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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홀랜드가 골프장에 숨은 사연

2019.11.03GQ

열여덟 살에 스파이더맨으로 낙점된 톰 홀랜드는 이제 겨우 스물셋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가장 촉망받는 스타일 뿐 아니라, 2019년 흥행 실적이 가장 좋은 배우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지금 골프장에 숨어 골프나 치게 된 데는 어떤 사정이 있는 걸까?

터틀넥, 슈즈, 모두 브루넬로 쿠치넬리. 팬츠, 발렌티노. 시계, 파텍 필립.

코트, 랄프 로렌. 베스트, 이사이아. 셔츠, 로샤스.

코트, 팬츠, 모두 프라다. 슈즈, 크리스찬 루부탱. 양말, 골드토.

재킷, 팬츠, 모두 조르지오 아르마니. 터틀넥, 톰 포드. 부츠, 크리스찬 루부탱. 반지, 데이비드 예먼.

톰 홀랜드는 골프를 사랑한다. 골프 생각을 한시도 쉬지 않는다. 대중 골프장에서도, 그리고 한때 왕실에만 출입이 허가되었던 프라이빗 골프장에서도 라운드를 즐긴다. 아시아와 유럽, 미국에서 프레스 투어를 도는 동안에도 골프를 친다. 골프를 치지 않는 순간에도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다음 번 골프장 방문에 대한 기대감이 깃들어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골프에 중독되다시피 했어요. 밤에도 다음 날 골프 칠 걸 생각하며 잠이 들곤 해요.” 지금도 우리는 홀랜드와 함께 그의 고향 런던에서 골프를 치러 가는 길이다.

톰 홀랜드의 골프 집착에는 흥미로운 면이 있다. 지금 그의 인생에서 골프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홀랜드는 열여덟 살의 나이로 약 7천 명의 젊은 남자배우들과 함께 2000년 이후 세 번째 스파이더맨 시리즈 실사화 프로젝트 오디션에 참가했고, 다른 약 6,999명과는 달리 배역을 따냈다. 당시 최종 단계에서 고려된 배우들 중에는 티모시 샬라메, 냇 울프, 에이사 버터필드, 리암 제임스 등이 있었다. 그렇게 스파이더맨이 된 후로 홀랜드의 삶은 이전까지와는 달라졌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홀랜드는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머그잔을 들고 집을 나섰다. 친구가 준 선물이었는데, 중요한 건 머그잔 에 새겨진 사진 속에 어린 홀랜드가 상의를 벗은 채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것이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세계 홍보 투어를 마치고 집으로 막 돌아온 차였는데, 그동안 그의 삶은 약간 달라졌던 것 같다. “집 밖에 파파라치들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어요. 제 얼굴이 새겨진 머그잔을 들고 있는 모습이 찍히면 어떡하지 싶었죠.”

그래서 골프가 그의 안식처가 되었다. 톰 홀랜드라는 배우로서 살게 된 삶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도피처 같은 것 말이다. 지난 10년간 마블 스튜디오는 성공가도를 달리며 출중한 배우들의 커리어를 소생시키는 한편, 이제 막 떠오르는 배우들의 커리어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홀랜드는 어쩌면 시작부터 끝까지 마블에 의해 완성된 첫 스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주연을 맡은 첫 스파이더맨 영화는 8억 8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지난여름 개봉한 두 번째 영화는 10억 달러 넘게 벌어들였다.

하지만 흥행 실적만으로는 오늘날 코믹 원작 영화의 열렬한 소비층인 십 대 관객들에게 홀랜드가 차지하는 위상을 제대로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얼마 전 스물세 살이 된 홀랜드는 여전히 열여섯 살 같다. 노력하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관객의 대리인 같은 존재다. 그러니까 홀랜드는 그들의 스타인 것이다. 스파이더맨으로 처음 출연한 2016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로버드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한 토니 스타크는 정확히 누구를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퀸즈에 위치한 젊은 피터 파커의 집을 방문해 “네가…, 새끼 거미? 스파이더 보이?”라고 묻는다.

