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키즈 제도의 화산섬들은 험준하고 위압적이며, 격한 파도와 무역풍의 울음이 끊이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이 이 섬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든다.
개 한 마리가 바게트 덩어리를 통째로 입에 물고 지나가고 있었다. 작은 만 가장자리의 해변을 빠른 걸음으로 벗어나더니 듬성듬성 들어선 야자나무들을 지나 붉게 만개한 히비스커스와 뭍으로 밀려온 아웃리거 카누 사이로 빠져나갔다. 우리는 그 뒤를 따랐다. 쫓는 길에 본 낮은 양철 지붕 주택은 이 섬의 도로도 없는 외딴 골짜기에 여섯 채밖에 없는 민가 중 하나였다. 빵나무에 묶어둔 말 고삐를 푸는 젊은 청년 둘이 나타나자 개는 그들을 피해 돌아서 나아갔다. 상체를 드러낸 두 청년의 가슴과 팔은 가오리와 새처럼 생긴 패턴으로 온통 검게 뒤덮여 있었다. 여전히 의기양양 입에 빵을 문 녀석은 그레이프푸르트 나무를 지나쳤는데, 나무 아래에는 전화 부스가 서 있었다. 부스에는 “전화”라는 이름이 달렸고 그 안에는 동전식 공중전화가 놓여 있었다. 전화 부스는 철과 유리로 만들었기 때문인지 주변 환경과 굉장히 동떨어진 듯했다. 하지만 이곳은 마르키즈였고, 나는 무슨 일을 겪더라도 그리 놀랄 필요는 없다는 것을 배워가는 중이었다.
마르키즈 제도의 폴리네시아어 이름은 테 페누아 에나타 Te Fenua ‘Enata로 인간의 땅이라는 뜻을 지닌다. 총 12개의 화산섬으로 이루어진 마르키즈는 타히티에서 북동쪽으로 9백 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다른 가장 가까운 곳까지의 거리는 2천3백40마일이나 된다. 12개 섬 중 인구가 있는 섬은 6개뿐인데 어찌나 외졌는지 지구상에서 가장 마지막에 식민지가 된 곳이기도 하다. 지형이 험해 프랑스가 바게트와 전화를 전파하기 전까지는 골짜기마다 서로 다른 부족이 형성될 정도였다고 한다. 나와 나의 아내 킴은 누쿠히바 Nuku Hiva섬에 있었다. 마르키즈의 섬들 중 가장 큰 섬이다. 이곳에서 3일 밤을 보낸 후 더 작은 섬인 우아포우 ‘Ua Pou와 히바오아 Hiva Oa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이날 아침 우리는 하카우이 밸리 Hakaui Valley를 찾아가 바이포 Vaipō라 불리는 폭포까지 하이킹을 하기 위해 배를 타고 거친 바다를 건너왔다.
가이드를 맡아주기로 한 마리아가 전화 부스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할머님께 안부전화라도 하고 싶은가요?”라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나는 마르키즈 주민들이 연중 끊임없이 부는 무역풍처럼 언제 어디서든 농담을 구사하는 감각을 지녔다는 사실에도 서서히 익숙해지는 중이었다. 마리아는 이곳 골짜기에 대대로 터를 잡은 부족의 후손이었고, 주민 모두와는 친인척 관계였다.
마리아의 농담 섞인 질문에 나는 “그건 어렵겠어요. 할머니는 하늘나라에 계시거든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마치 “그게 어때서요?”라고 하는 것처럼 고개를 젖히더니 빵을 문 개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폭포로 가는 길은 작은 강을 따라 이어지는가 싶더니 빽빽한 열대 숲으로 들어섰다. 바람 한 점 없다시피 했고, 이따금 부는 살랑거리는 바람에는 촉촉한 흙과 시원한 물, 그리고 치자꽃 향이 실려왔는데, 이곳 주민들은 사방에 활짝 핀 향기로운 치자꽃을 엮어 화환을 만든다고 했다. 푸르게 우거진 협곡의 암벽이 우리의 머리 위로 아득하게 솟아 있었다. 최근 내린 비로 탁해진 강물을 헤치고 건너 둑을 기어올라 계속해서 나아가던 중 마치 낮게 설치한 가드레일처럼 땅속에 가지런히 박힌 검은 돌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리아가 걸음을 멈추며 설명했다. “우리는 지금 족장님의 길 위에 있는 거예요. 오래전 족장님은 안전을 위해 내륙으로 9마일이나 들어간 곳에 살았다고 해요.”
