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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발사 성공의 일등 공신 ‘고정환’ 본부장을 만났다

2022.12.08신기호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비행 성공을 공식 발표합니다.

GQ 벌써 6개월 전입니다. 발사 성공 후에는 좀 휴식을 취하셨을까요?
JH 발사하고는 여유있는 시간을 조금 가졌어요. 그래도 우리가 하는 일 대부분이 연속성을 갖고 있어서 요즘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네요.

GQ 고정환 본부장님께 2022년은 더 특별했던 한 해로 기억될 것 같아서 여쭤봅니다. 올해를 한 단어로 축약해본다면 어떤 단어가 떠오를까요?
JH 뿌듯함? 저희가 긴 시간을 두고 개발을 거듭하고 있지만, 사실 이게 될지 안 될지 1백퍼센트 확신을 갖을 수 없는 일입니다.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변수는 늘 존재하고요. 그런데 올해 그런 확률적인 불안감을 극복하고 나니까 많이 뿌듯했던 것 같아요. 또 무엇보다 국민들께서 굉장히 뜨겁게 반응해주셨고요. 예산이 크고 개발 기간도 긴 사업이라,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없으면 이뤄내기 어려운 일이죠.

GQ 국민들의 반응 이야기가 나와서요. 본부장님은 그 많은 반응 중 어떤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나요?
JH 몇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발사 당일 관람을 오셨던 분께서 응원 메시지를 남겨주셨는데, “대한민국의 과학 기술이 이렇게까지 발전한 줄 몰랐다. 정말 놀랍고 자랑스럽다”라는 내용이었어요. “자랑스럽다”라는 응원에서 그간의 피로가 싹, 해소되는 느낌이었습니다.

GQ 다른 반응도 궁금해요.
JH 과학 기술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 같았어요. “20년 넘게 과학 기술 쪽에서 일해왔는데 이렇게 가슴 뜨거웠던 적은 처음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 말이 잊히지가 않더라고요. 같은 기술자로서 느껴지고, 공감한 바가 많았던 메시지가 아니었나 싶어요.

GQ 저는 본부장님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현장의 반응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들로 가득 했을 테죠.
JH 저희는 시간차가 있어요. 현장에 있지만 실제로 저희는 발사할 때의 모습을 볼 수 없거든요.

GQ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을 말씀하시는 거죠?
JH 네, 발사 전에 쭉 대기하면서 지켜보다가 4초 전, 이제 엔진이 점화되고 불꽃이 정상적으로 나온다 싶으면 그 다음부터는 발사체가 비행하는 걸 모니터링하는 단계로 들어가기 때문에 사실 이륙해서 날아가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저희도 그 날 저녁에 뉴스로 보면서 “와, 날아가는 장면이 되게 멋있구나” 그랬습니다. (웃음)

GQ 상상도 못 했어요. 그 결정적 순간을 뉴스로 확인하실 줄은.
JH 지금까지 일곱 번 발사했는데 네, 한 번도 못 봤네요. 다음에는 기회가 되면 정말 직접 보고싶어요. 맥주 한 캔들고 마음 편하게 구경 좀 했으면 싶죠.

GQ 놀라웠던 대목이 하나 더 있었어요. “12년 3개월 동안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다”라는 본부장님의 이야기요.
JH 12년을 못 잤다고 기사에 나가니까 주변에서 거짓말하지 마라, 어떻게 12년 동안 잠을 안 자냐 막 그러시던데.(웃음) 당연히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얘기였고요. 연구 과정 대부분이 좀 깜깜할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늘 고민 속에서 살아왔던 것 같고. 그리고 좀 주목받는 일을 하게 되면 사실 질책과 질타를 많이 받을 때도 있고요.

GQ 그때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셨을까요?
JH 다른 건 없고 편한 사람들하고 소주 한 잔 하는 거죠. 그리고 푹 쓰러져 자 는정도. 안 그러면 머릿 속에서 고민들이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GQ 누리호의 성공은 2022년 6월 21일이었지만, 이 프로젝트를 거슬러 올라가면 2010년 3월, 그때부터 시작됐죠?
JH 네, 2010년 3월에 한국형 발사체 사업이 착수됐는데, 그 전에 진행하던 나로호 사업은 끝나지 않은 상태였거든요. 또 2009년, 2010년의 두 차례 발사에서 실패한 상황이라 사실 당시 분위기가 좋지 않았죠. 다행히 2013년 1월 3차 발사에 성공하면서 사업은 마무리됐고, 본격적으로 한국형 발사체 체제로 들어가면서 누리호 사업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GQ 나로호는 러시아와 함께 프로젝트를 완성해갔다면, 누리호는 이제 우리 연구진의 손에서 전부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JH 그래서 처음에는 굉장히 막막하고 어려웠습니다. 저희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개발해야 하니까요. 또한 초기에는 시험 설비가 필요해서 설비 구축 같은 시간도 필요했고요.

