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유희열은 방송인인가? 음악가인가?

2016.03.01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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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K팝스타>에서 유희열은 음악 전문가 역할을 맡고 있다. 같은 심사위원인 박진영, 양현석도 지금 우리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중요한 전문가들이지만 아무래도 결이 조금 다르다. 세 사람의 음악적 우열을 따질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돌 중심의 기획사인 JYP 엔터테인먼트, YG 엔터테인먼트에 비해 유희열이 대표하는 안테나 뮤직은 보다 언더그라운드 성향의 ‘뮤지션 지향’으로 인식돼 있다. 그렇게 (보편적으로) 누구나 인정하는 음악가 유희열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대표라기보다 음악가로서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들뜬 표정으로 ‘물개 박수’를 치며 격한 감동을 표현하는 박진영, 인자한 청소년 센터 선생님 같은 양현석보다는, 굵직한 ‘라디오 보이스’로 차분하게 의견을 내는 모습도 신뢰를 더한다.

그런데 정작 심사평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유희열은 눈앞에 선 참가자의 무대에 대해 대단히 전문적인 견해를 피력하진 않는다. 박진영과 양현석이 무대에서의 퍼포먼스와 보컬 실력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데 비해, 유희열의 심사평은 대개 “아, 잘하네요”, “정말 잘하네요” 정도의 동어반복으로 맴돈다. 그 외의 발언들 역시 “피치가 정확하면서 힘 있다”, “음색이 좋다”, “성의와 열정이 느껴진다”, “노래를 아주 묘하게 한다” 등이다. 음악 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줄 수 있는 정도의 말들.

박진영은 참가자의 실력, 보컬 트레이닝 기법, 퍼포먼스 구성, 개성, 태도, 무대의 전략에서 작사/작곡의 이론, 편곡의 의도와 과정까지 두루 언급한다. 한 가수의 퍼포먼스에 수반되는 모든 분야를 깊숙하게 지적하는 것이다. 그는 때로 실언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퍼포먼스를 평가하는 이유와 해결책을 말해 주기 위해 리스크를 감수한다. 참가자의 성장을 예측하고 지켜보면서 솔직한 감상을 말하는 양현석과도 다르다. 유희열의 말들은 안전하고 미지근하다. 그는 음악 전문가로서 그 자리에 앉아 있지만, 그의 말들은 지극히 대중적인 눈높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가 보다 길게 말할 때는 실력에 대한 평가보다는 음악가로서의 특징을 말할 때다. 싱어 송라이터든 보컬리스트든, 참가자의 ‘음악 세계’를 논할 때, 그는 장단점과 완성도와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그가 찾는 사람은 앞으로 그가 훈련시키고 프로듀스할 좋은 재목이 아니다. 어느 정도 완성된 음악가거나 안테나 뮤직에서 함께 일할 파트너다. 즉, 조금 아이러니하지만, 세 명의 심사위원 중 누구보다 ‘레이블 오너’로서 앉아 있는 것이 유희열이다.

재미있는 것은 직접적인 심사평과 무관한 그의 발언들이다. 때로 그는 참가자들에게 “서로 위로해주라”는 식의, 무대 뒤 촬영 분량까지 염두에 둔 듯한 말을 하기도 하고, 편집돼서 방송되지 않은 심사위원들끼리의 대화를 전할 때도 있다. 방송 분위기를 다잡고 가자는 의미에서 파이팅을 외치자고 제안하는 한편, 참가자들의 방송 분량도 염두에 두며, 오디션이 진행 되는 양상에 대해서도 코멘트를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에 집중하는 편인 박진영과 양현석에 비해 유희열은 방송이란 포맷을 사뭇 의식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는 암암리에 MC로서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시청자들의 인식과 별개로, 심사위원석에서의 그의 실제 비중은 ‘음악을 참 좋아하는 MC’에 가깝달까.

‘MC 유희열’이 더 두드러지는 것은 JTBC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이다. 거기서 그는 매 회 편곡가와 아티스트로 이뤄진 한 팀을 이끈다. 하지만 음악적 역할은 거의 하지 않는다. 작업에 의견을 내거나 별다른 평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음악가 소개 멘트를 맡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방송 작가가 써줄 수 있는 정도의 내용들이다. 물론 예능 방송이 소화하기에 좋은 수위란 것도 있겠지만, 실은 누가 해도 별 상관없는 멘트들이다. 가끔씩 나오는 음악 작업의 프로세스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발언은 오히려 작사가 김이나나 다른 패널들의 몫이다.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본격적인 음악 방송이기에 음악 이야기를 더 하긴 하지만, 역시 작가가 써주기 힘든 전문가로서의 견해가 두드러지진 않는다.

