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게 다는 아니다. 가볍고 단순하지만, 기능은 탁월한 해외 경차들.
현대 i10
국내에서 볼 수 있는 현대 i시리즈는 해치백 i30와 세단 i40뿐이다. 하지만 해외엔 국내에 없는 두 가지가 더 있다. 소형 해치백 i20와 경차 i10이다. 국내 경차 부문은 같은 그룹의 기아가 만드는 모닝과 레이가 담당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현대차 유럽 법인이 개발을 주도했고, 생산도 전량 해외에서 하고 있다. i10은 배기량 1.0리터와 1.2리터 가솔린 엔진을 비롯해 경차에는 잘 쓰지 않는 디젤 엔진을 올린 버전도 있다. 수동변속기 수요가 많은 유럽 시장을 겨냥한 차라서 4단 자동변속기 외에 5단 수동변속기도 선택할 수 있다. 현재 차체와 휠베이스를 조금 늘린 ‘그랜드 i10’라는 파생 모델을 만들어 인도와 동남아를 비롯해 경차 수요가 많은 지역을 공략하고 있다. 현재 차세대 i10을 개발하고 있으며, 내년에 출시될 예정이다.
스즈키 짐니
작은 차의 위상이 공고한 일본에선 경차를 장르별로 세분화해 만든다. 해치백 형태의 경차는 물론 박스카와 스포츠 경차, 심지어 SUV 경차까지 생산한다. 모터사이클과 소형 차를 주로 만드는 스즈키는 지난해 무려 20년 만에 풀체인지한 짐니를 출시했다. 1.5리터와 660cc 엔진으로 나눠 생산하는데, 660cc는 경차로 분류된다. 모양만 SUV 흉내를 낸 게 아니다. 짐니는 요즘 일반화된 ‘모노코크’가 아니라, 지프 랭글러처럼 오프로더를 만드는 전통 방식인 ‘보디 온 프레임’으로 설계됐다. 바닥에 깔린 사다리 모양의 프레임이 충격과 하중을 견디는 버팀목 역할을 한다. 땅에서 차체까지 높이가 205밀리미터나 되어 41도의 등판각도를 확보한다. 작은 체구로도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달리는 당돌한 경차다.
르노 트윙고
르노가 국내에 들여와야 할 모델로 자주 거론되는 차다. 하지만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배기량과 길이, 높이는 국내 경차 기준을 만족하지만, 너비가 1646밀리미터다. 1600밀리미터 이하여야 경차로 인정받는 국내 기준을 벗어나 수입한다고 해도 경차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러니 상품성이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선 깜찍한 외모와 갖출 것만 갖춘 실용성 덕분에 오랫동안 사랑받은 경차다. 재미있는 건 포르쉐 911처럼 엔진이 후륜 차축 뒤에 달려 뒷바퀴를 굴리는 RR(Rear Engine, Rear Wheel Drive) 방식이라는 점이다. 스마트의 ‘RR 레이아웃’ 플랫폼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1.0리터 자연흡기 엔진과 0.9리터 터보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푸조 108
푸조의 자동차는 숫자로 크기를 구분한다. 208, 308, 508 순으로 앞자리 숫자가 올라갈수록 차의 크기도 커진다. 3008이나 5008처럼 중간에 ‘0’이 하나 더 들어가면 SUV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1과 4로 시작하는 차는 없을까? 국내에 수입되지 않을 뿐이지 해외엔 있다. 408은 중국 시장용 세단이고, 108은 유럽을 주름잡는 유명한 경차다. 특히 좁은 골목길이 많은 프랑스에선 요리조리 야무지게 달려나가는 108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최고출력 68마력, 최대토크 9.5kg·m의 직렬 3기통 1.0리터 엔진이 기본이고, 1.2리터로 배기량을 늘려 최고출력을 82마력까지 높인 108도 있다. 일반적인 컨버터블만큼의 개방감은 아니지만 루프를 열어 하늘을 마주할 수 있는 카브리올레 버전도 유럽에선 인기 차종이다.
토요타 아이고
사실 푸조 108은 푸조가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 차는 아니다. 푸조와 시트로엥을 거느린 PSA 그룹이 경차 개발을 위해 토요타와 ‘TPCA’라는 합작 회사를 만들어 개발했다.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은 공유하지만 브랜드와 디자인을 달리하는 ‘배지 엔지니어링’ 방식으로 푸조에선 108을, 시트로엥에선 C1이라는 경차를 제작한다. 토요타 엠블럼을 붙이고 나오는 차는 아이고다. 현재 생산하는 아이고는 2014년부터 생산한 2세대 모델로, TPCA 공장이 있는 체코에서 만들어 전 세계로 수출한다. 하지만 PSA 그룹과 토요타 그룹이 2021년부터는 경차 공동 개발 및 생산을 안 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세대부터는 푸조 108, 시트로엥 C1과 전혀 관계없는 차가 될 테고, 생산지도 바뀔 가능성이 크다.
폭스바겐 업!
