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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2026)

20년째 영화감독 데뷔를 꿈꾸는 황동만은 쉴 새 없이 떠든다. 영화를 사랑하는 만큼 회초리를 내리치기 위해. 그 회초리가 향하는 자신의 불안을 숨기기 위해. 잘나가는 친구들 사이 누구도 자신을 달가워하지 않는 자리를 떠나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그는 고개를 까닥이며 노래를 듣는다. 발을 구르며 박자를 맞춘다. 무엇일까. 힘껏 웃음 짓는 이를 안아주는 것은.
김은희ㅣ<지큐> 피처 에디터
행복했던 날들 – 박시춘
Electricity – London Theatre Orchestra
Theme – Jon Brion
As A Rival – Joe Hisaishi
Alone Again – Gilbert O’Sullivan
엉뚱한 상상 – Jinu
“인생의 목적이 뭐야.” 황진만이 물었다. 대답은 화면 속 황진만 앞에 앉은 사람 몫인데 내 어깨가 멈칫거리는 것은 왜일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성공 그런 거 말고. 성공한 인간들 중에 등신들 많아. 어떤 인간이 되겠다. 그런 목적.” 황진만은 황동만의 형이다. 황동만은 20년째 영화를 꿈꾸고 황진만은 어떤 연유인지 시 쓰던 펜을 놓았다. 그럼에도 둘은 한 방에서 살아간다. 어떤 인간이 될지 묵음으로 물으며.
꽃잎은 지지만 봄은 또 오고, 주체할 수 없이 마음이 불타오르고, 죄다 잊고 싶을 만큼 괴로워도 다시 일어나 걷는다. <봄날은 간다>, <빌리 엘리어트>, <이터널 선샤인>, <키즈 리턴>. 더 더 더 무가치해지고 더 더 더 쓸데없어져서 기어코 빛나는 진실을 건져 올리고자 하는 이가 그 방에서 질리지도 않고 보는 목록. 끝난 걸까 싶을 때 “아직 시작도 안 했어”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박천휴ㅣ작가
Perfect Places – Lorde
계속 작가 일을 하는 게 맞을까? 계속 뉴욕에 머무는 게 맞을까? 다시 직장 생활을 해보는 건 어떨까? 이런 생각을 막 할 때였어요. 그때 이 노래가 담긴 앨범이 나왔는데, 로드 Lorde는 굉장히 일찍 유명해진 가수예요. 10대 때.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우리가 완벽한 곳을 찾으려고 하지만 완벽한 곳이 있기는 해? Trying To Find These Perfect Places, What The Fuck Are Perfect Places Anyway?” 그렇게 방황하는 사람들의 노래예요. 그런데 묘하게 힘이 나요. 이 노래를 들으면. 저라면 혼자 애쓸 때 이 노래를 들을 거예요.
데몰리션 (2015)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데이비스는 어느 날 헤드폰을 낀 채 거리를 걸으며 춤춘다. 비극을 등에 업고 춤추는 이의 발끝에 엉겨 붙은 음표는 어떻게 생겼을까. 겉잡을 수 없이 슬퍼 부정하는 것이라 말하는 이도, 사랑하지 않은 증거라 말하는 이도, 그러나 누구도 알 수 없는 깊고 어두운 발자국이 향하는 곳.
이연ㅣ배우
<Sound & Colo> – Alabama Shakes
<The Fame> – Lady Gaga
We Will Rock You – Queen
Quick – Tank and the Bangas
Knockin’ – Ledisi
카르마 – 자우림
Bang Bang Bang – 빅뱅
음악은 세상을 더욱 조화로워 보이게 하지만, 때론 리스너를 세상으로부터 단절시키기도 합니다. 그에게 필요했던 음악의 역할은 후자가 아니었을까요? 헤드폰에 선글라스를 끼고 인파 사이를 걷던 그의 모습은 세상을 본래의 색과 소리로 느끼고 싶어 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오히려 조화를 격렬하게 거부하는 것 같아요. 삶의 어떤 비극은 세상이 이대로 끝나거나 멈추기만을 바라게 하니까요. 폭풍 한가운데 있는 저 사람이 과연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을까? 좋아하던 가수는 누구일까? 감히 가늠하지 못하다가도 ‘그래, 어쩌면 몰입할 대상을 찾기 위해 곡 고르기에 열중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는 하나의 앨범을 반복해서 듣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그렇게 몇 곡을 골랐습니다. 내가 내지를 악에 받친 괴성이 섞여도 이상하지 않을 SONG. 혹은 나 대신 쏟아 내줄 SONG. 미쳐버릴 것 같은 이 기분이 내게 일어난 비극 때문인지 귀에 들리는 음악 때문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꽉 찬 사운드의 SONG.
