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drink

집나간 입맛도 돌아온다는 제철 음식 12

2021.01.04GQ

그 계절 가장 알맞게 익은 음식을 챙겨 먹다 보면 일 년이 물 흐르듯 지나간다.

1월 ― 매생이 스스로를 먹이게 된 지 이제 5년 차. 요리 레벨을 높일 도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마침 그의 생일이었고, 미역국 재료를 사러 간 마트에서 낯선 식재료를 발견했다. 그것은 내가 27세에 처음 먹어본 것, 어떤 식으로 채취되는지 아직도 모르는 것, 요리법은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것, 매생이였다. 요리 초보의 난데없는 도전은 곧 위기를 맞았다. 물에 씻은 매생이를 꼭 짜야 하는데, 그 촉감이 끔찍했다. 손가락 사이로 탈출하는 그것을 절반쯤 하수구에 흘려보내고, 남은 것들을 그러모아 채반에 담았다. 물이 빠지니 이번엔 초록색 짐승의 털뭉치처럼 보였다. 그 털뭉치를 냄비로 조심스럽게 옮겼다.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멸치 육수를 붓고, 간을 맞춘 뒤 생굴 넣고 팔팔 끓였더니 끝. 마냥 입으로 들어가는 매생이국을 다 ‘마신’ 그가 그릇을 내려놓으며 미소 짓는 순간, 나는 또 객기를 부리며 간지러운 결심을 하고 말았다. 나 그대를 위해 기꺼이 1월마다 초록 짐승과 사투를 벌이리. Drink 매생이의 단짝은 무조건 굴이다. 매생이국에 굴을 빠뜨려 함께 먹거나 굴전을 곁들여도 좋다. 그리고 굴의 단짝은 무조건 청하. Advice  논현동 목포자매집에서 음식이라기엔 너무 초록색이고 국이라기엔 너무 촘촘한 매생이국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사회 초년생 시절 나의 간 건강을 지켜준 고마운 집.

2월 ― 딸기 이가 딱딱 부딪치는 추위가 찾아오면 딸기가 생각난다. 입은 많고 살림은 얄팍한 탓에 우리 집은 가격이 싸고 보관하기 쉽고 양이 많은 과일을 주로 먹었다. 제철 맞은 과일이 그 조건에 맞을 텐데, 딸기는 예외였다. 비싸고 쉽게 무르고 양이 적었다. 그래서 나는 매우 신중하게 ‘딸기 타이밍’을 노리곤 했다. 감기 기운이 포착되면, 애처롭게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따··· 딸기를 먹으면 바로 나을 것 같아!” 코는 맹맹하고 목구멍은 따끔거리는데, 저 혼자 딸기의 달콤함을 즐기겠다니, 참으로 간사스러운 혓바닥이여! 지금도 몸이 으슬으슬해지는 기분이 들면 딸기를 사다 먹는다. 딸기 한 통을 뚝딱 해치운 뒤 두꺼운 이불 덮고 푹 자는 것이 나의 감기 바이러스 퇴치법. 올해도 분명 ‘딸기 타이밍’은 찾아올 것이다. 그건 내 몸의 면역체계가 내리는 명령이니 거부할 수 없다. 딸기에는 비타민 C가 풍부해서 피로 회복과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하니, ‘따··· 딸기를’로 시작하던 나의 처방이 영 엉터리는 아닌 모양이다. Drink 떠먹는 막걸리인 꾸덕꾸덕한 이화주를 딸기에 얹어 먹거나 찍어 먹으면 제법 잘 어울린다. Advice 70~80퍼센트만 익힌 상태로 수확해 유통된다. ‘진짜’ 딸기 맛은 완전히 익혀 당일 새벽 수확한 딸기에서만 맛볼 수 있다. ‘딸기 산지직송’을 검색해볼 것.

