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다 당해주잖아, 호구잖아” 김영철

2017.05.23장우철

틈을 주지 않는다. 프로란 그런 것일까. 김영철은 만나자마자, 묻기도 전에, 숨 돌릴 필요 뭐 있냐는 듯이 바로 시작한다. 그것은 자기 자랑. 시작은 있으되 끝은 따로 없다. “<인기가요> 나간 거 봤어? 방송 3사 음악 프로 곧 그랜드슬램이잖아. <스케치북>? 그건 벌써 스케줄 잡혔고. 나 이번에 <최고의 사랑> 들어가. 몰라? 그럼 ‘따르릉’ 영어 버전 들어봤어? 지금 라디오 청취율 완전 올라가고 있잖아.”

니트와 레이스 칼라 장식은 모두 카루소.

어서 오세요. 그럼 시작하시죠. 뭘 시작해? 내 얘기? 근황 토크? 나 이번에 문자 받고 되게 신났잖아요. < GQ >에서 “괜찮은 날짜로 촬영 스케줄 빼주세요”, 그러는데 아, 다시 때가 됐구나, 했지. “따르릉, 따르릉, 내가 니 오빠야~” 잘 보고 있나?

글쎄요, ‘따르릉’이 김영철의 역사에 멋진 대목일까 생각해보게 되는데…. 그래? 그럼 <아는 형님>은?

음, 그 프로그램을 지지할 수 없는 이유가 제게 좀 있는 편이라…. 그럼 라디오는? 이번에 전체 5등 했잖아요. 6개월 만의 쾌거잖아. SBS 내에서는 <컬투쇼> 다음으로 2등, 근데 동시간대로는 3등이야. 김어준을 꺾어야 되는데, 이제 대선 끝났으니까 흐흐. 노홍철이랑은 0.2차이야. 걔는 5.8, 나는 5.6. 센터장님이 1년 걸린다고 하더라고. TV는 갑자기 팍 치고 올라가기도 하는데 라디오는 청취율 조사를 1년에 네 번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한꺼번에 확 올라가는 경우가 없대. 근데 그걸 내가 한 거야. 전체 5위. 무려 10계단 상승. 완전 기염 토한 거지. 라디오로 잘나가는 거 재미없어? 그럼 뭐, 성대모사해? 새로운 걸로 안철수 후보랑 윤여정 선생님 거 있는데. (잠시 <윤식당>의 윤여정 성대모사) 이거 괜찮아? 웃겨? 근데 뭐야, 텔레비전 잘 안 보는 줄 알았더니 <윤식당>은 잘 아나 보네.

죄송합니다. 근데 진짜 죄송하진 않아요. 이런 것도 김영철이라는 캐릭터와 관계가 있으려나요? 내가 만만한 거지.(웃음) 다 당해주잖아. 호구잖아. <아는 형님> 게스트들이 나한테는 “뭘 쳐다봐~” 이럴 수 있어요. ‘비희망 짝꿍’으로 다 나를 쓰잖아. 민경훈 쓰면 팬들이 난리날 것 같고, 김희철도 그렇고, 강호동 쓰면 혼날 것 같고, 이상민 쓰면 진짜 같고.

하하. 누가 내 이름을 쓰면 “역시 넌 트렌디하구나~” 이렇게 받아요. 얼마 전에 강타가 나를 쓰더라고. “역시 트렌드 세터! 모니터하고 왔군!” 그랬지. 뭐 이런 것도 내가 얻어먹는 고기지.

발렌시아가 재킷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근데 그냥 ‘호구’와는 좀 달라요. 오히려 어떤 믿음이 있는 것 같은데, 소위 긍정의 에너지가 뼛속까지 있는데 그게 또 소수자 정서와 맞물리면서 독특한 지점이 생기죠. 음, 나를 이렇게 또 정리하게 해주시네. 얼마 전 <조선일보>랑 인터뷰하는데 기자가 그러더라고. ‘을’의 감성을 제일 잘 표현하는 연예인 같다고.

