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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 싶은 도시, 스위스 취리히 여행 가이드

2026.05.07.전희란

취리히에서의 완벽한 3일.

취리히의 봄.

여행으로 닿고 싶은 도시가 있는가 하면, 다만 머물고 싶은 도시도 있다. 마치 그곳에 살 듯 그 도시에 발 맞추어 걸으며 호흡하는, 현지인의 태도와 속도로 하는 여행. 몇 년 전 약 보름 동안 스위스 전역을 누볐을 때, 취리히는 에디터에게 그런 도시였다. 여유로우나 더디지 않고, 풍요로우나 절제하고, 멋 부리지 않고 멋낼 줄 아는 도시.

“<지큐 코리아> 독자들에게 취리히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싶어요. 스위스에는 산만 있는 게 아니라 매력적인 도시도 존재한다는 걸, 어떤 계절이든 충분히 매혹적이라는 점도요.” 지난해 말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취리히 관광청 현지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을 때, 그것이 마치 취리히에서 부친 운명의 편지처럼 느껴졌다.

“작지만 모든 게 있는 도시죠.” 취리히에 오래 사는 이는 내게 취리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핀터레스트, 구글 AI, 엠비디아, 마이크로 소프트, 소니 AI 연구소가 진출한 도시.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을 달리게 하는 아웃도어 브랜드 ‘On Running’이 처음 시작한 도시. 전 세계 최초로 베지테리언 레스토랑이 오픈했으며 무려 100년도 넘게 현존하고 있는 도시. 고쳐 쓰는 멋스러운 가방 프라이탁이 시작했고, 고쳐 쓰고 오래 쓰는 것이 멋지다는 태도와 철학을 전도한 도시. 차, 세탁실, 창고 등 무엇이든 ‘공유’하는 게 익숙한 도시. 어쩌면 지금 힙하다는 대부분의 트렌드가 이곳에서 시작된 것만 같았다. 도대체 이 도시의 비밀은 무엇일까?

취리히와 본격적인 첫 만남을 갖기에 4월은 완벽한 시기였다. 마침 4월부터는 대한항공, 스위스 항공에서 인천-취리히 직항도 운항한다. “바로 지난주까지는 눈이 내렸어요.” 취리히에서 만난 한 현지인은 내게 ‘날씨 요정’이라며 찡긋 인사를 건넨다.

실은 어느 도시에 가나 F&B 에디터의 시작과 끝은 별반 다르지 않다. 먹는 것에서 시작해 먹는 것으로 끝나는 여행. 그런데 이 도시는 더 흥미로웠다. 지금 세계적으로 셰프들이 몰두하고 있는 채식 전문 레스토랑이 이 작은 도시에서 시작했고, 곧 130주년을 맞이한다니, 궁금해서 안달이 났다. 곧장 그곳, ‘하우스 힐틀 Haus Hiltl’로 향했다. 독일 출신 재단사 창립자 암브로시우스 힐틀 Ambrosius Hiltl은 관절염으로 고생하다 의사의 권유로 채식을 시작했고, 아내인 마가렛 힐틀을 만났다. 아내는 인도로 가서 채식 요리와 향신료를 배워왔고 지금 본점이 있는 자리에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처음 스위스에 도입한 인도식 채식은 낯설고 향신료가 강하다는 이유로 거부감을 샀고, 손님들마저 당시엔 채식하는 게 부끄러워 몰래 뒷문으로 들어오기도 했단다.