3월 ― 풋마늘 슈퍼마켓에서 냉이와 달래를 발견하는 날 나는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서서 흙 묻은 초록을 내려다보며, 언 땅을 뚫고 싹을 틔운 그 생명력에 대해 생각한다. 도시인들의 눈에는 잡초일 뿐인 것들을 맨손으로 쥐어뜯는 시골 할머니들의 집요한 애착을 생각한다. 봄소식을 전하는 사랑스러운 초록은 수없이 많지만 내가 가장 애타게 기다리는 건 풋마늘이다. 파와 마늘을 섞은 듯한 모양의 풋마늘은 땅속의 마늘통이 굵어지기 전에 수확하는 어린 잎줄기다. 보통은 살짝 데쳐서 양념에 무치거나 장아찌로 만들어 먹지만, 나는 파스타 재료로 활용한다. 올리브 오일에 잘게 썬 풋마늘을 볶다가 파스타 면과 페페론치노를 넣어 함께 볶는다. 여기에 추가로 베이컨이나 바지락을 넣어도 좋지만, 주인공은 역시 풋마늘이다. 산뜻한 향과 아삭한 식감에 부르르 몸이 떨린다. 봄의 초록이 가진 특유의 명랑한 힘이 겨우내 쪼그라든 몸에 시동을 건다. 그렇게 또 한 해를 살아갈 생명력을 얻는다. Drink  홈메이드 풋마늘 파스타에 산뜻한 오렌지 향의 블루문 맥주 한잔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다.  Advice 봄에 농산물 직판장을 가보면 아보카도나 아티초크 같은 건 없지만 풋마늘과 밭미나리, 방풍나물, 민들레 잎, 오가피 순 같은 새로운 식재료의 세계에 눈뜨게 될 것이다. 김자혜(프리랜스 에디터)

4월 ― 미더덕 4월 한 달, 바짝 먹어야 하는 것이 있다. 작고 울퉁불퉁한 모양새, 어금니로 톡 터뜨리면 향긋함이 입 안을 황홀하게 채우는 미더덕이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크기지만 된장국에 넣으면 바다 내음 몰고 오는 이 요물은 마산합포구 진동면의 소박한 포구에서 국내 생산량의 70퍼센트가 잡힌다. 퇴사 후 잠시 마산에 살 때 벚꽃 피는 4월이 되면 도시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군항제가 열리는 진해 가서 벚꽃 비를 맞으며 산책하고 마창대교 건너 진동으로 넘어가 고현 횟집에 간다. 1인분에 1만원인 미더덕 덮밥을 시키면 몇 가지 미더덕 요리가 반찬처럼 푸짐하게 나온다. 바삭하게 구운 미더덕 지짐, 각종 신선한 채소와 들깻가루 넣어 녹진한 미더덕 찜, 김 가루 뿌린 밥 안에 잘게 다진 미더덕이 가득 든 미더덕 덮밥. 미더덕을 숟가락으로 짓이기듯 마구 비벼서 치덕치덕한 느낌으로 먹는 맛이란! Drink 프로방스 지역에서 만든 드라이 로제 와인과 먹는다.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가 소유했던 것으로 유명한 샤토 미라발 코트 드 프로방스 로제. 주황색 미더덕과 연분홍 로제 와인의 섹시한 페어링으로 희희낙락한 봄날이 된다. Advice 4~5월에는 고현 횟집에서 미더덕 회를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 회로도 먹고 흰쌀밥에 쓱쓱 비벼 덮밥으로도 먹는다. 또 이 시즌에는 서촌의 안주마을 메뉴판에도 ‘마산 미더덕 회와 맑은 탕’이 등장한다. 

5월 ― 멍게 야외 포장마차, 나무젓가락으로 멍게의 주황빛 속살을 집어 입 안으로 가져가 소주 한 잔 털어 넣는 장면으로 각인된 5월. 멍게 맛은 꽤 나이가 들고부터 즐기게 된 것 같다. 바다 향이 팡 터지고 짭조름한 첫맛, 목을 타고 넘어가는 달큼한 뒷맛의 강렬한 연쇄 감각을 카랑한 소주가 끊어줘야 다음 한 점을 먹을 수 있으니 소주를 즐기게 된 다음부터라는 게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멍게는 초고추장에 찍어 날로 먹거나 채소와 함께 비벼 덮밥으로 먹어도 맛있지만 푸드 에세이 <Edit Salad Cookbook>을 편집하면서 익힌 양윤실 베이커 (@oldcroissant)의 멍게 세비체가 발군이다. 비슷한 시기 제철을 맞는 미나리를 다져 넣고 양파 다진 것, 마늘, 레몬, 올리브 오일, 꿀을 섞어 재우듯 뿌려 먹으면 멍게를 싫어하는 사람도 싱그럽다고 난리 나는 세비체가 된다. Drink  날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을 땐 뭐니 뭐니 해도 소주! 덮밥 혹은 라면으로 먹을 땐 막걸리, 세비체를 만들어 먹을 땐 상큼한 산미의 스파클링 와인으로 보조를 맞춘다. Advice 통영에서 멍게양식업을 하는 이순신수산(leesunsinsusan.com)에서 1킬로그램만 주문해도 둘이서 실컷 먹는다. 바닷물에 담겨 문 앞에 도착한 멍게를 회로도, 덮밥으로도 먹고 남으면 라면에 넣어 끓여 먹는다.

