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질서를 이탈한 도시화는 동물의 유전자에도 상상치 못한 변화를 초래한다. 종의 존속을 걸고 벌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진화가 인간 주변에서 지속되고 있다.
뉴어크만 Newark Bay 북서쪽은 불결하기로 정평이 났다. 퍼세익강과 뉴어크만을 따라 늘어선 화학 공장은 주변 환경을 화장실 대하듯 했다. 이 중 가장 악명이 높았던 공장은 ‘에이전트 오렌지 Agent Orange’를 1천9백만 리터 가까이 생산했다. 베트남전에서 살포되어 수세대에 걸쳐 고통을 대물림시킨 고엽제의 한 종류다. 그 공장은 발암성 물질인 다이옥신을 무자비하게 쏟아내기도 했다. 유출된 양이 얼마나 막대했는지 1983년 6월, 뉴저지주의 주지사가 비상 사태를 선포한 적도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14억 달러의 거금을 투입해 오염물질을 제거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뉴어크 아이언바운드 지역의 수질은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가 환경 오염에 휩쓸려 몰살당하진 않았다. 탁한 녹색 수면 아래엔 대서양 열대송사리 Atlantic Killifish가 우글거린다. 동부 해안지대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은빛송사릿과 어류다. 뉴어크만의 대서양 열대송사리는 같은 종의 물고기와 비교했을 때 외관상 특별하게 구별되는 점이 없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치명적인 환경에서도 이어가는 생존과 번식 능력이다. 상대적으로 오염이 덜 된 환경에서 채집한 동종의 물고기는 뉴어크만 수준의 다이옥신에 노출될 경우 대부분 번식에 실패하거나 알에서 부화하기도 전에 죽어버린다. 반면 뉴어크에 사는 대서양 열대송사리는 독성물질로 가득한 물에서도 유유히 헤엄치고, 자손을 퍼뜨린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에 재직 중이던 ‘환경 독물학자’ 앤드류 화이트헤드는 뉴어크의 송사리가 살아남은 비결을 파헤치기로 결심했다. 그는 연구진을 이끌고 뉴어크 공항 인근의 작은 물줄기에서 유전자 분석을 위해 샘플을 채집한 후 수백만 개의 염기를 샅샅이 살폈다. 다이옥신으로 오염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특별한 유전자가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UC 데이비스로 자리를 옮긴 후 2년이 지난 2014년 말. 화이트헤드는 세포 기능을 관장하는 단백질인 ‘아릴 탄화수소 수용체’와 관련된 유전자를 특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 유전자로 인해 대서양 열대송사리의 번식 과정에 다이옥신의 간계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화이트헤드와 그의 동료들은 뉴어크만의 송사리 외에도 오염된 물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전학적 전술’을 펼치는 송사리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산업 시설로 더럽혀진 하구에 서식하며, 뉴어크 송사리와 유사한 방식으로 독성을 이겨내는 송사리가 있는 곳을 동부 해안도시에서 찾았다. 정확히는 매사추세츠주 뉴베드퍼드,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 버지니아주 포츠머스 등 세 곳이다. 송사릿과 물고기는 산란지에서 멀리 벗어나는 법이 없다. 독성에 면역력을 가진 개체는 다른 지역 개체와의 교류 없이 독자적으로 유전 변이를 일으켰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다시 말해, 멀리 떨어져 사는 물고기들이 동일한 환경 요인에 적응하기 위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게 진화했다. 유의미한 발견이다. 진화는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정연하게 규칙을 따른다는 증거였다.
화이트헤드의 송사리 연구는 생물의 ‘도시 진화’를 구체적으로 밝혀낸 사례 중 하나다. 도시 진화란 특정 동식물 및 미생물이 인간에 의한 서식지 변형에도 생존할 수 있는 이유를 밝히려는 신생 학문이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그리고 강철을 앞세운 현생 인류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지만, 일부 생물은 무력하게 자리를 내주는 대신 ‘도시형 생물’이 되는 방법을 택했다. 도시 진화의 비밀을 캐려는 연구진의 노력은 지난 160년간 생물학자들을 괴롭혀온 수수께끼를 푸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앞으로 지속될 연구 과정을 통해 자연 재해나 오염으로 황폐화된 지구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개량형 인간’을 꿈꿔볼 여지도 있다.