앞서 스파이더맨을 맡았던 토비 맥과이어(단단하고 성숙하며 내면적인 고통이 가득한)나 앤드류 가필드(1998년 펄프 공연에서 약에 취해 길을 헤매다 우연히 스파이더맨이 된 것 같은)와는 다르게 홀랜드는 처음 시작할 때 실제로 십 대였고 십 대처럼 피터 파커를 연기했다.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은 꾸밈없는 선한 마음과 넘치는 열정을 가졌다. 여느 열여덟 살과 마찬가지로 어벤져스 멤버들을 보며 경외심을 품었지만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정신없이 전개되는 종반부에 이르러, 어디서 본 듯하지만 확실치는 않은 여러 다른 마블 영화의 캐릭터들을 구해주기 위해 스파이더맨은 “제가 구해줄게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죄송해요, 이름이 하나도 기억 안 나요”라며 거미줄을 타고 종횡무진 화면을 누볐다. (그야말로 스파이더맨이다.)

평범한 체격이지만 의지로 충만한 홀랜드는 CGI로 꽉 채운 거대하고 스펙터클한 장면을 인간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데에 재주가 있다. 다른 영화감독들도 이에 주목했다. 올 가을에만 해도 홀랜드는 <커런트 워>와 <스파이 인 디스가이즈>에서 각각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윌 스미스의 상대역을 맡았다. 내년에는 더그 라이먼과 안토니오 캠포스, 그리고 루소 형제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지난 몇 년간 그는 거의 영화 촬영장에서만 생활해왔다. 하지만 어떤 일정에도 불구하고 홀랜드는 틈만 나면 골프에 매달렸다.

“골프의 좋은 점은 사람이 가장 겸손해질 수 있는 운동이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어벤져스:엔드게임>이 역대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을 때 말이에요. 정말 흥분되는, 엄청난 일이잖아요. 그럼 저는 ‘친구들과 골프 치며 축하해야지’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엉망으로 경기를 하고 나면 곧바로 다시 겸손해지는 거죠.”

홀랜드는 본인이 공동 주연을 맡아 올해 초 개봉한 <어벤저스: 엔드게임>이 영화 역사상 흥행 실적 1위에 등극했다는 뉴스를 말하는 것이다. 홀랜드가 출연한 또다른 올해 개봉작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현 시점에서 2019년 흥행 실적 4위에 올라 있다. 골프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그에게 톰 홀랜드가 2019년 흥행 수익 1위 남자배우가 될 수도 있다고 알려줬다. “와우. 그건 생각도 안 해봤어요.”

뒤이어 꽤나 진지하게 “그럼 매년 올해의 박스오피스 1위 배우를 뽑는 거예요?”라고 묻는다.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대답한다. 선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관찰이나 관측에 가깝다고. 공식 시상식 같은 건 없다고. 이야기를 곱씹으며 그는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홀랜드의 입에서 “와우”라는 한마디가 나온다. 그러더니 그건 말이 안 되는 것 같다고 한다. ‘더 락’이 있지 않냐고. “드웨인 존슨의 차기작은 뭐예요?”라고 묻는다. “저는 항상 더 락을 존경해왔어요. 더 락의 원칙은 자신이 속한 곳에서 제일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라는 거잖아요. 마음 깊이 와닿았어요. 정말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죠.”

어쩌면 홀랜드는 더 락에게서 자신과 같은 프로의식을 공유하는 동료의 모습을 발견한 것일 수도 있다. 홀랜드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배역을 맡게 된 건 런던의 웨스트엔드에서 <빌리 엘리엇>의 주인공을 연기하면서였다. 주연 자리를 따내기 위한 준비는 그가 아홉 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홀랜드가 자넷 잭슨의 노래에 맞춰 꽤 짜임새 있는 춤을 추는 모습을 본 상업 사진가였던 그의 어머니가 그를 무용 수업에 등록했고 그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 후 홀랜드는 실제로 배역을 맡을 수 있게 되기까지 2년에 걸쳐 훈련을 받았다.

발레 역시 훈련의 일환이었다. “학교 점심시간이면 체육관에서 선생님과 함께 혼자 연습을 하곤 했어요. 타이즈를 입은 채 말이에요. 그러면 다른 학생들이 창문에 매달려 저를 구경했죠. 럭비를 하는 열 살짜리들이 보기에, 체육관에서 발레를 연습하는 톰 홀랜드는 그다지 쿨해 보이지 않았을 거예요.” 그 때문에 그는 적지 않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뭐, 괜찮아요. 주인공 자리를 따기 위해서 제가 해야 했던 것이니까요.”