국내에선 폴로가 폭스바겐의 가장 작은 차지만, 유럽엔 A-세그먼트에 속하는 더 조그만 차 ‘업!’이 있다. 2011년까지 생산된 ‘폭스’의 후속작으로 나온 경차다. 최대한 단순하게 라인업을 구성하는 다른 경차와 달리 선택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다. 문이 2개 달린 것과 4개 달린 모델로 나눈 걸 비롯해 엔진 라인업이 다섯 가지나 된다. 배기량은 모두 1.0리터지만, 60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것부터 115마력으로 고성능을 표방하는 ‘GTI’ 버전도 있다. 최근에는 점점 사그라지는 경차의 인기를 만회하려고 순수 전기차 버전인 ‘e-UP!’도 개발해 생산하고 있다. 폭스바겐이 거느린 스페인의 세아트와 체코 스코다는 업의 플랫폼을 활용해 각각 ‘미’와 ‘씨티고’라는 경차를 만들어 자국에서 판매 중이다.
혼다 S660
가속 페달을 밟을 때마다 뒷바퀴가 움찔움찔하는 후륜구동, 미드십 엔진 레이아웃, 그리고 버튼 하나로 루프를 여는 2인승 로드스터. 구조상으로는 영락없이 슈퍼카다. 하지만 혼다 S660은 쉐보레 스파크보다 길이가 20센치미터 짧고, 너비는 12센치미터나 좁은 경차다. 경차 분류 기준이 엄격한 일본의 법규를 충족시키기 위해 배기량 660cc의 엔진을 사용한다. 64마력을 넘으면 안 된다는 조건 때문에 최고출력은 아슬아슬하게 64마력에 걸쳤다. 수치상으론 빈약해 보일 수 있지만 겨우 830킬로그램이다. 자그마한 체구를 움직이는 데 그 정도면 충분하다. 차 안에 몸을 구겨 넣어야 하는 수고만 감수할 수 있다면, S660은 최소 크기로 최대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슈퍼 경차’가 될 것이다.
다이하츠 미라 토코트
경차를 이야기하면서 일본을 빼놓을 수 없고, 일본을 말하면서 다이하츠를 빼놓을 수 없다. 토요타의 자회사인 다이하츠는 경차 전문 브랜드라고 해도 될 만큼 다양한 내수용 경차를 만든다. 국내에선 혼다 S660의 경쟁 모델인 ‘코펜’이 유명하지만,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탐스런 경차도 많다. 미라 코코아의 후속 모델로 나온 미라 토코트는 2018년에 출시된, 아직 따끈따끈한 신차다. 기본적으로 해치백 모양이지만, 박스카처럼 체급에 비해 내부 공간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52마력을 내는 엔진에 무단변속기를 조합해 뛰어난 연비를 유도했고, 검은색을 제외하면 고를 수 있는 색깔이 분홍색, 하늘색 등 대부분 파스텔 톤이다. 기대한 것보다 반응이 좋아 현재 일본에서 목표치를 웃도는 판매량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다이하츠 무브 캔버스
일본 내수용으로만 두기엔 너무 아까운 다이하츠의 차가 하나 더 있다. 다이하츠의 유명한 경차 무브의 파생 모델인 무브 캔버스다. 모델명은 미술 도구인 캔버스 Canvas가 아니라 ‘can’과 ‘bus’를 합쳐 만들었다. 제법 크기가 있는 미니 밴처럼 보이지만, 실물은 기아 레이보다 작을 정도로 아담하다. 하지만 최소한의 크기로 최대한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본차의 전통을 반듯하게 계승했다. 예를 들어 뒷좌석 아래 공간을 허비하지 않고 서랍처럼 열어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두었고, 기어 노브는 운전석과 동승석 사이가 아니라 센터페시아로 올려 차의 좁은 너비를 영리하게 극복한다. 경차인데도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 뒷좌석에 제법 큰 짐을 실을 때도 체격 이상의 몫을 한다.
오펠 아담
오펠은 설립된 지 1백50년이 넘은 독일 자동차 회사다. 영국에선 복스홀이라는 이름으로 사업하고 있으며, 대중적인 자동차를 주로 생산한다. 오랫동안 GM에 소속되어 있다가 최근에 푸조 시트로엥이 있는 PSA 그룹에 인수되었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브랜드는 한 가지 경차만 만들지만 오펠은 특이하게도 ‘아담’과 ‘칼’ 두 가지를 생산한다. 그중 아담은 창립자인 아담 오펠의 이름을 딴 경차다. GM 소속이던 2013년에 출시됐다. 힘과 크기는 다른 경차와 비슷하지만 아담이 젊은 세대를 파고든 전략은 색이었다. 열두 가지의 차체 색과 세 가지의 루프 색 중에서 고를 수 있고, 인테리어도 마음에 드는 색으로 주문할 수 있다. 운이 좋다면 세상에 한 대밖에 없는 아담을 만들 수도 있다.
- 에디터
- 이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