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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국 "스스로 즉흥의 끝판왕이라고 해요"

2021.03.25GQ

서인국의 변신은 이렇게나 극적이다.

블랙 시스루 톱, 드리스 반 노튼 at 분더샵.

그린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 애니멀 패턴 셔츠, 모두 벨루티.

핑크 니트 톱, 팬츠, 모두 보테가 베네타.

촬영할 때 재밌어요라고 여러 번 말했는데 뭐가 재미있었어요? 생각해보면 극단적인 감정 상태나 표정, 말투, 액션을 지닌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없어요. 영화 <조커> 같은. 아직까지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급격한 변신을 하면 제가 봐도 어색할 것 같아요. 화보는 극단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이라 재미있어요. 오늘은 특히 더 그랬어요. 되게 재미있었어요.

확실히 다르게 찍었죠. 재밌어라는 표현에 익숙한 사람 같아요. 맞아요. 입에 달고 살아요. 저한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웬만하면 재밌다고 말하는 편이에요. 별 거 아닌 일에도 그렇고, 힘든 일이 있으면 나중에 떠올리면 재밌겠네, 소주 안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말아요.

스스로를 격려하는 주문 같은 거네요. 오,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듣고 보니 그래요.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군요. 어머니께서 그런 면이 있으세요. 가족력인가 봐요. 그리고 학창 시절 별명이 ‘촐랑방구새’였어요. 하도 까불고 다녀서. 나이가 들어 달라진 점이라면 표현의 데시벨이 낮아진 것 정도? 조금은 점잖아졌죠. 그런데 웃음은 진짜 못 참겠어요. 재밌는 이야기를 할 때도 말하기 전부터 혼자 킥킥거려요. 남들이 재밌어하거나 말거나.

화보 촬영 때 다시 한번 생각했어요. 서인국의 얼굴에서는 다른 사람이 떠오르지 않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은 아니구나. 제가 볼 땐 그래요. 와, 엄청난 칭찬이네요. 그러고 보니 누굴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듣진 않았어요. 오히려 닮은 동물이 많죠. 오리, 펭귄, 진돗개, 사막여우. 눈이 작고 눈매가 옆으로 길게 찢어진 부류는 다 저를 닮았대요. 이런 얘기도 들었어요. 웃을 때 눈이 사라지면 서인국이라고.

그래요? 내 얼굴은 이렇다, 설명을 해본다면요? 희한한 얼굴이죠. 잘생긴 면도 있고 못생긴 면도 있어요. 또 날카로운 면이 있는가 하면 유한 면도 있고, 못되어 보이기도 하면서 귀여운 면도 있어요.

보통 그럴 때 다양하다고 말하는데. 하하하. 그렇긴 한데 희한하다는 표현이 더 재미있어요.

생각해보니 재미있네요. 그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표정은 뭔가요? 무표정한 채로 있으면 주변에서 안 좋은 일 있냐고 물어봐요. 눈매가 올라가고 인중이 짧아 뾰루퉁하거나 날카로워 보인데요. 그 날카로움을 좋아해요.

이상적인 배우의 얼굴은 누구라고 생각해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미소년 시절이 아니라 지금. 이전에는 누가 봐도 잘생겼다는 감탄을 자아냈다면 지금은 잘생겼다, 멋있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없이 무조건 빠져들어 보게 돼요.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두고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거죠. 손에 들고 있는 팝콘조차 잊게 만드는.

서인국의 얼굴도 곧 스크린에서 보게 될 거예요. 이미 촬영을 마친 영화 <파이프라인>에서는 어떤 얼굴을 하죠? 전혀 정의롭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정의를 선택하는 캐릭터.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모습이 있잖아요. 껄렁껄렁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고, 남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표정과 말투. 그게 다 담겨 있어요.

출연작 중에서 다시 봐도 놀라운 얼굴이 있나요? 데뷔작 <사랑비>겠죠. 그 당시 몸무게가 86킬로그램까지 나갔어요. 지금 보면 풋풋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요. 캐릭터를 위해서라면 그렇게 다시 살을 찌울 자신이 있어요. 하하.

<슈퍼스타K>가 생각났어요. 초반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방송 중간 다이어트를 통한 외모 변화로 큰 인기를 얻었죠. 딴사람 같았어요. 제 이목구비가 그렇게 뚜렷한 줄 몰랐어요. 그전까지는 사진을 찍거나 화면에 나올 일이 없었으니까.

여담이지만, 우승자가 된 모습을 최종 결승 현장에서 직접 봤어요. 정말요? 저는 그때 기억이 거의 없어요. 경연을 며칠 앞두고 미션을 받아 부랴부랴 연습하다 잠들고 그런 와중에 촬영도 해야 하고, 무대에는 어떻게 올라갔나 싶어요. 데뷔하자마자 2~3개월은 더 바빴죠. 기억나는 게 이런 것들이라 좀 아쉬워요.

화이트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 우영미. 블랙 스퀘어 토 퀼팅 더비 슈즈, 보테가 베네타.

블루 페인팅 패턴 재킷, 블랙 자카드 스트링 팬츠, 모두 벨루티.

