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옥자’에 관해 당신이 궁금한 몇 가지

2017.05.22GQ

옥자는 돼지인가 하마인가? <옥자>를 넷플릭스로 봐야 하나 극장에서 봐야 하나? 등등 당신이 <옥자>에 대해 궁금한 몇 가지,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

<설국열차> 개봉 후 봉준호 감독은 다음 이야기로 “산골 소녀와 돼지의 우정”을 다룰 예정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대작을 찍은 후 쉬어가듯 소품을 만들 모양’이라 어림짐작했다. 그러나 <옥자>는 <설국열차>보다 200억 원쯤 더 비싼, 제작비 600억 원짜리 프로젝트였다. 할리우드 스타가 총출동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데다 감독 스스로 “첫 번째 러브스토리”라 밝혀 궁금증을 키운 <옥자>가 제70회 칸영화제에서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1. ‘옥자’는 돼지인가 하마인가?
‘옥자’가 돼지인지 하마인지는 영화가 공개된 후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영화에서는 유전학적으로 돼지(정확히는 ‘슈퍼 돼지’)라고 천명하고 있지만 ‘하마론’과 ‘코끼리론’도 상당하다. <인디와이어>의 시니어 평론가 데이비드 에를리히는 자신의 트위터에 “돼지보단 하마”라고 썼고, 틸다 스윈튼은 <더랩>과의 인터뷰에서 <설국열차> 이후 봉준호 감독이 “하마와 소녀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다음 프로젝트를 설명했다고 한다. 일단 생김새는 하마와 더 가깝다. 이 와중에 봉준호 감독은 바다소인 “매너티를 참고해 옥자를 만들었다”고 설명해 혼란을 더 가중시키고 있다. 매너티의 순하고, 어떻게 보면 억울한 듯 보이는 표정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물론 돼지, 하마, 코끼리의 특성 역시 더해졌다고 하니 옥자의 정체성은 이들 모두와 연결돼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옥자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호랑이 ‘리처드 파커’를 만들어낸 ‘신의 손’ 에릭 얀 드 보어에 의해 태어났다.

2. <옥자>는 넷플릭스로 봐야 하나 극장에서 봐야 하나?
칸영화제 기자 시사에서 넷플릭스 로고가 뜨자 야유와 환호가 동시에 나온 건, 칸이 얼마나 전통을 그러니까 ‘극장’을 중시하는지를 보여준다. 프랑스극장주협회는 애초 온라인 플랫폼인 넷플릭스 영화를 경쟁 부문에 초대한 것 자체가 문제라며 영화제 측에 거센 항의를 하기도 했다. 재밌는 건 막상 공개된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맛을 느낄 수 있는 ‘극장용’ 영화라는 점이다. 옥자와 미자(안서현)가 살고 있는 강원도 첩첩산중의 깊이를 느끼기 위해, 서울 도심의 골목골목을 가로지르는 액션 추격전의 스릴을 만끽하기 위해선 극장 스크린, 좀더 욕심낸다면 아이맥스 스크린으로 봐야 좋다. 게다가 <옥자> 영상미는 <세븐>, <에이리언 4>를 촬영한 세계적인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가 담당했다. <가디언>은 “<옥자>를 아이패드로 보는 건 끔찍한 일”이라고 쓰기도 했다. 물론 ‘봉테일’이라 불리는 봉준호 감독의 세밀한 미장센을 거듭해 비교 감상하고 싶다면, 그리고 누워서 영화 보는 걸 즐기는 관람자라면 넷플릭스로 반복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3. <옥자>는 어린이용 영화인가?
칸에서 <옥자>가 공개되자마자 여러 영화가 소환됐다. 누군가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를 얘기하고 누군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을 떠올렸다. “로알드 달이 생각난다”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알다시피 그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팀 버튼), <판타스틱 Mr. 폭스>(웨스 앤더슨), <마이 리틀 자이언트>(스티븐 스필버그)의 원작자다. 한 기자는 <옥자>의 서사가 “어린이용이라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옥자>는 어린이용 영화일까? 아마도 <옥자>는 ‘잔혹 동화’ 혹은 ‘어른을 위해 쓰인 동화’라고 분류하는 게 정확할 거다. <옥자>는 장르에서도 ‘SF 어드벤처’ ‘액션 코미디’ ‘판타지 모험극’ 등 마구잡이로 분류되고 있다. 그만큼 <옥자>는 ‘혼종’에 가까운 영화란 의미. 영화를 보고 있자면 스필버그는 물론이고 에밀 쿠스트리차를 떠올리지 못할 까닭도 없단 생각이 절로 든다. 게다가 <러브 액츄얼리>, <괴물>의 한 장면이 생각나기도 한다.

4. 칸에서 <옥자>에 대한 반응이 엇갈린 이유는 무엇일까?
봉준호 감독은 <옥자>에 대해 ‘소녀와 돼지의 우정’ 혹은 ‘러브스토리’라고 줄곧 말해왔다. 이 말은 옳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자본주의를 비꼬는 우화로도 읽힌다. 틸다 스윈튼 역시 봉준호가 <옥자>에 함께할 것을 제안하며 “소녀와 돼지의 헌신적인 사랑과 함께 자본주의의 흉악한 속임수에 관한 이야기를 해줬다”고 말한 바 있다. 게다가 영화는 이 주제를 우회하지도 않는다. 신자유주의적 세상을 상징과 은유로 은연중에 비판하는 게 아니라 거의 ‘직설 화법’에 가깝게 대놓고 비웃는다. 캐릭터 역시 각자가 대변하는 인물상을 전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칸에서 공개된 후 <옥자>에 대한 언론 반응이 엇갈린 건 이 직설 화법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에서 오는 듯하다. 교훈을 날것 그대로 전하겠다는 봉준호의 의도를 이 영화의 문법으로 믿는다면 점수가 후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주제도 인물도 납작하다는 평을 피하긴 어렵다. 칸 현지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참고하는 <스크린 인터내셔널>의 평점은 4점 만점에 2.3점. 반면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는 가장 높은 점수인 4점 만점을 줬다.

5. <옥자>를 본 이후 과연 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
“자본주의가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 고통을 그리고 싶었다”는 봉준호 감독의 얘기처럼 <옥자>는 육류산업의 대량 생산화와 GM(유전자 변형) 푸드를 정면에서 반박한다. <옥자>는 ‘블록버스터’ 대신 ‘베지터리언버스터’라고 불리기도 한다. 영화에는 폴 다노가 리더로 있는 동물해방전선(ALF, Animal Liberation Front)이 등장해 옥자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데, ALF는 1960년대 영국에서 조직된 실존하는 단체다. 봉준호 감독은 자료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미국 워싱턴에서 ALF를 만나기도 했다고. 감독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인간과 동물의 평화로운 공존을 고민”한다. 그렇다면 <옥자>를 본 후에 고기 맛이 싹 달아날까? 일단 미자를 연기한 안서현은 “그렇다”고 말한다. 평소 돼지고기를 즐겼지만 영화 촬영 후 육식에 대한 식욕이 현저히 줄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뼛속 깊이 ‘육식주의자’인 사람들에게 <옥자>의 경고는 강력하지 않다. ‘유전자 조작이 아닌 돼지는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떨치기는 어렵겠다.

    에디터
    글 / 박아녜스(월간 책임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