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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더’로 하는 연애와 섹스

2018.11.02GQ

연애, 섹스 이전에 스와이프의 스포츠, 틴더.

2014년 여름, 한 파티에서 젊은 커플을 소개받았다. 남자는 방콕, 여자는 도쿄에 산다고 했다. 관계를 이어가기엔 먼 거리였고, 연애를 시작하기엔 불가능에 가까운 거리였다. 그들을 소개시켜준 친구에게 물었다. “여행 도중에 만난 거래?”, “아니, 틴더.” 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흥분과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틴더? 틴더가 뭔데? 틴더, 불쏘시개를 뜻하는 영단어 그리고 2012년에 개발된 데이팅 앱. 그가 틴더의 작동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페이스북 계정으로만 로그인할 수 있어. 나이와 이름을 속이기 어렵지. 접속하면 주변 틴더 사용자들이 뜨는데, 프로필을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밀면서 상대를 골라. ‘스와이프’라고 해. 그리고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말을 걸 수 없어. 두 사람 모두 오른쪽으로 스와이프하기 전까지는 서로 대화할 수 없는 거야.” 틴더의 기본 규칙을 겨우 안 그 시점, 전 세계의 1일 스와이프 횟수는 이미 10억 건을 기록하고 있었다. 친구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틴더를 설치하지는 않았다. 술자리의 잡담이 으레 그렇듯 다음 한잔을 채울 때쯤 화제가 바뀌었고, 몇 잔 지나지 않아 잊었다.

새벽의 느닷없는 외로움부터 천진난만한 모험심까지, 데이팅 앱을 다운 받는 심정은 제각각이다. 내 방아쇠는 환멸이었다. 어떻게 옹호해도 결국 지나간 연애는 실패한 연애다. 옛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종종 실패의 반복은 그저 마음을 지치게 만들 뿐이다.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도 또 한 명의 ‘한남’이라는 것만 깨닫고 마는 현실도 지겨웠다. 당분간 연애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소울메이트’ 운운하며 지긋지긋한 결말을 또 보느니 단순하고 즐겁게 지내고 싶었다. 버스 창밖을 보며 옛 연애의 실패담을 우르르 떠올린 출근길, 즉흥적으로 틴더를 다운 받았다. 그 후 4년 동안 내 스마트폰에서 붉은 불꽃 모양 아이콘이 사라진 적은 없다.

틴더의 구조는 지극히 단순하다. 화면에 노출되는 정보는 사진과 프로필이 전부다. 상대를 탐색하는 기능 설정 또한 성별과 나이 범위, 상대와의 반경 거리 정도를 정할 수 있을 뿐이다. 포커 테이블에서 카드를 밀 듯 손가락을 움직여 나의 호오를 표명하면 끝이다. 그러나 이토록 단순한 작동 방식 속에 의외의 즐거움이 숨어 있다. 스와이핑의 손맛과 빠른 속도, 경쾌한 사운드, ‘매칭’이라는 보상 때문에 틴더는 일종의 모바일 게임처럼 작용하기도 한다. 심리학 연구자 지네트 퍼비스는 웹진 <컨버세이션>에 이런 논평을 실었다. “심리 상태의 측면에서 틴더의 인터페이스는 급속한 스와이핑을 장려하도록 완벽하게 만들어졌다. 사용자는 어느 스와이핑이 일치의 보상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중략) 카지노의 슬롯머신이나 비디오 게임, 심지어 동물 실험에서 사용하는 보상 시스템과 비슷하다.” 최종 목표는 데이트의 성공이지만 단지 스와이핑을 반복하는 행위만으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관음적 쾌감도 존재한다. 누군가와 만나기는커녕 메시지를 나누려는 생각조차 품지 않은 채 스와이핑을 반복하는 밤이 있다. 복근, 외제 자동차, 뻔한 셀프 각도, 학력 자랑, 맥락을 알 수 없는 인용구까지, 온갖 구애의 풍경을 품평하며 키득거리는 시간. 끊임없이 왼쪽으로 검지손가락을 움직이는, 새벽의 짓궂은 스포츠다. 그러나 결국 그 공작새들 중 하나와 만나는 날이 온다.

