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art

지큐 피처 에디터 3인이 공개한 셀럽 인터뷰 비하인드

2024.01.03김은희

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삭제했으나 인물의 한순간이 투명하게 담긴 대화 조각을 꺼낸다. 모든 꾸밈을 지우고 마주한 이목구비들의 기록.

필릭스 | <지큐> 2023년 12월호

비겁? 비겁이 무슨 의미지?

2023년 10월 31일의 대화
3분 28초. 필릭스는 대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진 시간. 그가 만든 노래 ‘Deep End’에는 멀어지는 관계를 심해로 표현한 운율, 언어, 음색, 분위기가 일렁거려서 나는 그를 붙잡고 온종일 이 이야기만 해도 모자라겠다 싶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썼어요? 어떻게 이런 높낮이를 만들었죠? 와중에 자꾸만 목에 채이는 파편을 꺼내 건넸다. 가사 중에 “If You Hadn’t Changed 네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면 / Then I’d Still Be By Your Side 그렇다면 여전히 네 곁에 있을 거야”라는 표현이 한편으로는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필릭스씨 생각은 어때요? “비겁? 비겁이 무슨 의미지?” 동그래진 눈으로 자문하는 필릭스 앞에서 그의 사전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비겁’이란 감정을 꺼내온 스스로가 곧 불손하게 느껴지고 말았으나. 그러니까, 곁에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지 왜 상대의 마음에 달렸다고 하느냔 말이에요. 불손을 가리고자 쓴 철가면 앞으로 필릭스가 창작 노트에 휘갈기듯 낮게 읊는 혼잣말이 들린다. “네가 변한 순간부터 힘들었으니까. 힘들긴 했지. 그래서 약간 상처를 표현한 거지. 그래도, 그래도 널 좋아하고 소중하니까 그래서 나는 계속 같이 있고 싶다는 거지, 끝까지.” 이내 그의 오른손이 수면 아래로 향하듯 천천히 내려 간다. “힘든 건데 버티는 거잖아요. 그래도 난 네옆에 있겠다고, (올려다보며) 난 아래로 싱킹 Sinking 해도 위에 있는 널 보겠다고. 그래서 한 표현이에요.” ‘네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면’이라는 조건부가 비겁한가, 비겁하지 않은가, ‘Mean’인가, ‘Cowardly’인가, 이는 더 이상 우리의 토론 거리가 아니었다. 애초에 필릭스가 쓴 노랫말이 경험인지 상상인지 현실인지 허구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던 이유, 그 자체였으므로. 덧칠하지 않는 담백함. 김은희

구교환 | <지큐> 2023년 8월호

“삶은 연극성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 역할론에 되게 충실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2023년 7월 3일의 대화
“좋은 인터뷰란 무엇입니까?” 업으로 매달 인터뷰를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한데 구교환에게 질문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았다. “일단, 재밌어야죠.” 구교환을 만난 건 <D.P. 2> 홍보 목적이었지만, 그는 어떤 홍보 인터뷰에서도 작품을 해체하고 분석하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작품이 ‘납작해진다’는 이유로. 그러면 어쩌지? 에라 모르겠다. INFP 인터뷰이, 인터뷰어가 만 난 김에, 작정하고 안드로메다까지 가보기로 한다. “사람 쉽게 좋아하고 쉽게 싫어해요. 컿컿컿”이 한동안 팬들 사이에서 밈이었다. 평소에도 인터뷰를 정리할 때 멀끔하게 다듬는 것보다는 그 사람처럼, 현장감 있게 두는 것을 좋아하지만, 구교환의 말을 더 로 Raw하게 살린 건 배우이자 감독인 그가 각본을 쓸 때도 읽을 때도 그럴 거라고 멋대로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웃음)이라는 게 대체 뭐예요? 애초에 웃는다는 건 뭐예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면 그게 웃는 거예요?’라고 동그랗게 물을 것 같아서. “종종 혼자 주문을 걸어요. 나는 지금 인터뷰어를 연기하는 무명 배우라고.” 나의 고백을 듣고 구교환은 곧장 “삶은 연극성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 역할론에 되게 충실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그 어느 때보다 연극 같던 그 인터뷰 현장을 떠올 리며 나는 종종 컿컿컿하고 웃는다. “오늘 인터뷰, 제 스타일이었어요”란 쿠키 영상 같은 그의 마지막 대사까지, 우린 마지막까지 각자 역할에 충실했다. 전희란

송중기 | <지큐> 2023년 3월호

“타협이 안 되더라고요”

