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청객이 없어도 올 한 해 수많은 아이돌들은 무대에서 또 빛을 뿜었다. 2020년을 기념할만한 무대 5개를 꼽았다.
유아 ‘숲의 아이’ KBS [뮤직뱅크] 2020.09.11
‘숲의 아이’라는 아름다운 낱말이 화면에 등장하면서 날아든 나비는 꽃잎이 휘날리는 무대를 금세 꽃과 물, 대지의 에너지가 가득한 숲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낯선 곳에서 눈을 뜬 유아는 커다란 눈동자를 굴리며 잠에서 갓 깨어난 요정의 신비로움을 연기하고, 시청자는 자신도 모르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유아의 연기에 빠져든다. ‘엘프’라고 불리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동화 속 주인공들이 유아의 주변을 둘러싸고 모두 함께 춤을 추고 있을 것만 같은 가볍고 산뜻한 움직임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무대가 끝난 뒤 댄서들의 뒤로 쏙 숨어버리는 유아의 모습까지 완벽하게 하나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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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소녀 ‘So What’ SBS [인기가요] 2020.02.16.
이달의 소녀는 올해 ‘So What’과 ‘Why Not?’ 두 곡으로 활동했다. 그중에서도 ‘So What’은 ‘Butterfly’의 우아함을 걷어내고 파워풀한 소녀들의 발걸음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곡이었다. 특히 2월 16일의 SBS [인기가요] 무대는 제복의 무게감에 스커트, 다양한 길이의 팬츠 등을 활용해 진취적인 느낌을 부각시키며 눈길을 끌었다. 츄처럼 사랑스럽다는 이야기를 듣는 멤버에게는 제복의 각진 느낌을 상의로 살린 뒤 귀여운 느낌의 스커트를 매치하고, 이브처럼 예쁘고 고고해보이는 매력을 지닌 멤버에게는 오히려 펑키한 느낌의 팬츠로 ‘So What’을 외치는 소녀들의 매력을 고스란히 드러낸 소속사의 스타일링 센스가 돋보인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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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DZ(조승연) ‘파랗게’ SBS [인기가요] 2020.07.05
WOODZ의 무대는 몇 번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든 자유롭게 끼를 발산하는 그의 모습 덕분에 모두를 챙겨봐도 아쉽지 않다. 뮤직비디오에서부터 드러낸 WOODZ가 생각하는 사랑의 양면성을 보여주기 위해 추구했던 2WAY 콘셉트도 훌륭했다. 단정한 수트를 입고 ‘파랗게’를 부르는 무대 위의 WOODZ는 자유분방한 옷차림으로 반쯤 눈이 풀린 채 ‘파랗게’를 부르며 다른 사람 같은 매력을 드러낸다. 같은 퍼포먼스도 그날그날 콘셉트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그중에서도 7월 5일의 WOODZ는 그가 추구하는 모든 콘셉트를 합쳐 최고의 무대를 선보인다. 정갈한 수트 차림에 푸른색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브리지 부분에서는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카메라를 보며 웃는 그는 느긋해서 더 세련됐다는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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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민 ‘Criminal’ SBS [인기가요] 2020.09.20.
붉은 옷을 입은 댄서들 사이에서 홀로 검은 옷차림을 하고 눈을 가린 태민을 보고 있으면 곰곰이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이처럼 독특한 태민의 아이덴티티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를 보며 ‘젠더리스’라는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많지만, 어쩌면 한 개의 단어로 태민을 정의하기란 너무나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안대를 쓴 태민이 고개를 한 번 돌릴 때, 안대를 벗기 위해 손끝을 위로 뻗을 때, 안대를 벗은 뒤 카메라를 나른하게 응시할 때 만들어지는 기묘한 공기는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자신의 독특한 정체성을 구축한 대중가수의 모습이다. 이 무대를 여러 번 돌려보며 태민의 팔, 다리 등의 움직임을 모두 나눠볼 것을 권한다. 페이스캠도 따로 있으니 그가 곡에 심취해있을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으며, 이 무대에 얼마나 빠져들어있는지 보는 것도 추천한다. 일할 때 짓는 표정이라기엔 너무나 매혹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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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차일드 ‘Pump It Up’ KBS [뮤직뱅크] 2020.10.09.
골든차일드가 데뷔 시절의 청량한 느낌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기뻐했던 팬들도 우려했던 팬들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Pump It Up’은 소년이 아닌 청년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 지금의 골든차일드가 부르기에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10월 9일의 KBS [뮤직뱅크] 속 골든차일드는 데뷔곡 ‘담다디’ 때를 떠올리게 하는 단체복을 입고 파트 분배부터 안무까지 뮤지컬처럼 다채롭게 구성된 무대를 선보인다. 그리고 이 단체복은 바로 파일럿의 제복을 본떠 만들어졌다. 즉 소년이 아닌 청년의 느낌으로 청량한 모습을 보여주기에 무척 적절했다는 뜻이다. 이 무대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기분이 좋아지고, 비행장을 모티프로 한 무대를 보며 씁쓸함을 달랠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지금 이 순간에 보면 좋을 무대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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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 사진
- WM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