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빌리 아일리시, 케이트 모스, 마틴 로즈 남성 패션계의 여자들

2021.02.20GQ

성별을 뛰어넘어 남자들에게 특별한 영감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패션계의 여자들.

BILLIE EILISH 뮤지션, @billieeilish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네온 컬러 헤어와 오버사이즈 룩. 그리고 족히 5~6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긴 손톱. Z세대의 대표 아이콘인 빌리 아일리시를 상징하는 몇 가지 특징이다. 로고나 패턴이 과잉된 남성복을 즐겨 입는 그녀의 시그니처 룩은 오버사이즈 티셔츠와 점퍼, 배기 팬츠, 청키한 하이톱 스니커즈. 빌리 아일리시는 헐렁한 남자 옷을 즐겨 입는 이유에 대해 자신의 몸이 성적 대상화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얘기한다. 그녀는 여성이나 남성, 어느 한쪽의 성적 코드를 패션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한 가지 성별로 단정 지을 수 없는 그녀만의 독특한 젠더리스 코드야말로 밀레니얼 세대와 패션계가 빌리 아일리시에게 꽂힌 이유임이 분명하다.

GRACE AHLBOM 포토그래퍼, @sk8rmom420

그레이스 알봄은 오랫동안 10대 소년들의 사진을 찍어왔다. 시작은 필름 카메라로 찍은 BMX 라이더 촬영이었다. 라이언 맥긴리의 어시스턴트를 거쳐 스케이터 알렉스 올슨의 브랜드 룩북을 촬영해 주목받기 시작했고, 2017년에는 <데이즈드>가 선정한 차세대 크리에이터 100인에 들기도 했다. 현재는 상업 사진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건 사진집도 꾸준히 발간하고 있다. 10대 소년의 아름다움과 그들이 느끼는 따분함에 매혹된 그레이스 알봄은 아티스트 줄리안 클리세비츠와 ‘순수함, 욕망’을 타이틀로 10대 스케이터들의 평범한 일상을 기록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JULIE RAGOLIA 패션 스타일리스트, @julieragolia

뉴욕에서 <W> 매거진 어시스턴트를 시작으로 <GQ>, <L’uomo Vogue>, <FANTASTIC MAN> 등 남성 패션 매거진 에디토리얼과 셀러브리티 스타일링으로 경력을 쌓아온 줄리 라골리아. 현재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패션 컨설턴트로 캠페인과 쇼 스타일링을 디렉팅하고 있다. 남성복이 가진 정직함에 끌려 이 자리까지 오게 된 줄리 라골리아는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컨설턴트답게 클래식하고 서정적인 스타일링을 즐긴다. 본인의 스타일 역시 남성적인 편. 여성 스타일리스트로서 굵직한 전통 남성 패션 브랜드의 스타일링을 맡는다는 건 분명 남성 패션에 대한 깊은 애정과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GRAY SORRENTI 포토그래퍼, @graysorrenti

포토그래퍼 마리오 소렌티의 딸 그레이 소렌티. 매력적인 마스크로 먼저 모델이 된 그녀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소렌티 가문의 재능을 타고난 듯 로에베 파울라 이비자 캠페인으로 그녀만의 색을 내기 시작했고, 1990년생 젊은 사진가답게 자연스러운 햇빛 아래 아름다운 청춘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담아낸다. 그녀의 카메라 앞에 서는 피사체는 주로 분방한 청년들. 터프하면서도 친절한 그레이 소렌티의 감성은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와도 잘 통한다. 그레이 소렌티가 촬영한 생로랑 캠페인과 생로랑 데님 캠페인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PARIA FARZANEH 디자이너, @pariafarzaneh

영국에서 태어나 패션을 공부하고 이란을 오가며 자란 파리아 파르자네. 이국적인 페르시안풍 패턴을 스트리트 웨어에 적절하게 녹여낸 룩이 그녀의 대표작이다. 2018년 LVMH 수상 후보에 오른 걸 시작으로 2020 S/S 런던 패션 위크에서 이란의 전통 결혼식을 테마로 선보인 쇼가 많은 이의 눈길을 끌며 두각을 나타냈다. BTS 멤버 모두가 그녀의 컬렉션을 입고 무대에 오르기도. 파리아 파르자네는 여성 디자이너가 많지 않은 남성복 세계이기에 더 아이디어가 넘친다고 말한다. 왜소한 체격에 가냘퍼 보이지만 하고싶은 게 확실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젊은 디자이너다.