과학사에서 찰스 다윈이 차지하는 영역은 여전히 굳건하다. 그렇다고 완전무결한 과학자는 아니었다. 다윈은 ‘자연 선택’의 결과가 드러나려면 인간의 생애를 뛰어넘는 시간이 걸린다는 주장을 죽기 전까지 고집했다. “연대 단위의 시간이 흐를 때까지, 우리는 생물 사이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를 전혀 감지할 수 없다.” 1859년 출간된 <종의 기원>에 기술된 내용이다. 하지만 다윈에게 배운 1세대 생물학자들은 그가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흥미로운 자연 현상에 주목했다. 19세기 후반부 영국에 서식하는 얼룩나방의 우세한 색이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했다. 일부 생물학자들은 석탄 그을음 때문에 날개가 변색되었다며 그 원인으론 런던에서 뉴캐슬에 걸쳐 형성된 중공업지대를 의심했다. 하지만 다윈의 제자들은 자연 선택을 주장했다. 그들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검은 색소를 지닌 희귀한 변종 나방이 흰색 나방에 비해 생존에 유리하다고 추측했다.
인과관계를 정확히 밝혀낸 실험은 1950년대가 되어서야 진행됐다. 버나드 케틀웰 박사는 영국 남서부 해안가의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숲과 버밍엄의 오염된 대도시 근처 숲에 나방 수백 마리를 풀고 3년에 걸쳐 생존율을 살폈다. 버밍엄의 검은 나방은 시꺼멓게 얼룩진 나무 덕분에 새의 아침밥이 될 운명을 피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눈에 잘 띄는 흰색 나방은 참새에게 사냥 당할 확률이 높았다. 해안가의 깨끗한 숲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검은 빛을 띠는 나방은 밝은색 나무 사이에서 새의 먹잇감이 되기 일쑤였다.
‘공업 암화’에 대한 케틀웰의 실험은 고등학교 교과서의 단골 소재가 됐다. 극심한 환경적 압력 아래 놓인 생물종이 어떻게 한 세기도 아닌 고작 수년 만에 진화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단적인 예다. 하지만 케틀웰 이후 등장한 진화생물학자들은 버밍엄처럼 인간이 북적이는 지역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이나 제인 구달의 저서를 읽고 자란 그들은 오지를 찾아 그곳에서만 발견되는 동물을 조사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지도자들 또한 해외로 떠나라고 독려했다. 교수 임용을 검토하는 심사위원들이 낯설고 이국적인 곳에서의 연구 결과에 관심을 보이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신 교수가 되기 위한 길은 도심에 산재한 개천이나 지하 주차장이 아닌 아마존의 정글 깊숙한 곳에 있었다.
제이슨 먼시-사우스도 다른 생물학자와 다를 바 없이 ‘낭만적인 연구’를 계속했다. 보르네오섬에선 나무두더지의 짝짓기 행태를, 가봉에선 코끼리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매릴랜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박사 후 과정은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서 밟았다. 2007년엔 바루크 뉴욕시립대학교의 부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 즈음 첫아이가 태어났다. 이직과 출산, 두 가지 변화로 인해 그의 ‘유랑 생활’에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지루함을 이길 수 없었던 먼시-사우스 교수는 현장 연구를 향한 갈망을 해소하고자 지하철로 눈을 돌렸다. 관찰이 용이한 동물을 찾아다닌 결과 뉴욕시의 공원을 점령하다시피 한 흰발생쥐가 눈에 들어왔다. 먼시-사우스 교수는 연구 보조원들과 함께 흰발생쥐 수십 마리를 채집해 꼬리를 조금씩 잘라냈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적 한계와 예산 문제로 인해 유전자를 전부 분석할 수는 없었다. 대신 그는 단백질 합성을 위한 DNA 정보를 세포에 전달하는 ‘전령 RNA’ 분자에 초점을 맞췄다. 전령 RNA엔 생명체의 DNA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담기기 때문에 역추적하면 원래의 유전자 구성을 꽤 높은 정확도로 알아낼 수 있다. 일종의 지름길인 셈이다.
