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이것은 전구가 아니다 저것은 구두가 아니다

2009.04.15GQ

전구, 구두, 지구본, 신발, 커피포트, 메트로놈…. 눈을 찌를 듯 달려드는 컬러 속에 물건이 덩그러니 들어있다. 이게 대체 뭘까?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데미언 허스트와 줄리언 오피 같은 아티스트들의 스승(골드스미스 대학)으로도 유명한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을 만났다. 갓 쳐낸 듯한 짧은 백발, 둥그런 배, 딸기색 코, 말하고는 먼저 웃는 무구함. 올해 예순 일곱인 그는 작품하는 것 말고는 모두 지루하다고 말한다.

Untitled (Lightbulb) 2009, 알루미늄에 아크릴릭, 182.9 x 152.4cm

Untitled (Shoe) 2009, 알루미늄에 아크릴릭, 182.9 x 152.4cm


작품을 직접 본 건 처음인데 뭔가 공격당하는 느낌이 든다. 형광색이 무차별로 칠해졌다고 다 그렇진 않은데 말이다. 의도된 부분이 있다. 풍경화는 그림 속 풍경이‘여기’에 존재하지 않지만 이 작품들은 뭔가‘여기’에 존재하길 원한다. 물건 자체가 영향력을 발휘했으면 하니까 그만큼 강렬한 색을 쓴다. 이 그림 앞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 같은 느낌을 받았으면 한다. 그래서 대부분 작품이 세로고, 사람이 사람을 인지하는 것과 비슷한 크기로 만든다.

작품 앞에 서서 인사부터 해야 할까? 예전에 리히텐슈타인 그림을 아주 가까이서 본 적이 있는데, 무수한 점들이 인쇄처럼 정확하지 않고 어떤 건 조금 삐쳐나온 곳도 있었다. 당신의 작품도 아주 가까이서 뚫어지게 봤다. 실수를 발견했나?

아직은 못 찾았다. 붓자국이 없는 채 하필 회화라는 형식을 택한다는 건 뭘까? 이런 평면은 판화나 사진으로는 불가능하다. 가까이서 봤다니 알겠지만, 물체의 외곽선이 다른 면보다 밑에 있다. 일반적인 회화라면 저 선들이 맨 위에 있겠지만, 내 그림은 가장 아래 있다. 핵심적인 요소는 어떻게 물질적인physical 면을 표현하느냐의 문제다.

간단히 그 공정을 설명한다면? 전체 표면을 선 색깔로 칠하고 특별한 테이프를 붙여 드로잉하듯이 선을 만든다. 그 위에 다른 색을 겹칠한다. 마지막으로 테이프를 뜯어낸다.

그 방식으로 처음 작품을 만들었을 때‘와우!’하던 느낌이 생각나나? 솔직히 지금도 그런다. 상상 이상의 효과가 나올 때가 있다. 물론 별로일 때도 있지만.

그런 방식에 대한 이해 없이 인쇄물이나 인터넷으로 보면, 마치 그래픽 디자인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광고처럼 강한 충격을 주고자 한다는 점에서 같다. 하지만 어떤 물건을 팔려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광고와는 정반대로 이 작품은 보는 사람이 각자의 결론을 얻을 수밖에 없다. 컴퓨터나 인쇄물로 보면 의도하는 효과가 많이 희미해진다.

사람을 만나듯이 작품을 쳐다보길 바란다는 당신 말이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만져보면 안 되겠지만. 이런 얘기가 있다. 누군가 피카소의 화집만 보고 굉장히 악평을 했다. 그 사람에게 피카소가 혹시 부인 사진이 있냐고 물었다. 그가 지갑 속에서 사진을 꺼내 보여주자 피카소가 말했다“. 당신 부인은 왜 이렇게 작은 거요?”

과연 그렇군. 당신이 지금보다 훨씬 작았을 때가 생각나나? 십대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땐 작가라는 사람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었다. 1950년대였다. 운이 좋으면 책방에서 피카소라는 사람의 책을 구할 수 있을까 말까였다. 처음 현대미술이라는 걸 발견했을 땐 세상의 비밀을 알아냈다고 생각했다.

현대미술이라는 개념은 당신에게 어떻게 변화해왔나? <오크 트리>(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의 초기 대표작)를 작업하던 시절은 모든 게 하나하나 너무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아주 우울했다. 뭔가 한 작품을 하고 나면 그것을 통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작업을 하고 싶은데, 그런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를 단순하게 바꾼다. 어느새 경험과 지식이 들어가면서 그런 진화를 거친 것 같다.

그렇게 회화라는 형식에 다다른 건가? 그렇다. 회화는 한 번 하고 치워버릴 수 없다. 그것을 바탕으로 다음 작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매체다. 적어도 내가 회화를 하는 이유는 그렇다.

당신은 또한 오랫동안 골드스미스의 교수이기도 했다. 그 관점에서 목격한 현대미술의 변화는 어떤가? 학교에서 가르치던 시절엔 항상 젊은 사람들이랑 같이 있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훤했다. 지금은 전혀 모른다. 젊었을 땐 남들이 뭘 하는지, 날더러 뭐라고 하는지 걱정했는데, 지금은 신경을 안 쓴다. 그냥 이게 내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축하한다. 하하. 젊을 땐 자기 나이를 지나간 시간으로 헤아린다. 근데 어떤 나이가 되면 남은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얼마가 남았고 그 마지막까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고 어느 정도의 에너지가 투자되어야 하고 그때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고 남은 에너지는 얼마일까? 올해 예순 일곱이다. 십년 후엔 완전히 다를 거다. 죽을 수도 있고, 작품 활동을 계속 할 수도 있고, 그냥 쉴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최대의 에너지를 작품을 만드는 데 쏟아붓고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작업하나? 런던에 작업실이 있고, 아침 9시나 10시에 작업을 시작해서 저녁 7시 정도에 저녁식사 갈 때까지 매일 그린다. 그 외의 일들은 지루하게 느껴진다.