BIANCA SAUNDERS 디자이너, @biancasaunders_

2019 F/W 런던 컬렉션을 통해 데뷔한 비앙카 손더스의 컬렉션엔 과잉된 남성성에 대한 도전과 자신의 문화 유산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다. 남성복을 통해 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미학에 대해 인간적이고 모방적이고 우아한 남성복이라고 말하기도 한 만큼, 비앙카 손더스의 컬렉션은 남성복의 전통적인 구조와 규칙에 여성적 면모를 균형 있게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영화감독 아키놀라 데이비스 주니어와 사진가 조슈아 우즈 같은 유색 인종 남성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패션 필름을 제작하는 등 편견 없고 아름다운 남성복을 만들고 있다.

KATE MOSS 모델, @katemossagency

케이트 모스는 2021년에도 변함없이 많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는 모델이자 아이콘이다. 특히 디올 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킴 존스와 오랫동안 특별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일상에서의 친밀함은 물론이고 비즈니스 면에서도 킴 존스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케이트 모스는 나오미 캠벨과 함께 킴 존스의 마지막 루이 비통 컬렉션의 클로징 모델로 등장하는가 하면, 킴 존스가 디올 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이후로는 매 시즌 디올 수트를 멋지게 차려입고 컬렉션에 참석한다. 지난해에 발간한 디올의 흑백 사진집 <The Dior Sessions>에서도 그녀의 모습은 발견된다. 이 촬영을 위해 킴 존스는 케이트 모스가 입을 수트를 특별 제작하기도 했다.

BELLA HADID 모델, @bellahadid

평소 나이키와 헤론 프레스톤, 1017 ALYX 9SM 같은 스포티한 스트리트 룩을 즐기는 벨라 하디드. 글래머러스한 몸매와 선이 굵은 중성적인 얼굴의 그녀는 남성복을 입었을 때 가장 편안하고 섹시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1017 ALYX 9SM, 벨루티, 베르사체, 디스퀘어드2 등 맨즈 컬렉션 런웨이에서 종종 그녀의 모습이 포착된다. 매튜 윌리엄스, 킴 존스, 버질 아블로, 헤론 프레스톤 등 내로라하는 남성 디자이너들의 컬렉션과 파티에 빠지지 않고 초대되는 그녀는 ‘절친’ 매튜 윌리엄스가 지방시 남성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이후 새로운 지방시 룩으로 한껏 차려입은 모습이 자주 포착된다.

SANDY KIM 포토그래퍼, @sandycandykim

샌디 킴은 한국계 여성 포토그래퍼이자 비주얼 아티스트다. 청년들의 자유분방함과 날것 그대로의 모습들을 필름 카메라로 담아온 샌디 킴은 슈프림의 광고 캠페인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마크 제이콥스 맨, 반스, 캘빈클라인, 언더커버, 루이 비통 등 주로 남성 브랜드나 스트리트 브랜드의 광고 캠페인을 촬영하고, 트래비스 스콧, 영 서그 같은 남성 힙합 뮤지션들의 지지를 받는 몇 안 되는 여성 사진가다. “남성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루이 비통의 프로젝트를 위해 배우 애쉬톤 샌더스 스타, 듀크 니콜슨을 모델로 영상 촬영 및 디렉팅을 맡기도 했다.

