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해변을 즐기는 평범한 사람들. 사진가 마틴 파는 멋지고 예쁜 장면보단 일상에 불쑥 끼어든 코미디 같은 순간을 포착한다.
당신의 사진을 보면 정교하게 만든 블랙 코미디 영화가 떠올라요. 동의해요. 주변에서도 그런 얘기를 종종 하거든요. 자크 타티 감독을 알아요? 아주 유명한 프랑스 감독인데, 재미있는 영화를 많이 만들었어요. 전 풍자와 유머, 인간의 민낯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아요. 제 ‘인생 영화’가 짐 자무시의 <택시>예요.
관광객, 해변, 음식. 이런 주제를 많이 다루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글쎄요. 이유가 있다기보단 자연스럽게 이 테마로 계속 돌아와요. 제 작업의 가장 큰 주제는 ‘서양의 레저’라고 할 수 있고(거의 40년 동안 이걸 연구하고, 작업했죠), 여행과 음식, 해변은 그 일부죠. 이 테마가 제 사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건 그걸 즐기는 사람들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제 영감과 아이디어는 다 그들에게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중에서도 해변 사진이 정말 많아요. 셀 수 없이 많은 해변에 갔죠. 그곳 고유의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저만의 시선을 가지려고 해요. 무엇보다 제가 바다를 정말 좋아하고요. 사람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시간을 즐기는 게 흥미로워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해변을 꼽는다면? 아르헨티나의 마르 델 플라타(Mar del Plata). 아마 세계에서 가장 큰 해변 중 하나일걸요. 라틴 아메리카 해변을 찍는 프로젝트로 2007년에 처음 갔어요. 일단 압도적인 규모에 놀랐어요. 해변이 16킬로미터나 되거든요. 관광객이 많아서 찍을 거리가 풍성했던 기억이 나네요.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2014년에 그 해변만 찍으러 다시 갔어요.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획기적인 순간이 있었나요? 터닝 포인트 같은 거요. 흑백에서 컬러 사진으로 방향을 바꾼 1980년대 중반이에요. ‘라스트 리조트’ 프로젝트에서 처음 컬러 필름을 사용했죠. 당시 스테판 쇼어 같은 미국 사진가들의 컬러 사진을 보고 한번 시도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해보니 컬러 사진이 너무 매력적이더라고요. 더욱 강렬한 색을 내고 싶어 해가 쨍쨍한 낮에도 플래시를 터뜨렸죠. 그게 저에게 가장 큰 변화의 순간이었어요.
처음부터 컬러 필름만 썼을 것이라 짐작했는데 의외군요. 당신의 사진은 아주 컬러풀하잖아요. 네. 그렇지만 마냥 밝고 예쁜 사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드라이한 분위기가 있거든요. 적나라하다는 표현이 정확하겠군요. 브라이튼 비치의 어떤 순간을 찍는다고 하면, 아름다운 부분만 고르지 않고 널려 있는 쓰레기들이 다 나오도록 찍는 식이죠.
최근 구찌와 여러 번 캠페인 작업을 했죠? 칸에서 찍은 2019 크루즈 컬렉션 룩북은 책으로 편집하기도 했고요. 그랬죠. 흥미로웠어요. 일단 돈을 듬뿍 받기도 했고. 하하. 무엇보다 좋았던 건 구찌에서 제 마음대로 작업할 수 있게 해줬다는 거예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예정된 프로젝트가 또 있나요? 그럼요. 계속해서 할 것 같아요. 정확히 어떤 시즌일지 정해지진 않았지만. 요즘은 뷰티 사진도 찍고 있어요. 제겐 좀 새로운 분야죠.
당신이 늘 하던 작업과 패션 슈팅은 좀 다르지 않던가요? 아니요. 거의 차이가 없었어요. 브랜드에서 말도 안 되는 걸 요구하거나 특별한 제약을 두지 않았거든요. 마음껏 작업할 수 있게 해줬어요. 제 사진의 분위기 그대로 패션을 보여주는 방식이었으니까요. 마틴 파 스타일로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서 저와 작업하는 거 아니겠어요?
소품을 준비하기도 하나요? 연출한 것 같은 사진도 더러 있더라고요. 패션 슈팅 때만 세트를 써요. 프롭 스타일리스트와 같이 작업하기도 하고요. 개인 작업을 할 땐 거의 안 써요. 가끔 포트레이트를 찍을 땐 간단한 소품이나 옷을 준비하긴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마치 연출한 것 같은 신을 잡아내는 게 제겐 훨씬 더 중요해요.
처음으로 쓴 카메라는 뭔가요? 코닥 레디넷(Kodak Retinette).
계속 필름을 쓰나요? 아니요. 2007년부터 디지털로 작업해요. 퀄리티가 훨씬 낫더라고요. 이제 필름은 잘 안 써요.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했죠? 가장 좋았던 곳은 어디예요? 일본과 이탈리아가 기억에 남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영국이죠. 여기서 태어났고, 유년기를 보냈고, 지금 살고 있는 영국. 제가 가장 잘 아는 나라이기도 하고요. 사실 영국을 주제로 한 아카이브를 만들고 있어요. 제가 바라본 영국의 구석구석, 음식과 문화, 영국 사람의 특징을 표현한 사진들을 따로 모으고 정리하는 중이에요.
예전에 평양에도 갔었죠? 어떻게 가게 된 거예요? 호기심에 패키지 여행으로 방문했어요. 그것도 벌써 20년이나 지난 일이군요.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기묘하고 독특한 나라잖아요. 막상 가보니 더 미스터리했어요. 마치 영화 세트장을 구경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가이드가 없으면 호텔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던 것도 인상깊어요. 물 한 병을 사려고 해도 가이드와 같이 가야 했어요.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뭐예요? 사진은 저와 세상의 관계를 보여주는 매개예요. 저만의 관점을 중요하게 여기죠. 그러니까 굉장히 주관적일 것.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
당신에게 가장 영감을 주는 인물은 누구죠? 제가 좋아하는 많은 사진가들이죠. 로버트 프랭크,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빌 제이, 토니 레이-존스. 극작가 알란 베넷도 존경해요.
여름을 좋아해요? 물론이죠. 여름엔 어떤 일이든 벌어져요. 세계적인 이벤트도 많고. 사람들이 밖에 나와서 많은 것을 즐기는 계절이에요. 전 그런 모습을 찍고요. 그래서 여름이 제겐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해요.
올여름엔 뭘 할 건가요? 촬영해야죠. 최근에 크리켓을 주제로 사진을 찍고 있어요. 영국의 스포츠라고 할 수 있죠.
그 밖에도 다양한 이벤트가 많아요. 카니발, 페스티벌 등. 아까 얘기했죠? 여름에 모든 일이 일어난다고요.
휴가 계획은 없고요? 전 그냥 매일이 휴가 같은데. 너무 사랑하는 걸 하는데 왜 굳이 쉬어야 해요? 제 직업의 가장 큰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카메라만 있으면 어디서든 작업할 수 있고, 여행도 많이 다니죠. 취미 활동으로 돈을 버는 셈이에요.
마지막으로 당신의 가장 이상적인 여름이 궁금해요. 당장 해변으로 가세요!
- 에디터
- 안주현
- 사진
- ©Martin Parr, Magnum Photos / Europho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