그의 연구팀은 뉴욕의 다양한 지역에 서식하는 흰발생쥐들 사이에 유전자 확산이 거의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브롱크스의 생쥐 떼와 맨해튼에 사는 생쥐들 사이에 최근 교배가 있었다는 증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도심에 사는 생쥐와 도심 외 지역에 사는 생쥐 사이의 유전자 차이였다. 도심의 생쥐는 신진대사, 면역반응, 해독능력 등과 관련된 유전자가 눈에 띄게 변형되어 있었다.(여기서 ‘관련’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단순화시킨 표현이다. 생물의 형질은 유전자와 환경 간의 다양하고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먼시-사우스는 변화의 원인을 다각도로 탐구하던 중 취미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일생의 과업이 되리라고 직감했다. 오지를 떠돌았던 그의 연구처는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소음과 열기, 그리고 오물이 정신없이 뒤섞인 도시 환경이 빠르고 기발하게 일어나는 진화의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말한다. “도시는 생물에게 스트레스를 안기는 곳이에요. 그런 환경에서 살아가려면 진화를 통한 반발도 강력해야겠죠.”
생쥐 연구를 마친 먼시-사우스가 다음으로 눈을 돌린 연구 대상은 ‘라투스 노르베기쿠스’였다. 모두가 질색하는 뉴욕의 갈색 시궁쥐다. 라투스 노르베기쿠스는 식민지 시대부터 미국 전역에 퍼져 있었고, 현재까지 살아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전적 연구가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고 한다. “1940년대에서 1950년대, 볼티모어에서는 존스홉킨스 대학교 주도로 쥐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어요. 공중위생이 주된 목적이긴 했지만요. 지금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실험을 했더라고요. 한 장소에서 쥐를 50마리 포획한 뒤 다른 장소에 풀어두고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하는 실험 등이었어요. 쥐들 사이에 전쟁을 부추기는 꼴이었죠.” 하지만 시궁쥐의 유전자 변화와 도시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는 학자는 최근 들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시궁쥐는 흰발생쥐와 달리 성질이 포악해 산 채로 잡기 어렵다. 먼시-사우스는 지하철 승강장, 빗물 배수관, 뒷골목의 기름때 번지르르한 보도 등 뉴욕에서 가장 우중충한 구석에 덫을 설치했다. 때마침 유전자 분석 도구의 수준이 불과 몇 년 만에 놀라울 정도로 성장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쥐의 개별적 유전 정보를 전부 분석할 수 있었다. 먼시-사우스는 뉴욕 쥐의 유전자 정보를 라투스 노르베기쿠스의 표준 유전자와 대조했다. 차이점은 명확했다. 뉴욕에 서식하는 시궁쥐는 후각을 관장하는 유전자가 변형되어 있었다. 연구진은 시시각각 다른 냄새가 쏟아져 들어오는 뉴욕의 지하 통로에서 길을 찾아다니는 시궁쥐의 능력과 유전자 염기서열의 변화가 유관하다고 믿는다. 도시의 쥐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가설은 대중을 사로잡았다. 먼시-사우스는 방송에 패널로 등장해 존재를 알린 ‘스타 과학자’가 되었다.