인근 부족의 침입이 있을 때면 바다의 만에 그들이 몰고 온 카누가 가득 차곤 했다고 한다. 기다란 투창을 든 전사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문신으로 장식한 모습이었다. 땅에 박힌 돌들을 가리키며 과연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물어봤다. “확실하진 않지만 2천 년은 넘었을 거예요”라는 마리아의 대답이 돌아왔다.
상류를 향해 1마일 정도 더 올라 모퉁이를 돌았을 때 나는 얼어붙은 것처럼 동작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조그맣게 돌출된 부분에 선 우리의 발 아래로 협곡의 틈새가 딱 알맞게 벌어진 덕에 골짜기를 따라 반 마일 떨어진 곳의 숲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화산 지대만큼 극적인 지형은 없다. 기반암 지대와 달리 화산 지대는 침식이 진행될수록 더욱 거칠고 날카로워진다. 초목으로 뒤덮인 이곳의 암벽들은 돌출부가 칼날처럼 예리하고 현무암 기둥들은 하늘 위 어둑한 구름을 향해 솟구친다. 눈 앞 1천 피트 이상 떨어진 지점에서 폭포가 쏟아져 내리며 온통 초록밖에 없는 풍경에 새하얀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강 유역에서 웅웅거리며 물이 흐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암벽 꼭대기 부근에서 활공하거나 원을 그리며 날아나디는 새들 중에는 뾰족한 꼬리가 기다랗게 뻗은 열대조와 바다갈매기도 있었다. 그들은 울음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날아다닐 뿐이었다.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 같아요.” 킴이 중얼거렸다. 실제로 그러했다. 폭포 왼편 절벽 중간쯤에 동굴이 보였다. 마리아는 동굴 바닥에 놓인 하얗고 긴 물체를 가리키며 “저게 뭔지 알겠어요?”라고 물었고, “관 아닌가요?”라고 킴이 답했다. “맞아요. 족장님의 관이에요. 빵나무를 깎아 만들어서 흰색이고, 족장님이 내세를 향해 노를 저어갈 수 있도록 카누 형태를 띠고 있는 거죠.” 마리아가 설명했다.
우리는 올라온 길을 돌아 내려갔다. 2시간쯤 걸려 도착한 첫 민가에서 마리아의 사촌 쿠아와 두 조카, 개 두 마리, 개를 매섭게 노려보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를 맞이했다. 코코넛 껍질 위에 구운 신선한 참치와 빵나무 열매로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 한때 이곳 골짜기에 8천 명이 살았던 적도 있다고 마리아가 알려주었다. 하지만 전함을 타고 온 프랑스인, 포경선을 타고 온 미국인과 유럽인들이 옮긴 전염병 탓에 원주민 인구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우리 부족은 이곳에서 수천 년 동안 살아왔어요”라고 운을 뗀 마리아는 “외부인의 방문을 막지는 않겠지만 여기는 우리의 땅이고, 이 땅을 파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섬에 머무르기로 한 마지막 날 저녁에 우리는 자동차로 누쿠히바를 가로질러 아아카파 A‘akapa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수령이 5백 년이나 되는 망고나무 한 그루가 마래라 불리는 신성한 돌단 위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오래전에는 이곳에서 족장과 사제들이 의식을 주관하곤 했다고 한다. 안장을 얹지 않은 말 한 마리가 마을 중심가를 따라 넓은 보폭으로 느긋하게 뛰어다녔다. 등에 올라탄 여자아이들은 신이 나 비명을 내질렀고 더 많은 수의 아이들이 그 뒤를 따라 달리며 뭐라뭐라 외쳐댔으며, 그런 아이들을 개들이 뒤쫓았다. 