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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에서 NBA 스타가 된 지미 버틀러의 의외의 매력

2021.03.20GQ

지미 버틀러는 강한 승부욕 때문에 까다로운 팀메이트로 악명을 떨쳤다. 그런 그가 비로소 이상적인 팀과 동료를 만나 확실한 반전을 보여줬다. 달라진 건 커다란 미소를 짓는 지미 버틀러일까, 아니면 그에게 열광하는 우리일까?

수트, 돌체 & 가바나. 슈즈, 크리스찬 루부탱. 시계와 귀고리는 지미 버틀러의 것.

마이애미 히트의 승부사이자 NBA ‘버블’ 시즌의 전설로 등극한 지미 버틀러는 유별난 와인 애호가이기도 하다. 그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와의 화상 인터뷰를 앞두고 나는 인근 와인 가게에 들렀다. 점원은 오늘의 와인으로 루나 데이 펠디를 추천하며 이탈리아 베니스를 통하지 않고는 구하기 힘들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몇 시간 뒤 이 이야기를 들은 버틀러는 자신의 와인 저장고에서 프랑스 보르도에서 생산된 샤토 랭쉬 바쥬 2010년산을 꺼내와 모니터 너머로 보여줬다. 뭔가 자기 것이 더 대단하다고 뻐기는 것처럼 보였다. “몇 년 전 베니스를 방문한 적 있어요. 엄청난 덩치의 갈매기가 손에 든 음식을 낚아채려 했지만,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곳 중 하나예요. 말하다 보니 갈매기 때문에 짜증 났던 게 생각나요. 녀석들은 하고 많은 사람 가운데 제가 먹으려는 피자를 노렸어요. 저는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음식을 사수했죠.”

베니스의 추억이 갈매기와의 다툼이라니, 과연 NBA에서 가장 용맹하며 승부욕과 경쟁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지미 버틀러답다. 그런 성격 탓에 그는 동료 선수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전 소속팀인 시카고 불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서는 융통성이 없고 외골수 기질이 심한 리더라는 악명을 얻었다. ‘최선’이란 단어에 대한 버틀러의 눈높이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보고 들은 그대로의 진실을 말하는 걸 겁내지 않는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시절의 그 유명한 사건처럼 재능은 있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선수에게 “나약하게 군다”는 말을 쏘아대며 밀어붙일 수 있다.

2019년 버틀러가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하면서 모든 게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와 같은 마인드로 무장해 승리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동료들과 자신의 성향을 그대로 받아주는 패기 넘치는 팀 문화를 만나게 된 것이다. 버틀러는 그 안에서 비로소 행복하고 편안해 보였다. 시즌 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마이애미 히트는 경험이 풍부한 버틀러를 앞세워 승승장구했고 전문가의 예상을 깨고 파이널 무대까지 진출했다. 상승세는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LA 레이커스에 아쉽게 패배했다. NBA 2019/2020 시즌은 뻔한 엔딩으로 마무리됐지만 마이애미 히트는 반전의 묘미를 보여줬다. 그 중심에는 버틀러가 있었다. “모두의 예상과 평가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해요. 비록 우리 스스로의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텍사스에서 나고 자란 버틀러는 10대 시절 부모에게 버림을 받으면서 거리 생활을 하거나 친구의 집에 얹혀 지냈다. 그에게는 농구가 희망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했고, 마케트 대학교로부터 입학 제안을 받기 전까지 2년제 대학을 다니기도 했다. 버틀러는 오랫동안 마케트 대학에서 벤치 멤버로 머물렀지만 어렵게 버티며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코치님이 큰 기대를 갖지 않고 내보낸 경기에서 공격 리바운드를 4개 정도 따냈어요. 그 뒤로 계속 저를 쓰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최선을 다했어요.” 그렇게 더디지만 한 걸음씩 전진한 끝에 버틀러는 NBA 슈퍼스타의 자리에 올랐지만 운이 좋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살면서 느낀 건데, 인생에서 많은 상황이 운에 좌지우지되는 편인 것 같아요. 신의 은총이라 할 수 있겠네요. 누군가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삶에 운도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버틀러는 대화 상대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않는다. 어디에서 자랐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을 던진다.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디트로이트로 이주했으며 프로축구 선수 경력을 지녔다는 내 이야기에 흥미를 드러낸 건 당연했다. 그는 신앙심에 가까울 정도로 자아실현을 추구하며 배울 만한 사람을 곁에 두기를 선호한다. 시카고 불스에서는 톰 티보도 감독으로부터 코트에서 최대치의 기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코트 밖에서도 늘 최상의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얻었다. 이는 마이애미 히트의 에릭 스폴스트라 감독의 지도 방식과도 맞아떨어진다. “보통 일하는 방식을 통해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해요. 그리고 너무나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가만히 있질 못 해요. 저도 자극을 받는 동시에 그가 더 열심히 하도록 자극을 주게 돼요.”

