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김연경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2016.12.23유지성

리우 올림픽 여자 배구 대표팀 주장이며, 페네르바체의 에이스인 김연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터키는 몇 신가요? 오후 12시예요. 밥 간단히 먹고 전화 받았어요.

경기가 없는 날이죠? 어제 경기가 있었는데, 졌죠.

지고 나면 어떤가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안 좋은 생각이 들어서 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또 다른 경기를 자기 전에나 꿈속에서 계속 뛰고 있어요. 잘 못했던 부분에 대해 계속 생각하면서.

꿈속에서의 경기는 이기나요? 실제 경기에서 잘 안 됐던 부분을 다르게 대처하긴 하죠.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김연경도 아직 한 경기 한 경기가 맘에 걸리나요? 힘겨울 때가 있어요. 계속 돌이켜 생각하는 게 저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도 알고요. 하지만 나중엔 이런 순간들도 다 그리워질 거니까, 지금은 즐기려고 해요.

국가대표 경기에선 더욱 그렇죠? 게다가 주장이니, 감정을 100퍼센트 표출하기도 어려울 텐데. 다른 선수들의 표정을 많이 봐요. 저 선수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다운된 선수가 있으면 그걸 끌어올리는 것도 제 몫이고요. 물론 저도 화나거나 슬프면 표출하고 싶을 때가 있죠. 하지만 그게 팀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좋아, 좋아.” 지난 리우 올림픽에서는 야단치기보다는 격려하는 주장이었어요. 그렇기도 한데 심한 얘기도 많이 해요. 동료가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면 막 다그칠 때도 있고. 후배 선수들이 무서워하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실제 경기보다 훈련 때 더 그렇겠죠? 너무 직설적으로 얘기하니까 선수들이 제 주위에 잘 안 와요. 선배들도 가끔 힘들어하고. 그래도 언닌데 자제해 달라, 그러죠.

팀에 나 같은 선수 한 명만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하나요? 모르겠어요. 전력이 더 좋아지거나 재미있긴 할 것 같은데, 감당이 될까요? 싸울 것 같기도 하고.

김연경은 좋은 리더인가요? 과연 내가 선수들을 잘 이끌고 있나 의문이 들 때도 많아요. 이건 제가 평가하기보단 다른 선수들의 말을 듣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어떤 리더가 좋은 리더인가요? 때에 따라 강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선수의 개별적 성향을 파악할 줄도 알아야 하고…. 그러다 보면 가끔 외로운 위치에 설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쉽지 않죠.

역시 리더는 실력으로 말하는 걸까요? 중요하긴 하죠.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가 얘기하면 콧방귀 뀌겠죠. 너나 잘해라.

코트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뭐예요? 후회 없이 뛰고 나오자, 이때까지 고생한 것, 힘들 때 생각하자. 보편적인 얘기들이에요.

리우 올림픽이 끝나고, 귀국 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선 목이 완전히 쉬어 있었죠. 제가 소리치고 그러면 저를 포함한 모든 선수의 눈빛이 바뀌는 걸 느끼니까.

상대를 도발하기도 하나요? 그런 건 크게 없어요. 오히려 상대 선수들이 시비를 걸어요. 그러면 “너 너무 업 됐다. 좀 자제해 달라” 얘기하죠. 심판한테 가서 경고 주라고 하거나. 안 그러면 우리 선수들이 괜히 기 죽을 수도 있잖아요.

특유의 ‘비행기 세리머니’ 같은 건 의도적으로 보이기도 했어요. 분위기예요. 그러면 다들 덩달아 신나니까.

모두가 그렇게 ‘파이팅’ 넘쳤다면 어땠을까요? 그게 100퍼센트였을 거예요. 선수마다 성격이 있잖아요. 즐기고 있었을 거예요.

즐길 수 있나요? 쉽지 않지만, 코트 들어가기 전에 항상 제 자신한테 말해요. 오늘도 즐기자. 저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8강 네덜란드 전 패배 후엔 꽤 무덤덤해 보였어요. 그 자리에선 그랬죠. 사람들 앞에서 감정 표현을 하는 편은 아니라. 한편으로는 멍했어요. 끝난 게 맞나, 내일이라도 기회가 있는 건 아닌가. 그러다 라커룸 들어가니까 진짜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좀 울었죠.

“한 경기만 못하면 떨어지는 선수, 잘 하면 ‘갓연경’이라 불리는 게 부담스러웠다”고 했죠. 사실 저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 저를 빗대서 하고 싶은 말을 한 거예요. 하루 잘하면 신처럼 받들다가, 못하면 그 선수를 땅바닥까지 끌어내리니까. 그런 광경을 보는 게 힘들었죠. 예를 들면 박정아 선수라든가.

김연경 선수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었나요? 많은 위로를 해주려 했지만, 그게 큰 도움이 되진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어린 선수들이고, 다음 세계 대회에서는 분명히 사람들을 놀라게 할 거예요.

젊은 김연경이 팀을 4강으로 이끈 런던 올림픽 이후, 세간의 기대가 너무 커진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다르죠. 다른 선수들이랑 비교하면 안 돼요. 다들 잘했어요.

런던의 김연경과 리우의 김연경. 어떻게 달랐나요? 글쎄요. 런던에선 아무것도 무서운 게 없었어요.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대신 리우에선 여유가 있었고, 경기를 보는 시야가 달라졌죠. 현실적이 됐달까.

다음 도쿄 올림픽에 대해서도 생각하나요? 저한텐 마지막 기회죠. 리우도 마지막이라 생각했지만, 도쿄는 마지막 마지막. 어떻게든 메달을 따고 싶어요. 이번에 리우를 경험한 젊은 선수들이 그때 20대 중반이 돼요. 지금보다 더 강하겠죠.

협회의 지원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죠. 통역까지 직접 했다면서요? 협회 상황이 열악하다고는 하지만 관심조차 없는 것 자체가 문제죠. 결국 선수들이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 많아요. 일본은 벌써 도쿄 올림픽에 대한 계획이 다 정해져 있거든요.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해요.

그래도 확실한 게 하나 있죠. 주장 김연경. 무슨 일이 없다면 그렇겠죠. 조금 더 성장해 있을 거예요.

현 소속팀 페네르바체에선 주장이 아니죠. 리더가 아닌 김연경, 어떤가요? 그래도 부주장이에요. 지금 주장이 이 팀에서 굉장히 오래 뛴 선수라 다들 우러러봐요. 가끔 편해요. 여기서까지 주장이 아니라.(웃음)

    에디터
    유지성
    포토그래퍼
    Gettyimages / 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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