그렇게 우르르 몰려가 길의 꼭대기에 이르면 되돌아 똑같이 함성을 지르며 반대편으로 달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남녀노소 모여 쇠구슬을 굴리는 게임인 불에 열중하거나 축구를 하고 있었고, 고개를 들어보니 성벽처럼 가파르게 펼쳐진 산들의 능선 위로 비와 햇빛의 장막이 펄럭이는 듯했다. 이곳에서의 삶이 과연 지금 내 눈 앞의 광경만큼 마냥 달콤할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테다. 마을 아이들 중 절반은 벽지 생활을 뒤로하고 타히티에 있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바글거리는 수도 파페에테로 가고 싶어 할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그날 그 오후에는 스무 명 남짓한 젊은이가 모여 돌담에 앉아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타히티, 보라보라 등 신혼여행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오버워터 방갈로가 넘쳐나고 거대한 크루즈선이 일상의 풍경으로 자리 잡은 소시에테 제도의 섬들과는 다르게 관광 목적으로 마르키즈를 찾는 방문객의 수는 굉장히 적은 편인데,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낮은 접근성이다. 마르키즈를 찾아가는 여정은 길기도 하지만 위험하기도 하다. 동쪽에서 끊임없이 불어오는 무역풍이 일으키는 크고 사나운 물결은 화산석 곶에 부딪쳐 폭발하듯 산산이 흩어진다. 마르키즈 제도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다른 제도들보다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탓에 산호초가 발달할 시간이 부족해 평온한 석호를 갖추기도 어려웠다. 어찌저찌 도착했다고 해도 섬 내에서의 이동은 여전히 쉽지 않다. 배를 타도 차를 타도, 설사 비행기를 탄다고 해도 험한 건 마찬가지다. 누쿠히바의 중심지이자 항구 마을인 타이오하에 Taioha’e에는 호텔 하나와 레스토랑 몇 개, 그리고 문을 열어두는 교도소가 있으며, 태평양을 건너 긴 항해 끝에 도착한 요트 수십 척을 수용하기 위한 정박지가 있다. 결혼한 커플들이 항해 도중 사이가 틀어져 이곳에 도착할 때쯤 이혼을 결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섬 북부의 건조한 지대에 세워진 공항에 내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타이오하에까지 이동하는 동안 우리는 비가 잦고 안개가 자욱한 캐리비언 소나무 숲을 올랐는데, 가시거리가 극도로 줄어든 상태에서 말과 염소, 그리고 이따금 등장하는 진흙더미를 피해 차를 움직여야 했다. 머리털이 곤두설 것만 같은 경험이었다.(고갱이 묻힌 히바오아를 찾아갔을 때는 더욱 심했는데, 우리의 가이드를 맡은 하이마타가 아슬아슬한 절벽길에서 무릎으로 운전대를 조작하며 우쿨렐레를 연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이오하에를 떠나 마리아가 사는 골짜기로 향하는 배편은, 자극적이었다고 말해둘 수 있을 것 같다.
누쿠히바를 뒤로한 우리는 프로펠러 비행기에 올라 우아포우 ‘Ua Pou섬으로 향했다. 맞바람을 즐기는 바닷새라도 된 것처럼 거친 비행이었다. 우아포우는 어찌나 지형이 험하고 울퉁불퉁한지 활주로 하나 들어설 평지가 없는 섬이고, 이곳의 유일한 활주로는 언덕을 오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넘어가기까지 한다. 우리를 맞이한 가이드가 해변가에서는 귀신이 나온다고 알려주었다. 관광 목적으로 섬을 방문한 이들은 행락객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옛 조상들의 영혼이 내는 울음소리를 피해 땅거미가 지기 전 이곳을 떠난다고 한다.
