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관심과 막대한 자본이 인디 게임에 쏟아지고 있다. 존재감 없는 작은 게임에 불과하던 위상이 유래 없이 격상하고 있다.
인디라는 단어가 포괄하는 의미는 많다. 게임에서는 개인 혹은 소규모 개발사가 자신들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해 만든 작품을 인디 게임이라고 부른다. 최근 게임 업계가 인디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기관과 지자체도 인디 게임 육성에 힘을 싣겠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펄어비스 같은 쟁쟁한 회사들도 앞다투어 인디 게임 지원을 발표하고 있다. 과거 국산 게임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때를 보는 듯하다. 다양한 게임이 나오는 건 환영할 일이지만 문득 궁금해진다. 왜 하필 지금, 인디일까.
대형 개발사는 운신의 폭이 좁다. 역설적이지만 규모가 큰 만큼 함부로 게임을 개발할 수 없다. 큰 회사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게임은 기본 퀄리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결과물이 기업 이미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퀄리티는 곧 비용이다.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작품에 많은 비용을 들이기보다 확실하게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는 주류 장르에 총력을 기울이는 편이 합리적이다. 반면 인디 개발사의 사정은 다르다. 상대적으로 잃을 것이 없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다양한 방법으로 구현한다. 주류 장르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산뜻한 시도가 무기다. 예를 들어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모바일 게임 ‘살아남아라! 개복치’는 돌연사라는 아이디어를 핵심 포인트로 설정했다. 입국심사관이 되는 ‘Paper, Please’는 서류를 검토해 입국 여부를 결정한다는 아이디어를 도입, 매력적인 스토리텔링과 엮어 몰입도를 높였다.
인디 게임의 성공은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인디에서 시도한 아이디어가 트렌드를 이끄는 경우도 많다. 세계적으로 큰 성과를 거둔 ‘마인크래프트’의 출발점도 인디 게임이었다. 훗날 마이크로소프트가 한화 약 2조원에 회사를 인수하며 역대급 성공 사례로 남았다. ‘살아남아라! 개복치’ 역시 세 명으로 시작한 회사에서 개발했다. 1인 개발자의 작품인 농장 경영 시뮬레이션 ‘스타듀밸리’는 PC, 모바일, 콘솔로 플랫폼을 넓히고 있다. 긍정적인 반응을 등에 업고 정식으로 개발팀을 꾸려 후속작까지 만드는 중이다. 이들의 성공은 단순히 게임이 시장에 나온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게임 업계의 다양성이 유지되고 확산되는 과정을 면밀하게 전시한다.
이는 인디 게임이 주목받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인디 게임은 일종의 ‘틈새 시장’이다. 참신한 아이디어는 AAA급 게임으로 이어진다. 대형 개발사가 만든 대작 게임은 새로운 시도보다는 이미 검증된 아이디어를 개선해 사용한다. 반대로 인디 게임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대중에 소개되고 평가받는 장이다. 이곳에서 호평 받은 시스템이나 아이디어는 개량과 보강을 통해 AAA급 게임에도 적용된다. 대형 개발사 입장에서는 인디 게임 투자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고 미래의 잠재적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마이크로소프트의 ‘ID@Xbox 프로젝트’가 있다. MS는 자사의 클라우드 플랫폼인 ‘xCloud’와 Xbox 콘솔 및 PC를 한데 묶어 어디서든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 애니웨어’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인디 개발사를 지원하고 자사 플랫폼에 입점시키면서 게임 풀을 늘리고 상생의 이미지를 구축한다. 인디 개발사 입장에서도 소중한 기회다. 대중에게 게임을 알릴 수 있는 확실한 시장을 확보한다. MS가 제공하는 각종 툴과 서비스 노하우도 배울 수 있다.
국내에서도 여러 기업이 인디 게임 지원을 진행하거나 준비 중이다. 네오위즈는 인디 게임 ‘스컬’을 퍼블리싱하고 온라인 인디 게임 쇼를 주최하며 인디 장르에 친화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검은사막’의 개발사 펄어비스도 최근 인터뷰에서 약 1천억원을 인디 게임 지원에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로스트아크’로 유명한 스마일게이트는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인 오렌지팜에 이어 자체 플랫폼 스토브에 인디 게임 마켓을 도입, 국내외 인디 게임을 아우르는 전문 마켓으로 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정부와 지자체도 인디 게임 육성 방안을 발표하면서 시장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요약하면, 이미지 개선과 신규 사업 모델 구축이 목표인 대형 개발사와 중소기업을 육성해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 정부의 필요가 맞아떨어져 인디 게임은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다. 목적은 세속적일 수 있지만, 결과물은 게임 업계의 다양성과 생태계 선순환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동반한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되니까.
정부 지원 사업이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개발사에 적당한 비용이 들어가도록 전문성을 갖춘 심사위원과 기관이 필요하다. 서류 작업의 완성도가 아니라 게임 자체의 기획이나 중간 결과물을 평가할 수 있도록 심사와 평가까지의 과정도 촘촘하게 설계해야 한다. “현장을 모른다”는 세평과는 달리 게임물관리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관련 기관 재직자들의 전문성은 상당하다. 약간의 제도 개선만 있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영역이다.
다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그중 하나가 최근 일어나는 게임 등급 분류 논란이다. 개발보다 유통이 문제다. 유통을 위해서는 개발사가 등급 분류를 직접 받아야 하지만, 들어가는 비용과 행정적 절차가 만만치 않다. 오죽하면 한국 개발사가 한국어를 쏙 빼고 게임을 출시할 정도다. 물론 구글이나 애플 마켓에 어플을 올릴 때는 이런 과정이 어느 정도 간소화된다. 하지만 PC 인디 게임의 경우 문제점이 많다. 주요 보급처인 ‘스팀’은 자율 등급 사업자가 아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도 게임산업법 개정을 언급하면서 규제 기관이 자율 규제 지원 기관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견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 과거 플래시 게임 등급 분류 이슈 때도 비슷한 논의가 진행된 적이 있으나 유야무야 사그라들었다. 인디 개발자에 행정적 지원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규제를 완화하고 자유로운 개발 환경을 만들어주는 방법이 더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유통망의 다변화도 필요하다. 현재 인디 게임을 유통할 수 있는 통로는 제한적이다. 스팀 외에 다른 통로가 없다시피 하다. 다른 게임 플랫폼들은 인디 게임이 알려지거나 흥행하기 어려운 구조다. 국내 한정이라도, 인디 게임을 종합적으로 유통 및 홍보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진다면 개발자들의 사정이 한결 나아질 테다.
지금 인디 게임에 쏟아지는 관심의 결과는 게임 업계 전체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국내 인디 게임 개발 시장이 어떻게 바뀔지 결정되는 시기다. 관심이 몰리고 돈이 몰린다는 건, 바꿔 말하면 관심 밖에 있던 영역이 심사대 위에 올랐다는 말도 된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풀려 이상적인 결과가 나온다면,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되고, 다시 시장을 선도하며 중소기업을 키우는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다.
인디 게임을 관통하는 정체성은 하나다. ‘내가 하고 싶은 게임을 만든다’. 매출 걱정 없이 윗사람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어서 만든 게임. 어떻게 하면 매출이 더 잘 나올까, 어떻게 하면 일일 접속자 수를 늘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고, 이렇게 하면 더 재미있겠다 상상하며 즐겁게 만든 게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듯, 즐겁게 만든 게임에는 시장을 흔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인디 게임에 대한 지금의 관심이 개발자가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 김강욱(게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