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은 언제쯤 종식될 수 있을까?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타인과의 간격과 껴안고 싶은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올해 이른 봄, 주변에 유서 깊은 궁과 얕지만 수려한 산이 버티고 있고, 골목길에서 개성 넘치는 카페와 식당을 찾는 재미가 있어 사람들이 제법 찾아오는 동네로 이사했다. 나는 곧 벚꽃이 필 것이라는 사실과 가벼워진 옷차림을 한 젊은 사람들 사이를 싱그러운 마음으로 오갈 생각에 조금 들떴다.
봄은 짙어졌지만 바람만 싱그러웠다. 벚꽃은 4월에도 사람들의 시선을 듬뿍 받지 못했다. 들썩거려야 할 거리는 비행기 격납고처럼 적막해졌다. 벚꽃이 진 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쌓아놓은 둑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민들레 홀씨처럼 곳곳에 흩날렸다. 타인과의 간격은 다툼 후 화해 없이 한 침대에 누운 부부 사이의 거리만큼 심리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벌어졌다.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떼 지어 놀기도 하던데 책임감과 연대의식은 원래 그런 이들의 것이 아니었다.) 이른바 ‘간격’ 조정의 나날들이 펼쳐진 것이다.
슬픈 날들이었다. 산책 시간이 줄어든 탓이 크다. 어쩌다 인적 드문 시간을 택해 걸으면 햇살은 좋았고, 바람은 기분 좋게 부드러웠다. 꽃들은 흐드러지게 피었고, 강물은 여유롭게 흐늘거렸다. 인도 위에서 비둘기가 아닌 참새들이 부리를 조아렸고, 길고양이들이 경계 수위를 낮춘 채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오로지 인간만 쓸쓸하고 우울했다. 산책은 사람 사이의 벌어진 간격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는 행위였다. 그러나 멀어진 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부부의 간격은 줄어들었다. 언론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 ‘물리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기 위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부부들의 이혼 급증 사례를 ‘웃픈’ 일인 양 다루기 시작했다. 예외 없이 우리 부부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갈등으로 인한 것은 아니다. 집에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우리의 간격은 그대로였다. 우리는 ‘남들보다는 가깝고, 자기 자신보다는 먼 거리’를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유지해왔다. 간격의 미덕을 천천히 습득해 왔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공유 시간의 증가가 다툼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 팬데믹은 부부 사이의 평화도 다량의 간격을 용인하는 데서 온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는 듯하다.
잦은 다툼 대신 달라진 점은 둘 사이에서 디테일하게 다루지 않던 소재의 대화가 늘었고, 깊이 따져보지 않던 것들에까지 생각이 미쳤다는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서로의 친구들에 대한 소회, 각자의 일에 찾아온 사소한 변화들, 마스크로 가려지지 않은 타인의 얼굴 부위에 대한 평가, 그리고 각종 술의 맛과 향의 사소한 차이.
술과의 간격은 이전보다 확연히 줄어들었다. 밖에서 사람들과 마시던 술은 관계로 빚어낸 것이었다면, 집에서 혼자 혹은 둘이서 마시는 술은 오로지 재료가 빚어낸 것이었다. 늦게까지 이어지는 음주 문화가 없어 일과 후 ‘식스팩(6개 들이 캔 묶음)’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가 스포츠 경기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미국 노동자들처럼 우리 부부는 이전보다 더 자주 집에서 술을 마시고, 술에 대해 이야기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팬데믹을 맞아 한국의 술은 공동체의 전당에서 개인주의자들의 테이블로 물러났다.
지난 세월 동안 한국 사회에 가지고 있던 불만 중 하나는 개인주의에 대한 고까운 시선들이었다. 개인주의가 다리 하나 건너면 이기주의가 되는 것은 사실이나, 한국의 개인주의는 성장의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틈만 나면 두드려 맞기 일쑤였다. ‘같이 하고 싶지 않다’, ‘밀착되고 싶지 않다’ 이것 자체가 하나의 정당한 이유로 취급되지 않는 사회는 언제든 담론의 자리에 품성론을 소환할 수 있다. 옳은 소리 하는 싸가지 없는 인간. 똑똑하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예의 없는 인간. 공동체주의 나름의 미덕이 있듯, 개인주의도 미덕이 있다. 팬데믹은 한국에서 올바른 개인주의가 자라날 밑거름을 의도치 않게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그럴 필요 없는 많은 일들을 필요 이상으로 ‘함께’ 해왔다.