우아포우에는 호텔이 없다. 게스트하우스만 2개 있을 뿐이다. 이처럼 날것 그대로인 장소에 가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섬의 환경에 익숙해졌고, 익숙해지자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숙소는 하카모우이 플라주로 정했다. 다니엘 테하헤와 그의 스물세 살 된 아들 가스파르, 그리고 가스파르의 두 살배기 딸 에스파란제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로, 이들 중 대장은 단연 에스파란자다. 무역풍을 고스란히 마주하는 동향으로 지은 본채와 4개의 방갈로를 갖춘 부지는 텅 빈 해변과 인접해 있었다. 바람이 커튼을 밤새도록 흔들어댔고 파도는 잠잠할 틈이 없었지만, 제멋대로 일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위안을 얻기도 했다. 만 쪽에 산등성이처럼 형성된 지대에서는 바싹 마른 아카시아나무가 점점이 눈에 띄었다. 5년째 비가 내리지 않은 탓이라고 들었다. 땅은 메말랐고 섬을 둘러싼 바다는 혹독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환대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게스트하우스 주인 다니엘의 정말이지 따뜻하고 너그러운 성품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요리 실력도 굉장하여 신선한 파파야 참치로 만든 그라티네를 만들어주었고, 망고 소스를 올린 폴리네시아식 초콜릿 라바 케이크도 내어주었다. 그리고 또 말수 적은 곱슬머리 가스파르가 우리의 이야기를 너무나도 즐거이 들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며,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에스파란제가 깜깜한 마당까지 나와 연신 손을 흔들며 우리가 방갈로에 들어갈 때까지 최선을 다한 영어로 “굿나잇! 굿나잇!” 인사를 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면을 거는 듯 으르렁대는 바다를 벗어나 골짜기를 한 번 더 둘러보러 가자 4천 피트는 됨직한 뾰족한 바위 기둥들과 삐죽삐죽 늘어선 현무암 바위 능선이 눈에 들어왔다. 태풍도 꿰뚫어버릴 듯한 기세였다. 하루는 가스파르를 따라 그가 사는 골짜기 마을을 방문했다. 우리는 마을에서 그의 안내를 받아 이웃들의 집을 구경할 수 있었다. 자갈로 만든 받침 위에 지은 집들이었는데, 고대 시대에 건축된 것이라 했다. 자갈 받침을 만든 건 이 마을의 오랜 조상들이고 그들은 가스파르의 조상이기도 하다. 가스파르는 자신이 족장의 혈통이라고 실토했다. “당신은 왕자였군요!”라고 킴이 외쳤다.
가스파르는 우리를 작은 오두막 뒤로 데려갔다. 돌을 깎아 조각한 티키가 꼬꼬댁거리는 닭 옆에 서 있었다. 눈 앞에 선 티키의 입상은 어쩌면 기원전에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날 밤 방갈로에서 킴과 나란히 누워 하염없이 몰아치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태평양 한가운데 이름 없는 별자리처럼 존재하는 이곳의 몇 군데 섬에서 보낸 지난 며칠을 되돌아보았다. 마르키즈 제도의 섬들 중 우리가 가본 건 3개뿐이었지만 일가친척이 여전히 가까이 모여 지내며 나고 자란 땅, 그리고 조상들과의 연결감을 중시하는 장소가 지니는 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쯤 하카우이 밸리 해변가의 집에서 잠들어 있을 마리아에도 생각이 미쳤다. 그녀는 나에게 공중전화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농담을 건넸다. 만약 하늘나라에 계신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곳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싶었다.
절벽 위 카누처럼 생긴 관과 그 안에 누워 있을 어느 족장에 대한 얘기가 떠올랐다. 영혼만 빠져나와 노를 저어 깊은 밤 속으로 나아갔을 그분은 마리아의 조부님의 증조부님 정도일까. 지난 수백 년간 별들이 움직이고 폭포수가 노래처럼 낮게 으르렁대는 동안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잠들어 있었을 그분을 생각했다.
GETTING THERE
시애틀과 로스앤젤레스를 출발해 타히티의 수도 파페에테까지 비행하는 직항 편을 에어 타히티 누이(us.airtahitinui.com)에서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대략 8시간 30분 소요된다. 타히티에 도착한 이후에는 에어 타히티(airtahiti.com)를 이용하면 된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주요 섬들을 오가는 정기 노선을 운항한다. 파페에테에서 누쿠히바까지는 3시간 정도 걸리고, 누쿠히바에서 우아포우까지는 20분이기 때문에 금방 이동할 수 있다.
WHERE TO STAY
누쿠히바섬
마베 마이 펜션 Pension Mave Mai: 언덕 위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기분 좋은 게스트하우스. 인근에서 자라는 과일, 크레페, 달걀 등의 재료를 주문에 맞춰 요리한 환상적인 가정식 아침 식사를 제공하며 카페오레가 훌륭하다. (+689 40 92 08 10)
우아포우섬
하카모우이 플라주 펜션 Pension Hakamoui Plage: 해변가 바로 앞에 위치한 귀엽고 사랑스러운 방갈로를 운영하며 가정식 일품요리를 제공한다. 빼어난 분위기가 인상적이고 주변 지역에 대한 펜션 운영자들의 지식 또한 굉장하다. (+689 87 70 67 84)
히바오아섬
하나키 로지 Hanakee Lodge: 수영장이 딸린 바다 위 럭셔리 방갈로에 묵을 수 있다. 제공되는 지역 음식 또한 수준이 높다. (en.hotelhanak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