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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남성복 쇼를 선보인 사바토 데 사르노가 말하는 자신감

2024.01.14임채원

남성 데뷔 쇼를 앞둔 구찌의 디렉터, 사바토 데 사르노와 나눈 대화. 그는 세간의 평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변화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렇게 변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1월의 어느 추운 날, 밀라노 끝자락에 자리한 구찌가 만든 거대한 캠퍼스는 정적이고 고요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점심이 한창일 무렵 도착했고, 모두가 식당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적당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이틀 뒤 이곳에서 구찌의 신입 디렉터 사바토 데 세르노가 그의 첫 남성 쇼와 함께 밀라노 패션 위크를 이끈다. 하우스의 새로운 상징색, 반짝이고 새빨간 빨간색으로 페인트 된 통로를 지나 정돈된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큰 하얀색 소파에 앉자마자, 사르노는 미흡한 영어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나폴리 출신인 그는 가족과 함께 휴일을 보냈는데, 일 년 내내 이같이 사과하는 것은 인생에서 처음이다. 그는 오늘 같은 인터뷰를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1백억 달러 규모인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새 직장에 적응하기 위해 해야 할 수많은 일 중 하나다.

작년 초 새로운 수장이 발표되기 전까지 마흔 살의 사르노는 프라다와 발렌티노에서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스튜디오 어시스턴트로 경력을 쌓았다. 최근 로마에서 밀라노로 글로벌 기업 본사를 이전한 구찌에서 그는 인원이 2백 명이 넘는 디자인 팀을 책임지게 되었다. 짧게 자른 머리처럼 매일 검은색 티셔츠와 리바이스 데님을 심플하게 입고 출근하는 사르노는 디렉터의 자리가 자신을 바꾸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저는 무엇의 절대 권력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예’ 혹은 ‘아니요’라는 말만 하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3초면 지루해져요. 저는 사람들과 지내면서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싶습니다. 저는 ‘일’이 하고 싶어요.” 실제로 그가 흠 하나 없는 검은 책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가 적응해야 하는 또 한 가지, 패션 평론가들과의 새로운 관계다. 발렌티노의 레디투웨어 디렉터 시절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현시점, 이제 모든 기대와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9월에 열린 그의 첫 쇼는 전임자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찌를 이끌었다. 미켈레는 8년 동안 펑키하고 맥시멀리스트적인 스타일을 보여주었고 구찌를 화려한 영화적 세계로 창조했다. 그러나 사르노는 스토리텔러가 아니다. “저는 콘셉추얼과는 정반대입니다.” 그가 설명한다.

사르노의 데뷔 컬렉션은 심플한 테일러드 블레이저, 에이라인 레더 스커트, 세일러 톱, 후드 티와 같이 산뜻한 일상복으로 구성된 현대적인 여성복을 제안했다. 하우스의 중대한 미적 전환을 예고한 것이다. 그는 패션에 접근하는 근본적인 사고방식을 새롭게 가져왔다. 구찌가 의상(costume)이 아닌 옷(outfit)을 만드는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본질적인 문제 말이다. “사람들이 입는 옷이 아니라 옷 속에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좋아요.” 그가 말을 이어간다. “사람들이 구찌 옷이나 구찌 브랜드를 입지 않았다고 개성을 상실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건 영화 안에서나 일어날 일이죠. 패션은 현실입니다. 패션은 실제 생활이고, 일상복이며, 매일 입는 착장이니까요.”

미켈레를 사르노로 교체했을 때, 이게 바로 구찌가 원했던 실용적이고 상업적인 전환이었을까? 케링 그룹이 150억 달러 성장을 목표로 하는 상황에서? 일부 비평가들은 그의 첫 번째 컬렉션이 싱겁다거나 너무 평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부분 여느 새 임명자처럼 사르노에게도 실력을 발휘할 기다림의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의 데뷔 쇼에는 톰 포드의 구찌를 연상시키는 요소가 여럿 등장했다. 여기에는 그가 톰 포드와 연결되는 또 다른 특징이 추가되는데, 동시대 빅 하우스 디자이너들이 거의 드러내지 않는 과감한 솔직함이다.

그에게 있어 패션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 줘야 한다. 하지만 일부는 그의 컬렉션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사르노가 관심을 갖는 유일한 의견은 엄마와 남편이라고 말한다. 푹신한 소파에 옆으로 기댄 사르노는 말을 덧붙였다. “저는 비평가들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의견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어요. 제 쇼는 와우 포인트 이상을 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스타그램이 만연한 세상에서 더 화려하고 놀라운 광경에 반응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반응이 엇갈렸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놀라는 것이 거대한 드레스를 선보이는 것, 최고의 모델을 쓰는 것이라면 그것 역시 인정하지만, 사바토의 방식은 아닙니다.”