“지금은 고객의 75퍼센트가 베지테리언이 아닌 고객이에요.” 알라카르트 메뉴는 연 2회, 뷔페는 연 6회 변경하는데, 새로운 메뉴를 채택하는 방식은 블라인드 테스트다. “우리는 채식을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채식 여부보다 늘 ‘맛’에 집중해왔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죠. 그것이 힐틀의 인기 비결이 아닐까 해요.” 힐틀의 홍보 담당자가 귀띔했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할 때도 각자의 평가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리액션을 바로 하지 않는 것도 원칙이다. 17개국 출신의 셰프가 요리하는 광경이 들여다보이는 통창 주방 구조부터 엽서를 쓰면 대신 발송해주는 시스템, 인도, 태국 요리 쿠킹 클래스부터 폐경기 식단, ADHD 아동 식단 같은 특정 주제의 클래스까지, 130년 가까이 된 레스토랑이라곤 믿기지 않을 진보적이며 흥미로운 일들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미쉐린 1스타인 완전 채식 레스토랑 누 타번 Neue Taverne 으로 향했다. 지금 취리히에서 가장 핫한 셰프 네나드 Nenad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중 하나로 취리히에서 보기 힘든 셰어링 콘셉트를 지녔다. ‘비즈니스 런치’라는 귀여운 이름의 시스템은 물가 높은 취리히에서 10만원(42스위스 프랑) 이내에 미쉐린 스타를 맛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감칠맛 깊은 템페, 계절을 담은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요리, 가지, 부라타 치즈, 영혼을 데우는 콜라비 수프 등을 맛보는 동안, 알면서도 몇 번이나 물었다. “정말 채식 맞아요?” 힐틀과는 분명 다르지만, 채식보다 맛과 좋은 재료라는 가치를 더 우선하는 점은 다름 없었다. “취리히는 세계 음식의 집합체 같은 도시예요.” 일본 순무를 그대로 메뉴 이름으로 바꾼 ‘다이콘’을 머나먼 도시에서 씹으면서 관광청 담당자의 말을 가만히 곱씹었다.

신중하고 보수적이어서 검증된 것을 선호하는 취리히 사람들이라고 들었지만, 경직된 태도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들은 자신의 취향을 잘 알고 아끼는 만큼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불편하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지킨다. 도시 전체를 둘러싼 취리히 사람들의 배려 있고 신중하며 담백한 면모가 도시를 채운다. 점점 이 도시에 더 머물고 싶어졌다.

러너도 아니면서 가장 궁금했던 곳은 ‘온 랩 On Lab’이었다. 온의 본사인 온 랩이 위치한 곳은 취리히 서쪽으로, 과거 산업 지대였다가 최근에는 영, 모던, 트렌디한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프라이탁 플래그십 스토어도 이곳에 있다. ‘Earth’, ‘Lake’, ‘Forest’, ‘Mountain’, ‘Cloud’까지, 건물 전체가 하나의 ‘산’처럼 설계된 이곳은 스위스 산악 지역에서 영감을 받아 지었다.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지만 이 안에서는 다양한 일이 벌어져요. 때때로 가라오케, DJ 파티 등도 열리죠.” 온 랩의 담당자 로빈은 열혈 러너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강을 따라 달리다가 더우면 바로 물에 뛰어들기도 해요. 물이 아주 맑아서 바로 뛰어들 수 있죠. 점심시간에 가볍게 달리는 것도 일상이에요.” 당장 강에 뛰어들기라도 할 기세로 그는 리드미컬하게 이야기했다. 자연 속에서 운동하며 사는 도시. 자연과 도시가 균형감 있게 공존하는 취리히가 아니었다면 과연 온이라는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문득 어제 다녀온 강가 앞 사우나 풍경이 겹쳐진다. 강 위에는 카누 타는 사람들이 유유히 지나가고, 방금 사우나에서 나온 땀에 젖은 이들은 그 광경을 곁에 두고 맥주를 마신다. 따로 또 같이. 자연과 도시의 이야기가 포개어져 하나의 그림으로 남는다.

르 코르뷔지에 파빌리온 역시 이 계절에 이곳을 찾은 이유였다. “이 안의 시스템은 인간의 신체 구조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이곳에서는 온수와 난방을 뜻하는 빨간 호스, 전기가 흐르는 노란 호스, 냉수가 흐르는 파란 호스 등 컬러로 기능을 쉽게 감각할 수 있다. 원형 그대로 유지된 건물은 모든 게 기능적이며, 디자인적이다. 지붕은 우산이자 양산의 역할을 한다. “오늘처럼 화창한 날도 좋지만, 비가 오면 이 건물의 구조가 더 잘 읽혀요.” 디렉터가 귀띔했다. 옥상의 난간 구조가 낮은 이유는 배에서 영감 받은 까닭인데, 건축 기준보다 낮은 지금도 역사적 가치를 위해 원형을 유지한다. “문화재로서 잘 보호받거든요.” 이 도시의 모든 것이 원형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유르겐 텔러도 촬영 장소로 사용한 파빌리온의 회전문에는 롱샹 성당에서 가져온 손잡이가 달려 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늘 새로운 쓰임에 대해 고민했거든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철학과 인간 중심 설계, 자연 요소 대응 구조, 계절 운영 방식이 담긴, 살아 있는 건축 작품. “비가 오기 시작하면 공원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지붕 아래로 모여요.” 도시의 우산이 이토록 근사하다니.