6월 ― 감자와 토마토 6월에는 토마토와 감자를 상비해놓는다. 토마토는 일 년 내내 마트에서 볼 수 있지만 봄부터 제철 맞는 대저 짭짤이 토마토와 샤인머스캣처럼 깜짝 놀랄 단맛의 샤인마토는 이 계절에만 먹을 수 있으니 사나흘에 한 번은 부라타 치즈를 곁들여 인스타그래머블한 아침 식사를 즐긴다. 단단한 육질의 방울토마토를 줄기째 수확하는 줄기 토마토도 나오는데 이 토마토는 마리네이드 샐러드로 만들어 냉장고에 보관해두고 먹는다. 다진 양파, 발사믹 식초, 올리브 오일, 이탤리언 파슬리를 잘 섞은 후 토마토를 재우면 파스타, 스테이크 등 어떤 메인 디시와도 잘 어울리는 상큼한 사이드 메뉴가 된다. 6월 말이 되면 뽀얗게 분이 나고 포슬포슬한 하지 감자가 나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 감자에 백명란, 아보카도를 올리면 어여쁘고 든든한 와인 안주로 손색없다. Drink 토마토 샐러드는 컨트리 브레드, 치아바타, 포카치아 같은 빵을 곁들여 과일 향이 생동하는 화이트 와인과, 감자 샐러드는 샴페인과 먹는다. Advice 부라타 치즈 샐러드는 집에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지만, 방울토마토로 그린 동그라미 안에 화이트 발사믹 폼이 채워진 레스토랑 있을재의 버전은 먹을 때마다 감탄한다. 맛있고 예뻐서. 안동선(프리랜스 에디터)

7월 ― 천도복숭아 7월은 하반기가 시작되는 시기인 동시에 본격적인 여름의 계절이 펼쳐지는 시기다. 채소만큼이나 생동감이 넘치는 과일이 많이 나오는 7월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는 바로 천도복숭아. 과일이기 때문에 주로 디저트로 활용되지만 천도복숭아는 여름 밥상에서 훌륭한 찬으로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식재료가 될 수 있다. 피부가 매끈하고 식감도 알맞게 부드러우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당미와 산미가 공존하기에 약간의 매콤함을 가진 재료를 더하면 특히 잘 어울린다. 톡 쏘는 맛을 전해줄 홀그레인 머스터드, 영양부추와 라디치오, 당미를 한껏 끌어올릴 매실청과 짭잘한 간을 더하는 맛간장으로 간결하지만 생기 넘치는 천도복숭아겨자채를 만들 수 있다. 천도복숭아 본연의 기분 좋은 단맛과 신맛이 다른 음식들과도 조화를 이루어 이름 그대로 ‘Heavenly 천상의’라는 뜻에 걸맞은 환상적인 여름의 맛을 보여준다. Drink 프랑스 내추럴 화이트 와인, 라 소비뇬느 La Sauvignonne를 추천한다. 과일을 껍질째 천천히 졸여낸 풍미와 고소한 향이 느껴지는 와인이라서 경쾌한 천도복숭아의 맛을 더욱 도드라지도록 도와준다. Advice 천도복숭아를 살 때는 표면이 매끈하고 무르지 않고 단단한 것을 고른다. 가장 싱싱한 과일은 동네 대형 마트에서 직접 보고 고르는 것이 좋다.