GQ 그러던 중 2015년에 본부장직을 맡게 되셨죠?
JH 네, 저는 그때를 굉장히 힘든 시기로 기억합니다. 설비들을 구축하고 본격적인 개발을 진행했을 때가 2014년, 2015년인데, 어려움이 많았던 시기였어요. 출구가 보이지 않는 그런 상황이 2016년까지 쭉 이어졌고요.

GQ 많은 어려움 중 본부장님을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JH 아무래도 시간이죠. 어떤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우리 안에서 해결해야 하거든요. 해결은 다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극복할 수밖에 없고. 결국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한데 늘 부족했어요.

GQ 그럼에도 그 긴 터널을 지나올 수 있었던 본부장님의 동력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JH 사명감이죠. 그리고 우리 연구원들이 ‘할 수 있다’라는 생각, 믿음이 있었고요. 이게 밖에서 보면 진도가 거의 안 나가는 것 같지만, 사실 내부적으로는 손톱만큼, 아주 미세하게나마 조금씩 조금씩 성과가 있었거든요. 거기에서 위안을 얻으면서 개발에 임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되지 않겠나’하는 생각으로.

GQ ‘언젠가 되지 않겠나’라는 기대가 희망으로 전환된 순간이 궁금합니다. 어떤 타이밍에서 희망을 보셨나요?
JH 2018년, 75톤 엔진을 이용한 시험 발사체를 만들어서 가동했을 때 였던 것 같아요. 엔진이나 기체 설계 등 우리가 개발한 것들이 제대로 동작하는지 확인하는 시험이었는데, 시험 이후, ‘잘되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GQ 워낙 물성도 크고 기술적인 집약성도 복잡한 분야니까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떄 그걸 해결한다? 상상조차 안 되네요.
JH 네 상당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지상 실험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금방 파악할 수 있는데, 비행 중에 문제가 생기면 기체는 날아가고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파악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요. 그럴 땐 비행 중에 원격으로 내려받는 데이터들만 가지고 추론을 해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과정이죠.

GQ 수천, 수만 개의 기술 부품이 모여 있는 발사체에서 그것도 데이터만으로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는 건 정말이지 아득한 과정이겠네요.
JH 여러 가지 정황을 두고, 우리가 생각하는 솔루션 시나리오를 대입하며 해결하는데, “이게 1백 퍼센트 맞는 거냐”라고 물으면 사실은 모르는 거죠. 그걸 확인하려면 다음 번 비행 시험을 해서 문제가 없어야 증명되는 거고. 1퍼센트의 확신을 채우는 과정 역시 시험 비행으로 증명해야 하죠.

GQ 본부장님과 연구진들의 거듭된 그런 노력들 덕분에 누리호 발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거죠.
JH 16개 팀,2백명이 넘는 인원들, 모두의 수고 덕분이죠. 그래서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고요. 모든 사람의 기가 모여서 이룰 수 있었던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GQ 이제 ‘한국형 발사체를 갖고 있다’라는 건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 걸까요?
JH 발사체라는 건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우주로 무엇인가를 이송할 수 있는 수단이거든요. 그러면 지구 궤도에 올릴 수 있는 수단을 갖게됐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겠죠. 그런 능력을 가진 나라가 지구상에 채 10개도 안 되고, 더욱이 자국의 발사체로 자국의 위성을 올릴 수있는 나라는 더 적다고 보면 지금의 우주 산업에서 대한민국의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가 누리호를 통해서 다 가지게 됐느냐 하면, 그건 아니에요. 선진 기술을 가진 외국과 비교하자면 이제 걸음마 단계라고 보시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걸음마까지 30년이 걸렸네요.(웃음)

GQ 2027년까지 네 번 더 발사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됐죠?
JH 네, 발사 성공 이후에는 여러 번의 발사를 통해 발사체의 신뢰성을 쌓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내년 상반기에 한 번, 2025년, 2026년, 2027년 이렇게 나눠서 발사할 계획입니다. 먼 일이긴 하지만 2032년을 목표로 나로우주센터에서 1.8톤의 달 착륙선을 발사할 계획도 갖고 있고요.

GQ 본부장님께 2022년 6월 21일은 어떤 날로 기억될 것 같나요?
JH 내 인생에 뭔가 하나 이루어놓은 날, 그 정도로 기억될 것 같은데요?(웃음) 뛰어나신 분들은 대부분 혼자 업적을 이루시는데, 제 경우는 저희 동료들과 함께 이룬 성과죠. 그런데 여러 명의 노력이 모여 결실을 맺었다는 것이 저는 더 기쁩니다.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하고요. 우리 연구원들, 지지해주신 국민들께도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습니다.

피처 에디터
신기호
포토그래퍼
장기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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