사르노와의 대화는 점점 과열되었다. 그는 비판을 환영한다고 말하면서도 말만 하는 사람들에게 회의적이다. “사람들은 변화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변화를 좋아하지도 않고 변화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이게 이 세계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변화가 너무 좋다고 얘기하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 제가 구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저보다 더 잘 아는 분들은 와주세요. 도와주세요. 함께 일해봅시다.”

나는 그가 예민한 사람이거나 아직 세간의 관심에 적응 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르노는, 이제까지 퍼포먼스를 내야하는 것으로 인식 되어 왔던 패션 디자인을 매우 품위 있는 직업으로 인식한다. 그는 자기 일에 매우 진지하며 무례함에 대해선 발끈한다. “저의 쇼에 와서 아이폰을 통해 런웨이를 감상하실 계획이라면 집에서 아이패드로 보는 것이 더 낫습니다. 아이패드가 훨씬 크기 때문이죠.” 그는 반농담조로 말했다. “패션은 진지한 일입니다. 많은 자본을 움직이는 산업이고 많은 가족에게 일자리를 제공합니다.”

사르노가 왜 왕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디렉터의 자리는 여전히 무겁다. 하지만 그가 그리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은 대중의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 핵심 업무는 매일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옷을 만드는 일이다. 실제 사람들이 입는 실제 옷. “저는 패션을 사랑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패션이 가진 아이디어를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론 내린다. “전 패션의 모두를 사랑해요. 아이디어만이 아니라요.”

럭셔리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자신의 데뷔 컬렉션이 매우 자랑스럽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당신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이때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대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관점을 수정할 것인가, 아니면 관점을 보여줄 요소를 두 배로 늘릴 것인가?

남성복 론칭을 앞두고, 사르노는 급진적이고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관점을 두 배 키우는 선택을 했다. “콘셉트는 9월 쇼의 것을 반영했습니다.” 우리는 구찌 런웨이 팀이 최종 착장을 맞춰보고 있는 격납고 같은 모습의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많은 디자이너가 남성과 여성 쇼 사이에서 테마를 공유하지만, 사르노의 접근 방식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남성 쇼의 모든 룩은 여성 쇼의 것과 하나씩 연결되었다. 브랜드 리브랜딩 테마인 ‘구찌 앙코라(Gucci Ancora)’를 문자 그대로 실현한 것이다. 앙코라는 ‘다시’, ‘한 번 더! ’의 의미가 있다. 남성 사이즈로 제작한 동일한 룩이 있는가 하면 조금씩 재해석한 룩도 있다. 일부는 색상이나 원단을 공유하기도 한다. 9월 쇼 마크 론슨의 사운드트랙과 블랙박스 쇼 장소까지 닮았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시점에서 이러한 행보를 보인 것은 도박이었다.

“제가 한 것을 정말 사랑했어요. 구찌를 위한 첫 번째 쇼였고 저의 선택을 여전히 믿습니다. 사람들이 내 비전을 이해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나폴리 인근의 치차노 마을에서 태어난 사르노의 비전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구체화되었다. “저는 사람들이 저마다 개성에 걸맞은 옷을 선택하는 방식에 관심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옷은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을 갖출 수 있게 해주죠.” 사르노에게 옷은 동성애자로서의 삶,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은 나를 표현하는 방법, 사바토가 되는 방법을 찾는다는 것을 의미해요. 패션은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게 합니다.” 이런 이유로 젊은 사르노는 디자이너 베르사체에 매료됐다. “어떤 면에서 베르사체와 저는 같은 이야기를 공유해요. 그는 이탈리아 남부에서 태어났고, 동성애자였으며, 가족이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열두 살 때, 지아니 베르사체의 삶을 투영하며 디자이너를 꿈꿨던 기억이 나요.”

음악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제외해도 사르노의 삶은 베르사체보다 훨씬 더 단조롭다. 사르노는 변호사 남편과 두 마리의 닥스 훈트가 있다. 하지만 베르사체의 수트는 코트에 대해 거의 집착과 같은 관심을 가진 사르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사르노는 밀라노의 패션 학교를 졸업한 뒤 프라다의 보조 패턴 메이커로 패션계에 입성했다. 돌체&가바나, 발렌티노를 거치며 남성복 경력을 쌓았다.

