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보고 만지고 즐기고

전 세계 메이커들의 축제, ‘메이커 페어 뉴욕’에 다녀왔다. 메이커가 되려던 건 아니었는데, 메이커가 되어 있었다.

Electrice Giraffe, 린제이 라울러.

Electrice Giraffe, 린제이 라울러.

‘soldering’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미국의 전자기기 소매점 체인인 라디오쉑 부스의 직원이 “Wanna solder here?”라고 물었을 때 괜찮다고 대답한 건, “Wanna eat solder here?”라고 물었다면 따라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세심하게 살피다scrutinize’처럼 모른다고 크게 흠이 될 것 같은 단어는 아니어서 가만히 있었다. ‘해결사solver’가 사용자 참여형 서비스를 일컫는 단어로 옮아간 걸까 짐작했는데 아는 척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잠자코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곳에서 ‘soldering’이라는 단어는 경매장에서의 ‘값을 부르다bid’처럼 발에 치였다. ‘soldering’은 ‘납땜’을 가리킨다. 혹시나 많은 사람이 진즉에 아는 단어였다 해도 이제는 낯 뜨거울 것 없다. 메이커 페어 뉴욕을 돌아보니, 뭔가를 스스로 만든다는 건 잘 알아서가 아니라 벌써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메이커 페어 뉴욕이 열리는 사이언스 홀은 플러싱 메도스 코로나 파크 안에 있었다. 뉴욕 동부 퀸즈 지역이었다. 뉴욕에 오기 전, “뉴욕 양키즈 스타디움이 있고, 윔블던이 열리는 곳”이라고 한 친구가 말해줘서 정신머리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는데, 이상하게 틀렸고 어이없이 잘못된 정보였다. 뉴욕 메츠의 홈구장인 시티 필드와 US 오픈의 개최지가 지척에 있었다. 그럼에도 시간을 내어 그곳을 돌아보지는 않았다. 놀이공원에 와서 굳이 그 옆 미술관까지 들르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또한 이 놀이공원에서는 아이가 아니어도 풍선을 만들어주었다. ‘Make’라는 단어 아래 모든 사람이 평등했다.

메이커는 공학자에 한정되지 않았다. 아티스트, 공예가, 취미 공학자, 교육자, 과학 클럽, 학생, 어설픈 땜장이, 호기심뿐인 아마추어를 모두 포함했다. 심지어 메이커 페어는 관람객까지 메이커로 환영하는 축제였고, ‘솔더링’은 관람객이 메이커가 되는 첫 걸음이었다. 1천여 개의 부스와 200여 개의 부대행사가 9월 20과 21일 양일간 장을 펼쳤다. 메이커 페어는 미국의 메이크 미디어가 2006년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리어에서 처음 개최했다. 이후 뉴욕, 도쿄, 로마, 산티아고, 오슬로로 번져나갔다. 비교적 큰 규모로 열리는 메이커 페어만 손에 꼽아서 이 정도다. 몰라서 그렇지 서울에서도 지난해부터 열리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사태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잘 모르는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외부자’로 규정하는 기제 탓이 크다.

요세프 스즈엑스는 데이비드 스크리블리라는 로봇을 아티스트로 내세운 메이커였다. 데이비드 스크리블리는 재활용품을 이용해 만들었으며, 그가 그리는 그림은 눈과 입이 전부인 자화상이었다. 당연히 인류가 설계할 수 있는 로봇 팔의 그림 수준은 이것을 초월했다. 요세프 스즈엑스는 데이비드 스크리블리가 그린 그림을 방문자에게 건네면서 웃을 뿐이었다. 초등학생에게 손으로 그리라고 해도 더 잘 그릴 수 있는 그림을 로봇에게 맡기는 저효율에는 특별한 이야기도 발견도 감동도 없었다. 로봇을 보면서 메이커와 함께 미소 지은 그 경험이 전부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경험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와 관계된다.(올더스 헉슬리)” 적어도 메이커 페어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아주 많이 할 수 있는 장이었다.

 

01 LG전자 부스의 사운드보드 코너. 02 Digital Being: Map of Manhattan, 박태주. 03 The Strati, 3D Printed Car, 로컬 모터스. 04 인텔 부스의 풋볼 게임 코너. 05 LG전자 부스의 레이싱 게임은 직접 종이 인형을 오려 자석에 부착한 '말'로 참여할 수 있었다.

01 LG전자 부스의 사운드보드 코너. 02 Digital Being: Map of Manhattan, 박태주. 03 The Strati, 3D Printed Car, 로컬 모터스. 04 인텔 부스의 풋볼 게임 코너. 05 LG전자 부스의 레이싱 게임은 직접 종이 인형을 오려 자석에 부착한 ‘말’로 참여할 수 있었다.

 

01 서커스 웨어하우스의 공연, <The Way Things Go>를 응용했다. 02 Kit Rex, 리사 글로버. 03 메이커 페어의 마스코트.  

