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한국 영화감독의 해외 진출 속내

2013.11.08GQ

이런저런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봉준호 감독 역시 타협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걸 감안한다면 <설국열차>의 국내 성적표는 절반의 성공인 셈이다.

박찬욱의 <스토커>
“히치콕의 스릴러와 아메리칸 고딕 우화 그리고 한국 장르 영화의 아이콘 박찬욱의 스타일을 버무렸다. 여기에 영리한 배우 미아 바시코브스카까지 더해진 조합은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가 재미를 본 적 있는 <블랙스완>보다 훨씬 안전해 보인다.” <버라이어티>가 내놓은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에 대한 평가를 보면 ‘할리우드 안착’이라는 표현을 써도 이상할 게 없는 평가를 받은 셈이다.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가 박찬욱 감독을 고용해 만든 <스토커>는 성적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다.(박찬욱 감독의 요청으로 그의 오랜 파트너인 정정훈 촬영감독 역시 DP로 할리우드에 데뷔할 수 있었다.) 총 1천2백만 달러라는 순제작비를 들여 북미에서 1백70만 달러(한화로 약 18억원, IMDbPro 집계), 전 세계에서 9백40만 달러(한화로 약 1백억원)가량 벌어들였다. 손익분기점에서 아주 살짝 부족하지만 롤아웃 배급 방식(3월 1일 북미 5개 도시 9개 상영관에서 개봉한 <스토커>는 둘째 주 17개, 셋째 주 94개, 넷째 주 2백75개로 확대했다)으로 거둔 성적치고는 관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제대로 난 셈이다. 확실히 <스토커>는 성장 영화로서 매력적이고 잔혹하다. <올드보이> 때 박찬욱 감독이 보여준 개성과 스타일을 증명했다. 하지만 전작 <박쥐>에 비해 앞으로 전진했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그의 차기작이 기대가 된다면 <올드보이> 때 파트너였던 용필름의 임승용 대표가 지원 사격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박찬욱의 스완송이 될 수 있도록 프로듀서로서 전적으로 밀어줄 것”이라는 임승용 대표의 말처럼 사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가 박찬욱의 손을 거쳐 어떻게 재탄생할지 두고 볼 일이다.

봉준호의 <설국열차>
“<설국열차>가 이제 막 서울역을 떠났다.” 지난 10월 12일 폐막한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기자회견에서 해외 개봉을 앞둔 <설국열차>를 두고 봉준호 감독이 한 이 말에는 만족감과 기대감이 함께 담겨 있다. 만족감이라면 총 9백33만여 명(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을 불러 모은 국내 박스오피스 성적표일 것이고, 기대감이라면 지난 10월 개봉한 프랑스를 시작으로 아직 뚜껑을 열지 않은 1백67개국의 평가일 것이다. CJ의 투자를 비롯한 총 5백억여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설국열차>는 한국의 봉준호 감독, 홍경표 촬영감독, 배우 송강호, 고아성과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튼, 에드 해리스 등 해외 배우 그리고 스태프들의 결합으로 완성된 다국적 프로젝트다.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되기도 전에 북미 배급도 와인스타인 픽처스가 맡기로 확정된 상태였다.
멈출 줄 모르던 기세와 달리 <설국열차>가 첫 공개된 지난 8월 언론배급 시사 직후, <설국열차>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많았다. 머리칸을 향해 진격하는 꼬리칸 민초들을 둘러싼 큰 사건이 영화에는 없었다.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감독의 세계관을 설파하기 위해 인물들의 대사가 지나치게 설명적이었다 등등. 냉탕과 열탕을 오간 반응들은 확실히 감독의 전작 <마더>에 비해 감당하기 버거웠다. 많은 자본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였던만큼 스튜디오의 입김이 상당했을 것이고, 그 어느 때보다 많았던 스타 배우들의 계약 조건들도 까다로웠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봉준호 감독 역시 타협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걸 감안한다면 <설국열차>의 국내 성적표는 절반의 성공인 셈이다. 그의 말대로 <설국열차>가 막 서울을 떠나 파리로 향했다.

