐 꼭 잎을 따서 쓴다. 허브는 그 자체로 입맛을 돋우는 미적인 효과가 있지만, 요리에 넣을 때에는 잎만 따서 쓴다. 잘 씻어 키친타월 위에서 말린 뒤 손가락으로 줄기를 잡고 긁어내듯 잎을 떼낸다. 이탤리언 파슬리는 부드러운 줄기도 맛이 좋지만 타임이나 로즈메리처럼 줄기가 억센 허브들은 잎만으로 요리해서 식감에 방해 받지 않는 한 그릇을 완성할 수 있다.

3 허브를 섞어 써본다. 허브를 하나씩만 써야 한다는 편견을 버린다. 온갖 종류의 허브를 섞어 허브 부케를 만들어 음식에 곁들이기도 하고, 줄리아 차일드 셰프처럼 파슬리, 차이브, 처빌, 타라곤을 섞어 ‘파인 허브’를 만들어 활용할 수도 있다. 집에서 간단히 만드는 서양 요리에 이 파인 허브를 넣어보면 허브의 진짜 힘을 확인할 수 있다.

 

salad
허브를 주인공으로 사용한 샐러드 한 그릇. 루콜라를 중심으로 바질, 타임, 이탤리언 파슬리, 고수, 민트를 모두 더하고 체리 토마토와 생모차렐라 치즈, 견과류, 비네그레트 소스로 맛의 빈 곳을 살짝 채웠다.

    에디터
    손기은
    포토그래퍼
    이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