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미니멀리즘 건축의 현재와 미래

2019.04.21GQ

미니멀리즘이 태도에서 스타일로 이행되면서, 세상의 표면이 점점 매끈해지고 있다.

최근 두 개의 건물이 눈에 띄었다. 토마스 파이퍼의 글렌스톤 미술관과 존 포슨의 통나무 교회다. 건축가 토마스 파이퍼의 글렌스톤 미술관의 사진은 볼 때마다 기묘한 느낌이 든다. 컴퓨터로 만든 이미지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비슷한 것 말이다. 그래픽 기술의 발전으로 건물 재료나 식물의 표현은 진짜 사진과 구별하기가 쉽지 않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은 사람이다. 글렌스톤 미술관 사진을 컴퓨터로 만든 이미지로 의심한 이유 중 하나는, 사진에 사람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글렌스톤 미술관은 다양한 크기의 전시장 볼륨들이 조르조 모란디의 정물화처럼 흩어져 있고, 볼륨들 사이 빈 공간은 연못으로 계획되어 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없게 계획된 이 연못은 그 이유 때문에 글렌스톤 미술관을 정물화로 만들어주고 있다. 이 미술관에는 가운데 연못을 감상할 수 있는 야외 데크가 한구석에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야외 데크 위에는 긴 나무 벤치 하나가 연못을 향해 놓여 있다. 이 벤치의 존재는 마치, 건물도 미술품처럼 감상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두어놓은 풍경을 좋아하는 일본 전통 건축, 아니 요즘 식으로 비유하면 인스타그램에 업데이트할 사진용 풍경 포인트를 연상시키는 이 장소는 건축에서 미니멀리즘의 현재를 잘 보여주고 있다. 건축의 미니멀리즘은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시각적 ‘스타일’의 문제로 변화했다.

자신의 건축이 미니멀리즘 같은 어떤 카테고리로 규정되는 것을 좋아하는 건축가는 많지 않겠지만, 미니멀한 형태와 완성도 높은 건물은 현 시대의 건축에서 가장 쉽게 발견되는 경향이다. 인테리어에서 미니멀리즘이 널리 퍼진 이유는 어쩌면 그것이 가장 쉽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적합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가성비’가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인테리어 잡지에서 간혹 볼 수 있는 ‘미니멀리즘 디자인 가이드라인’ 같은 기사처럼, 미니멀리즘은 몇 가지 원칙으로 정의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 원칙들을 따라하면 쉽게 적용 가능한 방법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은 정돈된 삶을 살 수 있는 제한적인 계층의 사람들에게 적합한 디자인 방식이다. 미니멀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더 발생하기 때문이다.

‘레스 이즈 모어’란 아포리즘으로 더 잘 알려진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는, 미니멀한 건축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 하나를 알게 해준다. 벽돌로 건물을 지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벽돌은 같은 가마에서도 색이 조금씩 다르게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색상의 차이 때문에 시공한 벽면에 얼룩이 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보통으로 세심한 건축가는 벽돌에 색상의 문제가 있을 경우, 얼룩이 생기지 않도록, 시공자에게 납품된 벽돌을 잘 섞어서 사용하라고 요구하는 데서 멈추기 마련이다. 반면에, 젊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공사현장에서 벽돌 하나하나를 직접 골라 사용했다고 한다. 색상뿐만 아니라, 자신의 구미에 맞는 제품을 골라서 일정한 품질을 확보하려고 했다고 한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지, 아니면 미스 반 데어 로에에 대한 신화가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리고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가치를 디테일로만 한정하는 것은 멍청한 일이지만, 이 에피소드는 미니멀한 건축을 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잘 알려주고 있다.

