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신과 럭셔리 패션 사이를 마음대로 오가는 남자, 후지와라 히로시.
몽클레르 지니어스 목록에서 당신 이름을 봤을 때 좀 놀랐어요. 원래 몽클레르를 좋아했나요? 물론이죠. 예전부터 몽클레르의 퀄리티와 전문적인 기술력이 궁금했고 그래서 조용히 지켜봤어요. 늘 존중했던 브랜드인데 드디어 만난 거예요. 얼마간일진 모르지만 몇 시즌 더 함께할 것 같아요.
어떤 작업을 하든 목표 의식에 큰 의미를 둔다고 들었어요. 이번 협업을 통해 당신이 말하고 싶은 건 뭔가요? 몽클레르 고객에게 프래그먼트를 소개하는 것이 목표예요. 프래그먼트의 색을 입은 몽클레르의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어요.
콘셉트가 ‘백스테이지’예요. 어떤 의미죠? 전 음악도 하잖아요. 밴드와 함께 연주를 하다가 문득 떠올렸어요. 음악은 제 정체성의 아주 큰 부분이고, 그걸 어떻게든 이번 컬렉션에 녹이자 했죠. 밴드 투어링, 공연장, 거기 몰려든 쿨한 사람들에 대해 주로 생각했어요.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이 있겠죠? 등에 백스테이지 타이포그래피가 적힌 매킨토시 코트요.
일곱 개 나라에서 동시에 행사가 열렸어요. 현장에서 각 나라를 대표하는 뮤지션이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공개했다던데. 물론 참여했죠? 그럼요. 제가 듣는 음악들을 추천했어요. 5분 만에 바로 리스트를 뽑았죠. 깊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즉흥적으로 만든 거죠.
어떤 걸 골랐는지 궁금해요. 음. 당장 떠오르지가 않네요. 많은 음악을 골랐거든요.
한 곡도요? 아마 컬러박스(Colourbox)의 음악은 들어갔을 거예요. 요즘 자주 듣고 있죠. 1980년대의 영국 일렉트로닉 밴드예요.
음악을 많이 듣죠? 힙합이나 밴드 음악만 들을 것 같아요. 아니요. 1980년대 힙합이 유행할 땐 홀딱 빠져 지냈죠. 온전히 그 문화를 체득하겠다며 한동안 뉴욕에서 지내기도 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여전히 좋은 힙합 뮤지션이 나오니까 그런 건 당연히 듣죠. 그러나 요즘은 경계를 두지 않아요. 말 그대로 거의 모든 음악을 들어요.
요즘 힙합 아티스트 중 관심 가는 사람이 있나요? 음, 딱히 없네요. 요즘 많이 듣는 건 더 두루티 칼럼(The Durutti Column)의 LC 앨범이에요. 요즘 음악은 아니지만. 최근엔 한국 음악이 뜨고 있지 않나요?
아이돌의 K-팝이 인기가 많긴 하지만 그 음악이 정말 멋진 건지 잘 모르겠어요. 당신은 그렇게 보나요? 뮤지션 중엔 지드래곤을 좋아해요. 지금 군대에 갔지만. 그가 도쿄에 오면 자주 만났어요.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이죠. 지드래곤의 음악도 즐겨 들어요? 솔직히 그가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은 볼 기회가 없었어요. 하하. 우린 그냥 만나서 서로의 근황이나 패션에 대해 얘기하거든요.
한국의 스트리트 문화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스트리트 문화를 왜 꼭 정의해야 하죠? 이건 동시다발적으로 형성된 문화잖아요. 뉴욕, 런던, 도쿄 등. 그냥 하나의 덩어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외신에선 서울의 패션 신이 트렌디하고 현대적이라고 말해요. 당신이 보기에도 정말 그런가요? 네. 한국 패션엔 에너지가 있어요. 창조적이고요. 요즘엔 스트리트웨어의 쿨함과 럭셔리웨어의 고급스러움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사람 혹은 브랜드만 빛날 수 있어요. 두 세계를 연결하는 역할이 지금 패션 신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고요. 제가 몇 년 전부터 이 움직임의 중심에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죠. 가만히 보면 한국 사람들이 흐름을 빠르게 읽고 따르는 건 분명해요.
당신은 1990년대의 하라주쿠 신을 이끌었어요. 지금의 ‘하라주쿠 신’은 어떤가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요.
