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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없는 게 스트레스인 [슬기로운 의사생활]

2020.04.27박희아

슬기롭지 못한 세상에서 방영 중인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대한 비평.

세상에, 이토록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드라마라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어떤 에피소드든 간에 시청자 앞에 갈등이라고는 없는 세상을 보여준다. 이익준(조정석)이 아내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조차 그들의 이혼 사유만 제시될 뿐, 다음 주로 넘어가는 순간 이미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이혼했다고 말하는 게 전부다. 갑자기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돈이 없는 불법체류 노동자의 사연은 ‘키다리 아저씨’로 인해 바로 해결되고, 유방암에 걸린 채송화(전미도)의 날 선 친구는 병실 아주머니들의 따뜻한 호의 속에 웃음을 되찾는다. 가장 심각하게 그려지는 양석형(김대명)과 아버지의 갈등조차 친구들은 “이혼하시라 그래”, “너희 아버지 너무했지”라며 아무렇지 않은 척 밥을 먹으며 그를 위로할 뿐이다.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가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통해 그려왔던 세상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도 재현된다. 그들은 호의만으로도 굴러가는 세상을 말하고, 어떤 사람에게든 양면성이 존재하며, 한없이 철이 없거나 한없이 이기적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도 내가 갖지 못한 장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응답하라 1988>의 정환(류준열)과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정우)가 그랬듯,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김준완(정경호)은 딸의 결혼식 날에 아버지의 수술을 권유할 정도로 무뚝뚝하고 이성적인 사람 같지만 몰래 결혼식장에 가서 축의금을 내고 갈비탕을 먹고 오는 사람이다. 안정원(유연석)이 살리려고 기를 쓰며 장기 이식자를 찾았던 아이의 부모는 수술이 끝나고 “운 좋게” 뇌사자가 나왔다며 기뻐하기도 한다. 안정원은 힘들었던 수술에 회의감을 느끼거나 화를 내는 대신, “나에게 고마워하지 말고 장기를 주신 분께 평생 감사해야 한다”며 그들에게 깨달음을 준다.

여기까지만 보면 모든 것에 양면성이 있다고 말하는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의 눈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애정을 읽을 수 있다. 이 애정은 몇 개의 시리즈를 거쳐오는 동안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그들의 무기다. 그러나 그들의 애정이 가장 강하게 발현되는 대상인 주인공들, 즉 이익준, 채송화, 안정원, 김준완, 양석형은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서도 이름난 실력을 보여주는 뛰어난 사람들이다. 이익준이 다스베이더 모자를 쓰고 열 시간이 넘는 수술에 임한 장면은 우스꽝스럽지만 사실 이 유머는 그가 우리 곁에 절대 존재하기 힘든 훌륭한 인격과 직업 능력의 소유자임을 보여주는 장치다. 매사에 귀찮은 얼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는 양석형은 결정적인 순간 산모의 마음을 배려하는 따뜻한 의사가 된다.

이중에서도 안정원과 채송화에 대한 설정은 감독과 작가의 사고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안정원은 종교인 집안에서 어쩔 수 없이 신부가 되지 못하고 의사가 된 사람이며, 별명은 ‘부처’다. 그의 꿈은 의사를 그만두고 신학교에 가는 것이며, 이런 꿈을 지닌 사람에게 가장 제격이어 보이는 소아외과 의사다. 채송화의 별명은 너무나 뛰어난 실력과 정신력 덕분에 ‘귀신’이지만, 취미는 캠핑이고 교회에서는 격렬하게 춤을 추고, 노래를 너무 못해서 주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채송화의 경우에는 이전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인품과 실력을 갖춘 완벽한 여성 캐릭터의 구현이라는 점이 눈에 띄지만, 문제는 이 캐릭터의 설정조차 네 명의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완벽하다’고 말하는 인품과 직업윤리를 그대로 옮긴 데에 그친다는 점이다. 그가 여성으로서 고민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한 이야기는 그 어느 곳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다. 다소 작위적인 설정만이 그의 존재 이유를 뒷받침할 뿐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을 그리고 있으며, 결국 세상을 슬기롭게 사는 방법은 사랑과 호의, 선의로 서로를 감싸는 것이라고 말하려는 듯 보인다. <응답하라>가 가족이 된 지역 공동체를 그리던 방식이나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가장 위험해보이는 공간에서 존재하는 배려와 의리를 이야기하며 늘 그러했듯이. 하지만 그중에서도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그들이 제시하는 세상살이의 모습 중에서도 가장 슬기롭기 어려운 상황을 시청자에게 제시한다. 다섯 명의 의사 선생님들은 너무나 완벽해서 주변 의사 친구가 후배들에게 브리핑을 해야 할 정도고, 시청자들은 그들을 아주 조금이라고 닮을래야 닮기가 어렵다. 모든 사람에게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슬기로워질 수 있다면 세상은 이렇게 치열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래서 제작진이 작정하고 ‘노 스트레스’ 상황을 제시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과정 없이 결과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사진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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