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의 질주

지금의 렉서스는 출발선을 막 떠난 경주마 같다. 앞만 보고 전력 질주 중이다. 달라진 렉서스를 상징할 아이콘, RC를 미국 뉴욕에서 시승했다.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렉서스가 뭔가에 단단히 홀렸구나.’ 렉서스의 신차를 만나러 뉴욕으로 가는 동안 머릿속이 복잡했다. 불과 몇 년 전 토요타는 미국에서의 리콜 사태로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창업자의 손자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미국 청문회에 불려가 비아냥까지 삭였다. 그런데 그새 렉서스는 호시절에나 주목받을 2도어 쿠페를 지금 막 선보이려 한다. 개연성이 없는 건 아니다. 2009년 아키오가 총수로 취임한 이후 변화는 일상이다. “가슴을 뛰게 하는 차를 만들어주세요.” 총수의 이 한 마디에 렉서스는 사활을 건 도전에 나섰다. 시작은 디자인이었다. 스핀들 그릴로 콧날을 쫙 찢었다. 단아했던 몸매는 날카롭게 저몄다. 정숙성 집착 증후군에서 벗어나 소리를 거칠게 다듬기 시작했다. 렉서스 RC와 RC F는 문 두 짝 달린 차체에 번듯한 앞좌석과 빠듯한 뒷좌석을 갖춘 쿠페다. RC F는 RC를 기본으로 만든 고성능 버전이다. IS F와 LFA에 이은 렉서스 F 브랜드의 세 번째 작품이다. 렉서스 F는 메르세데스-벤츠의 AMG, BMW의 M, 아우디의 S 및 RS, 재규어의 R과 비슷한 개념의 고성능 브랜드다.

 

RC는 렉서스 개혁의 정점을 찍는 모델이다. 아키오가 콕 찍어 불러들인 도쿠오 후쿠이치가 실질적으로 개발 전 과정에 관여한 첫 신차인 까닭이다. 도쿠오 후쿠이치는 현재 렉서스 인터내셔널의 디자인 총괄 사장. 절대 군주의 전폭적 지지를 등에 업고 렉서스의 개혁을 주도 중인 핵심 인물이다. 그는 이미 환갑이 훌쩍 넘은 백전노장이다. 토요타와 인연을 맺는 건 일본 타마 예술대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974년이었다. 디자인 부서를 두루 거친 후 프랑스 니스의 토요타 유럽 디자인센터장으로 경력의 정상에 올랐다. 2008년, 그는 토요타 자회사의 사장으로 옮겼다. 전형적인 퇴직 코스였다. 그런데 2011년 그가 혜성처럼 토요타로 컴백했다. 아키오 사장의 특명을 받들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 지금의 GS와 IS는 거의 개발 막바지였다. 그가 디자인에 관여할 여지는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충분히 과격한 모습이었다. 개혁의 신호탄이었다. 반면 RC는 백지장 상태였다.

 

지난해 4월, 뉴욕 맨해튼에서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향후 렉서스의 디자인 변화를 엿볼 기회였다. “과거엔 부정적인 의견을 죄다 수렴해 반영했어요. 그 결과 누구도 싫어하지 않을 디자인이 나왔지요. 하지만 이젠 1백 명이 그럭저럭 만족할 디자인 대신 한 사람이라도 열광할 디자인을 추구할 거예요.” 만약 그런 디자인을 싫어하는 소비자에겐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좀 더 지켜봐 달라고 말할 겁니다.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는 덴 시간이 걸리니까요.” 1년 반이 지났다. 공교롭게 다시 뉴욕에서 그의 작품과 마주했다. RC의 외모는 최근 렉서스에 깃든 파격을 압축해놓은 듯했다. 입체감은 수직상승했다. 차체 각 부위가 불끈불끈 튀어나왔다. 표면에 드리운 그림자도 한층 짙어졌다. 철판은 만두피 주무르듯 펴서 잡아당기고 또 쫑긋 오므렸다. 단아했던 렉서스는 이제 역사 뒤편으로 사라졌다. 실내는 IS와 비슷한 분위기. 하지만 센터페시아가 한층 가파르게 누웠다.

 

4가지 운전 모드첫 번째는 ‘노멀normal’이다. 고성능을 잊고 편하게 몰 수 있다. 두 번째는 VDIM 스포트. 운전자의 조작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세 번째는 엑스퍼트expert다. 차가 홱 돌기 전까진 차체자세제어장치가 개입하지 않고 지켜만 본다. 네 번째는 오프off다. 차체자세제어장치가 완전히 꺼진다.