1990년대엔 어땠는데요? 굉장히 역동적이었어요. 직전에 디자이너 브랜드의 인기가 사그라들면서 하라주쿠 지역이 좀 휑했어요. 디자이너 부티크가 짐을 싸는 일이 잦았죠. 말 그대로 건물들이 비어 있고, 임대료가 쌌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같이 공간을 얻었어요. 우리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자고. 그때 니고와 준야 와타나베 같은 친구들도 끌어들였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말도 안 되는 핸드 페인팅으로 공간을 꾸미고 직접 작업한 프린팅 티셔츠 같은 걸 팔았죠. 우리가 좋은 대로 한 건데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더군요. 신기했어요. 하지만 이런 문화는 더 이상 없어요. 지금은 대중문화가 점령했죠. 내가 기억하는 ‘하라주쿠 신’은 상당히 매니악했거든요. 니고와 준야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일본에 머무는 시간이 별로 없을 만큼 여행을 많이 다닌다죠? 그런 편이죠. 밀라노엔 한 달에 한 번씩 가요. 몽클레르 프로젝트 때문이에요. 정말 즐겁게 작업하고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도시는 어디예요? 언제까지나 도쿄예요. 저는 도시를 좋아해요.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며 많은 것을 보는 걸 선호하거든요. 밀라노, 피렌체, 뉴욕, 파리, 런던 같은 곳. LA는 저와 별로 맞지 않아요. 거긴 꼭 차를 타고 움직여야 하잖아요.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큰 성공을 거두면 좀 허탈하고 우울해져요. 그래서 멈추고 싶지만 한편으론, 돈을 많이 벌고 있다는 거죠.” 기억나요? 네.
여전히 이런 딜레마에 빠져 있어요? 맞아요. 어떤 프로젝트를 하다가 멈춰야겠다고 결정하는 이유는 인기가 절정에 달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돈을 충분히 벌어서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는 마음도 아니고요. 그냥 감이 와요. 이쯤에서 멈추고 싶다는.
떠나야 할 때를 직감으로 알 수 있는 거네요. 비슷해요. 설명하긴 어렵지만 어떤 순간이 되면 이만하면 됐다, 다른 것을 찾아야겠다 해요.
우울감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요? 우울하진 않아요. 조금 다른 감정이죠. 허탈함에 더 가까워요. 그래서 여러 가지 일에 몰두하는 것 같아요. 어떤 것에 질리면 다른 분야로 탈출하고, 또 그것에 회의감이 들면 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거죠. 동시다발로 일하는 것이 내겐 스트레스가 아니에요. 오히려 해방구라면 모를까.
요즘 가장 빠져 있는 건 뭐예요? 음악과 패션이죠. 제 인생의 영감은 음악이지만 그걸로 돈을 벌긴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사랑을 멈출 순 없죠. 그 밖에 즐기는 건 스노보딩. 여름엔 주로 일만 해요. 해변에 누워 여유 부리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니라서요.
혼자 있을 때는 뭘 하죠? 많은 걸 하죠.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TV를 틀어놔요. 그리고 컴퓨터를 켜고 음악을 듣거나 하죠. 그게 지겨워지면 기타를 치기도 하고요. 사실 전 텔레비전을 끼고 사는 늙은이에요. 하하.
대체 무슨 프로그램을 그렇게 보나요? CNN이나 BBC의 뉴스도 보고, 레코드가 나오는 채널에서 음악만 듣기도 해요. 그리고 넷플릭스. 오늘 막 끝낸 시리즈가 있는데 재밌더라고요. <페이퍼 하우스>라는 건데, <오션스 일레븐>의 스페인 버전 같달까. 한 교수가 전과자들을 모아 은행을 터는 내용이에요.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추천할게요.
인스타그램에 음식 사진을 많이 올리죠. 스스로를 미식가라고 생각하나요? 몇 년 전부터 음식에 완전히 빠져 있어요. 음식 문화는 제게 새로운 영역이거든요. 또한 전 세계를 아우르는 소통 수단이기도 하고. 음식이 마지막 남은 아날로그 문화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요리를 먹기 위해선 움직여야 하고, 레스토랑에 직접 찾아가야 하죠. 온라인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경험할 수 없어요. 정보도 충분치 않고요. 그래서 저는 현재, 미식이 가장 유혹적인 분야라고 봐요. 패션에 미식 문화의 무언가를 접목해볼 수도 있겠다고도 생각하고요.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뭐예요? 음…. 어렵네요. ‘북풍과 태양’이란 이솝 우화를 아나요?
바람과 태양이 행인 옷 벗기기 내기를 해서 태양이 이기는 동화 말이죠? 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이야기예요. 그렇게 살고 싶어요. 이 스토리에 관한 얘기를 자주 하는 것 같네요.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뭘까요? 영감. 저는 여러 영역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요. 그 레퍼런스를 엉뚱하게 조합하기도 하죠. 어떤 요소에 저의 통찰과 해석을 더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는 게 중요해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음악, 영화, 책에서 대부분의 영감을 얻거든요.
오늘 밤에 파티가 끝나면 뭘 하죠? 호텔로 돌아가야죠. 내일 떠나거든요.
어디로요?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친구들과 차를 몰고 좀 떠돌기로 했어요.
- 에디터
- 안주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