2월의 어느 아침, 엘리자베스 칼렌을 따라 비둘기를 잡으러 브롱크스 북쪽으로 향했다. 현재 먼시-사우스의 포드햄 대학교 연구실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중인 칼렌은 지난 4년 전부터 수백 마리의 비둘기의 혈액 샘플을 수집해 유전자를 연구하고 있다. 칼렌과 함께 아스팔트 위에 자리를 잡았다. 나이 든 동네 주민들이 인도에 놓아둔 빵 부스러기를 먹기 위해 비둘기 떼가 날아들 때마다 칼렌은 손전등처럼 생긴 그물총을 발사했다. 몇 마리는 어쩔 수 없이 나일론 그물에 잡혔다. 칼렌은 비둘기의 발가락 사이 핏줄에서 작은 유리 튜브를 채울 만큼의 혈액을 채취한 뒤 그물을 풀어줬다. 바늘을 꽂은 부위의 피가 멈춘 것을 확인한 뒤 놓아준 비둘기는 푸드득거리며 날아갔다. 그물총을 발사할 때 나는 ‘쿵’ 소리에 행인이 깜짝 놀라는 일이 몇 차례 발생했다. 한번은 식료품을 실은 카트를 밀던 여성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가와 대체 무얼 하고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칼렌은 상대의 경계심을 풀어줄 답변을 능숙하게 늘어놓았다. “저는 과학자예요. 뉴욕의 비둘기들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알아내려는 중입니다.” 이후 꼬치꼬치 캐묻는 상대의 손에 혈액 채취를 마친 비둘기를 넘겨주며 날려보내보라고 말했다. 얌전한 비둘기를 손으로 감싸 쥔 행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나중에 칼렌이 들려준 말에 따르면, 인간은 야생동물을 다룰 기회가 주어지면 본능적으로 기뻐한다고 한다.
비둘기에서 채취한 혈액을 싣고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칼렌은 ‘날개 달린 쥐’라고 불리는 비둘기에게 어떻게 애착을 갖게 되었는지 들려줬다. 그녀는 아주 어린 시절 가족과 떠난 여행에서 발견한 불가사리와 소라게에 마음을 빼앗긴 후 줄곧 생물학자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학사를 마치고도 5년이 지나서야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제이슨 먼시-사우스가 <사이언스 프라이데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연구에 대해 설명하는 방송을 들었다.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 칼렌은 도시 진화 연구에 뛰어들기로 했다. 가장 먼저 먼시-사우스의 연구실에 합류하기 위해 학교로 돌아가 생물학 석사과정에 등록했다. 2015년 포드햄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한 그녀는 앞으로 전문 연구 분야로 삼을 뉴욕시의 동물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도롱뇽, 코요테 등 연구하기 좋은 동물은 먼시-사우스 밑에서 연구하는 다른 학생들이 이미 낚아챈 상황이었다. 새를 고른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었다. 칼렌은 독보적인 연구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에 찼다. “우리가 비둘기의 활동 반경이나 수명처럼 기본적인 정보에 대해 모두 알고 있을 것 같죠? 전혀 아니에요. 자연사 박물관에 보존된 비둘기를 찾기조차 어려워요. 현재의 비둘기와 수십 년 전의 비둘기를 비교하기가 쉽지 않았죠. 인간은 비둘기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요.” 올해 서른다섯 살인 그녀는 코트 안에 “나는 난민을 지지합니다”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었고, 닳아서 해진 검은 바지를 걸쳤다. 바지를 더럽히는 비둘기의 배설물 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우리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비둘기 혈액을 조금 더 채취한 뒤 포드햄 대학교 생물학 연구소로 향했다. 생물의 유전체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만 분리할 수 있는 ‘ddRAD’라는 기법을 이용해 비둘기의 DNA를 분석하는 곳이다. 칼렌은 워싱턴 D.C.와 보스턴의 비둘기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윤곽을 그려보고 있다. 장기 목표는 당연히 도시 비둘기가 거친 유전적 적응 과정이다. 그녀가 현재 매달리는 수수께끼 중 하나는 도시 비둘기가 건강상 문제 없이 정제 설탕을 섭취할 능력을 습득했을지 여부다. 혈당측정기를 사용한 간이 실험 결과는 흥미로웠다. 땅에 버려진 쿠키와 도넛을 주식으로 삼는 뉴욕 비둘기에게서 아직 고혈당 증상은 나오지 않았다. 후속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칼렌은 자신이 세운 가설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동차를 몰아 연구소 정문 근처의 언덕길 커브를 돌던 중 차에 치여 죽은 너구리 시체를 발견했다. “가져가서 크리스틴 줄까요?” 칼렌이 말한 사람은 현재 세인트 루이스 워싱턴 대학교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고 있는 서른다섯 살의 크리스틴 윈첼이다. 그녀는 도시 진화 분야에서 현재 가장 유명하고 촉망받는 학자이기도 하다. 둘은 5년 전 학술회의에서 처음 알았다. 실제로 만나는 일은 드물어도 매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칼렌은 차에 치여 죽은 동물 시체를 발견할 때마다 냉동한 뒤 윈첼이 유전자 분석에 쓸 수 있도록 보내곤 한다.