2023년 2월 13일의 대화
배우 송중기가 했던 말의 앞뒤를 붙여보면 이렇다. 6년 전, 그에게 <로기완>의 대본이 들어갔다. 그는 인터뷰에서 “건방지게도 거절을 했다”고 고백했다. 그때의 송중기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고 했다. 여기까지가 대화의 앞부분. 이어진 대화의 뒷부분은 이렇다. 6년 뒤, 그는 <로기완>이 아직도 제작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소식을 주변으로부터 전해 듣는다. “그 좋은 대본이 왜 아직 제작이 안 됐지, 싶었어요. 누군가라도 했을 좋은 대본인데···.” 이후 운명처럼 <로기완> 대본은 다시 송중기에게 전해진다. 그럼 6년 전의 송중기가 타협할 수 없었던 그 부분은 어떻게 해결됐을까. “그게 이제는 되더라고요. 그땐 안 되던 게 이제는 너무 쉽게 공감이 되더라고요.” 해결을 봤다니 그럼 편집할 수 밖에. 그게 태도의 변화든 사고의 변화든, 무엇이 변했는지 나는 궁금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택의 번복을 담백하게 고백하는 그의 솔직함이 더 좋았다. 할 수 있다면 내가 느낀 ‘솔직한 송중기’의 모습을 인터뷰로 옮겨 많은 이와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지큐>를 찾은 송중기에겐 이보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 보따리가 많았다. 그의 솔직한 면모를 알리고 싶은 욕심은 접어두는 게 맞았다. ‘하긴 송중기 솔직한 거 누가 모를까’하는 생각을 위안 삼으며,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다던 배우 송중기의 고민을 짐작해보며 그래, 아쉽지만 편.집. 신기호

이용주 | <지큐> 2023년 6월호

“사실 지금은 초심보다 더 불탄 상태예요.
초심을 잊어버릴 정도로”

2023년 5월 10일의 대화
초심이란 뭘까? 어제 하던 거, 처음에 했던 거, 늘 하던 대로 계속하는 것? 음…, 글쎄. 피식대학 이용주를 인터뷰이로 섭외한 건 4월 20일이었다. 피식대학은 4월 28일 열릴 백상예술대상 TV 예능 작품상 부문에 <환승연애 2>, <뿅뿅 지 구오락실>, <피지컬: 100>, <SNL 코리아 시즌 3>등 TV 프로그램 과 함께 후보에 올라 있었다. 5월 10일, 약속된 날짜에 우리가 만났을 땐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손석구가 “사진 한번 찍자”며 달려온 장면도, 전종서가 피식대학의 ‘입덕 영상’으로 꼽은 그 유명한 수상 소감도 바로 이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나왔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피식대학의 유튜브 구독자는 200만을 넘겼다. 200만 돌파 기념 라이브에서 이용주는 인기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면서 “폼 미쳤을 때 더 미쳐야죠”라고 힘주어 말한다. 인터뷰는 총 두 번 진행했다. 73분 43초의 대면 인터뷰는 이용주를, 피식대학을, K-코미디를 더 궁금하게 만들었고, 36분 56초의 추가 전화 인터뷰로 이어졌다. 답변을 따로 준비할 시간이 없었음에도 코미디에 대한 그의 신념, 철학, 꿈은 챗 GPT보다 빠른 속도로 전해져 왔다. 그동안 인터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늘 주변 코미디언에게 마이크를 양보하는 인물이란 걸 사전 조사를 통해 알고 있었기에 이번만큼은 온전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는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제외하곤) 어떤 대답을 하든 “저는” 대신 “저희는”이라고 지칭하며 자신이 피식대학의 대표로서 이야기하고 있음을 정중하게 강조했다. 아이돌, 배우가 아닌 코미디언의 인터뷰가 한동안 GQ 웹사이트의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고 믿는 일이 무용하지만은 않다고 격려받는 기분이었다. 긴 인터뷰 시간만큼 덜어낸 내용이 많지만, 인터뷰의 가치에 대해 다시 되뇌게 해주는 그의 말 한 토막을 공유한다. “인터뷰를 좋아해요. 타인의 삶, 생각이 늘 궁금하거든요. 호기심 있는 인물에게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현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미래는 무엇을 보고 나아가는지를 제 방식대로 바꾸어 질문해요. 미래가 선명한 사람일수록 더 호기심이 생겨요. 이유를 더듬자면 조금 진지한 얘긴데, 어렸을 때 제 삶은 물음표로 가득했어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 생기니까 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무슨 의미지? 무엇의 복선이지? 늘 궁금했어요. 사람의 삶이란 게 좋은 일만 일어나진 않잖아요. 어떤 일이 생기든 어떻게 헤쳐나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깨달은 뒤로, 인터뷰를 보며 지혜를 얻었어요. 저 사람은 저렇게 헤쳐나갔구나. 제가 하는 인터뷰나 콘텐츠에서도 보는 이들이 자신의 인생에 힌트나 단서를 찾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백상 이후 그들에게 ‘초심’을 묻는 구독자가 꽤 많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변치 않는 건 ‘변치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뿐인 이 세상에서 진짜 지켜야 할 초심이 무엇인지, 나는 여전히 그로부터 배우고 있다. 전희란

조승우 | <지큐> 2023년 6월호

“루틴이에요? 이렇게 시계도 풀고 반지고 빼고”

