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큼 유행어 풍년이 또 있었을까? 일상 속의 대화는 물론 스마트폰 메신저, 텔레비전 자막, 소셜 미디어를 점령한 올해의 유행어 8개를 소개한다.
1. 이거 실화냐? (해석) 말, 육감, 사실 따위가 틀림이 없는지 묻는 말. 올해 디지털 뉴스 기사와 블로그 포스팅 제목에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를 하나만 꼽는다면 단연 ‘실화’일 거다. 이 유행어의 탄생 설화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신뢰할 만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다음팟을 통해 영화나 드라마를 보던 사용자들이 내용과 상관 없이 “이거 실화냐?”라고 남긴 어그로성 댓글이란 설이다. 말끝마다 “진짜?”라고 토를 달던 친구들이 이제는 “실화냐?”를 연발하고 있다.
2. 혼- (해석)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아니하고 한 명만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접두사. 혼밥, 혼술, 혼놀은 1인 가구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단어다. 그리고 혼영, 혼극, 혼공, 혼행, 혼일 등 시간이 지날수록 이 접두사가 수식하는 단어는 늘어날 전망이다. 아마도 10년 쯤 뒤에는 수십 개의 ‘혼-‘이 생겨날 지 모르겠다.
3. 나야 나 (해석) 자기 자신을 자랑스럽게 가리키는 말. 올해 101명의 소년들을 향한 대한민국 여성의 관심은 역대급이었다. 국민 프로듀서로 분한 여성 시청자들은 본 방송을 놓치면 새벽 잠을 설치며 재방송을 통해 연습생의 능력과 자질을 판단했다. 그리고 주변 친구들, 부모님, 형제 자매, 직장 동료에게 투표를 독려했다. <프로듀스 101 시즌 2>가 회를 넘기며 101명에 대한 관심이 11명으로 압축될수록 팬덤도 단단해졌다. 프듀 101의 평가곡이자 그룹 워너원의 타이틀곡인 ‘나야 나’가 유행어가 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이 곡의 후렴구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나야 나’는 셀카, 반려 동물, 요리 사진 등 어디에든 갖다 붙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응용이 쉽다. 인스타그램에서 #나야나 해시태그는 무려 13만 개가 넘는다.
4. 오지고 지리고 렛잇고 (해석) 최고 또는 최악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감탄사. 어른 아이를 불문하고 이른바 ‘급식체’가 유행이다. 급식체는 10대 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말을 낮잡아 이르는 단어다. 그 동안 알고 있다고 해도 실제로 사용하기에는 꺼려졌지만 <SNL 코리아>의 권혁수를 비롯해 다수의 방송인이 급식체를 개그의 소재로 사용하면서 일반화됐다. 급식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오지고 지리고 렛잇고’는 최고 또는 최악을 의미하는 감탄사로 쓰인다. 아무리 유행어라고 해도 ‘급식’이라는 단어가 특정 세대와 특정 복지 정책을 비하하는 뉘앙스를 함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도 많다.
5. 스튜핏, 그뤠잇?! (해석) 옳고 바른 선택 또는 틀리거나 그릇된 선택을 지적하는 말. 우리는 그 동안 가족, 친구, 연인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고 싶어도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느라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바보 아니야?” 같은 말은 누가 들어도 기분이 나쁠 거다. 그러나 김생민이 탄생시킨 ‘스튜핏’과 ‘그뤠잇’은 단호한 지적인 동시에 애정과 애교를 담고 있다. 이 유행어는 “이건 잘못됐고, 저건 잘했다”라고 정확히 말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좋은 대안이 됐다. 이제 친구가 불필요한 소비를 했을 때 “스튜핏 했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유행어가 가진 순기능이라면 바로 이런 것이다.
6. 모든 날이 좋았다 (해석)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날씨가 맑든, 날씨가 흐리든 모두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겠다는 말. 비난하고, 자조하고, 빈정대는 유행어의 범람 속에서도 훈훈한 유행어가 기적처럼 탄생했다. 지난 해, 딱 이맘때 시작해 겨울이 가기 전 종영한 드라마 <도깨비>는 최고 시청률 20.5퍼센트를 기록하며 짧고 굵게 우리의 일상을 다녀갔다.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저 문장에 깊이를 더한 건 공유의 무덤덤한 표정 연기와 저음의 목소리였다. 6회 후반부, 메밀꽃밭을 배경으로 김고은과 마주선 공유가 이별을 앞두고 읽어 내려간 대사 몇 줄은 수많은 시청자의 연애 세포를 자극했다.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블로거, 인스타그래머들은 자신의 포스팅에 이 대사를 붙여 넣기 시작했다.
7. 슈얼 와이 낫 (해석) 그럼, 당연하지라는 의미의 완곡한 표현. 이번에는 드라마도, 영화도, 소셜 미디어도, 아이돌도 아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반복해대는 주입식 유행어도 아니다. 어느 날, 예능 프로그램에 혜성처럼 등장한 한 방송인의 즉흥적인 감탄사가 만들어낸 유행어다. 올해 4월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모델 배정남은 프랑스 파리의 클럽에서 생긴 일화를 설명하며 “슈얼 와이 낫!”을 외쳤고, 이 단어는 시청자의 귀에 강렬하게 꽂혔다. 이 유행어의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라디오스타>의 10주년 특집 방송 타이틀이 바로 ‘라스 10년! 슈얼~ 와이 낫!’이었다.
8. 니 내 누군지 아니? (해석) 까불지 말라는 엄포성 말. 누적 관객수 680만 명을 돌파한 영화 <범죄 도시>는 올해 최고의 오락 영화로 꼽힌다. 이 영화에서 윤계상을 비롯해 조선족 범죄자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훌륭하게 소화해낸 조선족 말투도 화제였다. 특히 윤계상이 기존 조선족 범죄 집단의 보스와 대치하는 장면에서 나온 “니 내 누군지 아니?”라는 대사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유행어가 됐다. 셀카 사진을 포스팅할 때 이 말을 사용하면 허세력이 두 배 증가한다.
- 에디터
- 이재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