01 서커스 웨어하우스의 공연, <The Way Things Go> 를 응용했다. 02 Kit Rex, 리사 글로버. 03 메이커 페어의 마스코트.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걸 선보이는 곳답게 IT 산업의 첨단을 엿볼 수 있었다. 지금, 아니 당분간 유효할 몇 가지 흐름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그중 하나가 LED나 모터 같은 외부 전자장치를 통해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마이크로 컨트롤러 보드 아두이노였다. 상당수의 메이커가 아두이노 호환을 강조했고(군사용 수준의 i.MX6 쿼드를 사용하는 PC두이노 아카디아 1), 아두이노와 연동하는 프로젝트(레고 마인드스톰과 아두이노, 스마트폰과 아두이노)를 발표했다. 한 대의 컴퓨터를 연산장치로 쓰고 여기에 아두이노를 연결해 일종의 센서처럼 쓴다면 활용성이 극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똑같은 마이크로 컨트롤러 보드 형태지만 리눅스 계열의 운영체제까지 갖춘, 아주 저렴한 싱글 보드 컴퓨터 라즈베리 파이의 가능성도 주목할 만했다. 라즈베리 파이를 이용한, 다량의 LED를 제어하는 메커니즘을 제공하는 찰리플렉싱, 외장형 미디어 플레이어 슬라이스, 1초에 4.5개의 철자를 치는 텔레타이프가 선보였다. 메이커 페어 뉴욕의 스폰서인 디즈니 부스에서 전격적으로 채택한 리틀 비츠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기반만 제공하고 완성은 사용자에게 맡기는 창의적인 방향성이 선명했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한다는 교훈. 리틀 비츠는 모터, LED, 버튼, 사운드 트리거, 슬라이드 디머 등의 모듈을 무궁무진하게 결합해나갈 수 있는 킷으로, 픽사에서 나올 신작이 걸린 디즈니 부스, 레고 마인드스톰 부스만큼이나 붐볐다.

3D 프린터 부스가 전체 부스의 1/3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걸 밝히면 지금의 열광적인 분위기가 설명이 될지 모르겠다. 3D 프린터는 초기의 경탄을 넘어 구체적인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저마다의 영역을 뚜렷하게 갖고 있었다. 한 번에 두 가지 컬러를 쓸 수 있는 3D 프린터, 일반적인 3D 프린터의 박스 형태를 벗어난 3D 프린터, 전자펜처럼 쥐고 그릴 수 있는 3D 프린터. 이제는 3D 복사기와 3D 스캐너까지 확장되고 있었으며, 3D 프린터로 만든 주얼리나 공예품을 판매하는 업체까지 나타났다. 산업이 산업이 아닐 수 있고, 공학이 공학이 아닐 수 있는 메이커 페어는, 그들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뉴저지의 한 메이커 바에서는 ‘오비탈 렌더스피어 2.0’을 선보였다. 2차원의 구가 분당 450회 이상 회전하면서 3차원의 구로 다양한 그래픽을 표현하는 장치였다. 약 11미터가량의 LED를 이용해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데이비드 스크리블리가 그랬듯이, 기술적으로 놀라운 점도, 목적도 없었다. 당장 어떤 질문이 떠올라서 하려는 참에 부스 한쪽 귀퉁이의 표지판에서 답을 발견했다. “만듭니다. 왜냐하면 만드는 건 재밌거든요.” 처음에는 LED와 두 대의 드릴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고 했다. “점점 더 좋은 프로세서를 사고, 더 많은 LED를 부착했죠. 최대한 저렴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비용은 갈수록 더 들었어요. 하지만 별로 상관없습니다. 우리의 노력이야말로 언제나 가장 큰 비용이니까요.” 개발자 트래비스 존스가 말했다. 이곳에서는 재미가, 돈이든 목적이든 기술이든 다 이겼다. 

그러므로 메이커 페어 뉴욕을 찾은 관람객의 절반이 어린이거나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인 건 당연했다. 180개의 카드를 갖고 놀면서 전자장치에 대해 배우는 ‘노우 카드’ 부스나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자장치로 물리현상을 배우는 ‘피직스 팩토리’ 부스 등 교육에 중점을 둔 메이커가 많은 이유이기도 했다. 아이들만큼 하는 말의 대부분이 질문이면서, 순수하게 재미를 좇는 상태도 없다. 이것은 사람들이 메이커를 ‘외부자’로 판단하는 데 일조한 특성이기도 하다. 어떤 어른들은 “아니, 애도 아니고 왜 그러냐”는 타박을 듣곤 한다. 책임감이 없다거나 자기객관화를 못해서가 아니라, 예컨대 바이닐 레코드를 수집하는 취미처럼 살아가는 데 꼭 필요치는 않은 일에 몰두한다는 이유로. ‘영 메이커’ 강연에 나선 메이커 자넬라 왓슨이 그 타박에 대한 답변으로 충분한 말을 했다. “새로운 걸 만들고 싶다고요? 일단 손을 더럽히세요.”

