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중식당, 차이니스 다이닝 바. 부르는 이름은 새로워졌고 요리는 더 몰라보게 바뀌었다.
‘덕후선생’이 가는 길
“쩜오 세대라고 부르던데요. 한국식 중식, 정통 중식, 퓨전 중식을 경험한 저희 같은 세대를요.” 청담동 중식당 ‘덕후선생’의 강수일 셰프가 말한다. 굵직한 호텔 중식당을 거쳐 트렌디한 프랜차이즈 중식당은 물론이고, 중식 메뉴 R&D 셰프로도 오래 일한 경력이 있는 그는 휘몰아치는 변화를 눈앞에서 목도하고 있다. 뒤로는 한국식 중식의 영광이, 앞으로는 새로운 중식의 미래가 펼쳐져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스스로와 같은 ‘쩜오’ 세대가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중식 트렌드는 양분화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인테리어는 젊고 감각적으로, 그리고 요리는 현지식에 최대한 가깝게 가고 있어요.” 최근 몇 년 사이 서울 시내에서 제일 기발하고 재미있는 인테리어는 새로운 중식당을 보면 안다고 할 정도로 중식당이 근사하게 변하고 있다. ‘덕후선생’의 어둑하면서도 세련된 조명과 공을 들인 가구만 봐도 알 수 있다. 오히려 무게를 내려놓고 ‘리마장’, ‘명성관’, ‘한남소관’, ‘몽중인’과 같이 한층 더 캐주얼하고 격식 없는 스타일로 실내를 꾸미는 중식 바도 많아졌다. “몇 년 전부터 작은 흐름들이 있었어요. 왕육성 셰프님이 ‘진진’에서 선보인 ‘멘보샤’의 폭발적인 인기나, 작은 플레이트 위주로 음식이 나가는 스타일의 유행도 지금의 변화를 일으킨 작지만 큰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강수일 셰프는 몇 해 전 ‘모던눌랑’에서 적은 양으로 다양한 음식을 선보이는 콤보 플레이트를 선보인 적이 있다. 마치 애프터눈티 세트처럼 보일 정도로 아기자기한 구성이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차이니스 다이닝 펍’ 혹은 ‘차이니스 다이닝 바’들 역시 타파스의 형태로, 기존보다 훨씬 적은 양의 음식을 한 접시에 내놓고 있다. 가벼운 안주 한 접시를 주문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제 중식은 ‘2차’에서도 즐길 수 있는 메뉴가 됐다. 중식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술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모던한 중식을 표방하는 ‘쥬에’의 드링크 메뉴판은 음식 메뉴판만큼이나 묵직하다. 바이주는 물론이고 샴페인과 지역별 와인, 맥주와 위스키까지 갖춰놨다. ‘쥬에’의 강건우 셰프는 메뉴를 구상할 때 와인과의 페어링도 고려하는 편이다. “육포 메뉴를 애피타이저로 내면서는 샴페인을 생각했습니다. 새콤달콤한 바비큐 소스를 바른 삼겹살 요리도 와인과의 궁합을 생각해서 내놓은 메뉴고요.” 중식과 트렌디한 술의 만남은 새로운 중식 열풍의 꽤 중요한 진원지다. 과거엔 강렬한 알코올 도수와 바이주의 향이 강한 술이 인기였다면, 이제는 알코올 도수가 낮으면서 음식과 잘 어울리는 술에 더 관심이 쏠리고 있다. ‘차이니스 다이닝 펍’을 내세운 가게는 바이주로 만든 시그니처 칵테일을 훈장처럼 갖추고 있으며, ‘덕후선생’에는 ‘이네딧 담’처럼 중국과 관련이 전혀 없지만 맛이 잘 어우러지는 맥주도 메뉴판에 올린다. 반대로 일반 클래식 칵테일 바에서도 바이주를 베이스 술로 활용한 칵테일을 내놓기 시작했다. 실제로 술과 함께 중식을 즐기는 손님이 훨씬 많아졌다고 말하는 강건우 셰프는 이제 차 문화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쥬에’는 차예사가 따로 있을 정도로 차에 많은 공을 들였고, 차는 공짜로 마시는 것이라는 손님들의 편견을 깨고자 따로 가격을 매긴 차 메뉴를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딤섬의 종류를 다양하게 마련한 것도 딤섬과 함께 차를 마시는 ‘얌차’ 문화를 들여와 질 좋은 중국차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쥬에가 선두에 서면 좋겠어요. 중식과 함께 좋은 차를 즐기는 새로운 미식 문화를 이끌었으면 해요.” 강건우 셰프가 어느 때보다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한다.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익숙한 중식 메뉴를 줄줄 외워 주문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요즘 중식당들은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중국 현지의 익숙하지 않은 메뉴를 들여오기 위해 부단히 경쟁하는 중이다. 유튜브를 통해 신문물을 습득하는 것은 기본이고, 현지를 방문해 끊임없이 요리를 찾아내는 출장도 자주 간다. “글로벌화가 많이 진행되고 있는 중국 본토보다는 오히려 대만에서 더 ‘오센틱’한 중식 요리를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간이 좀 더 강하고 향신료도 적극적으로 쓰고요. 대만에서 발견한 현지의 요리를 한국식으로 조금 다듬는 거죠.” 최근엔 홍콩, 상하이에 이어 대만을 자주 방문한다는 강수일 셰프가 말한다. 현지 스타일의 요리를 가져와 선호하는 식감이 확실한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조금 더 쫄깃하게 만들거나, 기름기를 조금 빼거나, 프레젠테이션을 세련되게 하는 식의 ‘튜닝’을 거친다. 유발면, 삼배계 등과 같은 메뉴를 국내에 처음 선보인 것도 이런 노력의 결과다. “최근엔 ‘마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서 흥미롭습니다. 관광도 많이 다녀오고, 또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면서 이제 메뉴에서 뺄 수가 없게 됐어요. 덕후선생의 인기 메뉴도 ‘마라새우’예요.” ‘쥬에’의 강건우 셰프는 호텔 중식당에서 쓰던 고급 식재료를 이제 일반 레스토랑도 구할 수 있게 되면서 메뉴의 많은 부분이 상향평준화 됐다고 설명한다. 특히 중국의 특수 채소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채식 코스를 만들 수도 있게 됐다. “채식 전문 중식도 이제 서서히 시작될 것 같아요. 여기서 시작된 거죠.”
‘쥬에’로부터
- 에디터
- 프리랜스 에디터 / 손기은
- 포토그래퍼
- 이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