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희를 오래된 집에서 만났다. 그 예쁜 집엔 오가는 사람은 있어도 사는 사람은 없었다.
하이킥 시리즈 중에서 <하이킥 3 : 짧은 다리의 역습>을 제일 좋아해요. 진짜요? 거짓말! 하이킥 중에서 <하이킥 3>를 제일 좋아할 리가 없는데?
김병욱 PD의 시트콤 중에선 <순풍 산부인과>가 제일 좋고요. 저는 <똑바로 살아라>가 최고로 좋아요. 근데 왜 <하이킥 3>를 좋아해요?
김병욱 PD의 일일 시트콤은 항상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삼대가 아주 넉넉한 집에 사는 설정이에요. 하지만 <하이킥 3>는 대부분 어렵게 살거나 기득권을 포기한 사람들이 주인공이죠. 김병욱 PD의 일일 시트콤 중에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요. 그 점이 흥미로워서 챙겨 봤어요. 2화 때 당신이 선배(박하선)가 사주는 고기를 먹으며 왜 취업이 안 되는지 모르겠다며 아랫입술을 파르르 떨죠. 그 연기가 진짜 같았어요. 긴장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맞아요. 딱 그 장면이 첫 촬영이었어요.
6화 때, 당신의 엉덩이 노출 때문에 <하이킥 3>가 꽤 주목받았어요. <하이킥 3> 초반엔 개국공신이었는데 진행될수록 분량이 많이 줄었어요. 너무 아쉬웠어요. 분량이 적다 보니 결국 중반부터 캐릭터가 힘을 잃었죠. 갈 길도 잃고. 그러다 후반부에 보건소 쪽 이야기로 한 번에 몰아줬어요. <하이킥 3>는 저한테 양날의 검인 것 같아요. 그걸로 인지도와 대중성을 얻었지만 끝나고 한 3개월 동안 사람 만나기도 싫었어요. 거의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어요.
많이 힘들었나 봐요. 모든 게 감당하기 힘들었어요. 연기에 대한 혼란이 있었어요. 연기에 대해 적나라한 평가를 들으면서 고민도 많아졌죠. 게다가 연기를 하면서 긴 시간 동안 제 감정을 소비해본 적이 없는데. 너무 오랫동안 몰입했어요. 짝사랑 에피소드에 최선을 다했는데도 대중들이 보기에는 그 갇힌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요. 그래서 괴리감이 더 컸어요. 에너지를 더 쏟고 싶은데 대본에서는 제가 자꾸 누락되는 것들이 보이니까 힘도 안 생겼죠. 근데 배우는 투정할 수 없으니까 받아들여야 했어요.
배우는 선택을 ‘받는’ 직업일까요? 맞아요. 주어지는 걸 열심히 할 뿐이에요. 왈가왈부할 수 없어요. 배우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도에 어긋나는 일 같아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나요? 아뇨. 순간적으로 화가 나면 다 얘기하는 스타일이에요. 하지만 한 번 말하면 다 까먹어요. 꽁하지 않아요.
O형이죠? 별자리는? O형 맞아요. 별자리는 물병자리.
물병자리는 굉장히 말을 잘 한다고…. 에이 저 낯을 정말 많이 가려요.
고향은 어디예요? 서울이요. 계속 부모님이랑 가양동에서 살았어요.
방에 있는 창문은 커요? 제 방 창문이 꽤 커요. 오늘 아침 7시가 다 돼서 잠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관찰해요. 햇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천천히 파랗게 물들어요. 그리곤 서서히 새소리가 들려요. 밤에는 개구리, 귀뚜라미 울음소리도 들리고요. 집 앞이 전부 나무예요. 근데 집에서 뭐가 보이는지는 정말 중요해요. 어려서는 그걸 몰랐어요. 이제 스물다섯이니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자연이 주는 안정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가양동 진짜 좋아요. 가양동으로 이사 오세요!
어제 <반두비>를 다시 봤어요. 그 앳된 고등학생이 어느새 이십 대 중반이 되었네요. 정말 많이 변했어요. 그때는 굉장히 ‘다크’한 아이였어요. 하지만 대중들이 원하는 건 어두운 모습이 아닌 것 같아요.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을 제가 좋아하듯이, 저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5년 동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밝은 에너지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했어요.
우울한 에너지가 살아가는 데는 좋은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있어도, 연기할 때는 다르지 않을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우울한 감정이 사라지진 않아요. 저의 천성인 것 같아요. 하지만 연예인이니까 온전히 드러내놓고 살아갈 수는 없겠죠? 그래도 솔직한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도시의 법칙> 때도 24시간 카메라가 돌아가니까 뭘 속일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다른 분들 방송을 볼 때, 내가 너무 솔직하게 방송하는 건 바보 같은 건가? 저렇게 포장을 해줘야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숨길 수 있어요? 평생 배우로 살면서는 자신 없어요.