8월 ― 참나물 지난 10여 년을 뉴욕에서 산 탓인지 다시 서울에서 살기 시작하며 가장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채소 중 하나가 바로 ‘참나물’이다. 우선 뉴욕에서는 볼 수 없는 채소이기 때문에 마트와 채소 가게에서 유독 눈에 들어왔고, 그렇게 오랜만에 다시 참나물을 제대로 맛보았을 때, 특유의 쌉사래한 향미에 감탄을 했다. 한국인에게 아주 흔한 채소 중 하나지만 대부분은 데쳐서 익히고 양념에 무쳐서 먹는다. 하지만 나는 본연의 향미를 살리기 위해 익히지 않고 그대로 마치 허브를 대하듯 사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참나물의 향미를 돋보이게 해주는 여러 레시피 중, 얼마 전 출간한 푸드 에세이 <Her vegetables>에도 소개한 요리인 ‘참나물을 넣은 두부 처트니’를 추천하고 싶다. 묵묵한 담백함을 품고 있는 두부의 부드러운 맛에 경쾌한 산미를 자아내는 레몬과 특유의 향미가 매력적인 참나물을 더해 완성하는 요리다. 여름철 더위에 지친 입맛을 돋우고 테이블 위에 싱그러운 생기를 더해주는 메뉴다. Drink 이탈리아 오렌지 와인 프리 Pri와 매칭하면 좋다. 레몬, 자몽, 오렌지 등의 과일 향을 품고 있어서 참나물의 향을 돋보이게 해준다. Advice 8월이 되면 참나물의 줄기와 잎의 식감이 보드라워지며 향은 더욱 깊어진다. 이때 참나물은 익히지 않아도, 복잡하게 요리하지 않아도 아주 향긋하게 즐길 수 있다. 참나물의 줄기가 고른 것이 맛도 좋다.

9월 ― 느타리버섯 계절상으로 가을의 문턱인 9월에는 단연 버섯의 계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모양과 색감의 버섯들을 볼 수 있다. 버섯 중에서 아주 유명한 트러플과 송이, 표고 등 거의 향채라고 할 정도로 강렬한 향을 지닌 버섯들이 주를 이룬다. 비록 이들처럼 강렬한 향을 내뿜지는 않지만, 느타리버섯은 깊고 깊은 은은한 향미와 찰기가 느껴지는 부드러운 식감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느타리버섯 고유의 향미와 식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든 느타리버섯 파테 Pâté는 월넛 오일과 김을 더해 느타리버섯의 향미를 받쳐주고, 고유의 수분감으로 찰기가 느껴지는 텍스처를 보여줄 수 있는 요리다. 느타리버섯의 숨겨진 매력을 끌어낸 느타리버섯 파테는 밥에 곁들여 먹어도 손색이 없고 빵에 스프레드처럼 발라서 먹어도 훌륭한 와인 안주가 된다. Drink 프랑스 내추럴 로제 와인 데페흐랑트 프레세 Deferlante Presee와 함께 느타리 버섯 요리를 즐겨볼 것. 잘 익은 앵두와 석류의 상큼함이 느타리버섯의 은은하고 깊은 풍미를 도드라지게 해준다. Advice 느타리버섯을 고를 때는 색감을 잘 살펴본다. 표면은 회색을 띠고, 뒷면의 빗살무늬가 선명한 것이 좋다. 가까운 채소 가게에서  싱싱하고 맛 좋은 버섯을 구할 수 있다. 장진아(베이스이즈나이스 대표)

10월 ― 햇땅콩과 늙은 호박 가을 운동회 시즌이 다가오면 햇땅콩을 가장 먼저 찾는다. 예천의 밭에서 수확해 흙이 채 마르지도 않은 이것을 두 되 사다가 고무장갑을 끼고 30분 정도 빠락빠락 문질러 씻은 후 소금 두 꼬집을 넣고 15~20분 동안 센 불에 팔팔 끓인다. 남편은 “땅콩을 왜 굳이 끓여서 먹어?”라고 여전히 갸우뚱하지만 삶은 햇땅콩을 밤새 먹을 수만 있다면 지난한 과정은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 삶은 땅콩을 먹을 수 있는 급박한 2주가 지나고 나면 이제 늙은 호박 범벅을 해야 할 차례. 늙은 호박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하루 전 불려놓은 각종 콩과 팥, 밤 등 그 시기에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다 넣고 약한 불에 천천히 끓인다.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면 찹쌀풀을 넣고 한소끔 더 끓인 후 뜸을 들인다. 몸에 좋은 것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느긋해진다. Drink 장독대에서 퍼낸 살얼음 동치미 외에 굳이 같이 먹어야 하는 음료는 없지만, 가벼운 스파클링 와인이나 진 베이스의 토닉과 잘 어울릴 것 같다. Advice 경북 북부 지역의 5일장에서는 쉽게 볼 수 있지만, 서울에서 햇땅콩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많지는 않다. 경북고향장터 (www.cyso.co.kr)에서 9월 말부터 한 달 정도만 판매한다.