메이커 페어 뉴욕의 공기는 어깨에 힘을 빼게 했고 기업도 눈높이를 낮췄다. 화려한 면면의 스폰서들이 참여했다. 디즈니부터 인텔, 도요타, 라디오쉑, 그리고 한국의 LG전자까지. LG전자는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메이커 페어에 참가했다. 처음이었지만 처음 같지 않은 능숙한 기획과 진행이 돋보였다. 부스 프로그램을 전부 사용자 참여형으로 만든 것이 주효했고, 재생 정신을 기치로 내세우면서 기업 홍보 행사 특유의 유난스러움이 쏙 빠져서 자연스러웠다. 이를테면 LG전자 세탁기에서 비롯된 사운드보드 킷 만들기 프로그램은 메이커 페어 뉴욕이 열린 이틀 내내 가장 긴 줄이 선 프로그램이었다. 미디어 아티스트 강병수가 LG전자 폐가전 센터의 세탁기 부품에서 찾아내 만든 이 킷은 조도에 따라 두 가지 멜로디가 느리게 또 빠르게 흘렀다. 참여자는 스스로 ‘솔더링’을 하는 것만으로 이 킷을 목걸이 형태로 만들어 가질 수 있었다. 메이커 입문을 축하하는 화한이었다.

메이커는, 대부분의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직업이라기보다 상태였다. 메이커 페어를 돌아보면, 메이커는 천진난만하게 재미를 추구하는 아이였고 뭔가를 만드는 중인 사람이었다. 메이커는 뭔가를 만들어가는 시간 속에 있지 ‘외부자’라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아이는 뛰놀아야 아이이고, 메이커는 만들어야 메이커였다. 재미를 넘어 교육을, 설명을 넘어 참여를 권하는 메이커 페어의 분위기가 이해되었다. 메이커 페어는 ‘외부자’라는 견고한 벽을 깨뜨리는 순서였다. 재미있어 보이면 해보고 싶고, 막상 해보면 보는 것만큼 쉽지 않다는 걸 알고, 다른 사람이 하는 걸 ‘외부자’의 일로 단정 짓지 않고 존중하게 되는 것. <북두신권>의 주인공 켄시로가, 북두백렬권을 시전하고 내뱉는 명대사 “너는 이미 죽어 있다”를 빌려 말하자면, 메이커 페어에 참여하는 순간, “너는 이미 만들고 있다”.

 

04 서커스 웨어하우스의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05 파워 레이싱 시리즈. 06 로켓 스테이지.

04 서커스 웨어하우스의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05 파워 레이싱 시리즈. 06 로켓 스테이지.

 

LG전자 G3 스마트폰으로 촬영 중이다. 

LG전자 G3 스마트폰으로 촬영 중이다.

 

[LG는 이미 만들고 있다]

메이커 페어 뉴욕 LG전자 부스에는 ‘Rethink Everything’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뜻밖의 그늘을 만드는 나무처럼, 나무로 지은 부스와 어우러진 식물들이, 전부 간이천막으로 이루어진 메이커 페어 뉴욕의 부스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LG전자의 부스 프로그램에서 ‘재생’ 의지가 드러났다. 행사 내내 가장 뜨거웠던 사운드보드 킷 만들기 프로그램은 LG전자 폐가전 센터의 세탁기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솔더링’으로 사용자 참여를 유도하는 부스는 많았지만 안정성과 편의성을 고려해 돋보기와 고정대, 매뉴얼과 안내자까지 완벽하게 갖춘 부스는 LG전자뿐이었다. 메이커로 향하는 문턱을 더욱 낮추는 시도였다. LG전자 세탁기 모터를 배치하고, 직접 만든 종이 인형에 자석을 부착해 벌이는 레이싱 게임도 참신했다. 직접 만든 종이 인형을 현장에 설치된 LG전자 스마트폰 G3로 촬영해 SNS에 공유하면, 이 경험을 소중하게 담아가라는 뜻에서 에코 백까지 증정했다. <메이크 매거진>에서 선정한 에디터스 초이스 훈장까지 받은 걸 보면, 첫번째 참가에도 불구하고 LG전자의 모험은 성공적이었다. LG전자의 시니어 마케팅 대표 데이비드 판데르발은 “LG전자는 한국 최초의 라디오 A-501을 개발한, 다른 세상에 귀기울이는 일이 시작이었던 회사”라고 메이커 페어 뉴욕의 강연에서 말했다. LG전자의 스폰서 참가에 관한 이 근사한변은, LG전자와 메이커가 만들 창의적인 미래를 기대케 했다. 메이커 페어의 설립자 중 한 명인, 사회자 데일 도허티는 덧붙였다. “LG전자는 메이커와 비즈니스 사이의 다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LG전자 사운드보드 코너 참가를 위해 늘어선 줄.

LG전자 사운드보드 코너 참가를 위해 늘어선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