홀랜드는 발레를 통해 독특한 움직임의 문법을 배웠다. “발레는 무용의 근원이에요. 모든 종류의 무용이 발레에서 시작됐죠. 그리고 저는 발레를 했기 때문에 제 자신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스파이더맨의 경우 슈트 안에 있기 때문에 얼굴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저는 어떻게든 감정을 전달할 방법을 찾아내곤 하죠.” 그의 말에 따르면 무용은 “울거나 웃는 것 외에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법”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는 열한 살 때부터 매일 저녁 무대에 오르는 경험을 통해 직업의식을 키울 수도 있었다. 어린 나이부터 어른처럼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에 홀랜드는 소셜 미디어상에서 더 락에게 메시지를 보내 대화를 했다. “더 락은 저에게 엄청난 자극과 영감을 주는 사람이에요.” 대화를 마친 뒤 홀랜드는 한껏 고무된 상태였다. 더 락을 향한 존경심을 나타내기 위해 그가 어떻게 했을까? “저는 ‘빌어먹을, 체육관에 다녀야겠어’라고 마음먹었죠.”

앞으로 곧 바뀌겠지만 지금까지 홀랜드가 영화에서 맡은 역 대부분은 아들이나 비서, 또는 멘티처럼 연장자로부터 가르침을 얻거나 연장자에게 반항하는 젊은 남성이었다. 이는 홀랜드의 나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이십 대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간직한, 얼굴에 정직하게 드러나는 어떤 종류의 순수함 때문이기도 하다. 홀랜드는 보기 드물게 투명한 얼굴을 갖고 있다. 그는 실제로도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여러 멘토와 수호천사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론 하워드 감독의 <하트 오브 더 씨>와 어벤져스 시리즈에 함께 출연한 크리스 헴스워스가 있고, 당연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포함된다. 그리고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 악역을 맡은 제이크 질렌할과도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조금 묘하고 보기 드문 클럽의 일원이다. 마블 영화 출연은 어떤 것과도 다른 경험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 여러 마블 영화에 페퍼 포츠로 등장하는 기네스 팰트로가 그녀와 마찬가지로 마블 영화에 등장하는 존 파브로와 설전을 벌이는 영상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일이 있었다. 팰트로가 영화 <스파이더맨>에 한 번이라도 등장한 적이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는 스파이더맨에 나온 적이 없어요”라고 단언하는 그녀에게 파브로는 둘이 함께 스파이더맨에 나왔었다고 부드럽게 알려준다. 모두가 이 영상을 재미있어 했다. 재미있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동시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출연 배우들에게조차 거대하고 복잡하게 느껴질 정도로 확장되었음을 알려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크리스 에반스 같은 몇몇 기존 배우들이 시리즈에서 하차하며 남겨준 지혜나 조언이 있는지 묻자, 홀랜드는 잠시 생각에 빠진다. 남겨준다는 표현이 멋있다고 하더니, 다시 생각에 빠진다.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에게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요.” 기네스 펠트로가 자신이 <스파이더맨>에 출연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이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촬영 중 정확히 어떤 영화를 찍고 있는 건지도 모를 정도로 넓어진 것에 대해 묻자 홀랜드는 “뭐, 제가 어떤 영화를 찍고 있는지 항상 알고는 있어요”라고 가능한한 사무적이고 태연하게 얘기한다.

그러고 나서는 늘 타인의 기분이나 감정을 배려하는 그답게 한마디 덧붙인다. “물론 촬영 당시엔 어느 행성에 있는지,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또는 제 왼편에 어느 슈퍼히어로가 서 있는지 모른 채 연기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좋은 것도 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영화들의 광팬이었거든요. 슈퍼히어로들과 함께 영화에 나오는 동시에, 스토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영화를 볼 때 여전히 팬으로서 즐길 수 있게 되는 거죠.”