그린 타이다이 셔츠, 블랙 쇼츠, 모두 드리스 반 노튼 at. 분더샵, 블랙 더비 슈즈, 알렉산더 맥퀸.

블랙 시스루 톱, 무릎 지퍼 디테일 블랙 팬츠, 모두 드리스 반 노튼 at 분더샵. 스퀘어 토 블랙 앵클부츠, 라프시몬스.

브라운 비즈 니트 베스트, 보테가 베네타.

<어느 날 우리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의 촬영은 즐기고 있어요? 네! 정말로요. 이야기와 캐릭터도 재미있고 무엇보다 촬영 현장이 즐거워요.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잘 마쳤으면 좋겠어요.

백 일만 살 수 있는 여자와 멸망이라는 존재의 판타지 로맨스라면서요? 종잡을 수 없는 설정이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살다 보면 힘들거나 괴로운 일이 생겨 나한테만 이런 불행이 닥치는 것 같아 억울한 순간이 있잖아요. 동경(박보영)이란 주인공이 백 일밖에 못 산다는 사실을 알고 “세상이 멸망했으면 좋겠다”라고 외쳐요. 마침 신과 인간의 중간 관리자로서 멸망을 담당하는 제가 그 이야기를 듣게 되죠. 그러면서 두 인물이 만나요. 그 지점이 상당히 재미있어요.

멸망 캐릭터라니,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해지네요. “그가 숨 쉴 때 나라는 사라지고, 그가 걸을 때 계절은 무너지고, 그가 웃으면 생명이 꺼진다”라는 표현이 나와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두려운 존재죠. 그런데 과연 그가 자신의 능력을 좋아할까? 생명이 꺼져가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울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멸망이라는 단어가 마냥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해가 되는 문화나 관습이 없어진다는 의미도 담겨 있어요.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면 세상에서 뭘 치워버리고 싶어요? 코로나19 바이러스요. 모두가 바라고 있을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못 하게 된 것이 너무 많잖아요. 하루빨리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과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것 중에서 하나를 되살린다면요? 인간관계에 관한 건데, 데뷔하려고 울산에서 서울로 오는 바람에 오래된 친구들과 멀어지고 흐지부지 연락이 끊기기도 했어요. 잃어버렸던 관계를 되찾아 잘 이어가고 싶어요.

가끔 신을 찾기도 하나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정말 힘들거나 간절한 게 있으면 자연스럽게 기도를 해요.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거든요. 기도한 대로 다 이뤄지는 건 아니에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기도를 할 정도로 간절히 바랐지만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나 보다, 하면서 아쉬움을 떨쳐내요.

아까 왼쪽 눈 밑의 점은 사진에서 지우지 말아달라고 했는데 이건 타고난 복점이라면서요. 그래요?

어디 보자, 검색해보니까 왼쪽 눈 밑의 점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재물이 들어오며 결혼 생활이 행복할 거라고 하네요. 지금은 매력적으로 봐주지만 예전에는 눈물점이라고, 눈물 흘릴 일이 많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점을 빼려고도 했지만 너무 깊고 커서 제대로 없어지지 않았죠. 그런데 데뷔 초반에 사람들이 이 점으로 저를 알아보는 경우가 많았어요. 나에 대한 이미지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대로 뒀어요.

그럼 왼쪽 눈 밑의 점을 가진 서인국은 운이 좋은 사람인가요? 어릴 적에 가위바위보로 술래를 정하면 거의 다 저였고, 뽑기를 해도 꽝이 잦았어요. 그런 소소한 운은 별로인데 가끔 큰 행운이 찾아왔죠. 오디션 프로그램 1등으로 데뷔했고 <사랑비>를 만나 연기를 시작해 <응답하라 1997>로 지금까지 연기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어요.

누가 봐도 아주 큰 행운이죠. 사람들이 잘 모르는 서인국의 기질은 뭐예요? 엄청 즉흥적이에요. 스스로 즉흥의 끝판왕이라고 해요. 뭘 하기 전에 고민은 거의 하지 않죠. 정해진 약속이나 일에 관한 건 예외지만, 그때그때 하고 싶은 대로 해요. 기분 내키면 혼자 여행도 휙 가고. 차를 몰고 그냥 떠나요. 차 안에서 노래 실컷 부르면서.

가수로 데뷔했는데 음악 활동은 접은 건가요? 아니면 계획이 있어요? 정확한 시기는 정하지 않았지만 앨범 계획은 늘 있어요. 꾸준히 곡 작업을 하고 틈 나는 대로 가사도 써요. 요즘 눈에 보이는 것에서 영감을 찾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최근 눈에 담은 것 중에서 인상적인 게 있다면요? 뭔가 그럴듯한 대답을 하고 싶은데….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탕수육요.

탕수육? 어떤 메뉴인지도 모르고 주문했는데 처음 보는 하얀색 탕수육이 나왔어요. 하얀색과 주황색이 어우러진 튀김의 자태가 오묘하더라고요.

조금 특이하다는 소리 듣죠? 하하하. 가끔요. 막 싫지는 않아요. 저라는 사람이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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