<도시의 법칙>은 뉴욕에서 20일간 사는 예능 프로그램이잖아요. 하지만 느낌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워요. <도시의 법칙> 진짜 좋지 않아요? 사람들이 많이 안 봐서 속상해요.
어제(8월 6일) 방송의 엔딩이 인상적이었어요. 봄인데도 뉴욕에 갑작스럽게 눈이 왔죠. 내레이션으로 “오늘은 4월 16일입니다” 할 때는 마음이 참…. 저도 깜짝 놀랐어요. 너무 먹먹했어요.
지금까지 여행한 곳 중에서 자주 가고 싶은 곳이 있어요? 일본 마쓰야마요. 그곳에 노천탕이 있는데, 그 앞이 전부 숲이에요. 산속에서 목욕하는 기분이 끝내줬어요. 일단 한국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편하기도 하고요. 참, 저 8월 10일부터 인도네시아로 봉사활동 가요. 슬럼가인데 홍수가 자주 난대요.
봉사활동 자주 가요? 가끔요. 이전에 <하이킥 3> 끝나고 치앙마이에 갔는데 그곳에서 꿈이 생겼어요. 치앙마이 코끼리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영어 열심히 배워서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코끼리 돌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코끼리 엄청 좋아해요. 코끼리는 안정감을 줘요.
지금 떠오르는 세 동물을 말해보세요. 기린, 사자, 하마. 이거 뭐예요?
재미로 하는 심리 테스트예요. 첫 번째는 남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 두 번째는 자신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 세 번째는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래요. 네? 에이, 전 하마가 되고 싶지 않아요. 신빙성이 없는 것 같네요.
두 번째가 되고 싶은 나이고, 세 번째가 진짜 나라고 알려준 사람도 있어요. 전 사자도 아닌데요? 하하. 사자처럼 되고 싶지도 않아요. 요즘 마음이 너무 여려진 것 같아요. 눈물이 왜 이렇게 많아졌는지.
왜요? 저는 원래 진짜 안 울었어요. 눈물연기 할 때마다 제 자신이 신기할 정도로요. 한데 <도시의 법칙>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거예요. 언제부턴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보면서 혼자 펑펑 울어요. 다큐멘터리 <사랑> 아세요? 새벽에 잠 안 올 때 혼자 보면서 울어요. 어렸을 때는 갇혀 살잖아요. 학교, 집, 부모님의 울타리. 이제 사회에 던져지니까, 부모님이 더 이상 해줄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요. 전부 알아서 하죠. 이제 혼자 감당해야 해요. 엄마 아빠에게 속상하다고 말도 못해요. 더 속상해하시니까. 그러다 보니 점점 마음이 한도 끝도 없이 물러져요.
맏이 같아요. 딸 셋 중에 맏딸이에요. 부모님한테 아들 같은 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했어요. 일 시작하면서 부모님 노후 자금도 모아놓는 식이었는데. 작년부터 그 생각을 버렸어요. 부모님께서 진짜 원하는 건 살가운 딸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애늙은이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거예요. 어렸을 때는 어른스러워야만 되는 줄 알았어요.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야 사람 구실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닌 것 같아요. 나이에 맞게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일탈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가고 싶으면 어디든 훌쩍 가고.
차 있어요? <하이킥 3> 끝나고 아빠가 사 주셨어요. 조그마한 하얀색 기아차인데, 이름을 잘 몰라요.
여전히 그 차를 타나요? 음…사고 나서 좋은 걸로 바꿨어요. 앞으로 서른 살 넘을 때까지 타자는 마음으로. 좀처럼 차를 잘 타지 않으니까 한번 사면 오래 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덕분에 열심히 일해야 해요. 일 하느라고 탈 일이 없어서 잘 모셔두고 있어요.
차는 취향을 나타내는 것 같아요. 우리가 살면서 그 정도로 큰 지출을 하는 경우는 가끔밖에 없으니까요. 사실… 차요… 사고도 사고지만, 무시당해서 좋은 걸로 샀어요. 열 받아서요. 지금은 벤츠 쿠페 타요. 전 작고 귀여운 일본 차 사고 싶었는데 주변에서 말렸죠.
무시를 당해요? 많이 당했어요. 자격지심일 수도 있어요. 저 혼자 그렇게 느낀 것 같기도 하고요.
[2편에서 이어집니다.]
- 에디터
- 양승철
- 포토그래퍼
- 김참
- 어시스턴트
- 최완, 최영
- 헤어
- 김진화(애브뉴준오헤어)
- 메이크업
- 길경아(애브뉴준오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