버틀러는 하루에 세 차례 트레이닝을 한다. 프로 운동선수라면 이 정도는 소화할 것이다. 다만 버틀러의 하루는 오전 4시부터 시작된다. 이런 남다른 일과는 마크 월버그를 보고 배웠다고 한다. 그는 오전 2시 30분에 기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버거는 멘토로서, 친구로서 고마운 사람이에요. 그를 보며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곤 해요.” 버틀러는 이렇게 말하며 딸이 태어난 뒤로는 이전처럼 기상 시간을 철저히 지키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자신을 깔고 잠든 딸이 깨지 않도록 얌전히 빠져나오는 데 30분씩 걸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딸이 한 살이 채 되기도 전 버틀러는 NBA 사무국이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올랜도의 디즈니 월드에 마련한 특별 격리 시설에 들어가 3개월간 그곳에서 지내며 리그를 치렀다. ‘버블’로 불렸던 그곳에서 버틀러는 놀라운 기량을 보여줬다. 정평이 난 그의 수비력은 늘 훌륭했고, (비록 덩크슛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상황에 따라 폭발적인 득점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오로지 딱 하나, 우승만 바라봤다. 그 의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버블에서 지내는 동안 단 한 번도 머리를 자르지 않았으며 가족 방문이 허락된 후에도 아내와 딸을 경기장에 초대하지 않았다. 그는 버블에서 보내는 시간을 긴 출장으로 여겼다. 그렇다고 해서 외부와 차단된 곳에서 팍팍하게 지냈다는 말은 아니다. 원두와 집기를 가져다 자신의 숙소에 ‘빅 페이스 커피 Bing Face Coffee’라는 카페를 차려 다른 선수들에게 커피를 판매했다. 한 잔 가격은 무려 20달러, ‘외상 사절’이란 문구도 내걸었다.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한 뒤 버틀러는 정서적 안정감을 얻었다. 전에 느끼지 못했던 소속감도 채워졌다. 동료들도 그를 리더로 인정하고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마이애미 히트의 기대주인 타일러 히로는 버틀러에 대해 “큰형처럼 늘 저를 챙겨주고 농구 내외적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줘요. 끊임없이 치고 들어오면서 조언들을 해주기도 해요. 제가 듣고 싶어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늘 그렇죠”라고 말했다. 현 소속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버틀러의 표정은 밝았고 활기가 넘쳤다. 마치 사랑에 빠진 로맨틱한 연인의 모습 같다고 말해주자 그는 “우리 팀의 일원을 보면 알 수 있어요. 한 명도 빠짐없이 승리를 최우선으로 여기지 않았다면 애초에 마이애미 히트에 합류하지 않았을 거라 확신해요”라고 말한 뒤, “사실 모두에게 잘 맞는 팀이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믿고 잘 받쳐주기 때문에 이렇게 잘 굴러갈 수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말줄임표처럼 여운을 남기듯이, 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지난 파이널에서 부상 때문에 선수가 몇 명 부족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우승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LA레이커스와의 파이널 5차전은 버틀러에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마이애미 히트가 1승 3패로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그는 35득점을 쏟아 부은 것도 모자라 트리플 더블 활약을 펼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던 경기 막판, 지칠대로 지친 버틀러는 코트사이드의 펜스에 엎드려 양팔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이는 그해 NBA 시즌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였으며 버틀러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바뀌는 전환점으로 남았다.