‘단순하고 즐겁게’라는 내 슬로건은 틴더와 잘 맞았다. 결혼, 연애의 성공담을 통해 데이팅 앱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건 디지털 세계의 수많은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다. 데이팅 앱 사용자들 중에는 장기적 연애보다 단기간의 관계나 섹스를 원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틴더 특유의 직설적이고 신속한 인터페이스 또한 그 욕망을 부추긴다. 프로필을 넘기다가 ‘언어 교환’이나 ‘친구 관계만’ 등의 표현을 발견하면 어쩐지 마뜩찮다. 그 욕망이 잘못되었다기보다 장소를 잘못 골랐다. ‘원나잇’을 할 마음이 없다면 틴더가 과연 내게 맞는 앱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틴더는 불과 한 세기 전 인류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섹스를 도모하지만, 그 과정에서 연애의 오랜 원칙이 드러나기도 한다. 온라인 데이팅 앱에서도 대화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았다. 가상의 이미지가 실제 만남으로 이어지려면, 준수한 외모 이상의 매력과 함께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 틴더에서는 메시지가 그 역할을 맡는다. 내 경우 5회 정도의 대화, 처음 매칭되고 2주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상대를 직접 만났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사람이 있었고, 만나기 전까지 서로가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서만 신나게 떠든 상대도 있었다. 다섯 밤을 보내는 동안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결코 짧지 않다. 여성관과 세계관, 예의, 취향에 대해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다.

앱을 사용하는 4년여간 524명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일곱 명과 오프라인에서 만났고, 다섯 명과는 3개월 이상 데이트를 이어갔다. 그중 가장 각별했던 두 사람은 이미 한국을 떠났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다고 해서 꼭 가벼운 관계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1년 넘게 만났던 ‘틴더남’ S와 나는 결국 좋은 친구로 남았지만, ‘친구답지 않은’ 싸움도 한 차례 있었다. 나와 만나는 사이 S는 다른 여자와도 섹스를 하고 있었다. 어쩔 도리 없이 마음은 질투에 휩싸였지만, 그의 행동을 제지할 명분이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데이트와 섹스, 연애 사이를 애매하게 오가는 상태에 만족하고 있었다. 데이팅 앱의 속성과 별개로 ‘쿨한 섹스’가 기대만큼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연애의 고전적인 문제들 중 하나다. 상황을 해결한 것은 이번에도 틴더였다. 새로운 틴더남을 만나기 시작하며, S와의 관계는 꽤 평화롭게 정리됐다.

틴더의 연매출은 1조원에 이른다. 틴더가 거둔 성공 이후 수많은 데이팅 앱이 등장했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새로운 앱들은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아만다’와 ‘커피미츠베이글’ 등의 데이팅 앱은 훨씬 상세한 프로필과 탐색 설정을 통해, 나의 이상형에 보다 근접한 상대를 추천해준다. 2014년 출시된 ‘범블’의 경우 앱에서 먼저 말을 걸 수 있는 성별이 여성으로 제한된다. 범블은 “구식의 데이팅 규칙에 도전한다는 사명”과 “세계에 평등과 존중의 본질을 투영”하겠다는 의지를 홈페이지에 표명하고 있다. 여성 친화적이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데이팅 앱인 셈이다. 반려동물 인구의 데이팅 앱 ‘펫앤러버’와 기독교도들을 위한 ‘크리스찬데이트’처럼 특정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위해 개발된 데이팅 앱들도 있다.

지난해 커피미츠베이글을 깔았다가 지웠다. 틴더의 여러 단점을 보완하며 훌륭하게 설계된 데이팅 앱이었지만, 내게는 어쩐지 지루했다. 커피미츠베이글은 좋아하는 음악과 취향, 키, 학력, 인종, 스포츠 취미 등 다양한 항목을 기입한 후 시스템의 ‘엄선’을 통해 상대와 연결하는 앱이다. 그만큼 매칭 속도가 느린 반면 진지한 연애를 기대해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진지함이 싫었다. 결혼정보회사를 향한 반발심과 비슷하달까?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과 욕구에 근거해 연애를 시작하고, 배제의 원칙은 어느 관계에서나 적용되는 법이다. 그러나 때때로, 사람들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조건의 상대방과도 사랑에 빠진다.

틴더를 ‘21세기의 로맨스’라 부른다면 내게 그 이유는 무작위성이다. 단골 술집과 클럽, 대학 도서관과 위워크 오피스까지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틴더만큼 내 생활과 취향의 범위를 벗어난 누군가와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 그래서 틴더는 때로 비효율적이고 조금 위험한 데이트 주선자이기도 하다.

틴더플러스와 틴더골드 등 앱 내 유료 상품은 실망감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을 주지만, 한 달에 1만5천원 이상의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유료 상품은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사용하면 좋다. 사용자의 위치를 다른 지역으로 설정할 수 있다. 곧 도착할 낯선 도시에서의 짧고 무책임한 로맨스를 계획하기에 데이팅 앱만 한 도구는 없다. 그러나 삶의 대부분은 일상의 퇴적물로 메워지는 법이고, 결국 많은 사람이 틴더를 스마트폰에서 삭제한다. 매칭이 되지 않아서, 응답이 오지 않아서, 자꾸 집적거리는 메시지가 귀찮아서, 그저 나와 맞지 않아서. 그리고 어느 외로운 밤, 다시 한 번 앱스토어를 검색한다. 글 / 이지은(여행 작가)

    에디터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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