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은. 지금, 여기, 안효섭.

GQ 안효섭이 안효섭을 인터뷰한다면 첫 질문은 무엇으로 하겠어요?
HS 제가 스스로를 인터뷰한다면···. 천천히 얘기해도 될까요?
GQ 그럼요.
HS (오른편 아래를 바라보며 차분히 생각한다. 30초가 흘렀다.) 당신은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느끼십니까?
GQ 깊은 질문이네요. 왜 그 질문이 떠올랐어요?
HS 스스로를 객관화시켜서 바라보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만약 제 앞에 제가 존재한다면 직접적으로 물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 대답이 제 생각과 일치할지···, 일치하겠죠?(웃음)
GQ 현재 안효섭의 대답은 무엇인데요? 잘 살아왔다고 느끼나요?
HS 좋은 선택이든 나쁜 선택이든 다 그만한 가치가 있고, 그렇기에 지금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기준을 토대로는 이 이상으로 잘 살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의 선택들을 후회한 적도 있지만 그 선택들 또한 저에게 고통을 안겨줌으로써 성장할 수밖에 없는 계기들이었고, 음···, 핑계 댈 수 없는 것 같아요. 현재에 대해서.
GQ 내가 한 선택이니까.
HS 모든 건 다.

GQ 평소에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편이에요?
HS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기보다는 계속해서 저를 객관화시켜서 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긴 해요. 지금 내가 화가 나는 게 진짜 화가 나는 걸까? 내가 지금 어떠한 행동이나 말을 누군가한테 하고 싶을 때 이게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런 원초적인, 내 안 어떤 곳에서 나오는지 계속해서 보려고 해요.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 같아요. 모든 건 인과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 결론까지 어떻게 다다랐는지 과정에 대해 (꼬리를) 물고 물고 무는 편이에요.
GQ 화가 날 때를 예로 들어보자면, 그렇게 한번 생각하면 한소끔 식는 게 있죠. 이게 진짜 내 기분일까 짚어보면.
HS 맞아요. 그리고 사실 그 화를 조절할 수 있는 건 저밖에 없잖아요. 물론 누군가가 저에게 좋은 말을 함으로써 기분이 풀어질 수 있겠지만 결국엔 저를 통제할 수 있는 건 저밖에 없다고 느껴요.

GQ 이런 성향은 태생적인 면도 있는 것 같은데, 만약 어릴 때부터 그러했다면 애어른이라는 별명이 주로 붙죠.
HS 응, 그거 아니면 재미없다는 소리를 많이 듣죠.
GQ 많이 들었나 보네요.(웃음)
HS 네.(웃음) 많이 들었고, 저는 그래서 그게 안 좋은 건 줄 알았어요. 보통 친구들은 자극적이고 웃긴 걸 선호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어떤 저의 (손가락으로 따옴표를 만들며) “재미없는” 모습들을 좀 숨기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서른도 넘었고 나이가 점점 들면서 느끼는 건 그냥, 나 자체로 존중하자. 그게 확립돼서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재미없든 말든, 제 기준에 재미있고 중요하면 전 그것만 중요해요. 피해 안 주는 선에서.
GQ 타고난 기질인 것은 맞아요?
HS 모르겠어요.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지금 드는 생각은 어릴 때부터 늘 겸손하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어요. 어쩌면 그 계기가 저를 계속해서 무언가 그냥 행동대로, 그러니까 흐르는 대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스톱해서 ‘어? 나 지금 이 행동이 어떻지?’라고 생각해보게 되는 시발점이 아니었나 싶네요.

GQ 언젠가 스스로 자기애가 부족하다고 표현한 적 있죠.
HS 제가 그걸 언제 느꼈냐면, 남이 다치는 꼴은 못 보겠는데 제가 다치면 괜찮은 거예요. 제 몸에 상처가 되게 많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평생 나랑 마주해야 하는 사람은 난데 왜 나를 제일 안 아껴줬지? 내가 제일 많이 볼 사람은 난데 왜 안 사랑해줬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마 보신 인터뷰가 이런 생각하기 전이었을 거예요.
GQ 5년 전 <낭만닥터 김사부 2>로 신인상 수상한 즈음이에요.
HS 네. 그래서 지금은 전보다는 좀 자기애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요. 본인 인생은 본인이 사는 거잖아요. 결국 내 행복이 행복인 건데, 물론 그러니까 혼자 막 산다는 게 아니라 적어도 ‘내가 속해 있는 삶을 무시하진 말자’ 그리고 ‘좀 더 값어치 있게 생각해주자’라는 생각들을 점점 하게 돼요.

