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정성일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건 행운과 같다고 생각해요"

2023.04.25신기호

정성일이라는 장르가 열렸다.

화이트 셔츠, 드리스 반 노튼. 쇼츠, 마르니.

티셔츠, 돌체&가바나. 팬츠, 드리스 반 노튼. 실크 로브, 르메테크.

울 베스트, 구찌. 데님 팬츠, 리바이스.

트러커 재킷, 팬츠, 모두 디젤. 스니커즈, 구찌. 화이트 톱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데님 팬츠, 리바이스. 레이스 셔츠, 화이트 톱은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재킷, 구찌. 화이트 셔츠, 팬츠, 타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덕분에 사이드 암 시구는 처음 봤잖아요.
SI 진짜 너무 떨렸어요.
GQ 한화의 오랜 팬이죠?
SI 맞아요. 그래서 너무 기뻤어요. 전날은 설레어서 잠도 안 오고.
GQ 근데 너무 떨렸다는 고백치곤, 꽉 찬 스트라이크를 팡! 꽂았어요.
SI 야구를 꾸준히 하고 있긴 한데, 그런데 그건 정말 운이 좋았어요.(웃음)
GQ 그동안 ‘하도영’으로 사느라 꽤 바빴죠?
SI 감사하게도요. 작품도, 캐릭터도 모두 좋아해주신 덕분에요.
GQ 작품 이후에 성일 씨 인터뷰가 정말 많았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더 글로리>나 ‘하도영’ 얘기는 안 하려고요. 이러면 서운할까요?
SI 아휴, 아니요. 다른 이야기도 들려드릴 수 있으면 좋죠 전.
GQ 요즘 계속 무대에 서고 있죠? 연극 <뷰티풀 선데이>는 막 끝났고요.
SI 네, 지금은 뮤지컬 <인터뷰> 하고 있어요.
GQ 무대에는 꽤 오랫동안 서 왔죠?
SI 스무 살에 시작했으니까 꽤 됐네요. 그래도 아직까지 긴장하고 떨고 그래요.
GQ ‘하도영’을 벗겨낸 정성일은 어떤 사람이에요? 스스로 보기에.
SI 저 장난기도 많고요, 되게 편한 사람? 주변에 한둘은 꼭 있는 익숙한 사람요. 밝으려 노력하는 부분도 있고요.
GQ 노력한다는 건 원래는 그렇지 않다는 거죠?
SI 제 일이 많은 사람하고 협업해야 하는 작업이라서요. 적어도 ‘나’ 때문에 분위기가 달라지진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좀 더 밝으려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좀 더 재밌게, 편하게 작업할 수 있으니까.
GQ <더 글로리> 이후 어떤 점이 가장 크게 바뀐 것 같아요?
SI 주변 반응요. 많이 알아봐 주시고, 찾아주시고요. 아니, 제가 언제 한화 구장에서 시구를 해보겠어요.(웃음) 이 생각은 진짜 했어요. ‘나 배우 하길 정말 잘했다.’
GQ 이렇게 다시 기승전 시구.
SI 그만큼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 것 같아요. 영광스럽게도.
GQ 예전에 오정세 배우가 수상 소감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어요. “모든 작품을 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했음에도 결과는 다르더라. 그러니 자책하지 말라, 여러분 탓이 아니다.” 인터뷰 준비하면서 이 말을 성일 씨에게 가져가서 전하고 싶었어요.
SI 맞아요. 지금도 너무 잘하고 있고, 열심히 하는 친구가 많거든요. 저도 이제야 기회를 잡았고요. 정세 형 말이 맞아요. 꾸준히,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오더라고요.
GQ 돌아보면 터널이 길었던 것 같아요?
SI 마흔 살 넘어서 기회가 왔고, 이제 막 관심받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런데 주변에 보면 저보다 정말 더 잘될 수 있는 친구가 많아요. 지금의 저는 아무것도 아니고요.
GQ 기회가 왔을 때 못 잡는 경우도 있고요.
SI 맞아요. 기회는 언제 올지 모르는 거니까. 그래서 준비는 돼 있어야 하죠.
GQ 배우는 선택을 받기도, 또 하기도 하는 입장이잖아요? 성일 씨는 선택의 가치를 어디에 두는 편이에요?
SI 아직 제가 무엇을 선택하는 입장은 아닌데, 했다면 ‘메시지’였던 것 같아요. 그건 분명할수록 좋은 것 같아요.
GQ 그게 캐릭터든, 작품이든.
SI 네, 연극 무대를 오랫동안 해와서 그런 것 같아요. 왜 연극이 시대나 문화, 사회 관련된 이야기들을 줄곧 해오고 있잖아요. 그래서 전달하고, 알리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갖고 있는 메시지가 분명하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GQ 그렇게 선택한 작품은 대체로 만족했어요?
SI 그런데요, 재밌는 게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해야 할까요? 지나고 보면 그런 작품이 행복했던 것 같아요.
GQ 이를테면 어떤 작품이 그랬어요?
SI 연극 <보고싶습니다>라는 작품이 그랬어요. 너무 하고 싶었던 작품이라 욕심도 컸죠. 운 좋게 오디션에 붙고, 준비하면서 전부를 쏟아부었는데, 되레 돌아오는 건 혹평이었어요. 답답한 마음에 안 마시던 술도 좀 하고. 그 시간이 많이 힘들었어요.

