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색보다 맛, 로제 와인 이야기

2016.07.11손기은

로제 와인을 ‘로맨틱’에 가둘 수 없다.

와인의 색깔이 맛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올드 빈티지 피노누아를 마실 땐 입을 대기도 전에 영롱한 색에 매혹되고 만다. 로제 와인도 분홍색과 연어색이 시각적으로 제공하는 특유의 부드럽고 섬세한 기운이 있다. 하지만 연인과의 특별한 날, 로제 와인이 장미꽃의 보조 역할에만 그치는 건 좀 억울하다. 로제는 색으로만 소비하는 와인이라기 보다는 화이트의 가벼움과 레드의 바디감을 두루 갖춰 복합적이고 다채로운 매력을 품은 와인이기 때문이다. 로제 와인은 달콤하고 저렴한, 케이크의 세트 상품도 아니다. 고품질의 부티크 로제 와인도 많고 최고 점수를 받는 샴페인 로제도 숱하다. 오히려 와인 양조 공정이 더 복잡하고 만드는 방식도 다양해, 샴페인 로제의 경우 일반 샴페인보다 가격이 더 높게 책정되기도 한다. 로제 와인이 분위기 잡을 때 마신다는 생각도 단정적이다. 질 좋은 스틸 로제 와인을 생산하기로 유명한 프랑스 프로방스 방돌 지역이나 니스, 생트로페 해변에서는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테라스에서 여름을 즐기며 마신다.

지금도 유럽에선 로제 와인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려 찾는 이도 많아졌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로제 와인의 종류는 납작하기만 하다. 좋은 와인 많이 마시기로 유명한 데다 로제 와인 애호가로 알려진 김현욱 소믈리에(현 ‘와인 365’ 매니저)에게 8병의 로제 와인을 추천 받고 그의 시음평을 덧붙였다. 행여 로제 와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면 와장창 깨뜨릴 수 있는, 격조 있는 로제 와인이 모였다.

사바르 프리미에 크뤼 뷜레 드 로제 브뤼 3대째 이어 온 사바르는 다른 샴페인 하우스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현재 미국인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1등급 밭에서 생산한 피노누아를 82퍼센트, 샤르도네 10퍼센트, 레드 와인 8퍼센트를 블렌딩했다. 숙성은 80퍼센트는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20퍼센트는 오크통에서 이루어진다.

“마실 때마다 늘 매력적인 샴페인. 조밀한 기포가 주는 특유의 질감이 좋고 목에서도 우아하게 넘어간다. 긴 여운 끝에서 느껴지는 산미와 미네랄리티가 이 로제 샴페인의 특징이다.”

 

루이 뢰더러 로제 2009 우아한 캐릭터로 유명한 루이 뢰더러는 로제 와인도 우아함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양조 방향을 맞췄다. 잔에 따르면 색이 유난히 여리게 보이는데 연어(살몬)색 중에서도 ‘핑크 살몬’으로 분류된다. 우아한 맛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색깔을 자연스럽게 뽑아냈다.

“금가루를 풀어놓은 것처럼 기포가 아주 섬세하게 올라온다. 잔에 코를 갖다 대면 올라오는 향은 공격적이지 않아 우아한 기품이 느껴진다. 자몽, 딸기, 라즈베리가 떠오르는 향이 이어진다. 입 안에서는 ‘크리미’하고 끝엔 기분 좋은 포도즙이 느껴진다. ”

 

빌카르 살몽 퀴베 엘리자베스 살몽 브뤼 로제 2006 니콜라 프랑수아 빌카르와 엘리자베스 살몽 부부가 설립한, 200년 역사의 샴페인 하우스이다. 로제 와인은 부인을 기념하기 위해 1988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빌카르 살몽은 샹파뉴 지역에서 ‘저온 안정화’ 양조 기법을 창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초반엔 연약한 듯하지만 공기와 접촉하면서 점점 무게감과 힘이 붙는다. 우아하고 유연해, 이 와인을 마시는 시간이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다. 소량 수입되지만 혹시 손에 넣었다면, 지금 마시지 말고 10년 더 셀러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볼랭저 그랑 아네 로제 2005 루이 뢰더러가 우아하다면 볼랭저는 파워풀한 면모를 보여주는 샴페인 하우스다. 훌륭한 피노누아 스틸 와인도 생산할 정도로 피노누아를 잘 다루는 곳이다. 그랑크뤼 밭에서 생산한 피노누아의 블렌딩 비율이 높아 골격이 탄탄하다.