김지운의 <라스트 스탠드>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가 흥행에 실패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제대로 모르고 하는 소리다. 디 보나벤추라 픽처스가 김지운 감독과 김지용 촬영감독, 모그 음악감독을 고용해 할리우드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제작한 이 영화는 총 4천5백만 달러(한화로 약 4백5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북미에서 고작 1천2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지만 전 세계에서 3천7백만 달러의 제작비를 벌어들이면서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었다. 반면, 한국 관객들은 <라스트 스탠드>에 냉정하게 등을 돌렸다. 총 6만6천 명을 동원하는데 그치며 개봉 2주 만에 극장에서 내려졌다. ‘장르영화의 세공’으로서 김지운 감독 고용이라는 스튜디오의 기대치를 생각하면 무척 아쉬운 평가다.
평단의 반응도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할리우드 서부극의 현대적인 변형”이라는 <롤링 스톤>의 후한 평가도 있었지만 대체로 “특별한 개성이 없었다”는 평가도 많았다. 보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라스트 스탠드>는 “B급 액션을 표방했다”지만 캐릭터와 서사가 수시로 덜컹거렸다. “진짜 주인공이 서머튼 마을 용사들인지, 시속 2백 킬로미터로 사막을 질주하는 자동차인지 모르겠다”는 빈정대는 평가가 나온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한 편으로 김지운 감독을 야박하게 바라볼 것까지는 없다. <라스트 스탠드>의 아쉬운 성적과 달리 할리우드는 여전히 김지운 감독에게 ‘장르영화의 세공’을 기대하고 있다. 얼마 전, <버라이어티>는 “김지운 감독이 <카워드>(Coward)의 연출을 맡게 됐다”고 발표했다. <카워드>는 <배트맨 : 웃는 남자> <캡틴 아메리카의 죽음>의 에드 브루베이커 원작의 그래픽노블 <크리미널>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이 그의 두 번째 할리우드 진출작이라면 김지운 감독에 대한 평가는 잠시 유보해야 한다.

김용화의 <미스터 고>
김용화 감독에게 올해는 잊고 싶은 해일 것이다. <미스터 고>의 제작을 위해 3D 촬영부터 후반작업까지 원스톱으로 해결 가능한 덱스터필름을 직접 차렸다. 중국의 메이저 투자배급사인 화이 브라더스로부터 약 5백만 달러(한화로 약 60억원)의 투자를 직접 받아오면서 쇼박스와 화이 브라더스의 합작 방식이 성사될 수 있었다. 중국 여배우 서교가 여주인공 웨이웨이 역을 맡게 된 것은 화이 브라더스가 요구한 조건 중 하나였다. 하지만 국내 박스오피스 성적은 참패였다. 1백32만여 명(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의 관객을 불러 모으는 데 그쳤다. 아주 후하게 생각해도 겨우 P&A(홍보 마케팅)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성적이다.
중국 성적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한국영화 최초로 5천 개가 넘는 스크린수를 확보한 <미스터 고>는 개봉 12일 만에 총수익 1억 위안(한화로 약 1백82억원)을 돌파했지만 1억 5천만 위안을 끝내 넘지 못했다. 그래서 총 45억 5천만원의 예산을 오버했다. 쇼박스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덱스터필름은 순제작비 중 CG 비용인 8억원을 떠안게 됐다. 중국 극장 수익 2백억원 중 투자자인 화이가 60억원을, 중국 극장이 수익의 50 퍼센트인 1백억원을 챙기고 마케팅 비용 80억원이 빠져나가면 쇼박스와 덱스터필름의 몫은 없다.
<미스터 고>의 흥행 실패로 쇼박스는 <관상>이 흥행하기 전까지 큰 좌절에 빠져 한동안 헤어나오질 못했다. 여름 초반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많은 성공을 거둬 고조된 분위기가 <미스터 고>로 단박에 식었기 때문이다. 한 영화인의 김용화 감독에 대한 평가가 인상적이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처음으로 떨어졌다.” 김용화의 첫 실패는 모두에게 놀랍다.

오기환의 <이별계약>
한국형 멜로에 대륙이 울고 웃었다. <이별계약>은 CJ E&M이 중국 시장을 겨냥해 기획, 제작, 투자하고, 차이나필름그룹이 배급을 맡은 한중 합작 프로젝트다. 한국의 오기환 감독과 중국의 배우 펑위옌, 바이바이허 그리고 중국의 스탭진이 뭉친 <이별계약>은 지난 4월 12일 중국에서 개봉해 이틀 만에 손익분기점인 3천만 위안(한화로 약 54억원)을 돌파했다. 한국 개봉일인 6월 20일까지 1억 9천만 위안(약 3백5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며 한중 합작영화 사상 최고의 성적이자 역대 중국 로맨스 영화 흥행 8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별계약>의 흥행 성공으로 한중 합작에 자신감을 얻은 CJ는 이나필름그룹과 페가수스&타이허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권법>이라는 대형 합작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솔직히 <이별계약>을 찍기 전까지 오기환 감독은 아주 유명한 감독은 아니었다. <선물>을 제외하면 그나마 최근작이라 할 수 있는 <작업의 정석>과 <두 사람이다>, <오감도> 모두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별계약>의 중국 흥행 덕분에 그는 신파 멜로드라마를 잘 찍는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얼마 전, 또 다른 한중 합작 영화의 감독을 제안받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이 제안을 거절하고 현재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이별계약>으로 기세를 올렸다고는 해도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한일 합작 영화 <싸이보그 그녀>가 흥행에 실패한 뒤 여러 합작 프로젝트를 제안만 받다가 지금까지 이렇다 할 신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곽재용 감독을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기타
    글/ 김성훈 (<씨네21> 기자) ILLUSTRATION/ LEE JAE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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