11월 ― 레드키위 바야흐로 새로운 국내산 과일의  전성기다. 홍옥과 부사가 끝인 줄 알았던 무지했던 가을을 뒤로하고 레드 와인처럼 진한 맛의 감홍, 파인애플 향이 나는 연둣빛의 시나노 골드, 바나나 향의 엔비사과를 차례대로 맛보고 나면 딸기의 계절이 오기 전에 꼭 먹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레드키위. 키위와 무화과를 접붙인 레드키위는 선명한 다홍빛 색깔만큼이나 화려한 맛을 자랑한다. 달콤한 레이어를 느끼다 보면 앉은 자리에서 열 개는 금방 사라진다. 레드키위는 지난 몇 해 동안 제주에서만 생산했는데 남도의 몇몇 마을에서도 재배하는 모양이다. 순천과 고흥 출신 레드키위는 제주의 명랑한 새콤달콤함보다 농밀하고 바디감이 느껴진다. 고흥의 키위삼형제 농부님은 충분한 일조량 덕이라 설명했지만 전남의 비옥한 토질도 한몫하지 않았으려나. 가을은 짧고 먹어야 할 과일은 많다. Drink 크래커에 연성 치즈를 바르고 레드키위를 올려 떼땅져 시티라이트 샴페인이나 드라이 홉 팻 낫 내추럴 스파클링 와인과 함께 즐겨볼 것. Advice 고흥에서 35년째 3형제가 사이 좋게 키위 농사를 짓는 고흥키위삼형제(061-844-3196), 남도의 특산품을 소개하는 남도장터(www.jnmall.kr), 2대째 과일 도매상을 운영하는 루카스과일(@lucaspark_fruit)이 추천하는 ‘데일리 원픽 과일’을 사면 실패율 제로.

12월 ― 굴 프랑스 노르망디와 브르타뉴는 굴의 천국이다. 온갖 모양의 굴을 크기별로, 종류별로 주문해 그 지역의 특산품인 사과와인으로 만든 비니거와 함께 즐기곤 한다. 이곳과 비슷한 지형의 서해 천북 굴단지는 이맘때면 굴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남해와 다르게 조수 간만의 차가 있는 서해의 자연산 굴은 몇 년에 걸쳐 자라 껍데기가 두껍고 맛이 진한 것이 특징이다. 그곳의 어부조차도 껍데기 까는 일이 녹록지 않아 가지런하게 까놓은 하프셀은 보기 어렵다. 운 좋으면 망치로 두들겨 깨주는 날굴을 받아먹을 수는 있지만. 대신 굴찜과 굴 구이를 시키면 커다란 들통과 숯불을 가져다주는데 프로메테우스의 간처럼 굴 껍떼기를 쌓아놓고 굴을 즐기는 모습은 프랑스인이 봐도 놀라울 광경이다. 시드르비니거가 초장으로 바뀌었을 뿐. 돼지네굴수산 어부님 말씀에 따르면. “한 해랑 다섯 해랑 워찌 같을껴. 여수 사람 보령에 오게 하는 맛이제~.” Drink 굴 구이에는 보령에서 가까운 홍성에서 주조한 홍주 생막걸리가 잘 어울린다. 미네랄이 풍부한 화이트 와인 뮈스카데와 즐겨도 좋은 선택. Advice 프렌치 레스토랑 르꼬숑에서는 천북의 5년산 굴 요리 ‘무쉬 때문’을 선보인다. ‘물때’라는 뜻의 순우리말 ‘무쉬’ 때문에 그토록 두껍고 길다란 껍데기 속의 진한 맛을 느껴볼 수 있다. 이상민(미식 칼럼니스트)

    피처 에디터
    김아름
    일러스트레이터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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