“작고 섬세한 기포가 입 안을 즐겁게 한다. 라 코트 오 장팡이라는 그랑크뤼 밭에서 생산한 피노누아를 도자주 과정 전에 5퍼센트 정도 블렌딩하는데, 여기서 아름다운 색깔과 붉을 과실의 향이 완성된다. 볼랭저 관계자들은 2004에 비해 2005가 더 좋다고 확신하고 있다.”

 

도멘 뮈르뮈르엄 르 투르 로제 2013 소유주인 마크 피숑이 처음 이 와이너리에 도착했을 때 인접한 몽 방투 산의 아름다움과 벌들이 윙윙거리는 소리에 흠뻑 빠졌다. 그래서 도멘의 이름을 벌들이 속삭이는 소리인 ‘뮈르뮈르엄’이라고 지었다고 전해진다. 레이블에도 벌 두 마리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그림이 그러져 있다.

“흰 꽃에서 나는 향과 석류 향이 잘 어우러지고 후추 같은 스파이시한 풍미도 느껴진다. 강하진 않아도 은은한 긴 피니시가 인상적이다. 약 4~8도의 온도로 즐기면 가장 좋다. 어떤 음식과도 어울리는 만능 테이블 와인이다.”

 

샤토 데스클랑 가루스 2014 로제 와인을 전문으로 만드는 와이너리다. 와인 메이커 패트릭 레옹을 영입하며 수준을 끌어올렸다. 와인 평론가 잰시스 로빈슨이 극찬하며 로제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키도 했다. 국내에선 대한항공 퍼스트 클래스 와인으로 입소문을 탄 바 있다.

“프로방스 로제의 극치. 풀바디에 섬세한 아로마가 대비를 이룬다. 2014년 빈티지가 특히 훌륭한데,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이 이 와인을 마신 뒤 98점을 주며 “Greatest Rose Ever”란 말을 남겼다. 와인 애호가라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와인이다.”

 

미라발 2014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부부가 2008년 이곳의 성과 포도밭을 구매하며 더 유명세를 탄 와이너리. 샤토 네프 뒤 파프의 명가인 샤토 보카스텔의 페랑 가문과 손을 잡고 로제 와인을 양조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빈티지가 2012년에 나왔는데 5시간 만에 6천 병이 모두 팔려 나갔다. 여타 로제 와인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

“장미 향과 복숭아 향이 뛰어나다. 온도가 올라갈수록 열대 과일의 향이 살아나 한층 더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상큼한 기운이 좋고, 피니시와 맛의 균형도 훌륭하다.”

 

도멘 오트 방돌 로제 2015 ‘프로방스의 롤스로이스’라는 별명이 붙은 와이너리. 칸, 모나코 등 여름에 더 사람이 몰리는 지중해 휴양지에서 유난히 인기가 좋고, 호리병 같은 독특한 병 모양 때문에 멀리서도 한눈에 뭘 마시는지 알 수 있다. 포도알을 침용하는 게 아니라 압착해서 주황빛이 감도는 장밋빛을 완성했다. 산미가 입 안을 채우고 바디감도 탄탄하다.

“일반적인 스틸 와인으로도 유명하지만 로제 와인에 특화된 생산자다. 도멘 오트는 루이 뢰더러 그룹에서 소유하고 있으며, 루이 뢰더러와 마찬가지로 우아함을 추구한다.”

    에디터
    손기은
    포토그래퍼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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