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새로운 시집의 시대

2019.10.11GQ

시인에게 등단이 전부였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점점 더 가볍게, 다채롭게 변화하고 있는 요즘 시집 출판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좋아하는 노래 중에,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으로 시작하는 동요가 있다. 그런데 빛처럼, 모두의 가방에 시집이 있다면 어떨까? 나는 연남동의 모 책방 겸 카페에서 일요일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도 쓴다. 나는 시, 좋은 시집을 내가 써서 세상에 내고 싶은 마음 만큼이나 다른 시인들이 쓴 좋은 시집들을 팔고 싶다. 아주 하찮은 영향력이라도 행사할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많이 팔고 싶다. 해서 책방에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곳은 ‘시집’이 꽂혀 있는 책장이다. 일단 꽤 연식이 된 시리즈인 ‘문학과지성사’ 시집이 가장 많고 ‘민음사’, ’창작과 비평’, ’문학동네’ 시집들이 비슷비슷하게 꽂혀 있다. 그리고 출판사 ‘아침달’이나 ‘유후’, ‘최측의 농간’, ‘삼인’, ‘봄날의 책’, ‘현대문학’, ‘읻다’, ‘파란’, ‘이미출판사’, ‘큐큐’, ‘걷는 사람’, ‘시인동네’ 등에서 나온 시집들이 책장을 채우고 있다. 책방의 신간 코너에 늘 시집 두세 종을 올리고, 달마다 다른 시인을 골라 책방의 ‘이달의 서가’를 꾸민다. 낭독회도 거의 시인 위주로 구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책방의 1주년 기념으로 그간 책방에서 낭독했던 작가들-임승유, 이제니, 이소호, 한정현 등-의 글을 모아 <한 권>이라는 책도 만들었다.)

책방 겸 카페에서 일하는 시인? 얼핏 한가롭고 낭만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 나의 시집을 많이 팔고자 하는 야망은 한가함이나 낭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카페나 서점을 운영하다 세상 멋지게 망한 선배들인 이상이나 박인환, 오장환 등을 생각하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물론 그들은 식민지 조선의 책방이나 카페의 주인이었고, 나는 4차 산업 혁명 시기 한국의 파트 타임 아르바이트생이니 입장이 조금 다르기는 할 것이다. 그래도 책, 그중에서도 시집의 수익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점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시급 노동자 겸 원고 노동자인 나도 가끔은 원점으로 돌아가 곰곰 답도 없는, 생각이란 것을 시작해보는 것이다. 시란 무엇인가부터, 시집이란 무엇인가, 독자 혹은 손님이란 무엇인가, 그러니까 시집을 도대체 누가 사는가 혹은 누가 출판하는가, 이것을 다 안다 해도 다시 시인이 되고 싶었겠는가, 까지. 알았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고 다짐인지 답인지 모를 것을 하다가 결국 나는 ‘사람들이 시집을 많이 사갔으면 좋겠다’ 같은 소망만 강하게 확인하고 생각을 접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세상에는 시인이 정말 많고, 시집도 많다는 사실이다. 팔고 싶어도 누군가 쓰지 않으면 선전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나마 안심되는 전제 하나다. 못 읽거나 안 읽을 뿐, 혹은 발견되지 못할 뿐 시는 계속 쓰이며 시집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요즘도 누가 시를 써?” 이런 질문은 마시라. 자신이 못 본 새로운 세계가 있다고 해서, 그 세계가 없는 게 아니란 것은 다들 알고 계시리라 믿는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등단하지 않아도 시집을 낼 수 있는 활로가 열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등단이라는 제도가 이제껏 많은 시인을 발굴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제도나 매체, 시대가 포용하지 못한 많은 재능 있는 시인, 많은 좋은 시를 놓쳐온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집을 내려면 등단한 자여야 한다는 암묵적인 법칙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나 또한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기에, 이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날들을 보냈다.)