이진아ㅣ싱어송라이터, <아이들은 즐겁다> 영화 음악 감독
4월의 춤 – 루시드폴
My Wild Irish Rose – Keith Jarrett
My Whole New World – 이진아
The New Breed – Donald Fagen
Thunderclouds – Cécile McLorin Salvant
익숙해진 모든 것 – 위수
슬픔을 마냥 슬퍼하지 않고 기쁨을 마냥 기뻐하지 않는 화자의 마음으로 나는 ‘My Whole New Wolrd’를 만들었다. ‘4월의 춤’은 하루의 끝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갈 때 많이 들어서, ‘Thunderclouds’는 달콤하게 들리지만 가사는 슬픔을 승화하려 노력하는 것 같아서, 도널드 페이건의 음악은 리듬을 타며 들을 수 있는 신남이 있지만 그 밑에는 어쩐지 흐릿하고 안개 낀 파란색이 들어 있는 것 같아서 비극을 등에 업고 춤추는 이를 위해 들려주고 싶다. 정말 슬플 때는 음악을 들으려 해도 무슨 음악을 들을지 고르는 일조차도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럴 땐 길을 걷다 어느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우연히 마음이 동화될지도 모른다. 내게 그런 음악은 ‘My Wild Irish Rose’였다. 슬픈지도 몰랐는데 음악을 듣다 불현듯 알게 되는 경험은 또 어떠한가. 아, 내가 두려웠구나. 아, 내가 외로웠구나. 눈물을 흘리며 위로받은 그 노래를 당신께도 전한다. ‘익숙해진 모든 것’.
릴리 슈슈의 모든 것 (2001)

10대 소년 유이치는 청보리밭에 서서 CD 플레이어를 작동시킨다. 흘러나오는 음악은 아마 그가 무척 좋아하는 뮤지션 릴리 슈슈의 것이겠지만, 그 너머, 질풍노도의 이가 좇는 ‘에테르’는 무한하다. 흔드는 바람결이 내는 손톱자국은 오직 10대의 것일까. “치유를 강요하지 마.” 끝나지 않는 질풍노도 시기 속 이들에게 바치는 음악.
한로로ㅣ싱어송라이터
Trees with Morning Dew – Itoko Toma
How do you feel? – Advantage Lucy
청혼 – 이소라
Friends In Bed – 검정치마
사랑은 영원하다 – 숨비
I Don’t Know How to Leave – Lola Blue
The Story – Conan Gray
어느덧 우리의 시야는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지금의 날씨를 무척 사랑하는 저로서는 귀찮음을 무릅쓰고라도 외출하고픈 용기가 생깁니다. 좋아하는 반팔에 좋아하는 체크 셔츠, 좋아하는 신발에 좋아하는 가방.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들을 향수처럼 칙칙 뿌리고는 봄날 끝에서 초여름으로 출발합니다. 여러분도 시향해보시겠어요?
심은경 배우
Raw Blue – Whirr
I Dreamed I Dream – Sonic Youth
Midnight In A Perfect World – DJ Shadow
Berghain(Remix) – Conrad Taylor, Rosalia, Björk, Yves Tumor
Twist – Tones On Tail
20220123 – Ryuichi Sakamoto
Ravel: Trois beaux oiseaux du Paradis – Maurice Ravel & Bertrand Chamayou
White – Eternal Morning
7월 7일(One Of These Nights) – Red Velvet
Debussy: Sonata for Flute, Viola and Harp, CD 145, L.137: II. Interlude. Tempo di minuetto – Emmanuel Pahud, Debussy: Sonates & Trios
상처는 또 다른 나의 분신. 영원히 끌어안고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매 순간 ‘에테르’를 갈구하며 들었던 음악만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죠. 과거에 머물지 말라고들 하지만, 과거에 머물 시간도 필요하다는 걸. 왜냐하면 지나온 시간은 그 자리에서 언제나 날 기억해주죠. 그 시간에 안부를 건네는 것.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에테르’를 생각하며 만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