홀랜드는 팰트로가 스파이더맨이 누군지 정확히 알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만날 작정이라고 하는데, 둘은 최근 질렌할과 톰 행크스와 함께 <더 그레이엄 노튼 쇼>라는 토크쇼에 함께 출연했다. 그런데 프로그램 중반부에 이르러 계획에 없던 일이 벌어진다. 행크스가 홀랜드의 연기력을 시험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행크스의 주문은 간단했다. “커피, 커피, 저 정말 커피 더 필요해요”라는 짧은 대사를 최대한 다양한 방식으로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두 가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첫 번째는 런던 남서부 출신으로 영국 토크쇼에 나온 홀랜드가 미국식 발음으로 대답했다는 것이다. “신기하네요. 너무나 기쁘게도 지난 5년간 연기를 해왔는데 제게 주어진 배역은 항상 미국인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일종의 라이너스의 담요가 되어버렸어요. 왜냐하면 연기란 결국 자기가 아닌 남이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미국식 발음은 홀랜드의 심중을 본인도 모르게 드러내는 장치인 것이다. 그리고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미국식 발음을 몇 차례 더 듣게 됐다. 홀랜드가 미국식 발음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저에게 억양과 발음을 바꿀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보너스예요. 즉각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있거든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라고 약간은 변명하듯이 설명한다.

두 번째 놀라운 건, 행크스가 커피에 관한 얘기를 건네자 홀랜드는 순간 행크스가 정말로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줄로 알았다는 것이다. 영상을 보면, 홀랜드는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어 하는 학생처럼 커피를 가져오기 위해 토크쇼 도중 일어나려는 몸짓을 취한다. “행크스가 ‘커피 마실래? 커피 좀 가져다줄래?’라고 했을 때 전 거짓말 안 보태고 ‘네, 그럼요, 톰 행크스님. 원하신다면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무대에서 뛰쳐나가 커피를 가져오겠습니다’라고 하기 직전이었죠.”

톰 홀랜드는 필자가 청바지 차림인 것을 갑자기 눈치채고는 걱정이 된 모양이다. (청바지 차림으로는 골프장 출입이 안 된다.) 갈아입을 옷을 담아온 백팩을 들어 보이자, 홀랜드는 눈에 띄게 안심한다. 그가 상대를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순진한 친근함이다. 그는 필자가 어떻게 에디터가 됐는지 묻는다. 아내는 무엇을 하는지, 혹시 물이 마시고 싶진 않은지도.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긴 휴가를 보내는 거라는 그는 마치 총격전이 끝난 후 몸에 상처가 난 곳은 없는지 확인하는 사람과 같다. 본인이 여전히 좋은 사람인지, 어떻게 변했는지, 그리고 여전히 스스로를 좋아할 수 있을지 자문하는 듯하다.

“나이 어린 배우들이 유명세를 얻으면서 선을 넘거나 선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면 항상 이해가 안 됐어요. ‘대체 왜 저러지? 그냥 편하게 하던 대로 하면 될 텐데’라는 생각이었죠. ‘저 사람이 내 사진을 찍고 있나? 이 사람이 내 사진을 찍고 있나?’라는 식의 초조한 스트레스를 제가 직접 느껴보기 전까지는 그랬어요.”

그래서 홀랜드는 그런 경험을 이미 거친 주변인들에게 의지해 왔다. “젠데이아 콜먼(같은 스파이더맨 시리즈 출연자이자, 극중 피터 파커가 호감을 가진 상대) 같은 친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나 헴스워스, 제이크 질렌할도 마찬가지고요. 저와 같은 과정을 이미 거친 사람들이기 때문에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제게 가장 귀중한 조언과 충고는, 정상급 배우들이 촬영에 임하는 방식을 직접 보고 겪으며 얻을 수 있었어요. 그들은 프로로서의 자세를 철저히 유지하고, 인간적으로도 훌륭하고 겸손하기까지 해요.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죠. 영화배우로서 저 정도 위치에 올랐으면서도 좋은 사람일 수 있구나 싶었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끔찍한 얘기도 많이 듣게 되니까요.”

다른 한편 홀랜드는 자신이 5년 전에 있던 세상과, 이제 복귀하게 될 세상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배워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때로는 호되기도 하다. 수백만 명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심지어는 그가 누구와 사귀는지 또는 사귀지 않는지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본인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일주일 전 홀랜드에게 ‘의문의 금발 사건’이라 부를 수 있을 경험이 처음으로 닥쳤다.