마이애미 히트에서 보낸 드라마틱한 첫 시즌을 통해 빌런 캐릭터에서 영웅으로 거듭났다는 이야기를 언급하자 버틀러는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고작 몇 번의 활약을 봤다고 이제 와서 말을 바꾸려 한다고요? 저는 그런 건 조금도 관심이 없어요. 그저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열심히 뛸 뿐이에요. 전에도 그랬고요. 저는 크게 변하지 않았어요. 마이애미 히트는 계속 머물고 싶은 곳이긴 하지만. 저를 아주 좋아해주는 팀이죠.”

코트, 베르사체. 셔츠, 드리스 반 노튼.

스웨터, 살바토레 페라가모. 셔츠, 팬츠, 모두 보디. 양말, 브레시아니. 시계, 쇼파드. 팔찌, 반지, 모두 에이. 소바쥬.

안정 궤도에 올라서일까, 버틀러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부드럽고 말랑하다. 개인 유튜브 채널에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 영상을 올리는가 하면, 과거 동료 선수들과 겪은 갈등에 대해 “최선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어요. 그 부분은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어요”라고 인정하며 비슷한 상황이 다시 일어난다면 좀 더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버틀러가 출연한 맥주 광고는 그의 야생마 이미지에 친근함을 얹었다. 운동선수가 모델인 광고는 으레 땀, 훈련, 찡그린 미간, 기합 소리, 잔뜩 팽창한 근육 등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기 마련인데 이 광고는 버틀러가 욕실에서 이를 닦으며 홀 앤 오츠의 ‘You Make My Dreams’를 웅얼웅얼 따라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 다음에는 옷방 안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한 그가 유니폼과 옷 몇 벌을 챙기고 두 켤레의 카우보이 부츠 중 하나를 고른 후 NBA 버블에 가져갈 짐을 마저 꾸린다. 버틀러의 일상적이고 장난기 다분한 모습을 담은 광고는 입소문을 타고 화제가 됐다. 그간 그가 어떻게 비춰졌는지를 떠올리면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꾸준히 애쓰고 있어요. 왜냐하면 저도 알거든요. SNS에 올라오는 뉴스와 루머만 놓고 보면 저는 그냥 재수 없고 형편없는 팀메이트에 불과해요. 하지만 그런 농구 선수로서의 일면을 빼고 본다면,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버틀러가 와인 잔을 손가락에 걸친 채 스스로를 변호하듯이 말했다. 훈련장과 코트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그런 우아하고 여유있는 모습도 새롭다면 새로웠다.

캘리포니아의 자택에서 편안한 상태로 화상 인터뷰를 하며 와인도 있겠다, 버틀러는 긴장이 풀렸는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줄줄 늘어놓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1순위는 자신의 딸이다. 그에게 무조건적 사랑의 의미를 알려준 존재다. 때로는 알사탕만한 손바닥으로 그의 얼굴을 찰싹찰싹 때리기도 하지만. 가족과 떨어져 3개월간 버블 시설에서 지내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요즘은 그렇게 떨어져 지낸 시간을 만회하느라 하루하루를 보낸다. 버틀러는 딸에게 최고의 롤 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어야 해요. 딸에게도 그렇게 가르칠 거예요.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너도 똑같이 해낼 수 있다고, 누구 앞에서도 당당해야 한다고. 피부색과 성별은 상관없어요. 아무리 상대가 너보다 크거나 빠르다 해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너는 최고가 될 거라고 알려줄 거예요.”

