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스클로저 데이’ 프레스 투어에서 새로운 스타일리스트 제이슨 볼든과 조쉬 오코너가 선보인 디올 룩과 넥타이 스타일링.

올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강력한 남성복 컬렉션을 꼽으라면, 조쉬 오코너가 지난 몇 주간 조용히 완성해 온 룩들을 빼놓을 수 없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SF 스릴러 ‘디스클로저 데이‘ 홍보를 위해 세계 전역을 누비는 동안, 그는 새로운 스타일리스트 제이슨 볼든과 손잡고 눈을 떼기 힘든 전방위적 스타일링을 선보였다.

그 서막은 파리였다. 패턴 셔츠 위에 니트 브이넥 베스트를 매치하고 매끈한 블랙 트라우저를 더한 아담한 르메르 룩. 하지만 진짜 신스틸러는 셔츠 소매 위로 툭 걸쳐 찬 ‘까르띠에 탱크 아메리칸’ 시계였다. 작지만 절대 놓칠 수 없는 이 스타일리시한 변주는 스타일리스트 볼든의 말에 따르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마이클 B. 조던, 세바스찬 스탠의 스타일링도 담당하고 있는 볼든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야말로 리얼 타임이었죠. 조쉬가 ‘이 시계 진짜 너무 예쁘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소매에 가려서 안 보이다니 너무 아깝네.’ 그랬더니 그가 시계를 셔츠 소매 위에 차 버린 거예요.” 자칫하면 남성복 패션의 워스트 미스테이크가 될 수도 있는 과감한 시도였지만, 이번만큼은 제대로 통했다. 옐로 골드 컬러가 묵직한 초콜릿 빛 셔츠와 근사하게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연출은 오코너와 볼든이 이번 투어에서 결코 평범하게 갈 생각이 없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신호탄이었다.

다음 날 그는 코발트 블루 컬러의 디올 로고 티셔츠에 리액스한 화이트 트라우저, 블랙 로퍼를 매치했고, 이어 공식 파리 시사회에서는 커스텀 디올 룩을 선보였다. 피셔맨 스웨터와 이브닝 턱시도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캐시미어 케이블 니트 재킷을 중심으로 한 올 블랙 앙상블이었다. 볼든은 “조나단 앤더슨의 장기가 십분 발휘된 옷”이라며, “조쉬가 레드카펫에서 입은 옷치고 정말 ‘포근하다’고 느꼈는데, 사실 레드카펫 위를 걷는 사람들에게서 쉽게 들을 수 없는 말이죠”라고 덧붙였다.
오코너와 볼든의 파트너십은 비교적 최근에 시작됐다. 얼마 전까지 오코너는 해리 스타일스의 유니크한 워드롭을 완성한 것으로 유명한 스타일리스트 해리 램버트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이번 투어는 그의 커리어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패션 챕터인 셈이다. 볼든은 “조쉬는 다른 아티스트들이 마음껏 탐구하고 자신의 기량을 펼치도록 믿고 맡겨주는 훌륭한 아티스트”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올해 초 조나단 앤더슨의 디올 데뷔 쿠튀르 쇼에서 처음 만났으며, 현재 오코너는 디올 맨의 하우스 앰버서더로 활약 중이다. 디올 맨의 얼굴이 된다는 건 확실한 특권이다. 볼든이 런웨이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은 아이디어를 공유하면, 앤더슨과 디올 팀은 곧바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커스텀 룩을 대령하니까.

‘디스클로저 데이’ 투어가 런던에 상륙했을 때, 오코너는 각기 다른 매력의 수트 두 벌을 연이어 선보였다. 먼저 낮의 자연광을 받아 은은한 광택을 내뿜는 우아한 블랙 더블 브레스트 수트가 등장했다. 다음 날에는 넉넉한 실루엣이 돋보이는 더 로우의 부드러운 수트에 클래식한 스트라이프 셔츠를 매치했다. 과감한 라펠과 턴백 커프스, 그리고 자크 마리 마지의 안경이 더해져 할리우드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후 대서양을 건너 뉴욕에 도착한 그를 기다린 건 또 다른 디올 수트였다. 이번에는 화이트 블레이저와 콘플라워 블루 컬러의 타이, 그리고 블랙 트라우저의 조합이었다. 볼든은 여전히 더블 브레스트 실루엣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언제 봐도 더블 브레스트가 실루엣을 조금 더 돋보이게 만들어 주거든요.” 다만, 이 디올 더블 브레스트 블레이저의 행진은 오코너가 ‘더 투나잇 쇼’에 마가린 옐로 컬러의 디올 셔츠를 입고 등장하면서 잠시 멈췄다.
볼든에 따르면, 오코너의 테일러링을 관통하는 거대한 영감은 영국과 미국 그 경계 어디쯤에 위치한다. 그는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NBA 드래프트 스타일을 주요 모티프로 꼽았다. “당시 스타일에는 굉장히 스마트하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멋이 있었죠.” 그러면서도 영국의 정통 테일러링과 버무려진 ‘콜레지어트 바이브’를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슬라우치한 실루엣과 단단한 수트핏, 그리고 개인적인 디테일이 흥미롭게 어우러졌고, 과하게 힘주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룩이 완성됐다. 물론 두 사람은 과감한 시도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볼든이 조쉬라면 무조건 소화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던 강렬한 에르메스 가죽 룩이 바로 그 예다.

레드카펫 밖에서도 멋진 룩은 계속됐다. 보다 캐주얼한 일정에서 오코너는 빈티지와 신상 브랜드를 신선하게 믹스앤매치했다. 오래된 그래픽 티셔츠와 워크 재킷에 스튜디오 니콜슨, 마르셀 같은 브랜드의 아이템을 더하는 식이다. 심지어 아디다스 트랙 팬츠에 누구나 탐낼 만한 스토리 MFG X 아식스 스니커즈를 매치하기도 했다. 볼든은 “조쉬는 엄청난 빈티지 마니아예요. 만약 조쉬가 매장에 직접 걸어 들어간다면 본인 돈으로 샀을 법한 옷들이죠”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본연의 진정성’이야말로 이번 프레스 투어 스타일링을 성공으로 이끈 핵심 동력이었을지 모른다.
지난 몇 년간 조쉬 오코너의 워드롭은 사랑스러울 정도로 엉뚱하고, 때로는 소년미가 넘쳤다. 하지만 올여름 그의 스타일은 한층 날카롭고 과감해졌으며, 감히 말하건대 완전히 ‘네임드 주연 배우’의 아우라를 풍긴다. 그러면서도 옷이 사람을 압도하는 법이 없다.
“스타일리스트로서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옷을 얼마나 잘 조합하느냐가 아닙니다. 상대의 말을 얼마나 잘 듣는 귀를 가졌느냐죠.” 볼든의 말이다. 다시 말해, 스타일리스트의 역할은 누군가에게 옷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것에 가깝다는 뜻이다. 볼든이 조쉬 오코너와 작업하며 가장 좋아하는 디테일이 패션 그 자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전 넥타이 맬 줄 몰라요. 그래서 타이만큼은 언제나 조쉬가 직접 매죠. 세상에서 제일 예쁘게 매거든요. 볼 때마다 정말 완벽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