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라드-페리고가 완성형에 가깝게 다듬은 로레아토와 멈추지 않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시계, 19세기 시계를 재해석한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 그리고 예상치 못한 협업작을 내놓은 독립 시계제작자 조슈아 샤피로와 밍까지.

지라르 페리고의 대표 모델인 로레아토는 경쟁이 치열한 럭셔리 스포츠 워치 시장에서도 충분히 존재감을 드러낼 만한 자격을 갖췄다. 이 시계는 1975년, 럭셔리 스포츠 워치 열풍이 절정에 달했을 때 처음 등장했다. 이 장르는 오데마 피게의 로열 오크와 파텍 필립의 노틸러스라는 두 개의 거대한 아이콘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바쉐론 콘스탄틴의 222가 종종 간과되듯 로레아토 역시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왔다. 이번 신작은 그런 인식을 바꿀 만한 모델이다.
새롭게 공개된 로레아토 피프티는 기존 40mm 이상의 모델보다 훨씬 착용하기 쉬운 39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를 채택했다. 이 시계는 오트 오를로제리 수준의 시계를 만드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다이얼에는 블루 에나멜 마감과 클루 드 파리 패턴이 적용됐다. 실제로 손에 올려보거나 손목에 차보기 전까지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절제되면서도 아름다운 디자인이다. 에나멜 마감은 보는 각도와 빛에 따라 색감이 끊임없이 변화하며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시계 곳곳에서는 지라르 페리고의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다. 케이스는 브러시드 마감과 폴리시드 마감을 조합해 완성됐다. 브러시드 마감은 차분한 무광 느낌을 주고, 폴리시드 마감은 거울처럼 반사되는 광택을 만들어낸다.
무브먼트 역시 브랜드의 역사적인 유산을 담고 있다. 지라르 페리고 GP4800 칼리버는 1860년대부터 이어져 온 브랜드의 상징인 ‘쓰리 브리지’ 구조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름 그대로 세 개의 브리지가 수직으로 배열된 설계다. 사파이어 케이스백을 통해 로즈 골드 밸런스 브리지와 핑크 골드 오실레이팅 웨이트를 감상할 수 있으며, 시계의 아름다움은 외관뿐 아니라 내부까지 이어진다. 흥미롭게도 이 모델의 출발점이 원래 쿼츠 시계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인상적이다.
블루 에나멜 다이얼이 취향에 맞지 않거나 조금 더 합리적인 선택을 원한다면 18K 로즈 골드 톤 다이얼 버전도 준비돼 있다. 이 모델 역시 클루 드 파리 패턴이 적용됐지만 에나멜 마감은 제외됐다. 날짜창까지 갖춰 상대적으로 실용적인 성격이 강조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두 모델 모두 150m 방수 성능을 제공해 해변이나 요트 위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지라르 페리고를 다시 주목해야 할 이유를 찾고 있었다면, 새로운 로레아토 피프티야말로 그 계기가 될 만하다.
밍 × J.N. 샤피로 37.06 라이트닝

조슈아 샤피로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빈티지 로즈 엔진 기계를 사용해 정교한 수작업 기요셰 다이얼을 제작한다. 반면 밍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과 혁신적인 기술을 결합한 시계를 만든다. 두 브랜드가 만나 탄생한 결과물이 바로 37.06 라이트닝이다. 38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에 밍 특유의 바깥으로 펼쳐진 러그를 적용했다. 제작 과정도 특별하다. 샤피로가 티타늄 다이얼 블랭크에 직접 ‘라이트닝 기요셰’ 패턴을 새긴 뒤, 말레이시아에서 밍이 휴대용 부탄 토치를 사용해 열처리를 진행한다. 그 결과 블루, 퍼플, 오렌지, 옐로 컬러가 뒤섞인 만화경 같은 색채가 탄생한다. 열을 가하는 과정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같은 다이얼은 하나도 없다. 밍 전용으로 수정된 셀리타 자동 무브먼트를 탑재했으며, 매달 단 10개만 생산된다. 장 루소의 블루 바레니아 송아지가죽 스트랩과 알칸타라 안감이 조합된다.
바쉐론 콘스탄틴 트래디셔널 트윈 비트 퍼페추얼 캘린더

2019년 SIHH를 방문했던 사람이라면 아마 이 시계를 기억할 것이다. 트래디셔널 트윈 비트 퍼페추얼 캘린더는 바쉐론 콘스탄틴이 기술적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만든 야심작이다. 무브먼트에는 두 가지 진동수가 존재한다. 평상시 사용하는 5Hz 고진동 ‘액티브’ 모드와, 보관 시 사용하는 1.2Hz 저진동 ‘스탠바이’ 모드다. 사용하지 않을 때 스탠바이 모드로 전환하면 파워리저브가 무려 65일까지 늘어난다. 이번 신형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총 70일의 파워리저브를 달성했다. 새로운 오픈워크 다이얼까지 적용되면서 여전히 바쉐론 콘스탄틴의 가장 대담한 현대식 시계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 카리용 투르비용
창립자 미셸 파르미지아니는 시계와 고전 시계 복원 전문가 출신이다. 그 배경은 브랜드 디자인 전반에 깊게 스며들어 있다. 카리용 투르비용은 브랜드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모델로, 19세기 페랭 프레르 회중시계에서 영감을 받았다. 단 5개만 생산된다. 화이트 골드 케이스에는 세로 방향의 가드룬 장식이 적용됐고, 다이얼은 망치로 두드려 완성한 모닝 블루 컬러를 사용했다. 4개의 공을 사용하는 카리용 미닛 리피터와 1분 투르비용이 탑재됐으며, 다이얼 위로 보이는 네 개의 뱀 모양 공은 시선을 압도한다.
하지만 진짜 하이라이트는 뒷면이다. 투명 백케이스를 통해 보이는 수동 무브먼트는 총 456개 부품으로 구성된다. 모든 부품은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가 직접 제작하고 장식하고 조립했다. 회중시계의 전통과 현대 하이엔드 워치메이킹이 가장 아름답게 만난 사례 중 하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