흔히 미니멀리즘은 60년대 미국의 시각예술계에서 나타난, 도널드 저드나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 같은 형태의 미술로부터 시작했다. 작가의 주관을 배제하고 사물의 고유한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한 기하학적인 형태의 미술작품들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더 넓은 의미로 본다면, 20세기 초부터 시작한 건축과 디자인의 변화가 미니멀리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장식보다 기능에 충실한 태도, 합리성에 기반을 두고 사물을 보려는 태도가 미니멀리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이 무엇이든 간에 이제 미니멀리즘은 스타일의 문제로 변화했다. 매스미디어와 상업주의의 세계로 넘어온 모든 이즘이 붙어 있는 단어들의 운명처럼 미니멀리즘은 스타일의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미니멀리즘에 내재된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해 찾아낸 방법은 세련됨과 고급스러움이다.

디자인 분야에서 인터넷이 만들어낸 특징은 정보에 대한 접근의 평준화다. 그리고 포토샵 같은 동일한 디지털 도구의 사용은 이 평준화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2000년대 디자인의 측면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는 애플의 아이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애플 디자인은 세계화 시대의 휴대전화를 통해 ‘애플이즘’이라 명명할 수도 있는 어떤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니멀리즘의 선언’ 같은 어떤 형식도 없이, 미니멀리즘의 세계화를 ‘애플이즘’은 이룩해내고 있다. 세상이 가고 있는 한 방향은 세련됨이다. 세상의 표면은 점점 매끈해지고 있다.

미니멀리스트 건축가로 알려진 존 포슨의 최근 건물, 통나무 교회는 흥미롭다. 미니멀한 흰색 벽을 사용해서 공간을 만들어내던 건축가가, 세련된 것과 정반대에 있다고 여겨지는 토속적인 재료를 사용해서 건물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반적인 통나무 건물에서 보이는 처마나 모서리 연결부는 제거하고, 최대한 단순한 박스 형태를 만들었다. 외부 벽은 통나무 형태가 살아 있는 반면에, 통나무가 잘려진 방향의 벽은 매끈하게 단면으로 처리되어 있다. 원재료의 형태가 사라진 내부의 벽면은 미니멀리스트 존 포슨을 드러내고 있다. 십자가 형태의 틈을 통해 들어오는 빛만이 이 건물이 교회임을 알려준다. 구축하는 방식을 솔직하게,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낸 이 교회는 존 포슨이 미니멀한 방식을 통해서 다다를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준다.

존 포슨에 대한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구축하는 방법에 대한 흥미로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통나무 교회가 좋아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존 포슨의 건축에서 우선적으로 보이는 것이 어떤 탐미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고루한 태도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건물에서 아름다움이 우선해서 보이는 것은 항상 거북하다. 그것은 요리가 아름다워졌을 때 갖게 되는 느낌과 비슷한 감정이다.

지금 내게 이상적인 미니멀리즘 디자인 하나를 고르라면, 그것은 10년 후 연구소의 ‘은하수 공기청정기’다. 은하수 공기청정기를 처음 보면, 의도적으로 내부 구조를 노출하는 디자인으로도 오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곧 은하수 공기청정기가 어떤 의도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은하수 공기청정기는 공기필터 위에 전동 팬을 그대로 올려놓은 형태다. 기능이나 비용 측면에서 외부 케이스가 필요하지 않다는 자각에 가까워 보이는 형태다.

그리고 하나 더, 특이하게도 버튼식 스위치가 없다. 버튼 스위치 대신 연결식 스위치를 사용한다. 전원을 끄기 위해 전선 코드를 콘센트에서 빼놓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다소 불성실해 보이는 이 디자인엔 이유가 있다. 첫째는 버튼식 스위치가 조금이라도 더 비싼 제품이라는 것, 둘째는 공기청정기가 자주 끄고 켤 필요가 없는 기계라는 점이다.

은하수 공기청정기는 어떤 디자인 스타일을 갖고 있지 않다. 스타일 대신 은하수 공기청전기가 갖고 있는 것은 태도다. 10년 후 연구소의 표현을 인용하면 ‘최소한의 정신’이 적용된 디자인이다. 어쩌면 지금, 건축과 디자인에서 필요한 미니멀리즘은 스타일이 아니라 태도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글 / 윤웅원(제공건축 소장)

    에디터
    이예지
    사진
    Calla Kessler, Getty Images Korea. (Maryland, 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