4가지 운전 모드

첫 번째는 ‘노멀normal’이다. 고성능을 잊고 편하게 몰 수 있다. 두 번째는 VDIM 스포트. 운전자의 조작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세 번째는 엑스퍼트expert다. 차가 홱 돌기 전까진 차체자세제어장치가 개입하지 않고 지켜만 본다. 네 번째는 오프off다. 차체자세제어장치가 완전히 꺼진다.

 

 

 

시트는 더 주저 않았다. 핸들은 곧추섰다. 시트는 폼과 가죽을 함께 가공했다. 깊은 박음질로 폼을 조각조각 나눴다. 렉서스 RC는 이번에 총 5가지 모델로 데뷔했다. 기본은 RC350이다. V6 3.5리터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짝짓고 뒷바퀴를 굴린다. 렉서스가 개발한 D-4S 장치를 달아 연료를 실린더와 흡기관 양쪽에서 뿜는다. 또한, 들숨과 날숨의 박자와 길이를 조절하는 가변 밸브 타이밍 기구(VVT-i)로 힘과 연비를 동시에 끌어올렸다. RC350의 최고출력은 317마력, 최대토크는 38.5㎏·m으로 각각 6,700, 4,800rpm에서 나온다. RC350은 AWD 버전도 나온다. 평소 뒷바퀴를 굴리다 회전 차이를 감지하면 앞바퀴로 동력을 옮긴다. RC350 AWD엔 6단 자동변속기를 물린다. 이 두 모델에 각각 F-스포트 버전을 마련했다. 엔진은 기본형과 같되 외모를 으스스하게 꾸민 모델이다. 마지막 남은 모델은 RC F. RC F는 RC와 전체 부품의 70퍼센트가 다르다. 엔진은 IS F의 V8 5.0리터를 개선해 얹었다. 출력은 12퍼센트 치솟은 477마력이다. 최대토크 역시 54㎏·m로 흥건히 넘친다. 변속기는 RC350과 같은 자동 8단으로 기어비까지 똑같다. 굴림 방식은 뒷바퀴 한 가지로만 나온다. 트랙 주행을 위해 개발한 차다.

 

9월 4일 오전 8시,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호텔 앞마당에 RC가 색깔과 종류별로 늘어섰다. 화끈하게 튀는 라바 오렌지색 RC F를 먼저 탔다. 버튼을 누르자 섬뜩한 포효와 함께 RC F가 깨어났다. 시승 코스는 숙소가 자리한 화이트플레인즈 시내에서 몬티첼로 서킷까지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여정. RC F로 고속도로 제한속도에 맞춰 정속 주행하는 건 슬리퍼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는 느낌이다. 부담 없고 편하다. 까마득한 힘을 까맣게 잊게 된다. 이따금씩 시야가 확보된(경찰이 안 보이는) 구간을 만났다. 그때마다 날 포함한 주위의 RC F가 일제히 튀어 나갔다. 엔진 회전수가 치솟을 때마다 실내가 트랙으로 바뀌었다. 실내로 스미는 엔진음과 배기음을 증폭시키는 액티브 사운드 컨트롤ASC을 챙긴 덕분이다. 머릿속이 몽롱해지는 괴성, 가슴 뻐근한 가속으로 출장 전 마감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가 다 날아갔다. 중간 경유지에서 RC350 F-스포트로 갈아탔다. 외모는 RC F 못지않게 과격하다. 그러나 운전감각은 예상과 딴판이다. 그야말로 치유에 가깝다. 한사코 매끄럽고 부드럽다. 사실 RC F도 보닛 속 불지옥을 들쑤시기 전엔 평화롭기 짝이 없다. 딱딱하고 저돌적인 메르세데스-벤츠 C 63 AMG, 섬세하고 민감한 BMW M3, 섬뜩하게 정교한 RS5와 또 다른 RC만의 색깔이다. 몬티첼로 서킷에서 진짜 시승의 막이 올랐다. 시승차는 엔진별로 준비되었다.

 