윈첼은 박사 과정 시절 푸에르토리코의 토착 도마뱀 ‘아놀리스 크리스타텔러스’를 연구 주제로 정했다. 그녀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숲과 인구 밀집도가 높은 지역에서 도마뱀을 채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의 도마뱀은 숲에 사는 도마뱀들에 비해 다리가 훨씬 길고, 발가락 판이 크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대다수 도시 진화의 사례와 달리 외관상으로도 차이를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윈첼은 신체 구조의 변화가 운동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기 위해 1.5미터 길이의 직선 경주로를 여러 개 제작했다. 페인트칠 된 콘크리트와 알루미늄 판 등 푸에르토리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 자재가 사용됐다. 경주로에 풀어놓자 도시에서 온 도마뱀들이 단 한 차례도 예외 없이 숲에서 온 도마뱀을 이겼다. 도시처럼 넓고 몸을 숨길 곳이 부족한 공간에 사는 파충류는 길고양이 같은 포식자에게 더 쉽게 노출된다. 신체 구조상 빨리 달릴 수 있게 진화한 도마뱀이 잡아먹힐 위기를 모면할 가능성이 더 크다.
‘도마뱀 경주’는 참신한 발상이기는 했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도마뱀이 실제로 진화했다고 증명하기엔 과학적 논거가 빈약했다. 윈첼은 도마뱀의 외형 변화에 관여하는 유전적 요소가 있고, 후대에 이 유전자가 계승된다는 가설을 세웠다. 매우 드물지만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는 원인이 ‘가소성’인 경우가 있다. 가소성이란 한 동물이 살아 있는 동안 받은 자극에 반응하여 변화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때 유전자 수준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예를 들어 보디빌더의 아이라고 해서 근육질로 태어나진 않는다. 윈첼은 진화와 가소성의 차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른바 ‘공동 우리 실험’을 추가로 실시했다. 푸에르토리코의 도시에서 잡은 도마뱀과 시골에서 잡은 도마뱀을 연구실로 가져와 알을 낳게 했다. 새끼 도마뱀들은 동일한 조건을 갖춘 개별 우리에 격리됐다. 매일 12시간 동안 자외선에 노출시켰고, 비타민 가루가 묻은 귀뚜라미를 산 채로 먹이며 1년간 키웠다. 2세대 도마뱀의 다리와 발가락 연구를 통해 도시의 도마뱀이 급격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가설이 사실로 증명됐다. 그녀는 자신의 연구가 암울한 환경 문제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희망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 “인간이 지구를 재구성하는 속도를 동물이 따라오지 못한다는 이론이 정설이었어요. 그래서 도시화에 적응한 동물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흥분하죠.” 진화에 성공하는 동물의 수가 적긴 하지만, 그들이 보유한 유전자에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남을 비책이 있을지도 모른다.
도토리 개미도 도시 생활에 맞춰 유전자를 변형시킨 종 중 하나다.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의 사라 다이아몬드와 라이언 마틴은 클리블랜드와 테네시주 녹스빌에서 채집한 도토리 개미가 시골 지역의 도토리 개미들에 비해 훨씬 뜨거운 조건에서도 번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두 과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보다 강력한 ‘열충격 단백질’을 생성하는 유전자를 가진 도시의 개미가 자연 선택의 측면에서 우위를 점했다. 이처럼 홀연히 나타난 ‘쓸모 있는 유전자’를 식별해낼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사라 다이아몬드는 진화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면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어떤 종이 도시화에 취약한지 파악해야 돼요. 그러면 생물의 다양성이 피해를 입기 전에 조치를 취할 수 있죠.” 그녀가 말하는 ‘조치’에는 도시 내에 녹지를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등의 방법도 포함된다. 하지만 극단적인 경우 일부 생물종을 멀리 이주시키는 수밖에 없다.