그러다 역전하죠. 김희애 씨 성대모사할 때. 사실 그건 여느 성대모사와 다른 장르로 봐야 할 것 같아요. 흉내라기보다 풍자나 조롱에 더 가깝죠. 늘 ‘호구’ 같던 김영철이 누구나 어려워하는 상대를 희화화한다는 이상한 쾌감이 있죠. 그래서 김희애 씨 흉내는 처음에 할 때부터 상대가 참 싫어할 것 같다는 얘기를 늘 했죠. 근데 내가 일상에서는 또 굉장히 만만하지가 않다? 웃긴 게, 이경규, 강호동, 신동엽 이런 선배들이 나를 어려워해. 형들이 막, 만나러 와야 되고, 밥 사줄게, 너 좋아하는 초밥 사줄게, 만나주면 안 돼? 너 시간 돼? 물어야 하고.

뭘 또 그렇게까지. 아니야, 진짜 그래. (웃음.)

그게 캐릭터 만들기나 콘셉트 설정이 아니라는 거. 맞아. 나는 확실히 그래. 아까 촬영할 때도, “이거 브랜드가 뭐죠?” 하니까 “발렌시아가요” 했잖아. 거기서 내가 “지방시는 없나요?” 그랬잖아. 그게 나야. 누가 봐도 개그잖아. (신)동엽이 형한테도 언젠가 내가 “형 나 이거, 프라다. 이번 행사용 옷 샀잖아” 이러면 너무 웃기대. 발렌시아가든 지방시든 알지도 못하고 의미도 없지. 그러니까 더 장난치는 거죠. “이번 촬영 스타일리스트는 어떤 팀으로 세팅하는 거죠?” 진짜, 레알, 중요하지가 않아. “송혜교 파리 화보팀으로 똑같이 꾸려주셔야 돼요.” 막 던져. 어떤 콘셉트죠? 몇 페이지죠? 그래서 안 할 거냐고. 다 할 거 뻔히 아니까.

하도 긍정 긍정 하니까 잘 쓰고 싶지 않을 때가 있는데, 김영철과 얘기하다 보면 그 말이 자연스러워요. 라디오에서 청취자 사연을 봐도 아침 7시에 어떻게 그렇게 발랄할 수가 있냐는 얘기가 많아요. 자기는 지금 너무 피곤한데, 김영철은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나서 저러고 있냐는 거지. 이 밝음과 긍정의 DNA에 원천이 있다면 엄마겠지. 근데 사실, 돈 주면 일어나게 돼 있어요. 나도 처음엔 어떻게 일어나나 했는데, 눈이 빨딱 떠지더라고. 친한 형이 아침에 커피 마시지 말래. 커피는 목소리를 약간 앗아간다고. 자기 전에는 성대 마사지 해주고 자래. 막 “뿌우우~” 이렇게 소리내면서 마사지를 해요. 아침에도 눈뜨면 바로 “뿌우우~ 김영철의 파워 FM~” 해보는 거지. 근데 쩍쩍 갈라질 때도 있어. 어떡하지, 막 물 마시고 난리를 피웠는데, 거짓말 같이 7시쯤 되면 목소리가 좋아지는 거예요. 목소리를 찾으려고 전화로 하는 영어 수업도 아침에 해. 그래서 PD님도 나를 너무 좋아하지.

듣고 있자니 정말 자기 자랑계의 황태자다워요. 누가 대적하겠어요. 아니 뭘 이 정도 가지고 그래. 아시잖아요 셀프 칭찬. 나는 그때그때 좀 끊어줘야 돼. 근데 이게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인 건 맞아, 내가 진짜 이런 사람이라서 그런 거야. 말 끊어도 돼요. 내가 말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연예인 아니야? 다 내가 단련되었기 때문이지. 아유, 나는 참 잘 크고 잘 온 거 같아.(웃음) (강)호동이 형이 그래요. “영철이 얘는 진짜 자기를 정말 사랑하는 거 같지 않니?” 자기애가 강해서 내가 또 여기까지 온 거 같아. 나를 아껴주고, 스스로 칭찬하고. 난 좀 다른 거 같아. 웃음 포인트도 다르고. <아는 형님>에서도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건….

그만! 그만! 알았어.

티셔츠와 헤어밴드는 에디터의 것.

