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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아의 조용한 저력

2019.10.10GQ

지금 김선아에게 넘지 못할 드라마는 없다.

“지금 주말 드라마와 트렌디 드라마에 모두 주인공으로 나올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지난 9월에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시크릿 부티크>의 주인공, 김선아에 대한 몇몇 관계자들의 평가다. 종합편성채널이나 케이블 채널이 인기를 끌면서 수많은 배우들이 여러 드라마를 오가지만, 실제로 김선아처럼 “다 되는 배우”는 많지 않다. 이때 ‘다 되는 배우’란, 일주일 내내 방영되는 어떤 드라마에 나와도 위화감이 없는 배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선아의 가장 최근 작품은 JTBC <품위있는 그녀>와 MBC <붉은 달 푸른 해>였다. <품위있는 그녀>는 사기, 불륜, 살인 등 자극적인 요소를 모두 담은 드라마로, 소위 ‘막장’이라고 일컬을 만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붉은 달 푸른 해>는 전혀 달랐다. 아동학대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사회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항상 어둡고, 불안한 인물들의 모습을 비추는 심리 스릴러 장르였다. 두 작품의 타깃도 다르다. 작품이 방영된 요일을 비교해보면, <품위있는 그녀>는 4050세대를 아우리는 금요일, 토요일 밤에 방송된 주말 드라마다. 20대와 30대를 기본 타깃으로 삼는 수목 트렌디 드라마였던 <붉은 달 푸른 해>와 다른 성격이었다.

15년 전, 김선아는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수목 트렌디 드라마로 2030 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놀랍게도 15년이 흐른 지금, 김선아는 여전히 주중 트렌디 드라마의 여성 주인공으로 활약 중이다. 배우 매니지먼트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김선아의 사례는 흥미롭다. 10년 넘게 여러 배우들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해온 A씨는 “김선아와 현빈을 포함해서 하지원, 송혜교, 조인성, 전지현, 김래원 등 과거 트렌디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지금 가장 유명한 30대 후반~40대 배우들”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A씨에 따르면 “이때 인기를 끈 배우들이 모두 주말 드라마까지 섭렵한 것은 아니”라며 “그게 김선아의 특별한 점”이라고 강조했다.

배우마다 주력하는 장르나 자신이 만들어가고자 하는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에 생겨난 차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선아는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신만의 차별점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장르별, 요일별로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지닌 상반된 매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품위있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막장’의 필수 요소들을 여럿 갖춘 <시크릿 부티크>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만큼 남들 앞에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 여성으로 분한다. 복수를 꿈꾸고, 거대한 부를 독식하기 위해 악착같이 현실에 매달리는 김선아의 연기는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안타까움을 함께 불러일으키면서 소재에 꼭 맞는 주인공의 얼굴로 시청자를 설득시킨다. 반대로 <붉은 달 푸른 해>와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김선아가 맡은 역할들은 순한 얼굴로 40대의 사랑과 갈등을 말한다.

물론 종합편성채널인 JTBC와 tvN, OCN 등이 요일과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젊은 층을 겨냥한 드라마들을 내놓으면서 트렌디 드라마와 주말 드라마의 경계는 흐려진 상태다. 하지만 20여 년 전부터 주중 밤 10시 시간대의 지상파 드라마들을 가장 인지도 높고 세련된 이미지의 배우들로 채워 넣는 관행은 거의 변하지 않았고, 이는 TV를 보지 않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든 현재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40대에 접어든 여성 배우가 지금까지 지상파와 케이블, 요일과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주연으로 캐스팅되는 사례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배우 매니지먼트 관계자 B씨는 “‘막장’과 트렌디한 로맨스 장르를 요일별로 오가며 억척스러움과 발랄함을 모두 살릴 수 있는 배우는 확실히 드물다”고 말했다. ‘삼순이’가 ‘박복자’가 되고, ‘박복자’가 ‘제니장’이 되기까지 김선아는 주연의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는다. 드라마의 흥행 여부와는 별개로, 김선아에 관한 관심을 놓을 수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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