WALES BONNER 디자이너, @walesbonner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하고 2016년 LVMH 영 디자이너 어워드를 수상한 웨일즈 보너. 서브 컬처로 인식되어 왔던 흑인 문화를 새롭게 제시하고 성별과 문화의 벽을 허문 젠더리스한 컬렉션을 전개하고 있다. 자메이카계 영국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원색적인 컬러감에 의외의 클래식 테일러링을 더한 룩이 웨일즈 보너 스타일. 평소 남성복을 즐겨 입는 본인의 취향을 그대로 살려서인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지지도 상당하다. 얼마 전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와 협업한 레트로 무드의 스포츠웨어 컬렉션에서도 그녀만의 젠더리스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YOON AHN 디자이너, @yoon_ambush

칸예 웨스트, 퍼렐 윌리엄스, 에이셉 라키가 사랑하는 주얼리 브랜드 앰부시를 통해 패션계에 등장한 윤안. 그녀는 디올 맨을 이끄는 킴 존스의 각별한 파트너이기도 하다. 거대한 패션 하우스의 주얼리 디렉터로 임명되는 건 그게 누구라도 큰 이슈다. 게다가 남성 파트 디렉터가 아시안 여성 디자이너라는 건 더욱 파격적인 선택. 하지만 임명 후 지금까지 윤안이 디올 맨에서 보여주고 있는 액세서리 컬렉션에 대한 평가는 기대 이상이다. 하이 패션과 스트리트 감성의 성공적 만남이랄까.

EMILY ADAMS BODE 디자이너, @bodepersonal

2016년 뉴욕을 시작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보디 BODE를 론칭하고 2020년 S/S 시즌 파리 컬렉션 데뷔와 울마크 프라이즈 수상을 통해 본격적으로 남성 패션계에 눈도장을 찍은 에밀리 아담스 보디. 과거 시가를 묶을 때 사용하는 비단 조각을 사용하거나 1920년대 줄무늬 커튼같이 앤티크한 원단을 재사용하고, 빅토리아 시대 퀼팅, 섬세한 수공예 자수를 더한 워크 웨어를 선보인다. 이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던 남성 패션계에 색다르게 다가왔고, 환경에 대한 태도가 중요해진 현재 정말이지 반갑고 필요한 옷임이 분명하다.

KAIA GERBER 모델, @kaiagerber

2019 S/S 생 로랑 무대를 시작으로 프라다, 1017 ALYX 9SM 등 카이아 거버는 맨즈 패션 위크에서 남자 모델 사이를 가로지른다. 직각 어깨와 어마어마한 비율, 도시적인 분위기. 카이아 거버가 가진 중성적 매력은 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디자이너들에게 언제나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여성 컬렉션에서도 그녀의 모습은 마냥 예쁘기만 하진 않다. 쿨하고 멋지다는 표현이 훨씬 잘 어울린다. 평소 파파라치 컷이나 SNS에서 보여주는 매니시한 오버사이즈 수트와 스포츠웨어 스타일링 등 남성복을 제대로 즐기는 태도에서도 그녀가 남녀 구분을 넘어 동시대 모두의 패션 아이콘임을 확인할 수 있다.

MARTINE ROSE 디자이너, @martinerose

따뜻한 미소를 가진 디자이너 마틴 로즈. 반면 그녀가 선보이는 컬렉션은 온통 쿨한 스웨그로 넘친다. 언더그라운드, 레게, 유스 컬처에 대한 관심으로 탄생한 독특한 비례와 실루엣은 남성복 세계에 신선함을 가져왔다. 마틴 로즈는 남성 패션이 정해진 규칙이나 룰이 더 많기에 그만큼 틀을 깰 수 있는 기회도 많다고 말한다. 2021 S/S 컬렉션 역시 전형적인 남성성을 게이 문화, 여성복과 혼합하며 패션의 성 관념을 더 확장시켰다. 마틴 로즈 같은 룰 브레이커가 있기에 남성복 신의 경계도 계속해서 넓어지고 있다.

    패션 에디터
    이연주, 김유진
    어시스턴트
    박지윤, 김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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