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내가 알던 친구들은 모두 가버렸네

2015.12.07이충걸

오래 전  당신에게 썼던 편지.  그러나 지금 마음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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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삶이 확장된다. 모두가 같다. 하지만, 오래 된 친구는 만들 수 없다. 새 친구는 언제든지 만들 수 있지만. 아이들처럼 우정은 쉽다. 누군가를 만나 같이 놀고 마음을 여는 건 간단하다. 하지만 어떤 나이에 다다르면 ‘단순히 아는 사람’과 우정을 나눌 순 없다. 어렸을 때 들어왔던, ‘평생을 가도 다시 얻지 못할’ 고전적이고도 낡아서 차라리 아름다운 의미의 친구를 만들 기회는 늘 찾아온다. 그러나 그건 진짜 친구를 하나 더 갖고 싶다는 망상으로 스스로에게 가하는 기만과 같다.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당신도 안다. 이러저러해서 누구를 만난다. 일로, 헬스클럽에서, 또 술자리나 매끈매끈한 파티에서. 통성명을 하고 괜한 이야기를 하며 물길을 튼다. 이렇게 웃는 게 얼마만일까라는 생각도 든다. 어쩐지 이 사람하곤 친구가 될 것도 같다. 그러나 그럴 일은 없다. 잠깐 한눈을 팔면 그들은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처럼 금세 사라져 버린다.그냥 그렇게 된다. 잘난 부분을 최대한 어필하고 이메일 주소도 교환하고 계속 연락하다 결국 술 한 잔 하게 돼도, 그는 아는 사람 중 한 명일 뿐이다. 그가 정말 맘에 들 수 있고, 친하게 지낼 수도 있지만, 진짜 우정을 나누는 나이가 될 순 없다.

친구는 죽을 때까지 축적할 수 있는 돈이나 여자, 집과는 다르다. 친구는 퇴화하진 않지만 유한한 존재다. 더 이상 새 친구를 만들 수 없는 날이 오면, 이미 알고 있는 친구를 잃는 일밖에 남지 않는다. 언제일까? 30대쯤? 그 후에도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 40대가 되어 만나는 사람들은 나의 과거를 너무 많이 놓쳐버린 게 아닐까? 내 인생엔 그 사람 없이 일어난 일들이 너무 많다. 그는 모든 해프닝을 목격한 친구가 아니다. 그가 놓친 부분을 용서해 주면서 새로운 우정을 쌓기에는 에너지가 모자란다.

여자들은 우정의 권력 중추 그룹에 합류할 수 없다. 남자는 유약하고 비루한 본질을 들키게 될까 봐 그들을 피하는 비굴과 익숙하기 때문이다. 닳아빠진 헬무트 랭을 입고 돌아다니며 길바닥에서 객사하는 날까지 연애하고 새 여자를 찾고 번식하지만, 분출하는 욕구로 배회하는 여자와의 관계완 달리 우정의 지속성은 내 행동에 달려 있지 않다. 동반자는 그런 식으로 좋아할 수 없다. 친구는, 최상의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 형제처럼 신성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친구는, 센티멘털한 유대감에 종속되기엔 내가 너무 우월하다는 착각  때문에 우정을 피할 때, 주가가 최악일 때, 내 인생과 남의 인생을 함께 망칠 때조차 날 용납해주는 사람이다. 내가 식물 인간 상태라고 해도 성교 불능이 아니란 걸 알고, 내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해도 여전히 나에게 선물을 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이상 대화할 수 없을 때 내 인생을 대신 대답해주며, 내가 매장될 때 말로 같은 침침한 눈을 감겨주는 사람이다.

여자들은 왔다가 간다. 아내도 언젠가는 떠날지 모른다. 우린 안다. 섹스는 헐거운 게임으로 전락하고, 로미오와 줄리엣도 남매가 된다. 시간이 지나면 부모와 형제와 아이들과도 멀어진다. 운이 좋으면 양친(그들이 죽기 전에)과 아이들(당신이 죽기 전에)에게 만회할 기회를 얻겠지만, 부모는 죽고, 아이들은 떠나며, 결혼엔 실패하고, 일은 망친다. 그러나 남자가 삶 속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일 때문에 공황상태가 될 때, 그 추운 본성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친구뿐이다.

친구를 위해 시간을 내지 않는 남자는 진짜 남자가 아니다. 그는 여자의 치마자락 속을 맛보는 게 더 중요한 부류다. 힘들다는 거 알고, 바쁘다는 거 알지만, 친구란 누구보다 지원을 아끼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임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여자가 떠났을 때 누구에게 전화를 걸까. 아이가 아프거나 양친의 임종 때 어깨를 토닥여 줄 사람은 누구인가. 직장을 잃었을 때 지갑을 여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나 아무리 이 경이로운 진실을 불러들인다고 해도 나에겐 약속 없이 그 집 대문을 두들길 친구는 없다. 나는 너무나 부정적으로 예의 바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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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이충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