손에 붓을 들고 죽겠다는 생각인가? 작업할 땐 작업만 한다. 한 번에 여러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는 스타일이고, 모든 걸 직접 컨트롤해야 하는 성격이라 분업도 못한다. 어시스턴트는 한 명 있다.

어시스턴트들이 드로잉도 하고 색도 칠하는 작가도 꽤 많이 봤다. 저게 뭘까 싶을 때도 있다. 드로잉이나 색칠 같은 근본적인 작업은 다 직접 한다.

데미언 허스트는 어떻게 할지 궁금하다. 대학시절 그는 어떤 학생이었나? 솔직히 데미언 허스트가 학생일 땐, 그의 작업을 별로 안 좋아했다. 하지만 데미언은 정말 특별했다. <프리즈Freeze>전을 열어 온갖 미디어의 집중을 받던 2학년 때던가? 지금은 없어졌지만 앤서니 도페라는 아주 유명한 갤러리의 오프닝에 갔는데 어디서 많이 본 남자애가 샴페인을 서빙하고 있었다. 그게 데미언 허스트였다. 갤러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거다. 작품 열심히 하면서 선생님의 가르침만 받기보다 데미언은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는 쪽이었다. 대개의 학생들은 작고 낮은 곳부터 시작해서 점점 앞으로 나가겠다고 생각하지만, 데미언은 그런 게 없었다. 그냥 정중앙으로 치고 나갔다.

그리고 그는 지금 미술계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백 년 후, 많은 작가들은 잊혀지겠지만, 앤디 워홀은 남을 것이다. 그 후계자라고 볼 수 있는 작가가 데미언 허스트다. 큰 맥락과 스케일 안에서 세상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작업에 품고 있는 야망을 주목한다. 야망을 다 실천할지는 알 수 없지만, 데미언은 아주 본능적이다. 커다란 야망과 스케일이 좋은 작가의 조건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건 별개의 문제니까.

백 년 후 사람들이 앤디 워홀과 데미언 허스트를 기억하는 사이, 당신은 잊혀질까? 음,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역사성에 집착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을 살면서 지금을 표현하는 게 컨템포러리 작가고, 난 행운아다. 이렇게 서울의 아름다운 갤러리에서 전시하고, 당신과 인터뷰 하고, 내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백 년 후는 내가 죽고 없는 백 년 후일 뿐이다. 그것에 대해 지금의 나는 모른다. 여러 인터뷰를 해봤지만 이만큼 죽음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다. 제목을‘죽을 수밖에 없는(mortality)’으로 하는 건 어떤가? 그런가?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야겠다. 그림 속 물건들 말인데, 일상적인 것을 그린다지만 일상엔 구두나 의자나 전구만 있는 게 아니다. 그 물건들은 어떻게든‘선택’된것아닌가? 세상엔 물건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어떤 기본에서 변형된 것들이 많을 뿐이다. 색깔도 마찬가지다.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전엔 똑같은 이미지를 반복하는 것이 지루하지 않을까 했는데, 아주 근본적인 물건들을 어떻게 응용하고 배합하는지에 따라 나올 수 있는 작품들이 무한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정된 것들 속에서 그 최대치를 뽑아내는 게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보는 입장에선 뉘앙스가 좀 다르다. 마치 마그리트가 파이프를 그려놓고“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했듯이, 백열전구 그림을 보면서 이것은 백열전구가 아닐 거라고 추측하게 된다. 마술과 같다. 마술을 보여준 뒤, 이게 어떻게 마술이 됐는지 다 설명해도 어쨌거나 그건 계속 마술이기 때문에 신비로움이 남는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모든 게 너무 명백하기 때문에 더이상 명백해질 수가 없는데도 그 신비로움이 남는다.

당신은 커피포트를 그렸지만 그건 마치‘커피포트’를 지우는 것과 같은 걸까? 정확하다. 결국 추상화라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명백한 것들을 추구한 끝에, 모든 게 녹아 없어지길 바라는 것이다. 그게 내 작품의 핵심적인 의미다.

은유인 셈이다. 그렇다. 지금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은유법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고대에선 모든 게 은유법으로 이해됐는데 지금은 모든 게 설명이다. 성경책에 있는 글자를 하나하나 곧이 곧대로 설명하고 이해하려고 하니 이런 비극이 벌어진다.

비극의 시대에 당신처럼 화사한 셔츠를 입는 것도 괜찮은 은유 같다. 이세이 미야케다. 하하, 비싼데 내 그림보단 싸다. 구두는 프라다. 벨트는 돌체앤가바나.

어떤 기사에서 당신 작품의 소장가치가 높은 이유는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매력이 크기 때문이라던데…. 정말인가? 영원히 그렇길 바란다.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의 개인전은 PKM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3월 31일까지 열린다.

마치 사람을 만난 것처럼,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은 자신의 그림을 대하는 일이 그렇게 사람을 마주보는 일과 같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예쁜 셔츠 앞주머니가 카메라에 찍히지 않는 게 유감이라며 웃었다.

    에디터
    장우철
    포토그래퍼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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