웃긴 게, 자기 자랑을 하다가도 갑자기 구박덩이가 돼죠. 김영철은 일단 약자에, 소수자 캐릭터잖아요. 그래서 그런가? 내가 좀 잘나가면 그렇게 질투를 해.

누가요? 있어. 특히 남자들. (실명으로 두 명 말함.) 내가 좀 잘될 때면 샘내는 게 너무 느껴져. 근데 내가 약자고 소수자라는 건 확실해요. 나는 또 다른 약자인 여자들한테도 당하는 캐릭터니까. 내가 개그를 해봐도 이길 때는 재미없더라고. 질 때, 궁지에 몰릴 때, 억울할 때 제일 잘 살아. 근데 나 참 새 프로 들어가. 아, 아직 비밀인데, 아니다 이거 나올 때면 사람들도 알겠지? 어, 아직 얘기하지 말까?

뭔데요? 전혀 대단한 게 아닐 것 같은 예감이. 하하, 맞아 별거 아닌 것일 수도 있어요. 이제 확실히 알았어요. 별게 아니어야 더 웃긴 거야. 앞서가고, 혼자 진단하고, 오버하고. 나 정말 왜 이러니 진짜. 근데 새 프로그램이 재미있을 것 같애. 이게 또 나의 매력이잖아. 안 물어봐도 말하는 거. 뭐냐면, 송은이 김영철 <최고의 사랑>. 어때? 웃겨요? 안 대단하죠?

크게 놀랍지는 않은데, 시작하면 웃길 것 같긴 해요. 어제 동엽이 형이랑 영자 누나한테 청첩장 주는 장면을 찍었어요. 근데 저번 주에 영자누나한테 고향에서 가져온 미역을 드렸거든. “영철아, 미역을 준다는 것은 애기 엄마가 되어달라는 뜻 아녀. 영철아 힌트를 너무 주는 거 아니니?” 막 이랬거든. 그런 마당에 김영철 송은이 청첩장. 갑자기 정적. 나는 그 정적이 너무 웃긴 거예요. 그러더니 “야, 너 이 양아치 XXX” 막 이러는데, “XXX.”

기사엔 이런 욕설을 못 실으니 아쉬워요. 사실 김영철 성대모사의 최고는 막 욕 섞어서 하는 버전인데. “아 놔, XXXX” 이런 거? 나도 욕설을 마음대로 하면서 웃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누구부터 하고 싶은가? 일단 이영자. 엄청나겠지?

김희애 성대모사도 욕설 버전이 있을 수 있나요? 상상에 그치겠지만 정말 웃기긴 웃길 것 같아. 아무튼 <최고의 사랑>이 나한테 맞을지 안 맞을지 모르겠지만 뭐랄까, 내가 <나 혼자 산다>를 해보니까 백 퍼센트 리얼은 없더라고. 내가 진짜 하는 대로, 나 지금 낮잠 잘 거야, 이러면 방송이 안되잖아요. 자다 일어나서 설거지를 한다든가 뭔가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거죠. 둘이 가상 말고 진짜 사는 건 어떠냐고들 해. 강호동도 그랬고 이수근도 그랬고 싸이도 그랬고 (유)재석이 형도 그래. 설렐 것도 없이 친구 같은 사람이랑 사는 것도 괜찮지 않나? 근데 나 지금 무슨 대답하고 있는 거였지?

아니에요. 그냥 하던 자랑 계속하세요. 어쩌면 이렇게 자기가 좋을 수가 있을까. 그러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나는 진짜 코미디언으로써도 아직까지 내가 소 파 소 굿 So Far, So Good. 어, 근데 잠깐만, 나 매니저한테 전화왔어. 이 전화 받아야 돼. 가요 프로그램 얘기할 거 있다고 했거든.

하하, 가요 프로그램! (통화중) 그러니까 ‘엠카운트’ 잡혔다며. 응, 목요일. 지금 나 < GQ > 인터뷰 중인데, 그럼 그날 의상은 그때 그 노란 거 입을까? ‘음중’은? ‘엠카’는 1위 후보야? 의상 그냥 협찬 없이 내 걸로 할게. 분더샵에서 산 거 있어. 그걸로 할게. 오케이.