재킷, 팬츠, 스웨터, 모두 보테가 베네타.

GQ 만족은 그 후에 따라왔겠죠?
SI 네, 공연 올라가고 나서 “잘했다”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게 씻겼어요.
GQ 만족 말고 다른 것도 얻었다면요?
SI 그때가 제가 딱 자만했을 때였어요. 주변에서 “잘한다”는 소리도 종종 듣고 하다 보니까 착각했던 거죠. ‘나 잘하는구나?’ 그런데 그때 <보고싶습니다>연출님이 제 연기를 보고 딱, 한마디하셨어요. “너 연기 그렇게 하면 안 돼.”
GQ 아찔했을 것 같아요.
SI 맞아요. 그런데 아마 저도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 더 배워야 한다는 거. 그래서 그때 정말 열심히 했어요. ‘연기 이거 끝이 없구나’ 싶은 생각도 그때 처음 했던 것 같고요.
GQ 어때요? 그 뒤로 벽에 부딪힐 때마다 방법이 좀 보이던가요?
SI 똑같죠. 대본 안에서 찾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더 글로리>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고민만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대본 붙들고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 수밖에요.
GQ 처음 배우를 꿈꿨을 때를 떠올려보면, 지금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아요?
SI 전혀요. 그때는 배우보다는 연예인, 스타에 가까웠어요. 물론 그때도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꿈꾸던 모습은 그랬던 것 같아요.
GQ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지던가요?
SI 꿈에 대한 확신?
GQ 점점 더 또렷해졌군요.
SI 아뇨. 그 반대요. 점점 흐릿해졌죠. 20대 때는 무조건 잘될 줄 알았고, 30대 때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그래도 잘될 거야’ 싶었죠. 그러다 30대 중반부터는 ‘잘될까?’ 확신이 의문으로 변하기도 했고요. 40대 들어서니까 ‘이거 안 될 수도 있겠는데?’(웃음)
GQ 배우를 오래 하고 싶다면, 가장 큰 이유는 뭐라고 이야기할 것 같아요?
SI ‘내가 이보다 좋아하는 일이 있을까?’ 반문해보면 없어요.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건 행운과 같다고 생각해요.
GQ 이만큼 연기에 푹 빠질 정도면, 계기가 분명 있었겠죠?
SI 고 3이었어요. 대전에서 누나랑 같이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보러 갔는데, 충격 이상이었어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짜릿한 감정을 느꼈는데 ‘이거 뭐지?’ 싶으면서도 또 한 번 느껴보고 싶은 거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GQ 영화 같아요.
SI 지금은 이제, 누군가가 날 보고 그런 감정을 느낀다면 정말 좋겠다, 싶죠.
GQ 배우로서 터닝 포인트는 언제였다고 생각해요?
SI 아빠가 되고 나서부터요. 전에는 연기가 좀 딱딱했다고 해야 하나요?
GQ 정석적인.
SI 네, 단단했던 것 같아요. 강했고. 어떤 틀이 존재했거든요. 그런데 아기가 생기고, 아빠가 되고 나서는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유연해지고. 그런 변화들이 묘하기도 해요.
GQ 어떤 아빠예요?
SI 여느 아빠랑 똑같아요. 아들이 게임을 너무 좋아하는데 같이 게임하고, 나가서 같이 뛰어놀고. 그러다 투닥투닥 싸우기도 하고요.(웃음)
GQ 아들은 아빠가 배우라는 거 알아요?
SI 전혀 모르는 것 같아요. 그냥 자기랑 게임 같이하는 사람, 칼 싸움해주는 사람 정도?
GQ 작년 이맘땐 지금의 정성일을 상상 못 했겠죠?
SI 못 했죠. 이렇게 많은 게 달라질 거라고는 감히 못 했죠. 그냥 한 계단 정도 올라가 있을까? 정도였죠.
GQ 이 정도면 몇 층은 껑충 올라간 거 아닌가요.(웃음)
SI 너무 감사하죠. 그런데 이도 잠깐이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더 소중하고요.
GQ 그럼 내년을 예상해보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해보면 어때요? 이거 오래오래 남는 거니까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돼요.
SI 하,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GQ <지큐> 16페이지를 펼쳤을 때, 성일 씨가 받을 수 있는 선물이 있다면, 뭐가 좋을까요?
SI 음, 제가 야구로는 상을 많이 받았는데, 연기로 받은 건 없어요. 16페이지에 트로피 하나 짠, 하고 들어 있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트로피를 기사나 광고로 쓰긴해요?(웃음) 사람들이 <지큐> 16P는 광고 페이지라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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