버틀러는 텍사스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상하게도 그가 휴스턴에서 왔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그는 톰볼 근교 출신이라고 이를 정정했다. 버틀러는 스스로 시골 사내라고 말할 정도로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맥주 광고에 카우보이 부츠가 괜히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버틀러가 사랑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컨트리 음악을 엄청 좋아하고 이 장르의 뮤지션을 존경해요. 그들의 가족적인 면이 마음에 와 닿아요”라고 말하며 필모어의 새 앨범을 들어보길 강력히 추천했다.

그리고 명백하게도 버틀러는 와인을 사랑한다. 와인의 세계로 그를 이끈 인물은 마크 월버그다. “2013년 9월 13일이었어요”라고 버틀러가 기억을 되짚었다. “제 생일 전날이었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해요. 시카고에서 뛰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찍고 있던 월버그가 촬영장에 저를 초대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와인을 한 모금도 마신 적이 없었다. 대학 시절에는 이튿날 머리가 깨질 정도로 도수가 높은 술만 마셨고, 와인이란 자신과는 다른 사회 경제적 배경에서 자란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다.

“(마크가) 저한테 와인을 마시냐고 묻길래 ‘아뇨, 전혀 안 마셔요’라고 말했죠. 그러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저를 쳐다보는 거예요. 저와 동행한 시카고 불스의 직원이 저를 쿡 찔렀어요. ‘이봐, 당연히 마신다고 해야지. 마크 월버그가 권하는 거잖아!’라는 의미였어요. 그래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어요. ‘농담이에요. 물론 와인도 마셔요’라고.” 그 자리에서 월버그는 그에게 2010년산 사시카이아를 따라줬다. 이를 마신 버틀러는 ‘이거 나쁘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혼자 와인 가게를 찾아갔다. “그날 마신 2010년산 사시카이아를 사볼까 했죠. 진열대에서 찾아 카운터로 가져갔더니 직원이 가격이 3백 달러 정도 된다고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듣자마자 그냥 나왔어요. 당시만 해도 좋은 와인 한 병에 그렇게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죠. 지금은 그 가치를 잘 알아요.” 그때 버틀러를 곤란하게 만든 사시카이아는 그가 손에 꼽는 와인 중 하나가 됐다.

버틀러는 축구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그는 내가 잉글랜드 프로축구팀 아스널의 재킷을 입은 걸 보자마자 놀리기 시작했다. 나는 최근 팀 성적이 좋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승패를 초월해 마음 편하게 경기를 감상할 수 있어서 좋다고 응수했다. (만약 한눈을 팔지 않을 충성스런 남자를 만나고 싶다면 아스널 팬을 추천한다. 장담컨대, 그는 많은 걸 바라지 않은 채 당신 곁에 남아 뭐든지 할 것이다.) 더구나 아스날 출신 선수 중에는 내 또래 나이지리아인들에게 신처럼 추앙받는 티에리 앙리가 있다. 그를 직접 만난 경험이 있는 버틀러는 이 대목에 동의했다. “그의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면 축구를 엄청 쉽게 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마치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도 너희들보다 훨씬 낫지’라는 식이죠.” 축구 종목 자체를 좋아하는 버틀러는 열렬히 응원하는 특정 축구팀은 없지만 폴 포그바, 네이마르의 팬을 자처한다. “저 역시 프로 선수이기 때문에 팀보다는 선수 개개인에 더 끌리고 그들의 노력과 활약에 더 크게 반응해요. 그리고 선수 선발, 이적, 트레이드 같은 뉴스에 팬들이 분노하기도 하는데 그게 다 비즈니스라는 것에도 공감해요.”

버틀러의 페이버릿 리스트에서 여행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어릴 적에는 여행은 상상도 못 했어요. 심지어 여권이 무엇인지조차 몰랐죠. 익숙하고 안락한 곳에서 잠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건 무척 중요해요.” 2019년 여름 그는 난생처음 세네갈을 방문했다. 친구가 동행했고, 둘은 여행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세네갈은 버틀러에게 좋은 기억을 안겨준 여행지 중 하나다. 코로나19 사태가 마침표를 찍으면 친구를 만나러 더블린에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아일랜드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더모트 케네디다. 프랑스는 지역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파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표현만큼 매력적인 곳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보르도 지역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당장이라도 날아갈 기세다. “딱 한 군데만 골라야 한다면 보르도에서 살고 싶어요. 그곳에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게 꿈이에요.”

