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있어도 자꾸 더 보고 싶어지는 여자애, 정은채.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이 일을 하면서 느낀 건데, 다 시기가 있고 때가 있는 거 같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운이 좋다는 이야기를 좀 많이 듣기도 하고요. 스스로 안절부절 못하고 시간에 쫓기는 거 같고 그러면 결국에는 좋은 게 안 와요. 마음만 복잡해지고요. 좋은 사람을 만나는 시기라든지, 나한테 잘 맞는 작품이라든지, 그런 게 오는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눈은 못 속이는 것 같아요.
누구 눈을 못 속여요? 본인이 쫓기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결국엔 타인들 눈에 다 비춰지는 것 같아요. 카메라는 또 훨씬 더 솔직하게 그 모습을 담고요. 그래서 평소에 내가 어떻게 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이런 것들이, 분명히 캐릭터로 영화 속에서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내가 안정을 찾아야 보는 사람도 안정을 찾죠. 그런 힘을 저는 약간 믿는 편이에요.
해원이 “연기는 그냥 사는 거야”라고 했죠. 정은채는 어떻게 사나요? 집에 있을 땐 뭐 입고 있어요? 하하하. 집에 들어가자마자 원피스 파자마 입어요. 바로 무장해제. 어떤 날은 정말 생각 없이 있어요. 밖에선 일을 하고 사람들 계속 만나야 되잖아요. 그걸 즐거워하고 흥미로워하는 편이긴 한데, 가끔은 소음 속에 있는듯한 느낌을 받아서 집에 있을 때는 음악도 안 듣고 정말 적막 속에 있어요. 창도 다 닫고. 그럼 정말 조용하거든요. 그 고요 속에 가만히 있으면 정말 좋아요.
밤을 좋아하겠네요. 네. 밤이요. 낮은 뭔가 너무 많아요 사람도 너무 많고 차도 너무 많고. 밤 되면 정리가 되는 느낌이 있잖아요. 보고 싶은 좋은 것들만 볼 수 있기도 하고요. 달도 있고, 별도 있고, 하늘 색깔도 예쁘고….
제일 좋았던 밤이 있었나요? 작년 크리스마스 밤요. 그날 친구가 지방에서 올라와서 저희 집에 있었거든요. 좀 놀다가 그 친구는 졸리다고 먼저 잠들었어요. 그날 눈이 왔어요. 정말 예쁘게. 혼자 덩그러니 집에 있기가 너무 아까운 거예요. 혼자라도 뭔가를 해야 될 것 같은 거에요. 그래서 그 쪼리 끌고 위에 옷 아무거나 두껍게 걸치고 창문 열고 노래 들으면서 쭉 공항까지 운전했어요. 그날 밤이 진짜 기억에 남아요.
낮이라면 어느 동네로 갔을까요? 광화문이요. 종로 쪽도 되게 좋아하고, 북촌도 좋아해요. 잘 걷고, 걷는 걸 좋아해서, 날씨 풀리면 베낭 메고 잘 걸어 다니는 편이에요.
요즘 갖고 싶은 건 뭐에요? 좋은 시나리오. 요즘 고민이 다음 작품 뭘 해야 할지….
그 생각의 끝엔 뭐죠? 될 대로 되자. 하하. 뭐든 하겠지, 설마 굶겠어?
먹고사는 문제가 되면 재미없을 수도 있잖아요? 지금 하는 일이 재미없어지는 날도 당연히 올 것 같아요. 그게 빨리 올 수도 있고 의외로 그 시기가 천천히 올 수도 있고요. 그 기간이 짧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요 잠시 쉬었다가 다시 해야죠. 오히려 뭔가 익숙해지고 노련해진다는 게 좀 무서운 거 같아요. 제가 익숙하게 잘하면 작품의 완성도는 높아지겠지만, 편해지고 익숙해지면 재미가 없을 것 같거든요.
얼마나 먼 미래까지 생각해보나요? 먼 미래는 크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하루하루가 꽉 차 있기 때문에, 거기에만 좀 충실하려는 편이고, 덤덤하게 생각해요.
2년 전 인터뷰 때, 스스로 생각하는 배우로서의 강점을 물었어요. 답을 기억해요? 아,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간이 큰 것. 아하하. 제가 진짜 그런 상스러운 단어를? 근데 지금 제가 생각한 거랑 비슷해요. 그게 어찌됐든 저는 좀 내던질수 있는 용기가 아직도 많아요. 그래야 재밌죠.
- 에디터
- 손기은
- 포토그래퍼
- Mok Jeong Wook
- 스탭
- 어시스턴트/ 이채린, 이상민, 메이크업/신애(고원), 헤어/김선미(고원), 스타일리스트/ 정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