GQ 덕분에 책을 읽고 있어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지난번 <지큐> ‘마이 에센셜’에서 철학에 입문하게 된 책이라고 소개해줬죠.
HS 어! 와, 되게 재밌지 않아요? 제가 이걸 완독한 건 몇 년 전인데, 철학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고 재미없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그래도 조금 어렵긴 하지만, 쉽고 재미있게 풀어 써서 추천했어요.
GQ 아까 반가웠던 게 선택의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 있어요.
HS 오 그래요?
GQ 사르트르의 사유로서요. 그를 떠올리며 한 말은 아니었군요?
HS 어어, 아니에요. 책 내용을 기억한다기보다 제 삶의 방식에 적용해서 기억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책의 한 글귀를 읽든 영상의 한 부분을 보든 그게 한 번에 본인한테 습득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의 뇌는 계속해서 일을 하고 있고 그 습득된 정보들이 엄청 엄청 많은 시스템을 통해 계속 돌아가고 있거든요? 그게 10년이 걸릴 수도 있고 3년이 걸릴 수도 있고, 본인은 몰라요. “나 대박 아이디어 생각났어!”라고 하는 게 사실은 본인이 한 게 아니에요. 뇌가 오랫동안 정보를 수집해서 마지막에 제게 도출되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이 책만이 아니라 여러 비슷한 상황들을 보면서 제가 채택한 방법 같아요.
GQ 지금 엄청 신난 얼굴로 가장 빠르게 말한 거 알아요?
HS 그랬어요?(고개 숙여 웃는다.)

GQ 안효섭을 주제로 책을 만든다면 그 책의 장르와 제목은 뭐가 좋을까요?
HS (“음···” 하고 또 곰곰이 생각한다.) 안효섭, 콜론, 그저 다른 한 사람의 이야기. 모두가 다른 세계를 갖고 있잖아요. 제가 바라보는 세상과 기자님이 바라보는 세상이 다를 거잖아요. 안효섭이 주제라면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식으로 삶을 바라보는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또 다른 한 사람의 시점에서 말하는 것 말고는 할 얘기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안효섭: 그저 다른 한 사람의 이야기>.
GQ 그 책의 가장 주요한 에피소드를 꼽아본다면요?
HS 알프레드 아들러라는 철학자를 접한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아마 스물둘 셋쯤. 제가 그의 철학을 완벽하게 이해한다고는 절대 말 못 하거든요. 하지만 제가 읽은 책을 통해서나마 그 순간으로부터 삶을 대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처음으로 책을 딱 닫고, 세상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렸어요. 어떤 느낌이었냐면, 화질이 좋아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직도 기억나요. 하얀색 4인용 소파 끄트머리에 앉아서, 앞에 TV가 있고, 책을 닫고 고개를 들었는데 세상이 진짜 무슨 4K처럼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지금까지 내가 거짓말 속에서 살았구나. 어떤 눈을 뜨는 순간이었어요. 그게 제게 있어 제일 임팩트 있는 순간이에요.

GQ 무엇에 그렇게 감동을 받았어요?
HS 아들러가 말하는 인생 최대의 거짓말은 이거래요. 지금 이 순간을 안 사는 것. 그럼 어떻게 이 삶을 살아야 되냐? 아들러의 심리학을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는 이렇게 정리하더라고요. 스포트라이트 Spotlight 있잖아요, 핀 조명. 핀 조명 아래서 천천히 춤추듯 살라고. 핀 조명 아래 있으면 앞도 안 보이고 옆도 안 보이고 뒤도 안 보이거든요? 지금 이 순간밖에 안 보여요. 그런 순간 안에서 인생을, 천천히 춤추듯 살라. 이건 되게 요약한 얘기고, 어떻게 보면 뻔한 말일 수도 있어요. 카르페디엠, 너무 뻔한 표현이잖아요. 그런데 정말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사람? 많지 않을 거예요. 저도 너무 과거에 대해서 후회하고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면서 삶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어떤 경험이든, 앞으로 다가올 무엇이든, 겸허히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걸 느꼈어요. 책을 덮자마자 눈물을 흘렸다는 게, 그래서 그 순간이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1분 1초 이 순간이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GQ 그렇다는 걸 깨닫게 된 순간도 감사한 일이었나 보네요.
HS 네. 그러고 나서 숙제가 뭐였냐면, 계속해서 인식해야 돼요, 본인이. 까먹어요. 아들러의 말을 빌리면 그래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절반 이상을 그렇게 노력해서 살아야지만 바뀐다. 보통 사람은 안 바뀐다고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믿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쉰 살 된 아저씨는 앞으로 25년을 그렇게 살아야 돼요. 노력하면서. 열 살 된 아이는 5년을 그렇게 노력하면서 살면 열다섯 살 때는 바뀔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도 숙제였죠. 제가 그 이야기를 읽은 게 스물둘 셋 때였으니까 앞으로 한 10년은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걸 매번 인지하려고 노력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돈을 벌고 재밌는 걸 사고 나중에 본인의 미래를 위해서 저축하잖아요. 그런데 정작 우리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밖에 없어요. 행복이란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지금 말고는 불가능하잖아요. 그걸 인식하려고 계속 노력하는 중이에요.