유희열이 MC를 해선 안 될 이유는 없지만,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면 안 될 이유도 많지 않다. 적어도 지금 예능 방송에서의 그는 음악가로서의 실력을 제한적으로만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를 그 자리에 세우는 이유이자 대중이 방송을 통해 그를 소비하는 방식은 ‘음악가 유희열’이다. 윤종신이 음악가의 정체성과 예능 활동을 거의 분리한 명쾌함을 보여줬다면, 유희열은 그보다 조금 복잡하다. 그는 음악 가의 이름으로 방송에 나오지만, 포장을 벗겨 보면 음악가의 알맹이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실질적인 커리어나 음악적 성취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지만 그에게 ‘천재 음악가’의 환상을 덧씌우기도 하는 서울대 작곡과 간판처럼 말이다. 유희열의 영리한 방송 활동이 어딘가 찜찜하게 느껴지는 이가 있다면 그런 이율배반 때문이 아닐까?

예능 방송에서 그의 발언들이 독보적인 활약을 하는 것은 되레 유머다. ‘색드립’과 외모 농담이 주를 이루는 그의 유머는,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미움받지 않고 넘어간다. 그 이유 역시 그가 음악가로서 인정 받고 있는 점에 크게 의지한다. 음악가에 대한 하나의 클리셰로서, 여자를 심히 좋아할 만한 개연성을 승인받은 것이다. 또 한 가지가 있다면 그가 다른 출연자나 방청객들의 행동을 ‘매 의 눈’으로 살피며 유머의 소재로 삼는, 1990년대 소극장 공연의 유머 코드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음악가 유희열’은 껍데기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의 구성 요소들을 바쳐 ‘예능인 유희열’에 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시대를 떠안겨준 ‘찌질한 순정남’ 발라드가 이제는 다소 시대에 뒤처졌다고 할 순 있겠으나, 당대의 정서를 날카롭게 잡아낸 탁월한 음악가로서 자기 증명을 하며 경 력을 시작한 바로 그 유희열. 이쯤 되면 너무 심한 재능 낭비 아닌가?

하지만 어쩌면 그의 정체성은 조금 더 복잡한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음악가 유희열’을 다시 방송용과 실무용으로 분리한다든지 말이다. 그의 포장과 알맹이가 다른 것도, ‘실무 음악가 유희열’이 노출되는 것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누구나 알 듯 방송에는 수위의 제약도 있고, 편집으로 생략되는 내용도 많다. 또 한 그 자신이 음악가로서 카드를 내보이지 않겠다고 한다면 대중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K팝스타>에서 그가 음악 작업의 실무적 요소를 별로 노출하지 않는다고 해서 안테나 뮤직이 소속 뮤지션을 방임한다고 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참가자의 선곡을 추천한 이유에 대해서 물으면 그는 평소의 심사 평보다는 훨씬 상세한 답을 하지만, 이내 “그냥 제가 듣고 싶어서 골랐어요”라며 뒤로 물러나 버린다. 마치 음악적이거나 논리적인 이유는 핑계에 불과하고 그저 별 생각 없이 마음 가는 대로 한 행동에 불과하다는 듯한 태도다. 그런 연출된 겸손은 그가 대중 예능에서 미움받지 않고 생존하는 비결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그가 곧잘 하는 외모 농담이 ‘못생긴 유희열’이라는 자기비하를 전제로 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그를 평가하는 기준 역시 분리하는 것이 합당하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그의 음악이다. 방송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이 어떻든, 그의 음악적 행보마저 폄하하거나 기대를 버릴 필요는 없다. 의욕적으로 음악 활동을 지속하는 윤종신의 예처럼, 예능 활동이 반드시 음악을 침해한다고 볼 것도 아니니 말이다. 애초부터 그는 ‘방송형 음악가’는 아니었으니, ‘실무 음악가 유희열’을 굳이 방송을 통해서 확인해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방송 활동이 한창이던 2014년, 7집 <Da Capo>를 발매하기도 했고 안테나 뮤직의 지휘도 이어가고 있다. 방송 활동을 통해 유의미한 음악적 성취를 거둘 수 있다면 이번엔 ‘방송인 유희열’이 ‘음악가 유희열’에게 기여할 차례. 그렇다면 재능 낭비 같은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가 <K 팝스타>에 합류한지 이제 4년째다. 캐스팅한 인물들의 음악적 행보를 본격적으로 판단하는 것 역시 이제부터다. 지금까지는 ‘예능인 유희열’을 위한 명목과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음악가 유희열’이 결국 소모돼 사라질 것인지, 역전을 거둘 것인지도. 지금부터가 승부다.

    에디터
    글 / 미묘(웹진 편집장)
    일러스트
    장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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