사건의 발단은 사실 별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가 일요일에 하이드 파크에서 열린 콘서트를 보러 간 게 전부였다. 하지만 수요일이 되자 홀랜드가 비슷한 연령대의 금발 여성과 함께 밀착된 사진이 전 세계 수십 개 타블로이드지에 실리는 일이 벌어졌다. 같은 날, 홀랜드가 현실에서도 젠다이아와 연인 관계일 거라 상상했던 수천 명의 스파이더맨 팬들이 상실감에 젖어 슬픔과 분노 가득한 반응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요일이 되어 사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타블로이드지들이 여성의 실명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공개한 것이다. “맞아요. 썩 좋은 한 주는 아니었어요”라고 털어놓는 홀랜드는 생각만 해도 분한지 어금니를 꽉 깨문다. 수많은 타블로이드지에서 그 여성의 사생활을 침해했기 때문이냐고 묻자 그는 맞다고 답했다.

“저는 사생활을 굉장히 중시하는 사람이에요. 구글에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저는 타블로이드지와는 거리가 멀단 말이죠. 주목 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요. 필요할 때 외에는 스포트라이트를 피해 다니는 데 꽤 능숙한 편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예상 밖의 충격을 받았어요. 타블로이드지에 이런 식으로 실린 게 처음이었거든요. 제게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게 처음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상치 못했던 충격을 받았어요. 하지만 별수 없죠. 이런 사건이 발생하고 나면 ‘다시는 이런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수밖에요.” 홀랜드는 고개를 돌려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다 마침내 입을 연다. “이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타블로이드지에 실리는 제 삶은 제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동시에 저는 제 사생활을 누리고 싶어요. 저는 친구들을 좋아하고, 나가서 노는 것도 좋아하니까요. ‘이제부터는 이게 내 삶이야. 그러니 조심해야 돼’라는 식으로 정신을 번쩍 차렸죠.”

같은 맥락에서 그는 자기가 정확히 어디에 사는지 밝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집에 사는지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사내들로 가득한 영국식 별장 같은 집 말이다. 홀랜드는 친형제 두 명, 그리고 절친한 친구 세 명과 함께 집 안을 비교적 깨끗하게 유지하며 지낸다. 남자들끼리 모였다고 파티하고 노는 분위기도 덜한 편이다.

골프 장비를 챙기고 적절한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잠시 들른 이곳을 홀랜드는 바 Bar라고 부른다. 방 안에는 다트보드와 퍼팅 그린 매트, 그리고 탁구대와 술병으로 가득한 선반이 있다. 벽에는 어벤져스 영화 포스터가 걸려 있다. 골프채 두 세트와 포커 테이블도 있는데, 테이블을 덮은 블루 스크린은 홀랜드가 두 번째 스파이더맨 영화 촬영장에서 몰래 가져온 것이다. 현재는 포커 게임용 천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전날 밤 홀랜드는 같이 사는 친구들과 함께 딜러까지 갖춘 제대로 된 포커 대회를 열었다. 홀랜드가 연신 들이키는 맥주를 낚아채 저칼로리 보드카로 바꿔놓기 위해, 그의 퍼스널 트레이너도 그 자리에 동석했다고 한다.

휴가가 시작된 지 이제 며칠밖에 안 지났지만 홀랜드는 이미 몇 군데 부상을 입었다. “테니스를 너무 좋아해요. 제 동생 패디랑 같이 테니스를 해요. 경기 중 패디가 코트 가장자리 쪽으로 빠진 공을 쳤는데, 그걸 받으려고 뛰다가 넘어지면서 손으로 땅을 짚었어요.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파티에서 맥주병을 못 따겠는 거예요. 탁자 모서리에 병을 내리쳐서 뚜껑 따는 거 아시죠? 그걸 못 하겠더라고요. 테니스를 하다가 넘어져 손을 다친 건지 맥주병을 따려다 손을 다친 건지 모르겠어요.”

홀랜드와 나는 다시 차에 올라 골프 코스로 이동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홀랜드가 손에 입었다는 부상은 경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여기에서 밝혀둘 것은 톰 홀랜드의 골프 실력이 굉장하다는 사실이다. 드라이브샷을 3백 야드 가까이 날린다. 그는 주로 하이 드로 샷을 날리는데, 스윙이 간결하고 탄력적이며 공을 칠 때의 소리는 놀랄 정도로 크다. 필자처럼 평범한 사람이 톰 홀랜드와 골프를 친다면 “운이 없었네요”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운이 없었다는 것은 물론 명백하지만 상냥한 거짓말이다.

