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의 ‘어둠의 왕자’가 마침내 삼선 로고와 다시 손을 잡았다. 그리고 기다린 보람은 충분했다.

2017년 릭 오웬스가 아디다스와의 협업을 종료한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하나의 시대가 끝난 것처럼 느껴졌다. 두 브랜드의 협업은 2013년 시작됐고, 불과 몇 년 만에 디자이너와 스포츠웨어 브랜드의 협업을 대표하는 프로젝트로 자리 잡았다.
지금처럼 럭셔리 브랜드들이 앞다퉈 스포츠웨어 브랜드와 협업하기 훨씬 전, 릭 오웬스는 디자이너에게 완전한 자유가 주어졌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기존 모델의 색만 바꾸는 대신 매스토돈, 테크 러너 같은 완전히 새로운 실루엣을 처음부터 직접 설계했다.
그래서 얼마 전, 파리에서 열린 릭 오웬스 2027 봄·여름 컬렉션 런웨이에 익숙한 아디다스의 삼선이 등장했을 때, 현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팔레 드 도쿄 무대에 첫 번째 룩이 등장하자 객석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무려 10년 만에 릭 오웬스와 아디다스가 다시 만난 것이다. 물론 릭 오웬스답게 그 재회는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첫 번째 룩은 공기를 주입한 트랙 재킷과 쇼츠였다. 아디다스의 클라이마쿨 기술을 활용한 이 의상에는 내부에 팬이 내장돼 있어 착용자의 몸을 식히면서 동시에 옷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여기에 2026 월드컵의 폭염에 대비해 축구 선수들을 위해 개발된 아이스 베스트까지 더해져 릭 오웬스는 이를 “개인용 에어컨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파리 기온이 40도에 육박했던 것을 감안하면, 패션위크에서 가장 시원했던 사람들은 아마 모델들이었을 것이다. 이번 컬렉션은 일본의 ‘팬 재킷’도 떠올리게 했다. 여름철 높은 습도 속에서 건설 노동자들이 자주 착용하는 의류다. 작가 애슐리 오가와 클라크는 GQ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팬 재킷은 배터리로 작동하는 냉각 시스템을 통해 여름철 작업자들의 체온을 낮춰줍니다. 중요한 것은 강인함이나 보호 기능이 아니라 민첩성과 환경 적응력입니다.” 릭 오웬스가 이를 직접 참고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두 디자인의 공통점은 분명해 보였다. 물론 스니커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아디다스는 아직 과거 릭 오웬스 협업 모델을 다시 출시할지 밝히지 않았지만, 이번 런웨이는 한 가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이번 협업 역시 과감한 디자인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점이다.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에보는 기존보다 거의 두세 배는 두꺼워 보이는 라이트스트라이크 프로 미드솔을 장착한 채 등장했고, 또 다른 모델은 스프링블레이드 쿠셔닝 시스템과 종아리 가까이까지 올라오는 방수 게이터를 결합했다.
오랜 팬이라면 릭 오웬스가 과거에도 스프링블레이드를 실험적으로 활용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패션계의 ‘어둠의 왕자’답게 모든 제품은 블랙과 화이트만으로 구성됐다. 돌이켜보면 당시 협업이 특별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스니커 협업이 아직 진정한 실험 정신을 유지하던 시절, 릭 오웬스는 슈퍼스타나 삼바에 이름만 붙이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아디다스 안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고, 런웨이와 하입비스트 컬렉션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완전히 새로운 스니커를 만들어냈다.
생산량도 많지 않았고, 과도한 희소성 마케팅에 기대지도 않았다. 유행을 좇기 위해 만들어진 제품도 아니었다. 퍼포먼스 러닝화와 아방가르드 패션이 만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순수하게 실험해본 두 창작자의 프로젝트였다. 이번에도 과거의 명작들이 다시 등장할지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다. 원래의 릭 오웬스 × 아디다스 협업이 전설이 된 이유는 과거를 되돌아봤기 때문이 아니라, 언제나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