헬멧을 쓰고 RC F와 함께 곧장 서킷으로 뛰어들었다. 연거푸 돌았다. 섭씨 30도였지만 파워와 제동력이 시들해지는 기색을 느끼기 어려웠다. 짜고 또 짜도 흘러나오는 과즙 같았다. 코너를 매끈한 궤적으로 감지 못하거나 성급히 가속을 채근하면 꽁무니를 찍찍 흘렸다. 그래서 더 자연스러웠다. 실력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RC350과 함께하는 시간은 좀 더 천천히 흘렀다. 시속 100킬로미터 정지가속 시간은 6.3초. RC F와 1.8초 차이다. 하지만 재미는 반감되지 않았다. 굽잇길에선 RC F 못지않게 차분했다. 높낮이 심한 복합 코너에서도 후들거리지 않았다. 차체의 미묘한 움직임을 읽어가며 갖고 노는 재미가 끝내준다. RC를 만나러 가면서 내심 렉서스를 걱정했다. 점점 전투적으로 변해가는 디자인과 지칠 줄 모르는 신차 공세를 보며, 폭주 기관차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표현 방식을 바꿨을 뿐 렉서스의 본질은 그대로였다. 최근 렉서스의 신차를 타보면 움직임의 미세한 간격과 단차를 입자 크기별 연마지로 섬세하게 갈아낸 듯하다. 힘과 재미가 전부일 것 같은 RC마저 예외는 아니다. 스포츠 쿠페로서는 이례적으로 부드럽고 편안하다. 움직임의 이음매를 매끈하게 다듬은 결과다. 차체는 두 번씩 구워가며 5겹을 칠한다.

 

그러면 장인들이 직접 손으로 결을 다듬어 흠을 찾는다. 실내에 쓴 줄무늬 나무는 38일 동안 총 67단계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사각지대 경고장치는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감지 범위가 60미터나 된다. 완벽하게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또한 완벽을 향한 그들의 철학을 놓지 않는다. 그래서 난, 렉서스가 때로는 두렵다.

 

3개의 유전자렉서스 RC의 차체엔 무려 세 차종의 유전자가 녹아들었다. 최고의 강성과 최적의 균형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차체 앞부분은 GS에서 가져왔다. 허리께는 IS C의 뼈대로 완성했다. 위쪽 절반이 없는 컨버터블인 만큼 뱃바닥 강성 확보에 무척 신경 썼기 때문이다. 꽁무니는 IS의 플랫폼으로 이어 붙였다. 수석 엔지니어는 “굉장히 도전적인 과제였다”고 털어놨다. 

3개의 유전자
렉서스 RC의 차체엔 무려 세 차종의 유전자가 녹아들었다. 최고의 강성과 최적의 균형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차체 앞부분은 GS에서 가져왔다. 허리께는 IS C의 뼈대로 완성했다. 위쪽 절반이 없는 컨버터블인 만큼 뱃바닥 강성 확보에 무척 신경 썼기 때문이다. 꽁무니는 IS의 플랫폼으로 이어 붙였다. 수석 엔지니어는 “굉장히 도전적인 과제였다”고 털어놨다.

 

 

<10가지 질문과 답> 렉서스 RC F 수석 엔지니어 유키히코 야구치

소리가 인상적이다. 액티브 사운드 컨트롤은 어떻게 작동하나? 원래 엔진에서 나오는 소리를 샘플링한다. 기존의 소리를 보완하고 키운 것이다. 스피커는 운전대 뒤쪽에 숨겼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RC F의 출력을 높이지 않은 이유는? F 모델은 서킷 주행을 염두에 두고 개발했다. 지금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는 하루 종일 서킷을 달리기는 어렵다. 추후 가능한 기술이 개발되면 고려해보겠다.

아우디 RS, 벤츠 AMG, BMW M과 렉서스 F 브랜드가 다른 점은? 아우디는 사륜 시스템을 통한 사계절 운전에 초점을 맞췄다. AMG는 고성능 엔진에 더 집중해 좀 더 빨리 달릴 수 있도록 했다. M시리즈는 운전 실력이 좋은 사람들이 재미있도록 개발했다. 렉서스는 운전 실력에 관계없이 즐겁게 운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경쟁 차종은? 브랜드마다 고유의 특성이 있으므로 딱 정해 말하기는 어렵다. 고객이 차를 선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시승하고 느낌, 디자인 등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실력으로 승부하겠다.

개발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 약 3년 걸렸다. 메인 콘셉트는 Fun to Drive, 즉 운전 재미다.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의 랩타임은 어땠나? 랩타임은 의미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 차의 개발 목표는 어떤 운전자나 편안한 주행 환경에서 자신감 있게 속도를 내는 등 차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사장으로부터 받은 미션이 있었나? 특별한 미션은 아니었지만, ‘Fun to Drive’와 ‘Safety Driving’을 강조했다.

차체 구조는? 앞쪽은 보다 큰 타이어를 쓰기 위해 GS 플랫폼, 센터는 강성을 위해 IS 컨버터블의 뼈대를 사용했다. 뒷부분은 현재 IS 플랫폼을 사용했다.

왜 RC F에는 뒷바퀴 조향 장치DRS를 적용하지 않았나? DRS는 스티어링 조정 시스템이다. RC F는 가속의 수위를 조절하며 코너를 돌 때 진정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