평일 오후라 사람이 거의 없는 코스에서 티샷을 앞두고 홀랜드와 상의해 필자가 홀당 타수 한 개씩 핸디캡을 가져가기로 했다. 그나마 비교적 공평하게 경기를 하기 위해서다. 내가 날린 첫 샷이 꽤 괜찮은 것을 본 그는, “저 이기려고 일부러 못 치는 척한 거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홀랜드의 이 발언을 굳이 옮기는 이유는 그것이 필자가 친 마지막 좋은 샷이었기 때문이다. 핸디캡 덕에 우리는 홀에서 동점을 기록한다. 처음이자 마지막 동점이다.

코스를 돌며 주로 골프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홀랜드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골프를 배웠다고 한다. 코미디언으로 활약 중인 부친 도미닉 홀랜드는 영화와 방송계에서도 커리어를 쌓은 바 있다. 그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영화와 방송에 진출하고자 하는 열망은 갖고 있었다. 그는 아들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을 지켜보며 느낀 대견함과 자랑스러움, 그리고 부러움에 대한 희극풍 회고록 <이클립스드>를 2017년에 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고록을 읽다 보면 아버지 홀랜드의 자기 비하가 어디까지 진짜인지, 또는 어디서부터 농담인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가령 그의 소개글에는 “작성했던 많은 대본이 각각 무산되기 위한 과정의 여러 단계에 놓여 있다”라고 적혀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삶과 아들의 성공을 기록하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종종 자신의 실패담을 올려 아들의 성공과 비교하곤 한다.

이런 얘기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들 홀랜드는 아버지의 그런 생각에 조금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다. 코미디는 굉장히 어려우며 그걸 해내는 사람들을 존경한다고도 한다. 홀랜드의 말에 따르면 그가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재미있고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아버지 덕분이다. 그렇게 만나게 된 사람들 중에는 그가 출연했던 토크쇼의 호스트인 그레이엄 노튼도 있었다. 홀랜드의 아버지는 프로 의식의 본보기였다. 그는 프레스 투어를 돌 때나 지금 진행 중인 인터뷰처럼 질문에 좋은 답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심한 상황에서, 재미있는 일화나 농담을 능숙하게 끼워 넣는 법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나아가 인터뷰를 도중에 유연하게 끊는 법도 배웠다고 한다. “악의 없이 드리는 말씀인데, 어떤 기자도 저를 막지는 않을 것이거든요.” 페어웨이를 걸으며 말한다.

<이클립스드>에 소개된 한 일화에 대해 홀랜드에게 물었다. 장차 톰이 배우로서 성공하지 못할 것을 대비해 홀랜드 부부가 아들을 목공학교에 보냈었다는 얘기가 책에 등장한다. 그게 사실인지 궁금했다. 2014년경 홀랜드가 열여덟 살일 때 일어난 일이다. “계속해서 오디션만 보러 다니던 때였어요.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당시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를 마친 직후였기 때문에, 제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죠. ‘나 론 하워드 감독 영화에 나왔잖아. 오디션 같은 건 안 봐도 돼’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죠. 그런데도 저는 제게 당연히 배역이 주어질 거라는 생각에, 진지하지 않은 태도로 오디션만 보러 다니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죠. 배역을 따내지 못했을 때 사기가 조금 꺾였어요. 그러자 어머니가 말씀하셨죠. 일이 계속 안 들어오니 대비책을 마련하는 게 좋겠다. 카디프에 있는 목공학교에 등록해뒀으니 가라. 6주 과정이다. 가서 목공일을 배워오라고요.”

그래서 홀랜드는 목공학교로 갔다. 외가 쪽 남자들 중에는 목수가 많았고 이제는 홀랜드도 목공일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리고 너무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는 지붕을 짜고 욕실을 수리하는 법을 배웠다. 목공 과정을 들으면서도 오디션을 네 차례나 봤다. 그중에는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로스트 시티 오브 Z>와 <엣지 오브 윈터>라는 독립영화도 있었다. “그리고 제가 마지막으로 본 오디션이 <스파이더맨>이었어요. 제 첫 <스파이더맨> 오디션은 제가 카디프에 있을 때 본 거죠.” 그 무렵 그는 스스로를 조금 더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오디션을 본 네 편의 작품 모두에 캐스팅되었다. “대비책을 마련하느라 고심하던 그 시기에, 마침 모든 게 딱 맞아 떨어진 거예요.”