그가 디자인한 첫 남성복 피스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눈에 몽환적인 기운이 서렸다. “저는 코트부터 시작했어요. 제 열정은 곧 코트를 위한 것이었고, 코트에 대한 집착으로 수집까지 합니다.” 사르노는 200개가 넘는 제품을 소장하고 있다. 9월부터 구찌의 것으로만 15개를 추가했다. 교복처럼 검은색 코트를 입지만, 단지 소장하기 위해서 색깔 있는 코트도 구매한다. 그게 아니면 직물이나 형태에 반해 산다. 패션에 대한 그의 현실주의자적인 면을 귀찮음으로 오해하지 말자. “코트는 안전한 상태를 느끼게 해줘요. 늘 긴 코트를 입어요. 몸을 감싸주는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를 좋아해요. 그래서 코트가 더 친밀하게 다가와요. 인간의 몸을 감싸 안아주기 때문에 친근하죠. 어떤 방식으로든요. 친절한 방법으로요.”

쇼룸에 들어가자, 옷걸이의 긴 코트들이 눈에 띈다. 몸통을 따라 아늑한 기둥을 세운 듯한 실루엣과 키 큰 모델의 발목을 스칠 정도의 기장이 특징이다. 이번 쇼에서 사르노는 9월 쇼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회색 톱코트로 오프닝을 열었다. 런웨이에서는 절대 눈에 띄지 않을 법한 디테일을 강조한다. 초밀도 맞춤 제작 울 패브릭, 심혈을 기울인 형태의 오버사이즈 실루엣, 안감에 자수로 박힌 ‘Ancora’  디테일까지. “사진에서 볼 수 없는 부분이지만 제품을 구하거나 직접 입어보았을 때만 알 수 있는 디테일입니다.” 그가 덧붙인다. “저는 단지 쇼에만 관심을 갖는 게 아니에요. 저는 아이템을 큐레이팅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 코트들이야말로 잘 기획된 제품이라고 생각해요.”

사르노는 옷걸이를 따라가다 집업 가죽 재킷 시리즈, 두꺼운 울 피코트, 칼라 전체를 반짝이는 시퀸으로 수놓은 세일러 니트 등 매장의 여성 제품을 보여주었다. 여성복에는 화려한 요소들이 조금 더해졌다. 아우터웨어 섹션에서 발끝 기장의 파이톤 더스터 코트라든가 쿠튀르 수준의 자수 장식이 달린 카 코트가 그것. 수트가 미니 드레스를 대체하고 크리스털로 짠 탱크톱은 남성을 위해 변형된다. 또 이번 쇼에서 디자이너는 두 가지 메인 테일러링 핏을 소개한다. 하나는 몸에 꼭 맞는 핏으로 견고하고 영국적인 실루엣. 다른 하나는 우아하고 여유로운 핏의 1990년대를 연상시키는 실루엣. 베케트 호보 백은 시그니처 색상 ‘앙코라 로쏘(Ancora Rosso)’로 돌아왔다. 모델들은 모두 하우스의 클래식한 홀스빗 로퍼를 재해석한 두꺼운 굽의 크리퍼를 착용할 예정이었다.

모델들이 쇼룸에서 착장 테스트하는 모습을 보니 이번 컬렉션은 많이 팔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들은 명확한 것을 선호하고 코트를 사랑한다. 패션 평론가들 역시 좋은 반응을 할 것으로 보인다. 빈틈없이 채워 데뷔 쇼보다 더 풍성해졌고, 정교한 감성이 담겼다. 명확하고 직설적인 사르노의 접근이 이번에는 통할 것이다. 맨즈웨어에 쏟은 노력이 헛된 수고로 돌아가진 않으리라.

쇼룸을 떠나기 전, 쇼를 앞둔 기분이 어떤지 물었다. 비평가들이 맨 앞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솔직히 부담감을 느끼지는 않아요. 제가 최고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것을 전달하기 때문이죠. 그걸 인식하고 있기에 이 일을 할 수 있고요. 제가 비판이나 평가에 대해 신경 쓰기 시작하면 모두가 나서서 저에게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어 할 겁니다.” 사르노는 이 일에 몸담은 사람의 어조를 강하게 보여준다. “이걸 자신감이라고 하죠.” 그가 확신에 차 말한다. “저는 첫 번째 룩부터 마지막 룩까지 이 컬렉션을 정말 애정합니다. 그리고 아주 자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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