취리히를 떠나보내기 전, 대중교통으로 닿을 수 있는 하이킹 코스 ‘우틀리베르크 Uetliberg’로 향했다. 도시와 자연을 잇는 1시간 30분 남짓한 낭만의 코스. 도시의 정수리에 올라 취리히의 맨얼굴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자연과 도시가 분리되지 않고, 모든 것이 조화롭다. 취리히는 서울에 비하면 손바닥만큼 작았지만, 그 손바닥의 모든 주름을 더 깊고 샅샅이 알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도시였다.

EDITOR’S PICK

힐틀 담당자가 추천하는 도시 내 채식 레스토랑

레스토랑 힐틀의 뷔페.

Tibits 힐틀과 공동 창립한 식당. 뷔페 중심으로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스위스 전역에 체인을 두고 있다.
Bakery Bakery 완전한 비건 베이커리로 젊은 층에게 인기다. 브랜딩과 SNS 마케팅에 특히 강한데, 여름에 호수에서 크루아상 모양 배를 띄우는 등 발칙한 이벤트도 진행한다.
KLE 유명 셰프 지네브 지지 하타브가 운영하는 고급 비건 레스토랑으로, 재료를 빛나게 하는 요리가 중심이다.

취리히 관광청 담당자의 추천 수비니어

프라이탁.

Soeder 취리히 내 감각적인 어느 곳에든 놓여 있는 뷰티 브랜드.
Laflor 소규모 ‘빈 투 바’로, 직접 카카오를 가공해 만드는 초콜릿 브랜드다. 남미 카카오를 배로 운송해 친환경적이고, 패키지 디자인이 훌륭해 선물로 좋다.
Potato Peeler 지금 흔히 알려진, 수평으로 장착된 날을 지닌 형태의 감자 필러가 취리히에서 발명되었다는 사실을 아는지? 1947년 발명된 감자 필러 ‘Rex’는 취리히 기념품으로 좋다.
Zürich Card 단순한 교통 카드가 아니다. 트램, 버스부터 웬만한 미술관도 이 카드로 이용할 수 있다.
Freitag 한동안 잠잠했다가 최근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 재활용 백. 취리히에서 시작한 브랜드로, 컨테이너 박스가 쌓인 형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인기다.

에디터가 머문 곳

머무는 그 자체로 여행인 25아워스 호텔 랑스트라세. 골동품을 호텔 숙박권으로 교환할 수 있는 재미난 정책도 있다.

Ambassador Zurich Hotel 취리히 호숫가에서 호젓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호텔. 인도, 아시아, 프랑스, 스페인 & 남미, 대영제국 등으로 나뉜 각 층의 콘셉트가 재미있다. 루프톱에서 보면 취리히 호숫가와 도시가 아주 예쁘게 펼쳐진다.
25Hours Hotel Zurich Langtrasse 랑스트라세는 러프하고 풀어진, 예술가의 감성을 느끼기에 좋은 동네로, 이 호텔에는 자유로운 동네 예술가와 투숙객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르 코르뷔지에 파빌리온 디렉터의 추천 스폿

취리히 멋쟁이들의 사랑방, 모노클 카페.

Monocle Café 분위기도 커피도 맛있다. 힙스터의 사랑방이다.
Draft Coffee 스페셜티 커피를 맛볼 수 있는 멋스러운 카페.
Gamper Bar 쿨한 분위기에서 주인장이 추천하는 내추럴 와인 등을 맛볼 수 있는 바. 아주 질 좋은 사워도를 비롯해 정어리, 키조개 등 간단하고 임팩트 있는 안주들을 맛볼 수 있다.

*이 기사의 모든 사진은 영상의 스크린샷이며, 완성된 영상은 <지큐> 인스타그램(@gq_korea)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비디오그래퍼
노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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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