어디선가 등장한 여우가 골프 코스를 한가히 거닌다. 홀랜드는 말하는 도중에도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줍고 디보트를 집어넣는다. 눈에 보이는 대로 볼마크를 매만진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처럼 골프 코스를 아끼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다고 한다. “여기는 제 골프 코스예요”라고 홀랜드는 얘기한다. 5번 홀에 이르러 나는 왼쪽으로 너무 휘어진 풀 샷을 날린다. “운이 없었네요. 하지만 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스파이더맨 오디션에 대한 얘기로 돌아갔다. 오디션은 6개월 간 진행되었다. 당시 최종 후보자 명단을 본 홀랜드는 본인이 “세상 사람들이 원했던 선택과는 거리가 꽤 멀었다”고 한다. 그가 받은 그러한 인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리고 휘둘리기 쉬운 십 대였으니까,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댓글을 그대로 믿게 되잖아요.” 캐스팅 담당자들은 다음 날 결과를 알려주겠다며 차일피일 미뤘고, 그렇게 6주가 더 지나갔다. “뒤로 공중제비를 넘는 영상을 온라인에 올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반응들이 상당히 부정적이었어요. 그러다 제가 스파이더맨으로 섭외되고 나서야 다들 ‘공중제비도 넘을 줄 아네? 완벽한 선택이야’라는 식으로 반응하기 시작했죠”라고 홀랜드는 당시를 회상한다. 그때부터 그는 인스타그램을 맹목적으로 믿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코스의 마지막인 파3홀에서 그는 끝으로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들려주기 위해 잠시 골프채를 내려놓는다. 최근의 일인데, 한국에서 갓 돌아와 시차 적응을 못 했던 그는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눈이 떠져 고생을 꽤나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대로 골프를 치러 여기에 혼자 왔죠. 코스에는 오직 저밖에 없었어요. 이 코스를 아마 2백 번도 넘게 돌았을 거예요. 그런데도 홀인원은 한 번도 못 해봤어요. 그러다 어느 날 지금 이 홀에 도착한 거예요.”

1백45야드 정도 떨어진 곳의 그린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골프는 꽤 잘되고 있었어요. 연습할 겸 공 두 개로 했죠. 첫 번째 샷을 날렸는데 ‘와우, 이거 괜찮은데? 진짜 잘 쳤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시면 알겠지만 여기서는 깃대의 아랫부분이 안 보이잖아요? 그러니 홀인원이라 해도 여기서는 알 수 없죠. 공이 떨어진 곳을 향해 걷는데 신이 났어요. 결국 도착해서 확인해보니 홀인원이었죠. 제 골프 인생 최초의 홀인원이었어요. 그런데 너무 기쁜 와중에 목격자가 주변에 한 명도 없더라고요. 아침 6시였으니까요.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얘기했죠, 홀인원 했다고. 하지만 아무도 제 말을 믿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다음 날 아버지와 제 동생 해리와 샘이 골프를 쳤는데 해리가 바로 이 홀에서 홀인원을 해버린 거예요. 모두가 지켜봤죠.” 하지만 톰 홀랜드의 다른 성과들은 사람들이 제대로 지켜본 것 같지 않냐고 묻자, 홀랜드는 잠시 고민한다. “그건 사실이죠. 하지만 어쩌면 제 홀인원이 비밀인 게 차라리 좋을 수도 있어요.” 그러더니 홀랜드는 자세를 취하고 티샷을 날려 홀에서 5피트 떨어진 곳에 공을 떨어뜨린다. 필자가 친 공은 벙커에 빠진다. “운이 없었네요!”

    에디터
    Zach Baron
    포토그래퍼
    Fanny Latour-Lambert
    스타일리스트
    Mobolaji Dawodu
    그루밍
    Larry King for Larry King haircare
    프로덕션
    Mana Media Gro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