러플이 달린 셔츠와 반짝이는 재킷은 모두 김서룡.

진짜 통화한 거 맞아요? 모든 의상을 사서 입는다, 발렌시아가로 뒤집어쓰고 산다더라, 이렇게 쓸까요? 패션에 눈을 뜨긴 좀 떴지 내가. 인스타그램에 OOTD도 올리고. OOTD 맞나? ‘Outfit Of The Day’ 오늘의 패션. 어차피 나는 허리가 32나 33은 되어야 하니까 의상을 협찬받아도 잘 안 맞아요. 스타일리스트들이 어렵게 구해줘도 안 맞아서 못입어. 그리고 스타일리스트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내가 입고 있던 옷이 더 예쁠 때도 많았어. 그간 쌓여 있었던 센스가 빛을 발하는 거지. 고기도 먹어봐야 알듯이, 옷도 이것저것 입어봐야 해. 어떤 핑크는 어울리고 어떤 핑크는 이상하고 그런 걸 알게 되더라고요. 내가 의외로 화려한 게 어울려요. 나 정말 예전엔 그냥 진에 재킷이었어. 깔끔한 댄디 룩이었어. 아이비리그 대학생처럼.

댄디 룩? 아이비리그? 하하, 깎아 내리더라도 완전히 바닥까진 안 되는 거죠. 어딘가에 꼭 자리를 잡지.

바닥은 고사하고 더 올려놓잖아요. 맞아. 뭔가 더 올려놓지. 사실 나 공작 출신인 거 알죠? 그냥 애들하고 수드라 역할놀이 하면서 노는 거고, 나 브라만이잖아. 얼마 전에는 <조선일보>에서 칼럼 의뢰가 와서 썼어. ‘권태롭지 않기를 소망한다’를 주제로 썼어. 나의 밝음과 긍정의 DNA는 그 원천이 어디인가. 거기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얘기를 썼지. 세상을 살면서 가장 아픈 건 가난도 아니요, 병도 아니요, 아픔도 아니다. 그건 생활의 권태다. 권태롭지 않게 해달라고 나는 늘 기도했다, 기분도 결국 연습하는 거다, 재미난 책을 읽다가 접고 잤던 적이 있다. 내일 읽으려고. 그렇게 설렘은 내가 만드는 거지 어디서 줍는 게 아니다. 나 글 잘 쓰는 거 알죠? 난 말도 잘하는데 글을 더 잘 쓰지.

칼럼에 쓴 문장을 다 외우네요. 외우죠. 내가 진짜 쓴 거니까. “그대들 또한 권태롭지 않은 삶을 살기를, 나 또한 소망하고 기도하고 기다려본다” 이렇게 마무리했어. 진심이었어. 확실히 나는 긍정인 것 같아. 근데 지금 인터뷰 순조롭게 가는 건가요?

글쎄요, 이 많은 자랑을 어떻게 정리하게 될지. 4월호에 가인, 5월호에 용준형, 6월호에 김영철, 이거 무슨 연결고리? 이 인터뷰 들어가는 자리도 내가 다 알지. 뒤쪽 2백 몇 페이지쯤, 사진이 네 컷이니까 인터뷰 섹션은 두 페이지?

하하, 질문은 없고, 대답만 있게 만들까 봐요. 나만 그냥 쫙 얘기하는 걸로? 사실 오늘 너무 설레었어요. 무슨 얘기를 할까, 우선 <최고의 사랑>으로 포인트 잡고, ‘따르릉’ 물어보겠지? 그래서 내가 먼저 ‘따르릉’ 얘길 했는데,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거야. 나는 당연히 ‘따르릉’ 얘기할 줄 알았지. 이런 인기를 예상했느냐, 이건 사실 운이잖아요. 근데 막 내가 노력해서 된 거다, 내 성실함의 승리다, 이러려고 했지. 누가 봐도 홍진영이 만들어놓은 게임에 윤종신 형이 도와주고 나는 밥만 먹는 건데도 막 내가 잘해서 그렇다고 떠벌이는 거죠. 근데 안물어보네? 약간 당황하면서 묻지도 않은 얘기 막 하고. 너무 웃겨요, 지금. 나는 어떻게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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