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言. 바 Bar에서 무언이 무언가의 언어가 될 때.
박상엽 at MAGAZINE NOTES

바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
시선이 오래 책에 머물러 있거나, 메모를 하는 손님을 우리는 ‘고양이 손님’이라고 부른다. 바에서 책을 읽는다는 건, 혼자 술을 마시는 시간과 닮아 있다. 잔 안의 향과 온도, 음악과 조도, 주변의 소음까지 천천히 감각하게 되는 순간. 술의 장르와 상관없이, 중요한 것은 결국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라고 생각한다. 한 잔의 술이 하루의 속도를 늦추듯, 한 권의 책은 하루를 조금 다르게 기억하게 한다. 작은 말장난이지만 ‘술책’이라는 단어처럼, 바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만의 시간을 만들기 위한 가장 조용한 계략이자 수단이다.
無言의 시간이 남기는 言語
바를 이루는 많은 것은 말보다 먼저 감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바에서의 무언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또 하나의 언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굳이 말을 나누지 않아도 그날의 기분과 리듬, 머무는 사람의 태도가 공간 안에 조용히 남는다. 때로는 바에서 대화보다 말하지 않는 시간이 더 오래 기억될 때가 있다. 한 잔의 술을 앞에 두고, 아무 말 없이 그 공간을 즐기곤 한다.
책 읽으러 가는 바
홍대 ‘섬’. 맥주나 위스키 한 잔을 곁에 두고 오래 머물기 좋은 바. 널찍한 원목 테이블 구석에 앉아 책을 읽다 보면, 음악과 함께 주변의 말소리가 배경처럼 섞이고, 가끔은 맞은편이나 옆자리의 손님과 짧은 대화가 오가기도 한다.

❶ 황인찬, 『희지의 세계』 SEOUL / CITYLIFE
서울의 지명, 특히 종로 연작처럼 서울의 분위기를 시 안으로 끌어온 시집. 밤의 도시를 걷는 사람들, 끝나지 않는 대화, 사랑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들이 담겨 있다. 술 한 잔 옆에 두고 천천히 읽기 좋은 책.
❷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LITERATURE / POET
이 책에는 젊은 시절의 불안, 도시의 어둠, 마음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이 담겨 있다. 술 한잔이 기분을 풀어주는 것이 아닌, 마음의 가장 깊은 곳으로 데려가는 날에 권하고 싶다.
❸ 박총, 『읽기의 말들』 READING / SENTENCE
읽는 일에 관한 짧은 문장들이 모인 산문집.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아무 페이지나 펼쳐 한 문장씩 천천히 머물기 좋은 책이다. 술을 마시며 향과 온도와 사람의 표정을 읽듯, 이 책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조용히 돌아보게 한다.
❹ 그르니에, 『일상적인 삶』 EVERYDAY / LIFEBALANCE
특별한 사건보다, 일상 속 작은 감각들을 오래 바라보는 책. 포도주, 담배, 침묵, 고독, 자정 같은 단어들이 천천히 이어진다. 술 한잔 앞에 두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밤, 이 책은 평범한 하루도 충분히 깊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조용히 알려준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읽기 좋다.
❺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MEMORY / IDENTITY
낮의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혼자 앉은 밤, 우리는 가끔 내가 누구인지보다, 내가 어떤 이야기로 나를 버티고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기억과 거짓말, 타인의 시선과 생존 방식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려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남궁진 at ZEST

바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
손님이 되는 입장에서 온전히 스스로에게 침잠할 수 있는 시간. 집과는 다른 분위기에서, 가볍게 취기를 즐기며 문장을 탐닉하는 시간.
無言의 시간이 남기는 言語
겉으로 보면 무언, 말이 없어 보이는 시간이지만 마음 안에서 수많은 내밀한 대화를 해나가며 본인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시간의 일부다. 특정 분위기에서 더 다가오는 문장들이 있다. 그 문장들은 때로는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자 작은 초석이 된다.
책 읽으러 가는 바
연남 ‘주재’, 서촌 ‘뽐’. 책을 읽기 적합한 조명, 우드톤 인테리어를 좋아한다. 차분하고 편안하며, 음료의 맛은 부드러우면서도 나의 취기를 적당히 올려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바텐더가 편안하게 각자의 페이스를 존중해주는 분위기도 중요하다.