GQ 노력대로 잘되는 중이에요? 지금에 집중하고 있나요?
HS 발악하고 있어요. 계속 추구하고 계속 발악하며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고 있어요. 쉽진 않아요. 저도 까먹어요. 화도 나고, 미래에 대해 내일 대사 막 걱정하기도 하고.
GQ 그러게요. 지금을 살아라, 카르페디엠, 마음이 현재 여기에 있어야 행복하다, 뻔한 말들이 대대로 내려오는 이유는 쉽지 않아서겠죠.
HS 그렇죠. 그런데 어쩔 수 없잖아요.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추구하는 것뿐. 번외로 방금 행복을 원하면 마음이 여기에 있어야 한다고 말씀했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표현이 지금, 여기거든요. 지금 콤마 여기. 그래서 제 팬미팅 이름이 ‘Here And Now’였어요. 지금 여기 우리 같이 행복하자, 그런 의미로.

GQ 안효섭은 행복한가요?
HS 요새는 ‘너어무’ 행복해요. 뭐가 행복하냐. 제가 자극적인 삶을 많이 줄였거든요. 술도 많이 안 먹고. 쇼츠 같은 것도 촬영 대기할 때는 많이 보기도 하는데 집에서는 최대한 피하려고 하고. 쉽게 얻을 수 있는 보상에 대해서는, 그러니까, 술을 예로 들면 쉽게 쾌락을 얻는 대상이잖아요. 그런 걸 끊고 나니까 비로소 사소한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그 소소함에 감사함이 생기더라고요. 제게 최근에 되게 감명 깊게 와닿은 개념인데 <도파민네이션>이라는 책에서 봤어요. 간략하게 설명하면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뇌의 영역이 같고, 그 둘은 굉장히 밀접한 상관관계에 있어요. 저울처럼 움직여서 쾌락이 이만큼 있으면 그만큼의 고통이 필요해요. 뇌는 계속해서 그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해요. 엄청 힘들었으면 그만큼의 쾌락이 또 필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즐거우려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다시 말해서 행복을 느끼려면 아파야 돼요. 이 개념이 제게 너무너무 도움이 되는 게, 힘든 거? 오히려 좋은 거예요. 맨날 맥주 마셔봐요, 그럼 맛없잖아요.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집에 가서 맥주 한 잔 마시면 너무 맛있잖아요. 계속해서 쾌락이 쌓이면 무뎌져요. 진짜 행복하려면 고통이 필요하다는 거죠. 중요한 건 그 쾌락과 고통의 저울이 맞춰지지 않으면, 밸런스인 상태가 아니면, 사소한 것들이 행복하게 느껴질 수 없는 것 같아요. 책에서 말하는 게 그거예요. 너무 고통스러운 것, 너무 행복한 것보다 슴슴하고 밸런스 있는 삶이 매력적이다. 그 슴슴함 안에서 보이는 소소한 것들이 그래서 감사하더라고요. 오늘 바울이(안효섭의 반려묘)가 코를 고네? 너무 감사한 거예요. 오늘 샴푸 향이 좋네? 오늘 옷을 좀 잘 입었네? 오늘 날씨가 왜 이렇게 좋지? 그래서 행복합니다.
GQ 친구들이 재미없다고 하는 포인트가 이런 건가요?
HS 그런가요? 아이 서운해요.(웃음) 무언가 제가 새롭게 알게 된 사고방식을 애들한테 얘기하면 너무 지겨워했어요. 그래서 이젠 제가 말을 안 해요. 저한테는 그 얘기가 제일 재밌는데.

GQ 저도 재밌어요. 흥미로웠고요. 비단 지금뿐 아니라 늘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여러 심리학자와 철학자에 관심이 많아 보였거든요.
HS 철학을 배우고 싶다고 일부러 여긴 건 절대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건 좀 되게 막연한 생각인데, 어렸을 때부터 항상 저를 굉장히 괴롭혔던 궁금증이 뭐였냐면 이 세계는 도대체 뭘까? 우리는 어떻게 10개의 손가락이 있는 걸까?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 그런 질문들이 저를 정말 오랫동안 괴롭혔어요. 그런 질문들에 답을 해줄 수 있는 제일 가까운 학문이 철학이었고, 저는 그냥 이 세상을 좀 더 거시적으로 이해하고 싶었어요. 내 스스로 내 안에서 해답을 찾고 나만의 알고리즘을 찾아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어요.
GQ 사실 마지막 물음을 망설였어요. 행복하냐는 질문이 과연 옳을까?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최고의 가치를 행복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싶어서요.
HS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행복을 원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행복의 기준을 하나로 정할 수는 없겠지만요. 행복과 불행, 행복과 고통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그 사이의 균형이 제게는 행복 같아요. 그걸 중용이라고 하나요? 중용.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제 삶에서.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