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의 시작은 비우기, 하지만.
유승보 뮤지션 & 일러스트레이터
살바도르 달리 시계 버릴까 말까 고민인 이유 신혼여행 당시 LA 어반 아웃피터스의 리빙 코너에서 구매했다. 존경하는 살바도르 달리 선생의 오브제로 가격도 나쁘지 않았고 구매를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 시계는 실용성이 너무나 떨어진다. 침대 맡에 두면 소리가 너무 커서 숙면을 망치고, 서랍장에 두면 서랍을 열 때마다 거슬린다. 결국 가구 옆, 즉 측면에 두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시계의 옆면만 보일 뿐 시간을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디자인이 너무 ‘레어’해서다. 지금은 국내에서 인터넷 쇼핑을 통해서도 살 수 있다. 언젠가 이 디자인과 아이디어를 활용해 실용성을 가미한 리빙 아이템을 개발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괜시리 든다.
오렌지 진공관 기타 앰프 헤드 버릴까 말까 고민인 이유 10년 전 자신의 브랜드 로고 디자인을 부탁한 친구에게 작업을 해주고 돈이 없다길래 그 친구 집에서 가지고 온 장비다. 마침 오렌지 앰프 Orange Amps는 평소 가지고 싶던 기타 앰프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장비의 능력을 양껏 테스트할 수 있는 합주실이 현재 없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름부터 ‘타이니 테러 Tiny Terror’니까 완벽하다.
박국이 라이프스타일 숍 pakkookii 대표
마리 매솟 Mari Masot 토기 화분 버릴까 말까 고민인 이유 사진 속 물건은 마리 매솟 Mari Masot의 ‘Two-Part Plant Pot B2’이다. 스페인에 사는 마리사라는 작가가 만드는 토기 화분으로, 아래와 위가 분리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토분을 실제로 처음 본 건 2019년 12월이었다. 가족과 함께 떠난 LA 여행에서 두세 개 사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어서 연락을 취했다. “당신의 토분을 pakkookii 셀렉션에 넣고 싶다!” 그렇게 숍에 들어온 이 토분이 둘로 분리된다는 걸 몰랐던 내방 고객께서 그냥 들고 보시다가 윗부분을 떨어뜨리셨다. 바로 깨졌다. 내가 쓰려고 하나 빼놨던 건데.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애정이다. 마리 매솟의 토분은 너무 좋다. 색감, 비례감, 조형미, 그 안에 담긴 건축적 아이디어까지. 아직 깨지지 않은 밑부분이라도 어떻게든 사용하고 싶다. 그래서 못 버리고 있다. 언제쯤 흔쾌히 버릴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밑부분도 깨졌을 때?
김영철 코미디언
스케이트 버릴까 말까 고민인 이유 2018년 평창 올림픽 개최 전 김연아 선수와 함께하는 <키스앤크라이>(2011)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생길 거라 생각하고 피겨를 배우기 위해 2017년 목동 아이스링크장에서 당시 50만원 주고 산 중급 스케이트화다. 하지만 이제 피겨 예능은 생기지 않을 것 같고, 곧 50이라 무릎 보호 차원에서도 탈 일이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기초 동작은 마스터했다. 이 정도면 초급 따도 된다는 선생님 말씀에 초급 다음엔 중급이냐고 물었더니 피겨는 초급 이후 1급부터 8급까지 있다고 들었다. 참고로 “김연아 선수는 8급이죠?” 했더니 선생님이 그랬다. “7급이겠어요?”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혹시 센트럴파크 같은 데서 할리우드 배우와 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김도훈 칼럼니스트
1백 년 된 소년 흉상 버릴까 말까 고민인 이유 2007년 파리 방브 벼룩시장, 5월 파리의 햇살을 받고 있던 소년은 너무나 청초했으나 서울에서 짐을 푸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오는 모든 사람이 가장 무서워할 아이템이 되겠구나. 약간 신기가 있으신 분이 집에 와서 이걸 보며 “이 집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네요”라고 하셨을 때는 며칠간 잠을 못 잤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정이 들어버렸다. 눈 달린 물건과는 정이 더 빨리 든다. 이래서 눈 달린 건 집에 들이는 게 아니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었어야 했다.
테리 리처드슨 피규어 버릴까 말까 고민인 이유 2008년 파리 콜레트에서 이걸 파는 점원이 말했다. “한정판 마지막 남은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비싸질걸?” 그래서 테리 리처드슨에게 3백 유로를 투자했다. 망할. 이 문제적 패 션 포토그래퍼는 미투 운동과 함께 사라졌다. 거실에 나갔다가 이 웃는 얼굴과 마주칠 때마다 나는 잃어버린 3백 유로(+상상 속의 인상된 가격)와 추락한 우상을 생각한다. 마음 복잡해지는 건 집에 두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언젠가 <스캔들: 패션계 오욕의 역사> 같은 책이라도 쓰게 되면 쓸모가 있을까봐 못 버리고 있다.
박혜인 미술가 & 글로리홀 라이트 세일즈 대표
꿩 깃털 장난감 버릴까 말까 고민인 이유 언제 구매했는지도 모를, 고양이 집사라면 하나쯤 가지고 있을 법한 깃털 장난감. 어느덧 집사 경력 11년 차이고 그동안 수많은 깃털 장난감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꿩 깃털 장난감은 어쩐지 아름다워 주인이 아닌 나도 마음에 드는 것이었는데, 중년이 훌쩍 넘은 내 고양이는 깃털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러나 그것의 미감을 간직하고 싶은 집사 마음에, 제대로 기능하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있다.
반투명 둥근 유리 돔 버릴까 말까 고민인 이유 기능보다는 이 유리와 연관된 어떤 기억 때문이다. 버리고 싶지만 버릴 수 없었던 것은 두 가지 마음이 상충했기 때문인데, 이 유리는 기억하기 위해 버리지 못하는 마음과 잊어버리기 위해 버려야 하는 마음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예를 들면 보기 싫지만 보면 찡해지는 흉터 같은 것이기도 하고, 노스탤지어가 느껴지는 흑역사 같은 것이기도 하고.
파도처럼 굴곡진 형태의 유리 버릴까 말까 고민인 이유 2018년, 작품의 아름다운 바닥으로 쓰기 위해 만들었지만 가마 안에서 미묘하게 잘못 녹아 쓰이지 못하게 됐다. 뒤집으면 어쩐지 견과류라도 담을 수 있는 식판 같아서 언젠가는 쓰겠지 하고 남겨두었으나 쓸 일이 없었던 비운의 유리 작품이다. 휴가를 맞아 버리고 싶은 대표적인 나의 유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성스레 만든 도자기를 자기 손으로 깨뜨리는 쿨한 장인이 되지 못해 늘 미련을 둔다.
이진혁 필름 현상소 135/36 대표
슬라이드 뷰어 ‘Pana-Vue Bi-Lens’ 버릴까 말까 고민인 이유 작년 가을쯤 이베이에서 궁금해서 사봤는데 의외로 저 돋보기로 잘 들여다보지 않게 된다. 슬라이드 사진을 보고 싶을 때는 차라리 프로젝터에 끼워서 본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래도 저기에 끼워서 보는 맛이 있다. 무언가 좀 더 사진에 빠져드는 느낌도 좋다. 계륵이다.
- 피처 에디터
- 김은희
- 포토그래퍼
- 김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