2023년 5월 7일의 대화
우리의 대화는 그의 시선에서 시작되었다. “루틴이에요? 이렇게 시계도 풀고 반지도 빼고.” 그의 예리한 관찰에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긴. 시계도 풀고 반지도 빼니까 알았겠지.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낸 스스로의 머리를 쥐어박고 싶어지는 찰나, 그의 휘어지는 눈꼬리가 보인다. “그러시는 것 같아.” 톡 놓인 한마디에도 허둥지둥한 인터뷰어에게는 나름의 까닭이 있다. 그러니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사이에 놓인 대화 테이블 위 시간은 아쉽게도 유한해서 언제부터인가 인터뷰 시작 전에 손목시계를 풀어 곁에 둔다. 자유로워진 손목 따라 갑갑하게 느껴지는 손가락의 반지도 빼서 옆에 놓는다. 매 시간마다 치르는, 작은 의식처럼 된 나의 행위를 알아채고 호기심을 건넨 사람은 처음이었다, 조승우가. 마찬가지로 유심히 바라보았거나 궁금하지만 말을 삼킨 앞사람도 물론 있었을 것이다. 나의 맞은편에서 그들의 한순간을 내어준 모든 이에게 감사드린다. 여러 다감한 모음에서도 조승우라는 사람과의 시간은 돌아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무덤덤하나 분명한 온기가 맴돌았다. 가령 그의 틈이 궁금해 여행 수단을 조악하게 그려 내민 엽서를 두고 가도 되었건만 중히 품던 손, 보러 간 공연 좌석이 멀었다던 과잉 정보에 안타까워하더니 어느 날 도착한 초대권, 아, 어쩐지 물질적으로 환대받은 사적 경험만 늘어놓는 듯하여 인터뷰 중 그가 대뜸 꺼낸 <지큐>와 함께하게 된 이유도 옮긴다. “이번에 이 화보를 하게 된…, 제가 원래 잘 안 하잖아요.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는데, 고마움에서 왔어요. 저랑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같이 하는 김주택 배우가 제 첫 공연 때 선물로 구찌 스카프를 줬어요. ‘이게 뭐야, 웬 명품이야. 나 명품 잘 모르는데’, ‘그냥 형, 목에 항상 이렇게 감싸고 다니세요.’ 그때 되게 감동했어요. 그런데 <지큐>가 구찌와 같이 하자 했다는 말을 들으니 그때 주택이 생각이 제일 먼저 나더라고요. ‘저는 이탈리아에 있었어서 구찌를 준비했어요’ 하던. 이탈리아에 오래 있었던 친구거든요. 응, (<지큐>에) 주택이 얘기해야겠다. 그래서 그때부터 살을 좀 빼기 시작했죠. 갑자기 뭔 얘기야, 이게.” 조승우가 껄껄껄 웃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사소해도 사소하게 여기지 않는 한 인간의 이야기. 고마우면 고맙다고 말하는 아이 같은 한 어른의 이야기. 김은희

류준열 | <지큐> 2023년 12월호

“체념이면 좀 슬프죠”

2023년 11월 10일의 대화
배우 류준열에게 12월이라는 핑계로 뻔한 질문 하나를 툭, 내놨다. 올 한 해 동안 류준열을 칭칭 감고 있던 건 무엇이었는지. 생각이든, 역할이든, 일이든, 그게 뭐든. 질문을 받은 그의 첫 대답은 “이거 말하면 인터뷰로 연결이 안 될 것 같긴 한데…”였다. 녹취에선 몇 초간의 공백이 이어지고, 그렇게 다시 이어진 대답. “전에는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늘 의구심이 들었어요. ‘정말 이게 맞나? 아니야, 다른 것도 있을 거야.’ 그렇게 계속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왔던 것 같아요. 근데 올해는 아니었어요. 결국 이것도 나, 저것도 난데 그럴 필요 있을까? 이렇게 생각한 뒤론 후련해졌어요. 근데 이거 너무 추상적인 대답이라서 좀 어렵죠?” 응, 어려웠다. 근데 이해까진 아니어도 짐작은 됐다. “그렇게 생각하고 난 뒤로는 어떤 결정이든 하고 나면 후련해요. 그 결정이 맞으면 좋고, 뭐 안 맞아도 어쩔 수 없고요.” 문득 궁금했다. 그 변화는 확신인지, 아니면 체념인지. “체념이면 좀 슬프죠. 체념은 아닌데, 또 막 신이 나지도 않는 거 보면 확신도 아닌 것 같아요. 그냥 후련한 정도. 대충 어중간한 상태인 것같아요.” 이 대화를 싣지 않은 이유는 그가 말한 마지막 문장에 있다. 그는 지금 어중간한 상태를 지나오고 있으므로, 그도 “어중간하다” 표현한 지금의 과정을 굳이 글로 옮겨 혹시 모를 억측을 만들 필요는 없으므로. 류준열은 이 대화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사진전을 보시면 무슨 얘기인지 아실 수도 있어요. 감정이 작업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더라고요.” 그의 사진전은 1월 21일까지 열린다. 신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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