친구들과의 간격도 이런 분위기를 타고 있다. 만나서 할 이야기가 없을 때도 주기적으로 친구들을 만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가끔씩 서로의 안위를 문자와 전화로 묻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이사 온 지 석 달이 흘렀지만 집들이에 오라는 말도, 집들이를 하라는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래도 관계는 이전처럼 문제가 없다. 팬데믹으로 인한 세계의 불행이 압도적으로 크지만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으레 하곤 했던 일들이 줄어들고, 개인으로 존재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은 한국 사회에 나름의 긍정적인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가 있다.
또 하나 줄어든 간격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이다. 국가가 이웃집 어르신처럼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눈치를 주고, 주의를 주고, 지시를 내린다. 확진자와 확진 의심자들의 동선은 드론의 시선으로 파악되고, 재난 문자는 하느님의 잔소리처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휴대 전화를 수단으로 ‘야경국가’는 ‘정찰국가’로 이론의 여지를 따질 새도 없이 변모했는데, 위치 추적 장치를 머리맡에 두고 자는 것 같아 흠칫흠칫했다. 국가와 개인의 정당한 간격을 논할 자리가 어서 마련되길 바라본다. 과한 친절과 조언은 누구도 반기지 않으니까.
줄어들었으면 하는 간격도 있었는데, 바로 사람들과 책의 간격이다. 팬데믹 이전부터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자리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다. 일견 장점이 있겠지만 책은 어쨌거나, 특히 소설은 온전한 일대일의 대면이 우선 필요하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도서 판매량이 증가했다는 이야기는 풍문으로도 들려오지 않았다. 애꿎게도 개성 있는 동네 서점들이 타격을 받고 있었다. 격리 시간이 늘어났음에도 책을,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둘 사이의 간격을 좁힐 수 있는 방법은 도대체 무엇일까? 슬프고 슬픈 감정을 안고 나는 소설을 그럼에도 끄적였다.
팬데믹의 종식이 언제쯤 될지 이런저런 말이 있지만 누구도 확신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우리는, 관성 탓에 예전의 간격으로 빠르게 돌아가려 할 것이다. 나도 견딜 수 없이 몸이 근질거린다. 더 많은 친구에게 달려가고 싶고, 늦었지만 집들이를 하며 지난 몇 개 월간의 달라진 삶을 수다로 풀어내고 싶다.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마주한 채 대화를 나누고 싶고, 여러 개의 술잔과 술잔이 부딪칠 때의 경쾌하고 신나는 소리를 듣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반복이 되면서 삶은 다시 내 저편으로 달려가고, 피곤함은 늘어나겠지.
벗어나고 싶은 삶은 비슷한 패턴의 연속, 예외가 적은 관성들의 결합으로 완성된다. 호흡기내과 의사인 이낙원 씨가 쓴 <바이러스와 인간>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한국 사회, 아니 인류가 긴 터널을 뚫고 지나가고 있다.” 긴 터널을 빠져 나온 후, ‘껴안고 싶은 삶’을 위해 앞으로 다시는 좁히지 말아야 간격들이 몇 가지 있어 다짐을 해본다. 바이러스의 간격(손에 습진이 생길지라도 씻고 또 씻을 생각이다), 동물과의 간격(아무거나 주워 먹는 시절은 어릴 때로 충분하다), 인종 간 민족 간 편견과의 간격.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못났다. 잘났다 믿고 있던 치들은 이제 입을 다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절대 벌리고 싶지 않은 간격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바로 음악과의 간격. 격리 시절을 근사하게 견딜 수 있게 해준, 인류를 위해 노래하고 연주한 모든 음악가에게 경의를 바친다. 글 / 김기창(소설가)
- 피쳐 에디터
-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