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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이정후를 영입한 이유

2024.01.30신기호

이제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됐다.

글 / 대니얼 김(야구 기자, KBO, WBC,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한국과는 조금 다르지만, 메이저리그에도 분명히 선후배 문화가 존재한다. 최고의 유망주로 평가받는다 하더라도 신인급 선수들이 베테랑 선수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KBO리그와 비슷하다. 클럽하우스의 라커 위치도 경력에 따라서 배정받고, 베테랑 선수들은 때론 두 개의 라커를 동시에 사용할 수도 있다. 전용기나 버스로 이동할 때는 베테랑 선수들이 편한 자리를 선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선후배 문화가 깔려있지만,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서열 정리 방식이 있다. 바로 연봉순이다. 몸값이 높은 선수 중심으로 팀이 운영된다. 물론 대부분 베테랑 선수들이 고액 연봉을 받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력과 연봉순이 정리되지만, 최근 들어서는 다른 사례들도 나오고 있다. 김하성 선수가 뛰고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선수가 대표적인 예다. 타티스 주니어는 2년 차 되던 시즌에 계약 기간 14년, 그리고 총액 3억 4천만 달러의 장기 계약을 맺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타티스 주니어는 파드레스의 중심 선수로 인정받았고, 파드레스는 타티스 주니어 선수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경력 또는 메이저리그 등록 일수보다 한 단계 위가 바로 연봉 순위다.

바람의 손자 이정후 선수가 얼마 전 내셔널리그 명문 구단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계약을 맺었다. 보장된 계약 기간은 6년이고 총액은 1억 1천3백만 달러다.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는 총액뿐만 아니라 옵트아웃 조항까지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쉽게 이야기해서 이정후 선수는 본인이 원한다면 4년 뒤에 다시 FA시장에 나와서 더 큰 장기 계약을 맺을 수도 있다. 그리고 4년 뒤 이정후 선수의 나이는 불과 스물아홉살이다. 메이저리그에서 단 한 경기도 뛴 적이 없는 선수에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1억 달러 이상을 보장해주었다. 이정후의 포스팅이 시작될 때는 계약 총액이 1억 달러를 넘어갈 것으로는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1년 전 보스턴 레드삭스와 포스팅을 통해 계약을 맺은 요시다 마사타카 선수의 9천만 달러 정도면 만족할 만한 계약 조건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순간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아직 단 한 타석도 선 적이 없는 이정후지만, 이젠 그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중심이다. 같은 포스팅 과정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했던 류현진, 김하성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어느 정도의 적응 기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워낙 좋은 조건으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었기 때문에 그에게 거는 기대감은 자연스럽게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류현진과 김하성 선수도 많은 압박감을 느꼈겠지만, 이정후 선수는 그보다 몇 배의 압박감을 이겨내야 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쉽게 말해서 팀 내 연봉 1위라는 자리는 책임감이 따른다는 뜻이다. 단순히 루키 이정후가 아니라 이젠 샌프란스시코 자이언츠의 리더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정후는 이러한 책임감과 압박감을 이겨내고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이정후를 왜 영입했을까?

먼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그동안 아시아 시장을 크게 신경 쓴 팀이라고 보기 어렵다. 디비전 라이벌 팀들인 LA 다저스, 애리조나 디백스 그리고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는 꾸준히 KBO리그와 일본 프로야구 팀 선수들을 스카우팅해왔지만, 이상할 정도로 자이언츠는 아시아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사이 파드레스는 작년 시즌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김하성 선수를 영입했고, 애리조나 디백스는 에이스 메릴 켈리를 KBO에서 역수입하는 데 성공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은 이러한 상황을 멀리서, 아니 가까이 지켜봐야 했다. 결국 자극을 받은 자이언츠 구단이 아시아 스카우팅에 공격적으로 나섰고 이정후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서부지구 라이벌 팀들이 KBO리그를 통해서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이번만큼은 진심이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피트 푸틸라 단장은 이정후 선수를 직접 보기 위해서 지난 10월 한국을 찾았다. 당시 이정후 선수는 부상에서 돌아왔기 때문에 선발 출장은 어려웠다. 그래서 푸틸라 단장이 직접 본 이정후 선수의 모습은 마지막 한 타석일 수밖에 없었다. 한 경기도 아닌 한 타석을 보기 위해서 메이저리그 단장이 시즌 중 태평양을 건너왔다는 점만으로도 자이언츠 구단이 얼마나 이정후를 원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메이저리그 단장이 한국을 직접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하성 선수를 영입한 AJ 프렐러 단장은 수차례 일본을 방문했지만 한국은 와본 적이 없다. 과거 류현진을 영입했던 다저스도 마찬가지. 어쩌면 푸틸라 단장이 고척돔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이정후 선수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계약은 이미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솔직히 이정후 선수가 메이저리거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KBO리그, 아니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고 각종 국제 대회에서도 본인의 능력을 입증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파한 자이디 사장은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 에이스인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상대로 멀티 히트를 기록한 이정후 선수의 모습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오랫동안 이정후를 지켜봐 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정후 선수의 메이저리그 도전을 향해 현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Adjustment‘이다. ‘적응’ 또는 ‘수정’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쉽게 설명하면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빠른 공에 적응해야 한다. 작년 시즌 KBO리그 투수들의 빠른 공 평균 구속은 시속 1백43.8킬로미터였다. 반면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빠른 공 평균 구속은 (2022 시즌 기준) 시속 1백51.1킬로미터다. 엄청난 차이가 난다. 하지만 이미 이정후 선수는 메이저리그 도전을 위해서 타격 폼을 ‘수정’한 상황이고 1년 전부터 차근히 준비해왔다. 입단 기자회견에서 본인이 말한 대로 아직 나이가 어리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다고 본다. 그뿐만 아니라 KBO리그에서 성공을 거두고 현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는 메릴 켈리를 상대로 KBO리그에서 타율 .476를 기록하기도 했다. 솔직히 이정후 선수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타격 폼수정이나 적응 능력이 아니다.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그의 강한 멘털이다. 압박감을 이겨내고 메이저리그의 강속구 투수들 앞에서 쫄지 않고 본인의 스윙할 수 있는 멘털을 갖고 있는 선수가 이정후다. 바로 이런 점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그를 자신있게 영입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멘털만큼은 메이저리그 베테랑급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은 그동안 수차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KBO리그 포스트 시즌에서도 그리고 올림픽과 WBC 대회에서도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메이저리그는 전 세계에서 야구를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 모인 곳이다. 기본 실력도 중요하지만 실력만으로는 롱런을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 메이저리그다. 다행히 이정후는 준비가 되어 있는 선수다. 여기서 말하는 준비는 타격폼이나 기술뿐만 아니라 멘털적인 부분까지 포함한다.

이정후는 이제 더 이상 키움 히어로즈의 이정후가 아니다. KBO리그의 이정후도 아니다. 이제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대표하는 이정후다. 그리고 명문 구단 자이언츠에서 연봉을 가장 많이 받는 선수다. 타격 기술적인 부분도 이미 준비했고, 멘털적인 부분 또한 이젠 준비가 되어있는 선수다.

2019년 시즌 KBO리그 MVP를 수상하고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워스와 3년 계약을 맺었던 조시 린드블럼 선수는 이정후 선수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정후는 본인이 노리는 공을 절대 놓치는 선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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