유전적 대응책이 마련된 동물을 짚어낼 수만 있다면 인간에게 우호적인 방향으로 환경을 조작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어떤 생물종은 한 번 개조가 되면 두고두고 환경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가령 굴의 경우 먹이를 섭취하기 위해 하루에 약 190리터의 물에서 유해한 박테리아와 오염물질을 걸러낸다. 굴은 한때 미국 도시 근처의 강과 만에 흔하게 서식했지만, 굴 맛을 본 사람들이 수십 년 전에 이미 거의 다 먹어 치웠다. 학자들은 뉴욕 같은 곳에 거대한 군락지를 유지했어야 했다고 말한다. 이미 너무 늦은 후회다. 수십 년간 이어진 준설과 쓰레기 투기 등으로 해안은 이미 굴이 살기엔 척박한 환경이 됐다. 현재 거론된 해결책은 유전자를 조작해 환경 오염에 강한 굴을 만드는 방법이다. 직접적인 유전자 조작 방법으로는 크리스퍼 Crispr를 이용하는 방안이 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를 활용하면 동물의 뉴클레오티드(DNA 사슬의 구성 단위)를 원하는 대로 추가하거나 삭제하고, 수정까지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가설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질병에 대한 저항이나 빠른 번식 주기 등 새로운 형질이 단순히 유전자를 자르고 붙이는 과정을 통해 생성되기엔 너무 복잡하다는 문제도 있다.
다행히 지금 당장 사용 가능한 선택지가 있다. 바로 도시 진화 연구자들이 축적한 유전학적 지식과 발견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개체의 유전자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유전형질을 발현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종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자연 선택이 알아서 수행할 수 있는 환경에 그 동물을 풀어놓기만 하면 된다. 제이슨 먼시-사우스가 말했다. “예를 들어 ‘슈퍼 굴’이 될 객체를 선별할 수 있겠죠. 거대 군락지를 형성하고, 물을 여과하고, 폭풍 해일로부터 인간을 지켜줄 굴요. 도시에 맞게 적응을 마친 유전자형을 찾아서 인간에게 도움이 되도록 부릴 수 있을지 알아보는 거죠.”
도시 진화 연구자들은 망가져 가는 지구 환경과 생물에 대한 염려를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방안을 고민한다. 진화라는 현상 자체를 복제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탐구 주제다. 이 질문에 답을 얻는 데는 뜻하지 않게 여러 도시가 동일하게 마련한 ‘연구실’이 활용된다. 세계 각지의 오피스 타워는 동일한 유리 패널과 강철 빔을 사용한다. 밤하늘은 똑같은 인공 조명으로 환하게 물들며, 모두 자동차 소음으로 가득하다. KFC와 서브웨이에선 세계적으로 통일된 음식물 쓰레기가 흘러나온다. 도시의 유사성을 통해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서식하는 같은 종의 생물이 비슷한 적응을 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도시는 진화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추적하는 거대한 실험장이자 인류의 운명까지 가늠할 수 있는 ‘생존 게임장’이다.
앤드류 화이트헤드는 미국 내 4개 도시에 서식하는 송사리가 각자 동일한 방식의 독성 저항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는 성공의 원인으로 유전자의 다양성을 제시했다. 다시 말해 보통은 발현되지 않지만, 송사릿과 물고기의 유전자는 애초에 풍부한 유전 정보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저 자연 선택에 의해 전면에 나섰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도 생존하는 생물종은 애초부터 적응에 필요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봐요. 지금 당장 생존이 위협받는데, 이주나 돌연변이를 기다릴 여유는 없죠.”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발견한 급격한 진화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생물의 진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물론 단세포 동물을 불과 수십억 년도 안 되어 고래와 기린으로 진화시킨 자연의 경이를 인류가 조만간 다루겠다는 계획은 오만한 망상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지구에 저지른 끔찍한 짓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오만이야말로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특기이자 장기 아니었던가.
Evolving in a City
생물학자들은 고층 빌딩과 자동차, 그리고 땅에 버려진 햄버거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동물이 어떻게 적응하는지 연구하고 있다. 도시 진화의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검은과부거미 Latrodectus Hesperus
• 아리조나주 피닉스 ― 도시의 거미는 시골의 거미보다 작은 알을 낳지만 수는 훨씬 많다. 난소와 관련된 유전적 변화가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 사망률이 높은 환경에서 번식 성공률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도토리 개미 Tem Nothorax Curvispinosus
•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 도시에 사는 개미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 열에 노출될 경우 스트레스 단백질을 더 잘 합성해 고온 환경에서 견딜 수 있도록 적응했다.