❶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RUNNING / ESSAY
평소 러닝을 즐긴다. 러닝 철학은 ‘꾸준함’ 과 ‘작게나마 나아지는 것’이다. 러닝은 스스로의 삶을 잡아주고, 더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하루키도 자신의 삶의 정체성에 달린다는 행위를 접목시켜 설명하듯이, 나에게도 하루하루는 달리기를 하면서 때로는 정리하고, 안정하는 행위. 단순히 운동을 한다는 의미보다는 생각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기 위한 행위다. 올림픽 선수처럼 기록을 줄이자는 생각보다는 ‘오늘도 한 걸음’과 스포츠로서 ‘더 빨리, 더 멀리’ 가고 싶은 양갈래 마음의 줄다리기.
❷ 윤대녕, 『칼과 입술』 GOURMET / CULTURE
우리나라 사람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을 정작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산 책. 무심코 넘기는 음식 이름의 유래나 삶의 애환이 담긴 음식들, 거기에 때로 곁들이는 술 한잔, 별것 아닌 일상에서 삶을 지탱해주는 밥 한 술에 담긴 생각들이 궁금했다. 매일 우리가 겪는 밀접한 감정들을 음식이란 매개체를 한국 사람이라는 정신과 얽어 글을 써 내려간다. 더 나아가 한민족이라는 뿌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❸ 구스미 마사유키, 『낮의 목욕탕과 술』 PARING / SAUNA
쉬는 날, 땀을 쫙 빼고 들이켜는 생맥주는 삶의 낙 중 하나다. 유명한 시리즈 <고독한 미식가> 의 작가 구스미 상은 가식 없는 솔직한 언어로 독백하듯이 이 행복을 이야기한다.
❹ 김훈, 『달 너머로 달리는 말』 LITERATURE / SENTENCE
평소 김훈 작가의 문체를 동경해왔다. 야생의 풍경과 인간의 가장 내밀한 면을 섬세하지만 날카롭게 포착하며, 한국어가 가진 차원 높은 어휘들로 담담히, 하지만 역동적으로 현상을 묘사하는 점이 읽을 때마다 새롭다.(나는 초원과 산맥에 흩어진 이야기의 조각들을 짜 맞추었다.)
❺ 남강, 『적은 내 안에 있다』 WISDOM / KNOWLEDGE
역경이 찾아오면 언제나 변명거리를 외부에서 찾기 쉽지만, 차분히 선인들의 지혜를 곱씹어보면 결국 나에게서 모든 것이 출발한다는 답이 나온다. 그래서 결국 다시 나에게서 시작해야 하고, 자학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스스로를 성찰하는 지혜가 필요함을 일깨워준 책.
한정민 at ALICE

바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
책을 읽는다는 건 결국 자기 안으로 조금 들어가는 일이다. 그런데 집이나 도서관이 아니라 바에서 책을 펼친다는 건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미세한 긴장 위에 나만의 조용한 방을 만드는 일 같다. 잔이 놓이고, 얼음이 녹고, 음악이 흐르고, 옆자리에서는 누군가 웃고 있는데 나는 문장 하나를 오래 바라보는 것.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읽는 손님에게 하는 배려
고양이를 대하듯이 다가간다. 예를 들어 물잔이 거의 비어서 따라주어야 해도 바로 따르지 않고 기다린다. 잠깐 몰입에서 빠져나오는 타이밍이 보이면 그때를 노리는 거다. 결국 중요한 건 서비스의 양이 아니라, 그 사람의 리듬을 읽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無言의 시간이 남기는 言語
예전에 시를 썼고, 지금은 바에서 일하고 있다. 가끔은 둘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사람을 관찰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일. 무언가를 채우기보다는, 비워내는 일. 바에서의 ‘無言’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말이 필요 없어진 순간에 가깝다. 그 시간에는 각자가 자기 방식으로 생각을 이어가고, 감정을 정리하고, 혹은 그냥 가만히 있는다. 바텐더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다만 그 흐름을 끊지 않는 것, 그 사람이 머물고 있는 시간에 굳이 개입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게 가장 조용하고 정확한 환대라고 생각한다.