그런데 등단이란 것, 이것은 기묘한 제도다. 근대 초입 신문의 탄생, 잡지의 탄생과 함께 생겨나 광복 지나, 한국 전쟁에도 살아남은 이 제도. 뭐 일단, 한국에서는 신춘문예, 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하면 등단했다고 하고, 등단이란 걸 했다 하면 시인이라고 쳐준다. 예를 들어 신춘문예만 이야기해 보겠다. 지금이야 그 위상이 좀 희미해졌지만, 신춘문예는 작가 지망생들이 문단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서 도전해볼 법한 매력적인 퀘스트로 여겨진다. 어쩌면 삼백 대 일, 오백 대 일의 경쟁률(매체마다 매해 경쟁률은 다르다)을 뚫고…, 심사위원 몇 명의 소견에 따라 단 한 편의 시로 소위 ’시인’이란 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입사가 승진을 기약하지 않고, 정년을 보장하지 않는 것과 같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더라도 시집을 출간하는 것은 또 다른 퀘스트이고, 출간으로 가는 길은 멀고 힘들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조금 바뀐 것 같다. 등단을 했든 안 했든, 현재 어디에서건 시를 쓰고 있으며 자신의 세계를 보여줄 준비가 되었다면, 시인으로서 독자를 만날 기회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 ‘삼인’이나 ‘아침달’에서는 등단 여부를 떠나 일단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를 받아 시집 출간을 결정한다. 덕분에 독자들은 유진목의 <연애의 책>이나 조해주의 <우리 이제 다른 이야기 하자> 같은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봄날의 책’의 경우, ‘캐롤 앤 더피’나 ‘파울 첼란’ 등의 번역 시집을 출간해왔지만 올해부터 국내 시인선도 꾸려볼 계획을 새로이 세우고 있다. 시인의 입장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출판사가 많아진 것이고 독자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시, 더 새로운 시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출판사 ‘팀 유후’의 공동시집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처럼 텀블벅을 통해 다른 시인들과 시집을 출간할 수도 있다.(소자본으로 출간된 이 시집은 독립 서점에 가야만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들인 수고보다, 장담컨대 더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은 ‘노-북’, ’시seal’, ‘토이박스’ 등의 독립 출판물에 시를 발표했던 이들(등단자, 비등단자를 가리지 않고)을 초대해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 **”이라는 일련의 주제로 19명 시인의 시를 모은 작고 낯선 책이다. 새로운 시, 낯선 시는 주제나 소재의 참신함에서도 보장되겠지만, 플랫폼의 새로움에서부터, 하다못해 판형과 소비 방식의 새로움을 통해서도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목격하게 해준 시집이다. 시집 출간에 대한 괜스러운 무거움을 덜어내는 데도 일조했다. 대형 출판사에서 절대로 내주지 않을 것만 같은 재미있는 기획 시집을 내고 싶다면, 실제로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작년, 텀블벅을 통해 출간한 ‘오네긴 시창작 그룹’의 페미니즘 시선 <구두를 신고 불을 지폈다>도 꼭 소개하고 싶은 시집이다. 문단 성폭력 해시태그 이후, 여전히 공고한 남성 중심의 문단 권력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모인 7인의 여성이 쓴 시를 모았다. 정나란, 이은경의 공동시집인 <가장 가까이 있는 말로/ 흙에 도달하는 것들>은 ‘둘 작가선’의 첫 책이자, 역시 텀블벅 후원을 받아 출간되었다. 평론가의 해설 대신 두 사람의 시에 대하여 말하는 이제니의 산문이 함께 실린 이 시집은 두 사람의 시가 거꾸로, 나란히 붙어 있다. 시는, 자유는, 한 가지 길이 아니고 다양한 길일 때 더 좋다. 좋아질 수밖에 없다. 시집의 출간 경로와 시인의 데뷔 경로가 더 다양해 지면서, 등단이라는 기존 제도 역시 심사위원 구성을 바꾼다든지, 심사 경위를 보완한다든지 등등 서서히 보완되고 변화하고 있다.

시집을 꾸리는 체험을 더 많은 시인이 할 수 있게 될 것 같아 기쁘다. 내 첫 시집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이 나왔을 때 좋기도 좋았지만 일단 신기했다. 종이 위에 글씨가 인쇄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시가 제 몸을 갖고 영혼을 갖고 누군가, 내가 모르는 사람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거의 신비로워 보였다. 과장을 보태자면, 나는 내 시집이 영화 <Her>에 등장하는 사만다와 거의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내 이름으로 된 OS를 출시한 개발자의 기분이었다. 내 시집이 되도록 멀리 많은 사람을 만나, 동시다발적으로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랑을 나누는 하나뿐인 OS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소망했다. 다른 시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본다.

시집은 손안에 잡혀, 그 사람의 온기와 눈빛을 흡수하고, 독자 혹은 구애자들과 소통하고, 소통하는 만큼 저 자신을 보여주고 발전시키는 유동적인 자아가 아닐까. 그런 만남을 겪은 사람은, 분명 그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의 가방에 늘 한 권의 시집이 있다면, 정말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 분명하다.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더 나은 세상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알 수 없는 세상에 모두가 시집을 읽게 된다면 지금보다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우리에게는 더 좋은 시집이 필요하다. 더 좋은 시가 필요하다. 더 많은 자유가 필요한 것처럼. 글 / 김복희(시인)

    에디터
    김아름
    사진
    텀블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