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men

재회 불가능 이별 멘트

2019.03.15GQ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헤어진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된다지만, 이런 이별 멘트를 던졌다면 두 번 다시 재회란 없다.

잘해줘 봤자
타인을 이 정도로 사랑할 수 있을까? 스스로 반문할 만큼 정말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다. 만나는 내내 늘 상대방을 배려 했고, 나보다 그를 먼저 생각했다. 우리가 만약 헤어지게 된다면 ‘너무 잘해줘서, 그래서 너무 질려서’ 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잘해주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름을 느낄 때쯤, 그 사람이 내게 말했다. “그만 만나자. 너는 나를 안 좋아하는 거 같아.”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여태까지 내가 보낸 따뜻하고 진실된 커다란 사랑은?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잘해줘 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 윤승은(광고 마케터)

지나가는 사람 A
사이가 좋을 땐 션이나 최수종 뺨을 막 후려칠 정도로 나에 대한 사랑을 과시하던 남자가 있었다. 특히 데이트 장소를 향해 걸어오는 나를 보며 눈에서 하트 빔을 쏘곤 했다. “멀리서 걸어오는 것만 봐도 너인 줄 딱 알겠어. 제일 예뻐.”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이런 말을 큰 소리로 해서 종종 행인들에게 물의를 일으키던 이 남자가 점점 변하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주말 마다 만나던 데이트 간격이 뜸해지고 이별의 냄새가 짙게 풍길 때쯤이었다.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나를 보고 그가 한 마디 했다. “너에게 아무 감흥이 없어. 지나가는 사람이랑 너랑 똑같이 느껴져.” 나를 지나가는 행인A 취급하던그 낯선 눈빛과 담담한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 강사라(교사)

대체 뭐가 미안해?
김건모는 ‘눈물이 흘러 이별인 줄 알았다’고 했다. 나도 마주 앉아 있는 그녀가 울길래, 지금 헤어지자는 거구나 생각했다. 안약을 넣은 유병재처럼 그녀의 눈이 벌개지더니 또르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하면서 계속 울기만 했다. 왜 그러냐고 물어봐도 대답 대신 ‘미안해’만 반복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 모른다. 어차피 물어봐도 ‘미안해’ 라고 할 거라 다시는 연락 안 할 것이다. – 박지훈(사운드 엔지니어)

너무 쿨해서 기분 나빠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다 그녀의 솔직하고 담백한 면에 점점 끌려 사귀게 됐다. 워낙 친구로 본 기간이 길어서인지 흔히 말하는 ‘밀당’ 도 없이 잘 지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쿨함이 관계에 독이 될 줄은 몰랐다. 친구 같은 애인이 아니라 그냥 엄청 친한 친구 그 자체랄까. 가까운 사이긴 한데 애틋함이 없었다. 오죽하면 내가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고 이런 말을 들었다. “그래. 잘 지내고, 나중에 여자친구 생기면 꼭 사진 보여줘!” 아무런 미련도, 후회도 없이 밝고 쿨하기만 해서 진짜 기분이 엄청 나빴다. – 장진호(건축가)

프로 조율러의 이별
좋아할 땐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맞는 점이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식습관부터 생활 패턴, 취미 생활 등 ‘뭐 설마 이 정도로 안 맞기야 하겠어’ 싶을 정도로 안 맞았다. 일단 커피 취향부터 다른데다 은근 각자 고집이 있는 바람에 카페 하나를 가도 긴 토론을 거쳐 조율을 해야했다. 중고 피아노 조율도 이거보단 덜 손이 가겠다 싶을 때쯤 그녀가 이렇게 이별을 고했다. “널 만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그냥 시간 낭비 같아.” 아니, 그럼 의견 조율에 바친 내 시간은? 끝까지 나랑 안 맞네. – 홍명진(북디자이너)

소액 채무 변제
덜렁대고 잘 까먹는 나에 비해 그 사람은 참 꼼꼼하고 든든했다. 사귀는 내내 그는 나의 알람이었고, 인공 지능 스피커였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이별이 찾아왔다. 어렵게 헤어짐을 이야기하는 나에게 그 사람은 늘 그랬던 것처럼 야무지게 대답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일단 지난 번에 빌려준 8만원 먼저 보내줄래?” 아, 또 까먹었다. 헤어지자고 하기 전에 채무 변제부터 했어야 했는데.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질 수 밖에 없었다. – 김승연(브랜드 홍보)

    에디터
    글/ 서동현(프리랜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