사과좀나방 Yponomeuta Cagnagella
• 스위스 바젤 ― 대부분의 나방은 빛에 이끌리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나방은 빛을 향해 무작정 돌진하는 유전적 특성을 대부분 떨쳐냈다. 이는 뜨거운 조명에 날아들어 죽는 개체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벼룩 Daphnia Magna
• 벨기에 브뤼셀 ― 도시의 연못에 서식하는 물벼룩은 그렇지 않은 물벼룩보다 훨씬 빨리 자란다. 더 어린 시기에 번식하기도 하는데, 도시 환경에서의 높은 사망률에도 불구하고 개체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크릭 첩 Semotilus Atromaculatus
• 노스캐롤라이나 롤리 ― 도시 지역엔 물줄기를 에워싸는 초목이 드물기 때문에 빗물이 급속도로 유입되곤 한다. 롤리의 크릭 첩은 급류에도 견딜 수 있도록 몸체가 진화했다.
집모기 Culex Pipiens
• 영국 런던 ― 런던 지하철에 서식하는 모기는 지상의 모기와는 달리 동면에 들지 않고, 밀폐된 공간에서도 번식이 가능하다. 일부 생물학자는 지상의 모기들과 교배가 어렵다는 점을 들어 ‘런던 지하철 모기’가 별개의 종이라고 믿기도 한다.
서부 울타리 도마뱀 Sceloporus Occidentails
• 캘리포니아 LA ― 서부 울타리 도마뱀은 대도시의 열섬 현상에 대응하도록 높은 외부 온도에도 견디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푸에르토리코 아놀도마뱀 Anolis Cristatellus
• 푸에르토리코 산후안 ― 도시의 도마뱀은 우림 지역의 도마뱀에 비해 다리가 길고, 발가락판이 크다. 그 결과 몸을 숨길 나무나 수풀이 없는 환경에서 포식자로부터 빠르게 도망칠 수 있다.
대서양송사리 Fundulus Heteroclitus
• 뉴저지주 뉴어크 ― 뉴어크만의 송사리는 다이옥신에 대한 저항력을 갖추는 방향으로 신속하게 진화했다. 다른 대부분의 송사리는 다이옥신에 노출되면 생존할 수 없다.
정원 달팽이 Cepaea Nemoralis
• 네덜란드 라이덴 ― 시골에 서식하는 달팽이의 껍데기는 분홍빛인 반면 도시 달팽이의 경우 노란색이다. 학자들은 이를 온도 조절을 위한 진화로 추정한다. 껍데기 색깔 관련 데이터는 ‘스네일스냅’ 앱을 설치한 1천2백 명의 시민 과학자에 의해 수집됐다.
야생 비둘기 Columba Livia
• 뉴욕주 뉴욕시 ― 뉴욕의 비둘기는 당분이 높은 인간의 음식을 섭취해도 고혈당 증세에 빠지지 않는다고 보고됐다.
야생 비둘기 Columba Livia
• 프랑스 파리 ― 도시 안에 머무는 비둘기의 깃털은 예외 없이 어두운 색이다. 도시에 널린 유독성 금속 물질, 특히 아연과 납을 차단하는 데는 피부나 털을 검게 하는 멜라닌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흑고니 Cygnus Atratus
•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 서식지가 도시인 흑고니는 길들여지지 않았는데도 인간을 피하지 않는다. ‘DRD4’라는 도파민 수용체의 변화를 원인으로 짐작한다.
코요테 Canis latrans
• 콜로라도주 덴버 ― 도시에 사는 코요테는 유별나게 대담하고 탐구심이 강하다. 시간이 흐르며 대담한 성격과 관련된 유전자가 자연 선택에 의해 부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먹이를 얻으려면 인간이 모여 사는 곳 근처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에디터
- Brendan I. Koerner
- 포토그래퍼
- Victor Lloren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