❶ 제임스 테이트, 『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 LITERATURE / PROSEPOEM
읽다 보면 계속 ‘이게 뭐지?’ 싶다. 이야기처럼 시작하는데 점점 엇나가고, 결국 어디에도 딱 떨어지지 않는다. 근데 이상하게 그 아리송한 느낌이 계속 남는다. 시를 꼭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을 잠깐 내려놓게 만드는 책이다.
❷ 사이하테 타히, 『밤하늘은 언제나 가장 짙은 블루』 MOOD / SENTENCE
문장이 굉장히 직선적이다. 꾸미지 않고 바로 들어오는데, 그래서 더 아픈 부분이 있다. 도시에서 혼자 있을 때 느끼는 감정들을 너무 정확하게 짚어서, 읽다가 몇 번 멈추게 된다.
❸ 허수경,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JOURNEY / PEACEFUL
이 시집은 한 번에 많이 읽기보다, 한 편씩 오래 보게 된다. 떠난 사람, 돌아가지 못하는 장소 같은 것들이 계속 남는다. 읽고 나면 약간 조용해지는 느낌이 있다.
❹ 찰스 부코스키,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BUKOWSKI / HONEST
부코스키는 진짜 솔직하게 쓴다. 멋있게 보이려고 하지도 않고, 감정을 예쁘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잘 사는 이야기보다, 잘 안 되는 이야기가 더 많고, 그게 이상하게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가끔은 이런 방식의 시가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❺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POET / POEM
20대 초반 글을 쓸 때 좋아한 시집. “지금 나에게 너무 뜨거운 것은 시로 쓰지 말라”는 말을 선배들이 많이 했는데, 나의 뜨거움을 깎고 다듬고 잘 접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법을 이해했다. 사랑은 오래된 거리처럼 낡고, 더럽고, 조용하게 있기도 하니까.
안경원 at M+MS

無言의 신호
손님마다 바를 즐기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바텐더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바를 찾고, 또 누군가는 조용히 술에 집중하거나 책을 읽고, 해야 할 일을 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오기도 한다. 바텐더 입장에서는 그런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한 서비스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먼저 분위기를 살피고, 손님이 편하게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 하시는지, 아니면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시는지를 자연스럽게 읽으려고 한다.
읽는 이들을 위한 배려
바에 가면 그 공간이 가지고 있는 감성과 무드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존중하고 싶어 하는 편이다. 내게 바라는 공간은 음악, 조명, 사람들의 대화 소리, 잔 부딪치는 소리까지 모두 하나의 분위기로 완성되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괜히 큰 행동이나 과한 리액션으로 그 흐름을 깨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늘 존재한다. 그렇게 배려하고, 나도 그렇게 배려 받고 싶다.
無言의 시간이 남기는 言語
정말 필요한 순간에 자연스레 오가는 짧은 대화가 더 좋다고 느낄 때가 있다. 결국 내가 바에서 원하는 것은 화려한 무언가 보다 좋은 음악과 공기, 그 공간에 어울리는 좋은 한 잔. 그리고 그 모든 흐름을 방해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그 밤 안에 녹아드는 시간을 좋아한다.

❶ 『032C』 FASHION / PHILOSOPHY
하이패션, 현대 미술, 철학,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섞여 있는 느낌이며, 단순 패션 잡지보다는 ‘지적인 아트북’에 가까운 무드를 지닌다. 릭 오웬스, 뎀나, 라프 시몬스 같은 디자이너들과 결이 잘 맞는 잡지로 자주 언급된다.
❷ 『PERMANENT STYLE』 FASHION / TAILORING
테일러링, 슈메이킹, 니트웨어 등 고급 맞춤 의류 문화를 깊이 있게 다루며, 전통과 품질에 집중한 콘텐츠로 글로벌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정보와 날카로운 시각으로 클래식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해석한다.
❸ 『TOKYO BAR 100』 TOKYOBAR / BARCULTURE
매년 한 번씩 발행되는, 도쿄 바 가이드북이다. 바 공간의 공기, 바텐더의 철학, 잔잔한 일본식 서비스 감성을 중요하게 다룬다. 재즈킷사, 클래식 바, 작은 칵테일 바 같은 도쿄 특유의 정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레퍼런스처럼 소비된다.
❹ 『POPEYE』 CITY / LIFESTYLE
‘도시에서 취향 좋게 사는 법’을 중심으로 패션, 음악, 커피, 여행, 인테리어, 서브컬처를 아주 담백하고 센스 있게 풀어낸다. 과하게 꾸민 럭셔리보다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것이 특징이다.
❺ 『GQ』 FASHION / CELEBRITY
패션뿐 아니라 시계, 자동차, 문화, 음악, 인터뷰 등 전반적인 ‘현대 남성 문화’를 다루는 매거진. 특히 미국 <GQ>는 클래식과 팝 컬처의 균형이 강하고, <GQ KOREA>는 패션과 셀러브리티를 다루는 시선이 감각적이다. 내가 <GQ>에 나온다고 해서 추천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