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서 열린 미국 대 호주 경기 현장 리포트. 분위기는 뜨거웠고, 신발에 맥주를 부어 마시는 호주식 음주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으며, 왜 월드컵이 지구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이벤트인지 깨달았다.

월드컵 경기장을 직접 찾는다는 것은 여러 감정 상태를 오가는 경험이다. 토요일 시애틀에서 열린 미국 대표팀 경기를 보기 전까지 나는 이 거대한 행사가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무대이지만, 축구는 미국에서 네 번째 정도 인기 스포츠에 불과한 나라 아닌가. 미국 대표팀도, 내 고향 시애틀도, 이 엄청난 기대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는 냉소적인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특히 미국이 호주에 패한다면 경기장과 도시 분위기가 어떨지 상상하지 않으려 애썼다. 미국은 직전 경기에서 파라과이를 4대1로 꺾으며 역대 월드컵 경기 중 손꼽힐 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그런 상황에서 호주에게 지면 망신은 물론이고 상승세도 끊길 터였다. 안타깝게도 그런 실망은 미국 남자 축구 역사에서 익숙한 장면이기도 했다.
반대로 이겨도 실망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만약 미국이 또 좋은 경기를 펼쳤는데도 월드컵 승리 특유의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일종의 스포츠 버전 파리 증후군 같은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렇게 열성적인 축구 팬도 아니다. 미국 대표팀을 진지하게 챙겨보는 건 4년에 한 번 정도였고 애착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 첫 골이 골망을 흔든 순간, 그런 생각은 모두 사라졌다. 비록 미국 축구의 간판스타 크리스천 풀리식이 종아리 부상으로 결장했고, 미국의 두 골 모두 그다지 아름다운 장면은 아니었지만 현실은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켰다. 오히려 평소 축구를 가볍게 즐기던 나조차 왜 사람들이 축구에 인생을 바치는지 이해하게 만들었다.
시애틀에서 보낸 주말은 완벽한 축구 축제가 됐다. 나는 평생을 살아온 도시의 경기장에서 어린 시절 친구들의 유소년 경기부터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까지 모두 봤지만, 이번 경험은 특별했다. 90분 내내 서서 경기를 보며 내가 느낀 것은 파리 증후군의 정반대였다. 이제 나는 프랑스 여행을 다녀온 뒤 “진짜 문화를 경험하려면 꼭 가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과 비슷해졌다. 다만 와인과 에펠탑 대신 플로랭 발로건 이야기와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거움을 끊임없이 떠드는 사람이 된 것이다.

특히 호주 팬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토요일 하루 종일 그들과 술을 마신 경험은 월드컵이 존재하는 이유처럼 느껴졌다. 호주 팬 한 명이 미국인에게 ‘슈이’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장면도 목격했다. 슈이는 신발을 벗어 맥주를 붓고 마시는 호주식 음주 문화다. 나는 현명하게도 구경만 했다.
하지만 웃음을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 월드컵의 진짜 정신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인들이 호주 억양을 흉내 내달라며 유명한 호주식 표현을 말해보라고 부탁할 때마다 나는 그저 웃으며 “멍청한 미국인”이라는 고정관념이 왜 생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멜버른이나 시드니에서 온 팬들이 시애틀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감탄할 때면 나 역시 자부심을 느꼈다. 마치 성조기 의상을 입은 미국 팬들이 알렉스 프리먼의 추가 골에 환호했을 때처럼 말이다.
심지어 패배한 뒤에도 호주 팬들은 금세 웃음을 되찾았다. 화씨와 섭씨 중 무엇이 더 직관적인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호주인이 누구인지 토론하는 동안 그들이 방금 0대2 패배를 당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들 정도였다. 경기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아직 이 미국 대표팀을 ‘황금 세대’라고 부를 생각은 없지만, 현재 매우 좋은 축구를 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50대50 경합은 거의 모두 미국이 가져갔고, 호주는 미국 선수들의 스피드를 감당하지 못했다.

플로랭 발로건은 첫 골 장면에서 상대 수비를 따돌리며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었다. 호주의 패배를 예고한 순간이었다. 스포츠 라디오 진행자처럼 표현하자면 미국이 더 간절해 보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이 그냥 더 강한 팀이었다. 시애틀 역시 완벽했다. 맑은 여름 날씨, 도심과 가까운 경기장, 잘 정비된 대중교통 덕분에 경기장을 찾은 6만6925명의 관중은 물론 도시 전체가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경기 시작 75분 전 도착했을 때부터 분위기는 이미 최고조였다. 패리스 힐튼이 미국 대표팀 응원단장처럼 등장하는 황당한 장면부터 경기 전 울려 퍼진 호주 록 밴드 울프마더의 음악까지, 월드컵은 왜 세계 최고의 스포츠 쇼로 불리는지 증명해냈다. 루멘 필드 주변 술집은 며칠 전부터 가득 찼고, 인근 동네까지 모두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평소 차갑고 낯가림이 심한 도시로 알려진 시애틀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스포츠 팬이라면 누구나 평생 잊지 못할 경기가 있다. 하지만 월드컵은 차원이 다르다.
언젠가 월드컵을 보기 위해 약간의 빚을 내야 할 상황이 오더라도, 그 경험만큼은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스티브 어윈 같은 억양을 쓰는 호주인이 슈이를 몇 잔 더 하자고 설득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