코트 안팎의 사건으로 인해 알려진 이미지와 달리 버틀러는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다. 관계의 폭도 꽤 넓다. 절친을 묻는 질문에 남아프리카 출신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를 언급하는가 하면, 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얼마 뒤 뉴욕에서 셀레나 고메즈와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버틀러는 컨트리 음악계의 슈퍼스타인 루크 브라이언과도 가까운 사이로 그의 ‘Light It Up’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

한편 버틀러는 농구 이후의 인생을 구상하고 계획하는 것을 좋아한다. 몇 가지는 실행으로 옮겼다. 최근에는 온라인 마케팅과 브랜딩 서비스를 제공하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큐레이티드 휴 Curated Hue’를 설립했다. 또 시카고와 마이애미의 어린아이들을 위한 자선 단체에 힘을 더하고 있다. 재미 삼아 선보인 빅 페이스 커피를 진지하게 사업으로 발전시킬 계획도 갖고 있다. “커피 장사는 원래 거스름돈이 없는 척해서 선수들의 용돈을 빼앗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버블에서 지내는 선수들은 매일 용돈 개념의 일비를 똑같이 받았거든요. 20달러 지폐를 네 장씩 갖고 다녔어요. 커피를 맛있게 만들기만 한다면 지갑이나 주머니 속의 돈을 다 쓸어 모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커피 한 잔을 20달러에 팔았으니 불만은 없어요.”

버틀러는 NBA에서 뛰는 것 말고도 컨트리 송을 부르고 광고도 찍으며 개인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인터뷰 말미, 그가 마크 월버크처럼 액션 영화에 출연하면 르네상스인이 될 수 있다고 농담을 던졌다. “51퍼센트는 가수, 49퍼센트는 농구 선수인 셈이죠”라고 말하더니 이내 “정정할게요. 저는 51퍼센트 가수, 48퍼센트 농구선수, 나머지 1퍼센트는 피아니스트예요”라고 말했다. 그렇다. 그는 피아노 연주도 즐겨 한다. 버틀러의 실제 모습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본인의 세계에 갇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심오하거나 터무니없지 않다. 그저 조금 다를 뿐이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봐주고, 세상이 어떻게 알아줬으면 하는지 물었다. 인터뷰 내내 버틀러는 이야기를 배배 꼬는 법이 없었다. 이 대답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간결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아갈 거예요. 나에 대해 누가 뭐라 해도 신경 쓰지 않아요.” 그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킨 뒤 허공을 겨냥했다. 마치 그곳에 세상 사람들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버틀러가 목소리에 힘주어 말했다. “제가 변했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요. 제 자신을 그대로 지킬 거예요.”

대화의 마무리가 “절대로 바뀌지 않겠다”는 버틀러의 선언이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는 늘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성장하길 원하고 변화를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며 한계를 시험하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 의지는 남다른 연습량과 훈련 방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런 비범한 부분을 제외하면 남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스스로에 대한 버틀러의 소견이다. “제가 보는 저는 누구나 편하게 다가와 말을 걸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한 사람이에요. 뭐든 다 좋아요. 같이 강아지 산책에 나설 수도 있어요. 그러니 친구가 더 필요해요.”

오버올, 디키즈. 스웨터, 에르메네질도 제냐. 부츠, 루체스. 선글라스, 까르띠에. 시계, 쇼파드.

코트, 베르사체. 셔츠, 드리스 반 노튼. 팬츠, 조르지오 아르마니. 목걸이, 티파니.

    Writer
    Zito Madu
    Photographer
    Jason Nocito
    Stylist
    Mobolaji Dawo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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